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최근 국회에서는 정치쇄신 과제 중 하나로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는 지난 4일 현재 54명인 비례대표를 100명까지 두 배가량 늘리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정치쇄신을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살펴본 비례대표제의 현주소는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비례대표제란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기존 지역구의원으로는 들어올 수 없는 전문가를 영입하고, 다수대표제와 소수대표제로 인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수자를 우대함으로써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부응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따로 선거를 치르지 않고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하여 순번에 따라 금배지를 가슴에 단다.
뭐? 비례대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63년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되었다가, 이후 1973년 실시된 제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폐지됐다. 그러다 1981년 실시된 제1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다시 도입된 것이 현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정치쇄신 과제 중 하나로 비례대표 의석의 확대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비례대표제의 확대는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원칙적으로 동의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권이 정치쇄신의 과제로 내놓은 비례대표제의 현주소는 암울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과연 정치쇄신을 이끌지 의문시 되는 게 현실이다.
우선 현재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년 비례대표들의 사례다. 현재 19대 국회에는 청년 비례대표 5인이 활동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김상민, 이재영 의원과 민주당 김광진, 장하나 의원,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 등이다.
국회는 이들의 입성으로 청년문제 해결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성적표는 무척 실망스럽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들 다섯 명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모두 117건이다.
하지만 이들은 청년층을 대표해 국회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층과 직접 관련된 법안을 대표발의한 경우는 전체 법안 중 채 20건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대부분은 청년과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법안들이었다.
게다가 이중에서 가결된 법안은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발의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단 1건뿐이었다. 청년 비례대표 의원들은 국회 개원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청년층을 위한 법안을 단 한 건도 통과시키지 못한 셈이다.
이처럼 비례대표가 당초 취지와는 무색하게 활동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단 상임위 배정부터 비례대표의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상임위 배정에서도 힘의 논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초선으로 선수(選數)에서 밀리는 비례대표들은 상임위 배정과정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전문가라고 데려다 놓고는 힘의 논리에 따라 전혀 엉뚱한 상임위에 배치해놔 전문성을 사장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상임위별로 미리 자리를 만들어놓고 그에 맞는 인사들을 비례대표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게다가 일부 의원들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고도 지역구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례대표의 본래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행동이다. 현재 새누리당 손인춘(경기 광명을), 박창식(경기 구리시) 의원과 민주당 김기준(서울 양천갑), 백군기(경기 용인갑), 홍의락(대구 북구을) 의원이 지역구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비례대표 의원이지만 지역구에서 활동하며 상대당 현역의원과 지역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지역구는 이례적으로 2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주먹구구식 비례대표 선정, 비리 개연성 커
비례대표 본래 취지 무색, 법안발의 미흡
일부 비례대표는 국회 입성 후 주요당직을 맡아 전문성 있는 법안 발의보다는 정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민주당 진선미 의원의 경우는 변호사 출신으로 검찰개혁 몫으로 비례대표에 선정됐다. 하지만 진 의원은 지난 대선기간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고 당연히 본래 비례대표 의원으로서의 활동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진 의원이 지금까지 대표발의한 법안 16건은 대부분 검찰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상임위 역시 안전행정위로 배정됐다.
이와 함께 지난 4·11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자당의 선거를 총괄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한명숙 의원을 각각 비례대표로 배정한 것도 크게 보면 비례대표제를 악용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비례대표는 전문성을 요하는 법안 발의나 해당분야의 입장을 대변토록 하자는 의미에서 뽑아놓은 사람들인데 이런 식이라면 비례대표제의 의미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 정당의 주먹구구식 비례대표 심사도 문제다. 일례로 민주당의 경우 지난해 4·11총선에서 3월14일까지 비례대표 지원자를 공모한 후 공모한 282명의 지원자를 단 5일 동안 심사해 3월20일에 명단을 발표했다. 과연 꼼꼼한 심사가 이뤄진 것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심사방법과 채점기준 등도 각 당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를 지냈던 한 전직의원은 "정당에서 비례대표 발표를 앞둔 마지막 날에 하루 사이에도 순번이 수도 없이 바뀌고,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천심사위원장이 '내 뜻 하고는 너무 다른 결과'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데도 검찰이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은 공권력의 직무유기"라며 비례대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각 당의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감사가 불가능하고, 안정적인 순번에만 배정되면 가만히 앉아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으니 비례대표 선정과 관련해 온갖 비리가 일어날 개연성도 크다.
아! 비리대표!
실제로 매번 총선만 끝나고 나면 비례대표와 관련한 비리사건으로 정국이 시끄러워진다. 박 대통령도 4·11총선이 끝난 후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인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 사건이 불거져 곤혹을 치렀다.
한 전직 비례대표 의원은 비례대표제에 대해 "국회에 입성하고 당직자회의에서 '비례대표가 돈 한 푼도 안 내고 배지를 달았으면 이제라도 돈을 좀 내야지, 당이 이렇게 어려운데'라는 말을 듣고 '비례대표'가 아니라 '비리대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 정치전문가는 "현재 비례대표제는 사실상 자리 나눠먹기식으로 운영돼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라며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논의하기 전에 비례대표제의 개선을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