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매년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피감기관의 항공마일리지 사용실태에 대한 지적은 국회의원들의 단골메뉴다. 이 같은 지적은 올해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그런데 피감기관들의 항공마일리지 사용실태를 지적해온 국회의원들이 정작 본인들은 공무상 출장 등에 항공마일리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확인했다.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은 지난달 14일 대법원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 대법원이 2011년부터 지난 7월까지 누적된 1358만여 공무항공마일리지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마일리지를 쌓아놓고도 쓰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지침 위반이자 혈세 낭비"라며 관계자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특권 의식?
이처럼 올해 국감에서는 대법원 외에도 수출입은행, 인천공항공사 등이 항공마일리지 사용실태와 관련해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진땀을 흘려야 했다.
피감기관의 마일리지 사용실태를 질타한 의원들은 현재까지 직원 개인에 적립된 공무상항공마일리지 규모와 적립된 마일리지를 사적으로 개인여행 등에 사용했는지 여부 등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하루빨리 공공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과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항공마일리지는 항공기 탑승이나 신용카드 등의 제휴서비스를 이용할 때 마일리지를 적립해 항공좌석을 제공받는 제도다. 항공사는 탑승거리에 비례해 '1000원당 1마일' 정도로 고객에게 항공마일리지를 제공한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적립돼있는 공무상항공마일리지는 5억9000만 마일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억9000만 마일은 미국 출장(왕복 7만 마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6800여명의 공무원이 왕복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현재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르면, 공무 출장자는 항공권 예약 시 적립된 항공마일리지를 우선 활용하고 해당기관 회계담당자는 마일리지 활용 여부를 확인 후에 운임을 지급해야 한다. 때문에 매년 국감 기간이 되면 국회의원들은 피감기관의 항공마일리지 사용실태를 질타하고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피감기관들의 항공마일리지 사용실태를 질타해온 국회의원들이 정작 본인들은 공무상 출장 등에 항공마일리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찌된 일일까?
우선 본지는 국회의원들의 항공마일리지 사용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공무상 가장 많이 해외출장을 다녀올 것으로 예상되는 지난 18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19대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항공마일리지 적립현황과 사용현황을 정보공개요청을 통해 확보했다.
비즈니스석 고집, 마일리지 사용 걸림돌
"국회의원은 누가 감사?" 특권의식 심각
본지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8대 국회 후반기 외통위 소속 의원들 중 공무상 출장에 항공마일리지를 사용한 의원은 26명 중 단 2명뿐이었다. 일부 의원의 경우 약 2년의 임기동안 10만이 넘는 항공마일리지를 적립하고도 이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특히 외통위에 보통 재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이 포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그동안 쌓은 마일리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무상 해외출장 등에 마일리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또 19대 국회 전반기 외통위 소속 의원들의 경우는 지난해 임기가 시작된 이후 1년 반 동안 항공마일리지를 사용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여타 기관들에 항공마일리지 사용을 독려하던 국회의원들이 정작 본인들의 항공마일리지 이용률은 전무하다시피 한 것은 무척 실망스러운 일이다.
현재 공무원(국회의원 포함)이 퇴직하는 경우, 공무상항공마일리지는 개인별로만 적립된다는 민간항공사 영업방침에 따라 항공마일리지의 회수(국가에 양도 및 기부)도 불가능하다.
국회 측은 국회의원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더 이상 공무원 신분이 아닌 민간인이므로 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공무원 여비 규정' 등의 공무상항공 마일리지 관련 규정을 적용할 수 없으며, 퇴직한 공무원이 임기 중 적립한 공무상항공마일리지를 퇴임 후 개인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고 알려왔다.
이에 대해 외통위 관계자는 "국회의원의 경우 원래는 장관급에 준하는 대우로 퍼스트클래스석(1등석)을 이용했으나 지난 2009년 이후 비즈니스석(2등석)을 이용하고 있다"며 "미주 같은 곳을 가면 그동안 쌓은 마일리지만으로는 표를 끊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회는 지난 2009년 김형오 전 국회의장 시절 국민들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해외출장 시 이용하는 항공기 좌석을 1등석에서 2등석으로 일괄 하향 조정했다.
외통위 관계자는 또 "가까운 동남아나 중국, 일본 등을 가거나 일부 마일리지를 충분히 쌓은 의원들도 있지만 마일리지를 이용해 예매할 수 있는 좌석의 수가 한정되어 있고, 갑작스럽게 해외출장 일정이 잡히는 경우에는 마일리지를 이용하기가 어렵다"며 "항공사에서도 마일리지를 먼저 쓰라고 연락이 오고, 먼저 쓰게 되어 있지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도 미비?
하지만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왜 국회의원들이 꼭 비즈니스석을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일리지가 부족하다면 국고를 절약하기 위해 이코노미석(3등석)도 적극 이용해서 항공마일리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특히 국회의원의 경우 평일에 해외출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마일리지를 이용해 표를 예매하기가 힘들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비수기의 경우 상당수의 항공사에서는 평일 예약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혜택까지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일반 공무원들의 경우 근속년수가 길어 추후에라도 이를 이용할 여지가 남지만 국회의원의 경우 재선에 실패하면 불과 4년 만에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만큼 항공마일리지 사용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