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의 난' 녹십자 '900억 골육상쟁' 전말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1.16 09: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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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 차고 쫓겨난 ‘비운의 황태자’

[일요시사=경제1팀] 고 허영섭 전 녹십자 회장의 900억대 유산을 둘러싼 모자간의 법정 싸움이 3년여 만에 ‘어머니의 승리’로 마무리 됐다. 이에 따라 허 전 회장의 큰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단 한 푼도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됐다. 왜 고인은 장남에게 남긴 유산이 없었을까. 돈 앞에 무너진 녹십자의 ‘골육상쟁’. 그 풀스토리를 들여다봤다.

 

녹십자 가족 분쟁의 단초는 지난 2009년 11월 뇌종양으로 타계한 고 허영섭 전 녹십자 회장의 유언에서부터 시작됐다. 허 전 회장은 2008년 유언공증절차를 통해 ‘장남인 허성수씨를 배제한 채 보유 주식을 부인인 정인애씨, 차남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 삼남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 미래나눔재단 등 녹십자가 운영중이거나 설립하려는 복지재단에 일정 비율로 상속, 기증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상속 과정서 ‘왕따’

유언대로라면 허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 주식 82만여주는 정씨와 차남에게 각각 7만주, 삼남에게는 7만5000주가 상속되는 반면 장남인 성수씨는 한 주도 받지 못하게 된다. 나머지 67만여주는 미래나눔재단 등으로 사회 환원한다는 게 허 회장의 유지였다.

유언 내용이 알려지자 곧바로 성수씨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가족과 복지재단에 재산을 나눠주도록 한 부친의 유언이 무효”라며, 어머니 정씨 등을 상대로 유언 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성수씨는 재판 과정에서 “어머니가 의식이 불분명한 아버지를 대신해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나에게는 재산을 남겨주지 않았다”며 “장남인 내게 단 한 주도 물려주지 않은 것은 평소 아버지가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밝힌 뜻과는 전혀 달라 진의로 작성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어머니 정씨의 손을 들어줬고, 최근 대법원도 “유언은 허 전 회장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이로써 3년간의 골육상쟁은 막을 내리게 됐다.

이에 따라 녹십자는 지난 4일 허 전 회장의 보유 지분 619만6740주 가운데 449만주는 미래나눔재단(339만주)과 목암연구소(110만주)에 기부했다. 이날 녹십자의 사회 환원 금액은 종가 기준으로 따졌을 때 총 673억여원에 달한다. 

55만주(종가 기준 78억여원)는 허 전 회장의 부인 정씨에게 상속됐고, 차남 허은철 부사장은 55만주(78억여원), 삼남 허용준 부사장은 60만5000주(86억여 원)를 각각 상속받았다. 재판에서 패배한 성수씨는 단 한 주도 물려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허 전 회장은 유산상속에서 장남을 배제시킨 것일까. 판결문을 살펴보면 허 전 회장이 성수씨의 회사 경영 관여를 차단하기 위해 지분 상속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부자간의 깊은 갈등의 골이 드러난 결과라고 해석했다.

유산 소송서 모친 최종 승리…3년만에 종지부
대법 “장남 뺀 상속 창업주 유언 유효” 판결

1990년 유학을 간 후 15년간 미국에서 거주한 성수씨는 결혼 때문에 가족들과 다툼이 잦았고, 2005년 귀국한 후 녹십자에 근무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8년에는 아버지에게 회사 경영을 총괄하는 경영기획실장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허 전 회장은 성수씨를 퇴사시키고 만다. 이 과정에서 부자간 사이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성수씨에게 이미 주택을 증여했다는 점도 장남을 상속인에서 제외시킨 요인으로 알려졌다.

유언 작성 당시 허 전 회장은 성수씨와 주택과 관련된 법정 분쟁을 진행 중이었다. 허 전 회장 부부는 2003년까지 거주했던 서울 논현동 소재의 504㎡ 규모 주택을 성수씨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했다가 다시 부인 정씨 명의로 가등기 시켰다.

하지만 성수씨는 2008년 어머니 정씨를 상대로 가등기 말소 소송을 제기하며 주택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때 허 전 회장은 고민 끝에 이 주택의 증여를 인정하고 다른 상속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논현동 주택을 성수씨에게 증여하고 상속개시 후 지분 상속은 최소화함으로써 성수씨가 추후 회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축소시키고자 한 의도도 깔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성수씨의 가등기 말소 소송이 인용되고 어머니 정씨 측이 항소 하지 않아 이 주택은 성수씨의 차지가 됐지만, 고인이 보유했던 지분은 한 주도 받지 못하게 됐다. 지나친 욕심이 지분 상속을 받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경영 불가’ 의도

재계 한 관계자는 “성수씨가 한때는 사장직까지 올랐던 인물에다가 장남이라는 점에서 허 전 회장의 유산 목록에서 빠진 점이 아직도 의아하다”면서도 “하지만 존경받던 기업인이었던 허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유산분쟁’으로 인해 그간 쌓아온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일시멘트 창업주인 고 허채경 회장의 차남인 허 전 회장은 1세대 개성상인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바이오백신 의약품 분야에 뛰어들어 한국을 세계 12번째 백신 자급국 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녹십자는 현재 제약, 건강, 재단, 해외사업 등 15개 자회사와 관계사를 두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400억 기부’ 미래나눔재단은?

재단법인 미래나눔재단은 2009년 북한동포와 새터민과 같이 소외된 계층에게 나눔을 실천하고자 만들어졌다. 사업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의 사회적 연대를 형성해 모두가 조화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는 세상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2010년 8월 탈북학생을 위한 학습지원공간인 ‘사랑다리학교’를 설립했고, 지난해 9월에는 북한이탈대학생 24명을 대상으로 4번째 장학증서 수여식을 개최했다. 장학생 정기모임 개최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재단의 주요 사업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북한이탈주민의 올바른 정착과 행복한 삶을 위한 지원사업으로는 새터민의 자활·자립을 위한 사업, 새터민 교육지원을 위한 장학사업, 새터민 가정의 공동체 문화 만들기 사업, 새터민 정착 지원 및 센터사업, 새터민 교육프로그램 운영 지원사업, 새터민 권련 지원시설 운영 및 단체 지원사업 등을 하고 있다.

또 북한 독포를 위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 사업으로는 식량자원사업, 북한 아동 영양지원사업 등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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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