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역대 정권 '권력형 비리' 풀스토리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16 15: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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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또…권력의 덫에 걸려 자멸

[일요시사=사회팀] 권력은 10년을 넘길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 요즘 정치권에선 이를 '권불오년'으로 바꿔 부른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절대 권력이라도 정권이 바뀌는 주기인 5년은 넘기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권력에 붙어 호가호위하던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수사망에 오른다. 역대 정권마다 되풀이돼온 권력형 비리의 역사. 그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 10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16년 만에 미납추징금 문제를 매듭짓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이날 오후 3시께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현관에서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저희 가족 모두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역대 정권실세들
모두 받아챙겼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군 형법상 반란·내란과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추징금 중 533억원만 납부했고 전체 76%인 1672억원을 올해 초까지 미납했다.

지난 5월24일 검찰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시로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추징금 환수 전담팀'을 구성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석 달이 지난 시점에 시작된 권력형 비리 수사였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래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권력형 비리 수사는 늘 정권 초나 말에 이뤄졌다. 권력교체기를 전후한 수사기관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5년을 주기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반복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VIP(대통령)가 살아있을 때는 모두가 해바라기처럼 VIP 주변을 바라보지만 권력 이동의 순간에는 줄을 댔던 사람들의 투서가 줄을 잇는다"며 "아무래도 권력형 비리는 뇌물을 건넨 당사자가 입을 열지 않으면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검찰 출입기자는 "첩보도 첩보지만 정권 말이나 권력교체기가 되면 고과에 따른 인사이동이 예고되는데 검찰 입장에서도 눈도장은 찍어야하지 않겠냐"며 "정권과 연계된 권력형 비리 수사는 그 근본부터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력형 비리의 꼭대기에는 늘 '떡값'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복이자 유신정권 실세로 불린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떡값의 대부'로 통한다.

5년간 날고 기다 정권 바뀌면 '서초동행'
권력에 붙어 호가호위…맘껏 누리다 '골인'

이 전 부장은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되고 80년 신군부가 들어서자 가장 먼저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됐다. 이때 당시 이 전 부장은 "떡(정치자금)을 만지다보면 떡고물(부스러기 돈)이 묻는 것 아니냐"고 말해 유신정권의 도덕성을 가늠케 했다.

또 다른 군부독재 세력인 전두환 정권은 권력형 비리의 스케일 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1983년 터진 이른바 '장영자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회자된다.

스캔들의 주인공 장영자씨는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와 사돈 관계였다. 일찍이 사채업으로 돈을 굴렸던 장씨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전 전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씨를 후견인으로 맞이했다.

이 같은 배경을 등에 업은 장씨는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모두 7111억원의 어음을 건설시장에 유통시켰다. 이중 확인된 사기 어음의 총액은 6404억원이었다.

이 천문학적인 사기사건과 관련해 모두 30여 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섰다.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현직 은행장과 경제관료 등 100여 명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당시 이들이 얼마나 많은 비자금을 조성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지하 자금 중 일부가 청와대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친인척 비리
군사독재 뺨쳐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자 전 전 대통령과 관련한 권력형 비리는 고구마줄기 캐내듯 파헤쳐졌다.

먼저 전 전 대통령의 형 기환씨는 노량진 수산시장 운영권 교체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1988년 구속됐다. 동생 경환씨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에 재직하며 공금 76억여원을 횡령해 실형을 살았다. 사촌형 순환씨는 골프장 허가를 미끼로 3700만원의 금품을 수뢰한 혐의, 사촌동생 우환씨는 양곡가공협회장 취임 후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노태우 정권도 전임 정권의 전철을 밟았다. 노 전 대통령의 처조카이자 '6공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박철언 전 정무장관은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던 1993년 구속됐다.

박 전 장관은 슬롯머신 사업자에게서 6억원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수감됐으며 이후 "노 전 대통령이 YS에게 통치자금 명목으로 3000억원을 건넸다"고 폭로해 충격을 안겼다.

노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는 남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함께 외화 밀반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이 빼돌린 것으로 의심받았던 돈은 미화 20만달러였다.

노 전 대통령 본인도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는데 그는 대선 직후 받은 당선 축하금 1100억원과 재임 시절 기업체로부터 거둬드린 돈 3500억원을 모두 비자금으로 은닉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받은 떡값의 대부분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장으로 군사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문민정부에도 권력형 비리는 여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친인척 정치 금지' 원칙을 강조했고 가족들에게 "돈 싸들고 접근하는 똥파리를 조심하라. 단돈 100만원만 받아도 구속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청와대 밤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했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는 현철씨를 거친다는 소문이 있었다. 현철씨에게는 '소통령'이란 별명이 붙었다.

IMF의 암운이 드리운 1997년 1월 재계 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맞았다. 이른바 '한보 사태'로 불린 이 대형 권력형 비리는 김영삼 정권의 치부를 낱낱이 드러냈다.

한보 사태의 배후엔 '소통령'이 있었다. 한보그룹은 5조7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부실 대출을 감행하면서 정·관계 핵심 인사들과 유착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공개돼 여야 중진의원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줄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과 함께 수사망에 오른 현철씨도 혐의를 피해가지 못했다. 현철씨는 정 회장 등 기업인들로부터 모두 66억원을 받고 12억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같은 해 6월 구속됐다.

현철씨는 비선 조직을 가동하면서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고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현철씨 구속 후 김영삼 정권은 사실상 '식물정권'이 됐다.

아울러 현철씨는 5년 뒤인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권력을 잃은 '소통령'은 두 번째로 영어의 몸이 됐다.

민주정부
너마저도…

대한민국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정부도 권력형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친인척 부당행위 금지법'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권력형 비리 근절에 의욕을 보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대통령 친인척 관리·감시 업무'가 강화된 시점도 국민의정부 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민의정부는 DJ 퇴임을 1년 앞둔 시점에 터진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등으로 무너졌다.

진승현 게이트는 'DJ의 오른팔'인 권노갑 전 의원과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였다. 2300억원대의 불법 대출과 주가 조작의 배후는 바로 DJ의 핵심 측근들이었다.

다음 해에는 이용호 게이트와 최규선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들었다.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는 이권청탁 명목으로 25억원여원,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원 등 모두 47억원의 대가성 로비자금을 챙겨 구속됐다. 지난 2001년 구성된 '이용호 게이트 특별검사팀'은 이용호 G&G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파헤치던 중 이 같은 범죄 사실을 밝혀냈다.

삼남 홍걸씨도 '최규선 게이트'로 철창신세를 졌다. 홍걸씨는 2001년 3월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로비를 대가로 타이거풀스 대표 송모씨로부터 10억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모두 36억여원을 챙겨 구속됐다. 홍걸씨는 2002년 11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참여정부 출범 후 마지막 남은 장남 홍일씨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홍일씨는 나라종금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이로써 'DJ 3형제'는 모두 사법 처리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도덕적인 정권으로 자부했던 참여정부도 끊이지 않는 친인척·측근 비리 의혹으로 몸살을 앓았다.

군사정권 때 주고받던 떡값 시초
자녀·측근 연루 '게이트' 비화
정권마다 되풀이…지금도 진행 중

참여정부 실세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았던 권력형 비리는 '생수회사 장수천 사건' '나라종금사건' '썬앤문 불법 자금 의혹 사건' '오일게이트' 등으로 지난 정권과 비교해도 적은 수는 아니었다.

또 친인척 비리 수사과정에서 나온 '박연차 리스트' '정대근 리스트' 등은 참여정부가 강조해 온 덕목인 '청렴함'과 배치됐다. 이밖에도 '김상진 리스트' '제이유 리스트' 등은 모두가 측근 비리로 분류돼 참여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좁혔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비위 혐의가 뼈아팠다. 참여정부는 대통령의 친가 8촌, 외가 6촌까지 관리 리스트에 올리고 사돈과 종친회를 포함해 약 900명을 감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봉하대군'으로 불린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개입해 29억여원을 받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밖에 건평씨는 대우건설 사장 연임로비에도 개입된 것으로 의심받았다.

딸 정연씨도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정연씨는 지난 2007년 9월 미국 뉴저지 포트 임페리얼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미화 100만달러를 해외로 불법 송금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8년 검찰발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MB 비리는
빙산의 일각

이명박정부의 경우는 집권 초기부터 꾸준히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도덕적으로 가장 부실한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영일대군' 이상득 전 의원은 미래·솔로몬저축은행 로비 자금 수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오빠 김재홍씨는 제일저축은행에서 청탁 및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아울러 부인 김씨의 사촌언니 김옥희씨는 국회의원으로 공천받게 해주겠다고 속여 30억원을 받아 구속기소됐다.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 금품을 수수해 구속 수감 중이고, 최근에는 '원전 납품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받았다.

'MB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인허가 특혜와 관련 금품수수로 옥살이를 했으며 'MB의 친구'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수사 과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이권 개입 등을 명목으로 뒷돈을 챙겼다는 진술이 잇따랐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이명박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자원 외교'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목줄을 겨눈 권력형 비리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정부 첫 친인척 비리'

대통령 5촌 조카 사기 내막

"고모가 박근혜" 수억 가로채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가 거액의 사기행각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정권마다 반복돼 온 친인척 비리는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일 복수 언론에 따르면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이날 박 대통령의 5촌 김모(53)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2010년 초부터 최근까지 3년여 동안 피해자 5명으로부터 기업 인수 및 투자유치 등을 명목으로 4억6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투자유치"4억6000만원 뜯어내
기업 접근해 고급 외제차 빌려

김씨는 피해자들의 고소·고발이 잇따르자 도피생활을 벌이다 지난 7일 경기 하남경찰서에 체포됐다. 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상희씨의 손자로 박 대통령과는 5촌지간이다. 김씨는 과거에도 사기 혐의로 여러 차례 검찰과 경찰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에 드러난 김씨의 사기행각은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김씨는 기업 인수합병을 빙자해 기업체로부터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고급 외제차를 업체 명의로 빌려 몰고 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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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