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추적> 민주당 당헌 뒤집은 ‘친노 밀실협상’ 진실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3.04.24 15:24:39
  • 댓글 0개

여의도 안이든 밖이든 먼저 찜한 사람이 임자야!?

[일요시사=정치팀] 한동안 잠잠하나 싶더니 민주통합당 대선평가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계파 갈등이 또다시 수면 위로 터져 올라왔다. 사실상 전당대회가 이미 시작돼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 과정에 극심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에 앞서 어떠한 공식적 절차도 없이 민주당 당헌이 삭제된 사실이 드러나 적잖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이 같은 내용을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어서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끈질기게 반복되는 민주당 계파 갈등 중심에 거론되는 ‘사라진 당헌’. 어찌 된 사연인지 그 내막을 <일요시사>가 단독 추적했다.



얼마 전 정무를 보던 김한길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의원은 전당대회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 의원실에 꽂혀 있는 당헌·당규집(이하 당헌집)을 꺼내 읽었다. 우연히 당헌 하나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개정 전 당헌집을 잘못 집은 것으로 알고 재차 당헌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 당헌집은 이미 김 의원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그것이었다. 그제서야 당헌 제1조2항이 삭제된 사실을 알게 된 김 의원은 즉각 당헌 개정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당헌 삭제 당시
논의대상서 제외

‘민주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 현재 삭제된 민주당 당헌 1조2항의 내용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조문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내용이 같다. 이것만 보더라도 삭제된 당헌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당헌은 작년 민주당 전당대회가 있기 채 한 달이 되기 전인 2011년 12월 16일에 지워진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당헌이 삭제된 후 민주당은 모바일투표를 전격 도입했다. 

김한길 의원 측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당헌 1조 2항은 당원의 민주당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어 굉장히 중요한 조문이다. 당의 의견을 수렴해 공식적인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다. 절차상에 문제는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개정 아닌 제정
규율 법규 없어


실제로 취재기자가 만나본 대부분의 민주당 당직자들은 해당 당헌이 삭제됐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는 반응이었다. 민주당 당직자 정모씨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당헌 삭제는) 금시초문”이라며 당헌을 찾아보더니 “어떤 방법으로 알아차릴 수 없게 당헌을 삭제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 박모씨도 “당헌에 대해 그 같은 내용을 모를 리 없다”라며 매우 의아해했다.

2010년 당헌 1조 2항 도입을 주장했던 정동영 상임고문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헌 1조 2항이 살아있는 한 모바일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원들의 공식적인 의견수렴과정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설득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공론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취재 중 만난 대부분의 민주당 관계자들은 개정 절차를 통해 삭제된 것이라 짐작했지만, 실제는 이와 달랐다. 민주당 전략기획국 관계자인 김모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합당할 때 수임기관을 지정하도록 하는 정당법에 따라 민주당, 한국노총, 시민통합당 각각 7명의 구성원이 합동회의에서 당헌 제정안을 마련하고 최종적으로 당헌을 만든 것”이라며 당헌이 개정이 아닌 제정을 통해 삭제됐던 배경을 설명했다.

2012년 1월 민주당 전대 앞두고 2011. 12. 16일 당헌 1조 2항 삭제
민주당 관계자 삭제사실 거의 몰라, 김한길 의원 “몰랐다” 재도입 주장

본래 당헌 개정은 민주당 당헌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당원들은 대의원과 중앙위원회 소집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 절차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합당 시 제정 절차에 관한 규제가 없어 당원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김씨는 당헌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며 “당헌 제정 과정에서 당원 주권주의를 빼느냐 마느냐는 쟁점이 아니었다. 시민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에 대해 논란은 없었다. 거기에 대해 무슨 목적이 있어서 삭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규율을 만드는 ‘제정’은 규율을 바꾸는 ‘개정’보다 상위개념이다. 쟁점 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민주당 관계자들이 당헌이 새로 만들어지는 절차와 내용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모바일투표 시행 합의는 당헌 1조 2항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1조 2항 삭제는 모바일투표 시행 합의에 당연히 전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당 과정서
몸싸움 벌어져

현행법상 당헌 제정은 정당법에서 중앙당 등록신청사항으로만 규정된 게 전부다. 합당에 대해서도 ‘합당을 하는 정당들의 대의기관이나 그 수임기관의 합동회의의 결의로써 합당할 수 있다’라고만 규정돼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정당 자율성 차원에서 합당과정에서 발생하는 이 같은 문제들을 명문화해 과연 그러한 활동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지는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답했다.

당헌 삭제 시기와 절차 공개 여부, 개정 절차 외에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 더 있다. 민주당은 합당 절차를 마치기 전 이미 당헌을 제정할 수임기관 위원장과 간사를 임명한 상태였다. 민주당은 12월10일 수임기관 위원장으로 최인기 전 의원, 간사로는 박양수 전 의원과 현역 국회의원인 박병석 국회부의장, 조정식 의원, 최규성 의원 그리고 이현주 전 대구 북구갑 위원장, 이상호 청년위 위원장 등을 임명했다.

당직자 “모바일 투표는 시민에게 권리 줘, 당헌 삭제는 당연한 전제”   
‘혁신과 통합’ 본체인 시민통합당 친노세력 주축, 비주류 뒤늦은 비난

야권통합 찬반투표를 하던 12월 11일 투표 결과 무효를 주장하는 일부 당원들과 이를 제지하는 당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져 민주당 전당대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이후 ‘전대 결과 무효 가처분 신청’까지 이어질 정도로 합당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은 강행됐다. 정세균 최고위원 등 민주당 내 친노세력은 이미 한명숙 전 총리를 신당의 대표로 세우는 방안에 암묵적 합의를 이룬 상태였다는 게 주목할 만한 배경이다.

이들과 함께 당헌을 제정한 시민통합당은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친노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민주당과의 신설합당을 목적으로 창당된 정당이다. 시민통합당 대표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상임대표는 문재인 의원, 이해찬 의원, 남윤인순 의원, 문성근 상임고문, 이용선 전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등이 맡고 있었다.

이처럼 시민통합당은 무늬만 ‘시민’이었고, 실제로는 친노세력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또한 ‘자발적 시민단체’를 표방하는 모임인 '혁신과 통합’의 상임대표직도 맡고 있어 더욱 확실히 장외세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여의도 안에서는 당헌을 제정해 모바일투표를 도입하고, 여의도 밖에서는 세를 불려 친노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정당 조직·활동
민주적이어야


헌법 제8조는 정당은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헌은 정당의 민주성을 보장하고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한 전문가는 저서를 통해 “당의 내부질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당헌·강령이 민주적인 절차와 내용으로 성문화되어 공포됨으로써 정당의 민주성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라며 당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민주당 관계자들이 바뀌는 당헌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느냐다. 그렇지 않은 경우 갈등을 유발하는 불필요한 의혹이 남는다는 게 문제다.  

헌법 개정 절차가 헌법에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것처럼, 정당의 당헌이 바뀌는 과정도 이에 준하는 절차가 요구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친노와 비주류 양측은 해묵은 감정 탓에 자칫 사소한 오해만으로도 극심한 갈등을 겪을 수도 있는 만큼, 오는 5월 전당대회에서는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되는 정통야당 본연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

 

‘친노 핵심 3인’ 뭐라고 하나 들어보니~


“가만히 있다 이제 와서 왜”

민주통합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이해찬 의원과 문재인 의원 측의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았다. 취재내용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실 확인과 의견을 물었지만, 대부분 관계자들은 “잘 모르는 이야기”, “의원님도 모르는 일”이라며 전화를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성근 상임고문 측과 통화는 실패했다. ‘혁신과 통합’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도 연결되지 않아 사실상 휴먼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의원 측 관계자는 굉장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당헌?당규 논의과정에서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갈등이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취재기자가 “절차와 내용을 알지 못하는데 갈등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묻자 “쟁점이 안 됐으면 이견이 없었다는 것 아니냐. 당시 문제 됐다는 기사 한번 찾아봐라.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런 말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라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이어 그는 “문 의원은 실무집행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헌이 바뀐 것만 알고 그 과정은 모른다”라며 “당헌이 바뀐 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그게 문제가 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해찬 의원 측과는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주변에 물어보니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과 관련된 사안 자체가 쟁점이 되지 않았으며 어떠한 이견도 없었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를 실무적으로 담당했던 분께 내용을 전달했으니 문의하면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라고 답했다. <조>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