[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 대박 브랜드 비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기업 내부거래 등을 시사지 최초로 연속 기획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14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직원들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금기어'를 통해 기업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기업으로선 숨기고픈 비밀, 이번엔 부영의 '알바 사장님'이다.
"승진이요? 안 잘리면 다행이에요." 사석에서 만난 부영그룹 한 임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했다. 같이 회사에 들어온 동기들은 모조리 잘렸다고 한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단다.
낙하산 줄착륙
재계 23위(공기업 제외)인 부영그룹은 14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5개 계열사의 대표이사가 외부인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 외풍을 타고 착륙한 공기관·공기업 출신의 '낙하산' 인사다.
이삼주 부영 대표이사는 한국토지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사처장과 인천지역본부 본부장 등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이 대표는 부영주택·동광주택산업 대표이사도 겸임 중이다. 김시병 부영 대표이사는 우리은행 여신심사센터 부장, 외환사업단 단장, 기업영업본부 본부장, IB본부 부행장 등을 역임한 금융권 출신 인사다. 부영주택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남양개발의 두 대표이사는 모두 제주에서 활동하던 고관들이다. 정동진 대표이사는 제주도교육청 국장을, 고용삼 대표이사는 제주도 관광문화국장을 지냈다. 정 대표는 남광건설산업·부영씨씨 대표이사를, 고 대표는 남광건설산업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부영주택 경영진에도 '제주인'이 포진해 있다. 지난 1월 강시우 전 제주도 도시디자인본부장은 부영주택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용학 대표이사는 전 거제시 부시장으로, 부영환경산업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지난 4일 대표이사에 선임된 최수강씨는 대림산업 부사장, 삼환기업·중앙건설 사장 등을 역임한 외부 인사다. 남정두 동광주택 대표이사와 김재홍 대화도시가스 대표이사도 '용병'이다. 둘은 각각 전 유진기술공사 사장, 전 광주시 서구청장 출신이다.
재계 관계자는 "부영 계열사들의 외부 인사 영입은 각 사업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며 "특히 공직자 출신들을 잇달아 영입하는 것은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등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회사 한 직원은 "계속 영입되는 외부 인사들 때문에 '토종맨'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며 "임원까지 올라가기 어려울 뿐더러 임원에 올라도 내부 승진이 어려워 자리에서 버티는 케이스가 그리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이렇게 뽑힌 임원 가운데 상당수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전문경영인(CEO)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실제 부영그룹은 CEO가 자주 바뀌기로 유명하다. 'CEO 잔혹사'로 비춰질 만큼 등판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판되는 물갈이가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선임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CEO도 있다. 그래서 재계엔 부영그룹이 CEO들의 무덤이란 뒷말까지 나돈다.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대부분 외부 출신
상당수 임기 못 채워…한 달 만에 떠나기도
CEO들의 자리 이동이 가장 심한 곳은 부영주택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부영주택은 지난 1년간 무려 7번의 대표이사 인사를 실시했다. 거의 2개월에 한번씩 갈아치운 셈이다.
환경관리공단 소장을 지낸 최병찬씨는 2012년 5월 부영주택 대표이사로 선임됐다가 지난해 2월 갑자기 퇴임했다. 취임 1년도 안 돼 '지휘봉'을 놓은 셈이다. 이어 2012년 3월 외교통상부 관료에서 부영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일난씨가 지난해 4월 사임했다. 그 빈자리에 정행석·김시병씨가 앉았다.
부영주택은 이중근 회장을 비롯해 이삼주·정행석·김시병 등 4인 체제로 굴러가는 듯했다. 이도 잠시. 한 달 뒤에도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부영주택은 지난해 6월 또 다시 대표이사 인사를 강행했다. 당시 정행석씨가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사표를 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부영주택은 이용학씨가 신임 대표이사에 올랐다고 공시했다.
부영주택은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 강시우씨를 대표이사로 영입한 데 이어 지난 4일 최수강씨를 보강했다. 이에 따라 부영주택은 현재 이중근·이삼주·김시병·이용학·강시우·최수강 6인 체제로 굴러가고 있다. CEO가 6명인 대기업은 유일하다. 다른 건설사 등 타 업체의 경우 많아야 2∼3명의 공동 대표이사를 두고 있다. 부영 측은 "책임경영과 업무효율화, 사업다각화, 재무구조 건전성 등을 위해 다자 구도의 각자 대표 체제를 갖췄다"고 했지만, 업계에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부영주택만 CEO들의 교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영도 지난 1년간 3차례의 대표이사 인사가 났다. 지난해 4월 건설교통부 차관을 지낸 조우현씨와 이일난씨가 나가고 이삼주씨가 들어가는 이동이 있었다. 지난해 5월 정행석·김시병씨가 영입됐다가 한 달 뒤 정행석씨가 물어났다. 부영환경산업도 3번씩 대표이사가 교체됐다. 지난해 2월 최병찬씨가 사직하고 대한주택보증 영업본부장을 역임한 박화동씨가 선임된 데 이어 이달 또 다시 이용학씨가 선임됐다. 박씨는 취임 6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돌연 사임했다.
계속되는 잔혹사
부영씨씨와 무주덕유산리조트는 대표이사 발령이 2번 있었다. 부영씨씨는 지난해 12월 김주열 전 전남개발공사 사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가 지난 1월 사표를 수리했다. 정확하게 12월9일 입사해 고작 40일을 버티지 못하고 1월20일 사퇴했다. 무주덕유산리조트는 지난해 6월 이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지난 2월엔 류주원씨 대신 이종혁씨가 수장에 올랐다. 이밖에 광영토건·동광주택·동광주택산업·부강주택관리 등은 각각 1차례씩 CEO가 물갈이 됐다.
부영그룹 측은 "회사에서 압박하는 등 사퇴를 종용한 것이 아니라 모두 개인 일신상의 사유로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업계에선 사실상 문책 인사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미진한 실적 등에 따른 경질성 인사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