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대해부> 승천 꿈꾸는 '잠룡5인' 설 로드맵

오순도순 도란도란…가족 이야기 주인공이고 싶다

[일요시사=정치팀] 민족 최대명절인 설은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친지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다. 자연스레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도 오고가기 때문에 '설 밥상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인지도 상승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그간 모호한 행보를 보였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설 연휴를 앞두고 신당 창당 로드맵을 밝힌 것도 이를 감안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에 발맞춰 여타 잠룡들도 벌써부터 존재감 부각과 바닥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여야 잠룡 5인의 설 연휴를 전후한 로드맵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설 연휴를 앞두고 올해 최대 정치이벤트인 6·4지방선거 출사표가 여기저기서 날아들고 있다. 전국 각지로 흩어졌던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 밥상머리에 이름을 올려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마찬가지로 미래권력을 꿈꾸는 잠룡들도 인지도와 존재감 부각을 위해 분주한 모양새다.

안철수신당
창당 구체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를 달리며 가장 유력한 잠룡으로 꼽히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1일 드디어 신당 창당 로드맵을 발표했다. 

'2월 중 창당준비위 발족→3월 말까지 신당 창당'이라는 구체적 창당 로드맵을 밝힌 안 의원 측은 오는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모두 후보를 내겠다며 제3세력으로서 도전할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안 의원 측 창당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추위) 윤여준 의장은 향후 창당일정에 대해 "지방선거에 책임있게 임하기 위해 3월까지 창당하고,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다 낼 생각이다. (야권)단일화 연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야권연대 없이 완주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이번 지방선거는 새누리당, 민주당, 안철수신당(가칭)의 다자경쟁 구도가 펼쳐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성공적 창당과 지방선거에서의 성과를 내기 위한 안 의원 측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새추위는 신당 창당을 위한 실무 조직 구성 및 당의 정강·정책 및 당헌·당규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안 의원이 은밀히 접촉한 대어급 인사 수십 명의 명단도 내달부터 순차적으로 공개할 방침이다. 

지난 23일에는 새추위가 전남 목포를 찾아 '새로운 지방자치를 위한 국민과의 대화' 토론회를 처음으로 열고 지방선거를 겨냥한 지방정부 플랜을 제시했다. 목포를 첫 토론회 개최 지역으로 삼은 것은 호남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겠다는 노림수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안 의원은 정치권에 몸담기 이전부터 '청춘콘서트'로 대표되는 토크콘서트를 통해 바람을 일으켜왔는데, 새추위가 시작한 토론회도 안 의원이 과거 정치권에 일으켰던 바람을 재현할지 주목된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설 이후에는 보다 구체적인 창당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설 이후 창당 추진은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대 선거를 통해 야권의 분열은 필패라는 사실이 증명된 상황에서 안철수신당의 등장으로 분열된 야권의 일부분인 안 의원 측이 지방선거에서 얼마만큼의 힘을 쓸지는 지켜볼 일이다.

자극받은 '문'
정치행보 본격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공식 행보를 자제하던 문재인 의원은 최근 안철수 의원의 광폭행보와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문 의원은 지난 5일 뉴질랜드로 '오지 트레킹'을 떠났다가 16일 귀국했는데, 10여년 만의 산행으로 숨을 고르며 신년구상을 하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 의원은 귀국길에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국 현안에 대해 "차차 말 하겠다"며 말을 아꼈지만 문 의원 측 관계자는 "문 의원이 앞으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정치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귀국 후 이틀 만인 지난 18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단독회동을 갖고 여권과 보수언론의 타깃이 된 당내 계파청산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친노(친노무현)의 좌장 격인 문 의원의 복귀를 기점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친노·강경파 의원들이 2월 임시국회를 기점으로 본격적 활동을 개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21일 김한길 대표가 당의 원로와 과거 대선후보 등이 포함된 당 상임고문단과 오찬을 갖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조언과 협조를 요청한 자리에서 문 의원은 지역일정 참석을 이유로 10여분 만에 자리를 떴다. 이를 두고 문 의원이 당내 독자행보를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이날 오후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간 문 의원은 설 연휴를 전후해 당분간 지역구에 머물면서 노숙자쉼터, 장애인시설, 노인정, 전통시장 등을 방문하며 지역주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지역구가 속한 부산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지역의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지원사격을 하며 존재감 부각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안' 창당 일정 구체화…신당 도박 성공?
신년 구상 마친 '문', 지역민심 다지기 착수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일찍이 재선 의지를 밝힌데 이어 설 연휴를 전후해 본격적 재선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본인은 서울시장 재선에 올인,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일단 재선 고지에만 오른다면 곧바로 유력 차기 대선주자로 점프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변수는 안철수신당의 존재 여부다. 안 의원은 최근 "지난 서울시장 선거, 대선에 양보한 만큼 이번에는 물러설 수 없다"며 '양보해 달라'는 의사를 박 시장 측에 전한 바 있다. 박 시장의 당선에 안 의원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던 만큼 그는 안 의원과의 관계 설정에 부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박 시장은 "시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백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다"고 답했다가 측근들을 통해 "양보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새정치라는 측면에서 안 의원과는 경쟁하기보다 함께할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원론적 답을 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실제로 지난 재보선 당시는 박 시장이 무소속 후보였지만 현재는 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는 만큼 양보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2011년 양보는 개인 간에 있었던 일"(박 시장은 2012년 2월 민주당 입당)이라며 "당의 양보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라고 선을 그었다.

당권 넘어 대권
향해 순항하나?

요즘 새누리당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사는 김무성 의원이다.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이자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김 의원은 핵심 친박(친박근혜)도 아니면서 당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았다.

보스 기질이 강하고 조직 장악력이 강점인 김 의원은 수개월 전부터 당내 친박 주류 의원들은 물론 친이계 출신 비주류 의원들과도 잇따라 접촉하며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본인은 단순한 학술모임일 뿐이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근현대사역사교실' '퓨처라이프포럼' 등 역사·복지 의원모임을 지난해 말 잇따라 주도한 것은 미래권력을 향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설 이후 2월 중 새롭게 선보일 통일을 주제로 한 연구모임도 같은 이유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연말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철도파업을 독자적으로 중재하면서 주가를 한껏 올리기도 했다.

미래권력을 꿈꾸는 김 의원에게 주어진 1차 과제는 차기 당권을 쥐느냐 마느냐 여부다. 차기 당대표는 오는 2016년 총선 공천권과 2017년 대선 구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이에 따라 김 의원은 최근 전국을 순회하며 진행하고 있는 '강연 정치'로 국민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한편 설 연휴에도 바삐 움직임 예정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연휴에도 쉬지 않고 지역구 내의 양로원, 노숙자 쉼터 등을 방문하고 지역 행사에도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 연휴 이후에는 유력한 차기 당권 경쟁자인 서청원 의원의 당권 도전에 대한 입장을 지켜본 후 맞춤 대응을 할 것을 알려진다.  

현재 새누리당 당권 경쟁은 당초 김무성 대 서청원 2파전 구도에 중진인 이인제 의원이 가세하며 다자구도로 윤곽이 잡히고 있다. 여기에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경기지사, 친박 핵심으로 불리는 최경환 원내대표의 가세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어 최대 5파전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활동반경 넓히는 '김', 국민과 스킨십 확대
뜨는 '반기문 대망론' 현실화 가능성은?

현재 여권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김무성·정몽준·김문수 등)가 야권의 안철수·문재인 의원 등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 일각에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차출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물론 반 총장은 뚜렷한 정치색을 보인 적이 없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감이 마땅치 않은 정당 쪽에선 그를 눈독 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에 대항할 만한 대항마가 뚜렷하지 않은 여권에서 그에 대한 러브콜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반 총장이 결심을 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서울신문>의 신년특집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반 총장은 19.7%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안철수 의원(12.2%)이 차지했으며, 3위는 민주당 문재인 의원(8.3%)이 차지했다.

여권의 유력 주자인 새누리당 김무성·정몽준 의원은 각각 4.8%로 4위에 그쳤다(조사대상 - 전국 성인남녀 1005명, 조사기간 - 지난달 26~28일, 조사방식 - 임의걸기 방식 전화조사,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서 ±3.09%P, 응답률 - 18%).

그러나 19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세계 최대 국제기구인 유엔의 실질적 수장으로 '세계의 CEO'라고도 불리는 유엔사무총장을 2016년 12월까지 맡을 예정인 반 총장이 퇴임 후 1년 뒤에 치러질 차기 국내 대선에 나올지는 미지수다. 

끊이지 않는
반기문 대망론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세계적 지도자로 활동하던 반 총장이 한국 대선에 나선다는 것은 한국 대통령이 퇴임 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서는 셈이어서 걸맞지 않다"며 "또 평생 공직자(외교관)로 살아온 만큼 행정과 외교에는 뛰어난 경륜이 있지만 한국 정치판 싸움에 문외한이라는 점도 단점이다. 물론 추대의 형식도 있지만 김무성·김문수·정몽준 같은 당내 경쟁자들이 쉽게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도 국내 일각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해 진화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반 총장은 국내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한 상당한 부담을 느껴 "2016년 12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난 뒤에도 해외에 계속 체류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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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