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문 열린 ‘원전 게이트’ 추적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8.14 12:00:24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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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로비스트 “검은돈 정권실세에 배달”

[일요시사=사회팀] 원전 비리가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되고 있다. MB정권의 막후 로비스트들이 연이어 구속된 데 이어 참여정부 실세까지 원전 업체에게 로비를 받은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원전 마피아의 진짜 몸통은 누구일까. 
 

지난 3일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 수사단(단장 김기동 지청장)은 '원전 브로커' 오희택씨를 긴급 구속했다. 오씨는 원전부품 업체로부터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납품을 주선하거나 한수원 직원들에게 인사 청탁을 한 대가로 1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오씨는 최근까지 한수원 협력업체인 한국정수공업의 부회장을 자임했다. 

원전 브로커
영포라인 구속

오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 출신이며, 올해 초까지 재경포항중고등학교 동창회장을 역임한 이른바 '영포라인'이다. 무엇보다 오씨는 지난 2006년께부터 한나라당 중앙위원회에서 건설분과 위원장을 지내는 등 여권쪽 지리에 밝은 인물로 전해진다. 

오씨는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을 지낸 A의원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소개됐다. 

A의원은 국민연금의 'UAE 원전 투자 프로젝트'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외에도 오씨는 퇴역 장성급 인사 100여명 등 국방 관련 인사들이 설립한 '한국위기관리연구소'라는 곳의 이사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오씨는 이 같은 자신의 정·관계 거미줄 인맥을 로비에 이용했다. 지난 2009년 2월 오씨는 이규철 한국정수공업 회장에게 접근, 로비를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금품을 요구했다. 

한국정수공업은 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폐수·분뇨 처리 전문 업체다. 이 업체는 지난 1995년 1월 미국의 세계적인 원전기술 보유업체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용존 산소 제거 설비' 기술을 도입, 2000년대 초반부터는 원전 전문 건설업체로 탈바꿈했다. 

이후 한국정수공업은 2006년 6월께부터 콘크리트가 타설된 신고리 1·2·3·4호기, 신월성 1·2호기, 신울진 1·2호기의 용수처리 설비 입찰을 따내 업계의 소문난 '알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영광원전 3∼6호기, 울진원전 3∼6호기에도 자사의 용수처리 설비를 공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정수공업은 DJ정부 말기인 2002년부터 올해까지 한수원의 용수처리 설비와 유지·정비를 독점해왔다. 한국정수공업과 한수원의 불편한 커넥션이 드러난 것도 이 같은 독점 운영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진짜 밝혀져야 할 '검은 커넥션'은 따로 있었다. 

UAE 원전 납품
정권실세 통했다

한국정수공업은 MB정부가 추진한 'UAE 브라카 원전(BNPP) 1∼4호기 건설'에 참여했다. BNPP는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수주한 공사비 2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원전 프로젝트다.

한국정수공업은 이 원전 사업에 필요한 설비를 납품하기 위해 정권 실세를 겨냥한 로비를 계획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긴 브로커가 바로 오씨였다. 


오씨는 이 회장에게 'UAE 원전 납품을 위한 로비'를 제안하면서 수주에 성공했을 경우 "전체 납품 금액의 8%를 자신에게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액수로 따지면 80억원. 그리고 오씨가 지목한 청탁 대상은 MB정부의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었다. 

지난 8일 검찰은 "오씨가 여당 당직자 출신인 이윤영씨를 통해 박 전 차관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의혹을 확인했다. 

오씨는 이 회장에게서 13억원을 받아낸 뒤 이중 3억원을 박 전 차관의 측근인 이씨에게 전달했다. 박 전 차관에게 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씨는 한나라당 부대변인과 중앙위원회 노동분과 부위원장 등을 지낸 여당 고위 인사다. 오씨와는 당 중앙위원회서 안면을 텄으며, 당시 이씨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력과 무관하게 이씨가 이번 게이트의 '키맨'으로 불리는 건 결국 박 전 차관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2007년 대선 때 박 전 차관의 지시로 선진국민연대 전국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선진국민연대는 대선을 두 달 앞둔 2007년 10월 결성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사조직이다.

선진국민연대는 이 전 대통령을 만든 파워그룹으로 꼽힌다. 결성을 주도한 박 전 차관과 김대식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MB정부 1등 공신'으로도 불린다.

지난 17대 대선 당시 박 전 차관과 김 전 처장은 이른바 '투캅스'로 불리며 전국 곳곳을 누볐다. 그들의 입김으로 약 200여개에 달했던 이명박 지지단체는 선진국민연대라는 단일 그룹으로 재탄생했다.

출범 당시 가입회원 수는 460만명 정도로 세가 대단했다. 이 전 대통령조차 선거 직후 530만표 차이의 압승을 거둔 원동력으로 선진국민연대를 언급했을 정도다. 

구속된 오희택·이윤영 정관계 거미줄 인맥
로비 동원 여부 초점…'검은 커넥션' 윤곽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은 MB정부 출범과 동시에 저마다 한 자리를 꿰찼다. 조직의 리더인 박 전 차관을 시작으로 김 전 처장, 이영희 전 노동부장관,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장관, 엄홍우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이 차례로 감투를 썼다. 

정부 기관과 공기업 등 MB정부 요직에는 모두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포진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선진국민연대 간부 250여명을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가졌을 때 행사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일일이 다 소개를 못 하겠다"고 말한 건 굉장히 상징적이다.

이씨 역시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권력의 단맛을 봤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임 자문위원을 거쳐 200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져(이하 GKL)'의 감사로 재직했다. 이후 이씨는 국민통합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대권 행보를 외곽 지원했다. 


하지만 이씨는 자신의 '롤모델'인 박 전 차관과 달리 김 지사를 왕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사정기관의 타깃이 됐다. 검찰은 오씨와 같은 혐의로 이씨를 지난 5일 구속했다. 납품 알선 등을 명목으로 거액의 로비 자금을 수뢰한 혐의다.

검찰은 이들이 이 회장을 상대로 로비 자금을 요구한 단서를 포착했다. 이씨 등은 원전 수출이 성사단계에 이른 2009년 11월 구체적인 로비 자금을 논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씨가 요구한 80억원 중 60억원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20억원은 이씨가 챙기기로 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윤영 구속
윗선 드러낸다

'검은 돈'의 거래 내역을 감추기 위해 오씨가 미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도 드러났다. 오씨는 2010년 72억원 상당의 가짜 컨설팅 업체 N사를 미국에 설립하고, 두 차례에 걸쳐 해외로 송금한 돈을 회수했다. 송금된 돈의 출처는 한국정수공업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최근 이씨가 오씨로부터 약속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이 회장에게 항의하며, 20억원을 선입금하라고 요구한 내용의 편지를 입수했다. 

이 회장을 수신인으로 한 이편지에는 "오희택 부장이 '한수원 계약을 유지해달라' 'UAE 원전 수출을 성사시켜 달라'고 부탁해 이를 수락했고, 나(이윤영) 때문에 한국정수공업이 관련 계약을 수주하게 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이씨는 오씨의 수주 청탁 내용을 언급하면서 "누구를 통해 어떻게 했는지 글에서 밝힐 수 없지만 이 대표님이 더 잘 아실 것으로 믿는다"고 적어 자신에게 배후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 이씨는 "(오씨에 대한) 신뢰 때문에 오씨가 하자는 대로 다 했지만 (오씨가) 약속을 미뤄 내가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즉 편지내용만 놓고 보면 이씨가 오씨를 대신해 '정권실세'에게 로비 대금을 선지급 했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아울러 이씨는 오씨의 부탁으로 이 회장 등의 경영권 방어를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편지에서 이씨는 "2010년 W사가 한국정수공업 인수를 시도할 때 오씨의 부탁으로 지방국세청에 압력을 넣어 W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고, 결국 인수 시도를 무마시켜 줬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씨의 편지와 관련한 여러 정황을 바탕으로 이 회장 등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로비를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오씨가 한국정책금융공사의 고위층을 움직여 정책자금 642억원을 한국정수공업에 지원받은 뒤 이 돈을 지분 매입 등에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한국정수공업은 지난 2010년 8월 한국정책금융공사의 신성장동력 육성 펀드 1호로 지정돼 산은캐피탈과 JKL파트너스가 공동으로 위탁운용한 펀드 1600억원 중 40%(462억원)를 지원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펀드 관리를 위해 파견된 산은캐피탈과 JKL파트너스의 고위 관계자를 매수했다. 지난 6일 민주당 김기식 의원실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해 JKL파트너스에서 파견된 Y씨를 통해 산은캐피탈의 비상임감사 C씨에게 금품을 전달했다. 액수는 5억원. 

C씨는 한국정수공업에 462억원이 지원될 당시 산은캐피탈의 투자를 담당하고 있던 업무 실장이었다. 즉 한국정수공업이 한국정책금융공사의 펀드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C씨가 힘써준 것에 대한 보답인 셈. 또 공교롭게도 C씨 역시 '영포라인'으로 확인됐다. 

드러난 혐의 빙산의 일각
박영준 등 MB라인 초긴장

영포라인 외에도 한국정수공업이 돈을 보낸 곳은 더 있다.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이 현금 다발로 모두 1억3000만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송모 한수원 부장의 자택 등에서 발견된 괴자금 6억원의 일부 출처가 한국정수공업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송 부장 외 한수원 간부들이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더 많은 금품을 수뢰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정수공업이 후원을 명목으로 또 다른 '정권 실세'에게 금품을 살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몇몇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정수공업은 그간 공공연히 정권에 줄대기를 해왔던 만큼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전해진다.

간단히 말해 영포라인 오씨가 이씨를 통해 선진국민연대 계열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면, 이 회장은 MB정부 탄생의 비밀을 쥐고 있는 국민성공실천연합 계열 인사들에게 로비를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국민성공실천연합은 MB정부를 지탱한 또 다른 축인 이상득 전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과 밀접히 연관된 이 전 대통령의 '친위대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성공실천연합을 이끈 이영수 KMDC 회장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으로부터 '막후 권력'으로 소개된 바 있다.

17대 대선을 앞두고서는 선진국민연대와 국민성공실천연합이 '누가 더 대선자금을 많이 해왔나'로 신경전을 벌였다는 일화가 있다. 정치권 동향에 밝은 한 인사는 "만약 국민성공실천연합 쪽으로 줄을 대고자 했다면 최시중의 양아들로 불린 정용욱씨를 거쳤을 것"이라며 돈이 '의외의 곳'에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MB라인 챙긴
검은돈 더 있나

아울러 "지금 드러난 혐의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원전 쪽으로 게이트를 드러내기 위해선 UAE 원전 사업과 관련한 돈의 흐름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검찰은 한수원의 송 부장이 한국정수공업이 아닌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들로부터도 17억원을 받기로 한 점에 주목, 발견한 10억원 중 출처가 불분명한 4억원의 행방을 쫓고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4억원이 '윗선'에 전달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정당국이 지켜보고 있는 이 윗선이 누구냐에 따라 '박영준 게이트'는 또 다른 원전 게이트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 게이트의 뇌관은 결국 UAE 원전 사업과 관련한 대규모의 '이권 청탁'이란 설명이다. 

최근 검찰은 이 전 대통령과 현대건설에서 인연을 맺은 전 공기업 사장 K씨를 수사망에 올렸다. K씨는 UAE 원전 수출 과정에서 업체 알선 등 이권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MB정부 당시 K씨가 가진 무게가 남달랐다는 점에서 원전 수사의 파장은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한 원자력계 관계자는 "지난해 전 정권 실세 B의원의 최측근 브로커 윤모씨에 대한 납품비리·청탁 수사가 진행됐지만 윤씨를 비롯한 몇몇 한수원 직원만 구속됐을 뿐 B의원은 잡지 못했었다"며 “(수사 결과가) 이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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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