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한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민주통합당 대선평가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계파 갈등이 또다시 수면 위로 터져 올라왔다. 사실상 전당대회가 이미 시작돼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 과정에 극심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에 앞서 어떠한 공식적 절차도 없이 민주당 당헌이 삭제된 사실이 드러나 적잖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이 같은 내용을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어서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끈질기게 반복되는 민주당 계파 갈등 중심에 거론되는 ‘사라진 당헌’. 어찌 된 사연인지 그 내막을 <일요시사>가 단독 추적했다.
얼마 전 정무를 보던 김한길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의원은 전당대회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의원실에 꽂혀 있는 당헌·당규집(이하 당헌집)을 꺼내 읽었다. 우연히 당헌 하나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개정 전 당헌집을 잘못 집은 것으로 알고 재차 당헌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 당헌집은 이미 김 의원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그것이었다. 그제서야 당헌 제1조2항이 삭제된 사실을 알게 된 김 의원은 즉각 당헌 개정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당헌 삭제 당시
논의대상서 제외
‘민주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 현재 삭제된 민주당 당헌 1조2항의 내용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조문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내용이 같다. 이것만 보더라도 삭제된 당헌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당헌은 작년 민주당 전당대회가 있기 채 한 달이 되기 전인 2011년 12월 16일에 지워진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당헌이 삭제된 후 민주당은 모바일투표를 전격 도입했다.
김한길 의원 측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당헌 1조 2항은 당원의 민주당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어 굉장히 중요한 조문이다. 당의 의견을 수렴해 공식적인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다. 절차상에 문제는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개정 아닌 제정
규율 법규 없어
실제로 취재기자가 만나본 대부분의 민주당 당직자들은 해당 당헌이 삭제됐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는 반응이었다. 민주당 당직자 정모씨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당헌 삭제는) 금시초문”이라며 당헌을 찾아보더니 “어떤 방법으로 알아차릴 수 없게 당헌을 삭제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 박모씨도 “당헌에 대해 그 같은 내용을 모를 리 없다”라며 매우 의아해했다.
2010년 당헌 1조 2항 도입을 주장했던 정동영 상임고문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헌 1조 2항이 살아있는 한 모바일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원들의 공식적인 의견수렴과정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설득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공론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민주당 관계자들은 개정 절차를 통해 삭제된 것이라 짐작했지만, 실제는 이와 달랐다. 민주당 전략기획국 관계자인 김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합당할 때 수임기관을 지정하도록 하는 정당법에 따라 민주당, 한국노총, 시민통합당 각각 7명의 구성원이 합동회의에서 당헌 제정안을 마련하고 최종적으로 당헌을 만든 것”이라며 당헌이 개정이 아닌 제정을 통해 삭제됐던 배경을 설명했다.
2012년 1월 민주당 전대 앞두고 2011. 12. 16일 당헌 1조 2항 삭제
민주당 관계자 삭제사실 거의 몰라, 김한길 의원 “몰랐다” 재도입 주장
본래 당헌 개정은 민주당 당헌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원들은 대의원과 중앙위원회 소집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 절차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합당 시 제정 절차에 관한 규제가 없어 당원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김씨는 당헌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며 “당헌 제정 과정에서 당원 주권주의를 빼느냐 마느냐는 쟁점이 아니었다. 시민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에 대해 논란은 없었다. 거기에 대해 무슨 목적이 있어서 삭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규율을 만드는 ‘제정’은 규율을 바꾸는 ‘개정’보다 상위개념이다. 쟁점 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민주당 관계자들이 당헌이 새로 만들어지는 절차와 내용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모바일투표 시행 합의는 당헌 1조 2항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1조 2항 삭제는 모바일투표 시행 합의에 당연히 전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당 과정서
몸싸움 벌어져
현행법상 당헌 제정은 정당법에서 중앙당 등록신청사항으로만 규정된 게 전부다. 합당에 대해서도 ‘합당을 하는 정당들의 대의기관이나 그 수임기관의 합동회의의 결의로써 합당할 수 있다’라고만 규정돼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정당 자율성 차원에서 합당과정에서 발생하는 이 같은 문제들을 명문화해 과연 그러한 활동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지는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답했다.
당헌 삭제 시기와 절차 공개 여부, 개정 절차 외에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 더 있다. 민주당은 합당 절차를 마치기 전 이미 당헌을 제정할 수임기관 위원장과 간사를 임명한 상태였다. 민주당은 12월10일 수임기관 위원장으로 최인기 전 의원, 간사로는 박양수 전 의원과 현역 국회의원인 박병석 국회부의장, 조정식 의원, 최규성 의원 그리고 이현주 전 대구 북구갑 위원장, 이상호 청년위 위원장 등을 임명했다.
당직자 “모바일 투표는 시민에게 권리 줘, 당헌 삭제는 당연한 전제”
‘혁신과 통합’ 본체인 시민통합당 친노세력 주축, 비주류 뒤늦은 비난
야권통합 찬반투표를 하던 12월 11일 투표 결과 무효를 주장하는 일부 당원들과 이를 제지하는 당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져 민주당 전당대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이후 ‘전대 결과 무효 가처분 신청’까지 이어질 정도로 합당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은 강행됐다. 정세균 최고위원 등 민주당 내 친노세력은 이미 한명숙 전 총리를 신당의 대표로 세우는 방안에 암묵적 합의를 이룬 상태였다는 게 주목할 만한 배경이다.
이들과 함께 당헌을 제정한 시민통합당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친노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민주당과의 신설합당을 목적으로 창당된 정당이다. 시민통합당 대표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상임대표는 문재인 의원, 이해찬 의원, 남윤인순 의원, 문성근 상임고문, 이용선 전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등이 맡고 있었다.
이처럼 시민통합당은 무늬만 ‘시민’이었고, 실제로는 친노세력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또한 ‘자발적 시민단체’를 표방하는 모임인 '혁신과 통합’의 상임대표직도 맡고 있어 더욱 확실히 장외세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여의도 안에서는 당헌을 제정해 모바일투표를 도입하고, 여의도 밖에서는 세를 불려 친노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정당 조직·활동
민주적이어야
헌법 제8조는 정당은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헌은 정당의 민주성을 보장하고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한 전문가는 저서를 통해 “당의 내부질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당헌·강령이 민주적인 절차와 내용으로 성문화되어 공포됨으로써 정당의 민주성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라며 당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민주당 관계자들이 바뀌는 당헌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느냐다. 그렇지 않은 경우 갈등을 유발하는 불필요한 의혹이 남는다는 게 문제다.
헌법 개정 절차가 헌법에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것처럼, 정당의 당헌이 바뀌는 과정도 이에 준하는 절차가 요구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친노와 비주류 양측은 해묵은 감정 탓에 자칫 사소한 오해만으로도 극심한 갈등을 겪을 수도 있는 만큼, 오는 5월 전당대회에서는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되는 정통야당 본연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친노 핵심 3인’ 뭐라고 하나 들어보니~
“가만히 있다 이제 와서 왜”
민주통합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이해찬 의원과 문재인 의원 측의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았다. 취재내용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실 확인과 의견을 물었지만, 대부분 관계자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 “의원님도 모르는 일”이라며 전화를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성근 상임고문 측과 통화는 실패했다. ‘혁신과 통합’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도 연결되지 않아 사실상 휴먼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의원 측 관계자는 굉장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당헌?당규 논의과정에서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갈등이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취재기자가 “절차와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갈등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묻자 “쟁점이 안 됐으면 이견이 없었다는 것 아니냐. 당시 문제 됐다는 기사 한번 찾아봐라.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런 말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라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어 그는 “문 의원은 실무집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헌이 바뀐 것만 알고 그 과정은 모른다”라며 “당헌이 바뀐 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그게 문제가 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해찬 의원 측과는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주변에 물어보니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과 관련된 사안 자체가 쟁점이 되지 않았으며 어떠한 이견도 없었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를 실무적으로 담당했던 분께 내용을 전달했으니 문의하면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라고 답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