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응급의료 체계가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환자 수용 거부 사태는 이제 특정 지역의 지엽적 문제가 아닌 국가적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며 거리를 헤매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늘 겉핥기에 그친다.
이 비극의 근저에는 2000년 무렵 ‘환자의 선택권 확대’라는 명분 아래 폐지된 ‘진료권 제도’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진료권 제도란 본래 각 지역의 환자가 해당 지역 내에서 1, 2, 3차 의료기관을 단계적으로 거친 후에야 타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제도다. 이는 급하지 않은 외래 환자를 대상으로 삼았으며,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의 이동과는 무관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지역의 2, 3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도 곧장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지방의 경증 환자들까지 서울로 몰리는 심각한 ‘의료 쏠림’ 현상이 고착화된 것이다. 과거 지방 병원들은 지역민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응급의료에 투자해 왔다. 하지만 환자들이 서울로 집중되면서 지역 병원들의 재정적 여력은 고갈됐다.
응급의료는 본래 인력과 장비 투입 대비 경영적 수익이 낮은 기피 대상이다. 재정적 한계에 부딪힌 지방 병원들이 응급 자원 투입을 중단하거나 축소하기 시작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결국 ‘응급실 뺑뺑이’ 사태는 비응급 질환에서 개인의 편의만을 추구한 대가가 응급의료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진 참사다.
반면 의료 여론을 주도하는 이른바 ‘빅5’ 병원들은 이 같은 환자 쏠림을 경영적 이득으로 향유하며, 시스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공공 인프라의 붕괴 조짐은 과거 미국 대중교통 시스템의 몰락 사례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전차(Streetcar)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GM 등 자동차·석유 기업들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전차 회사들을 인수해 노선을 폐지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공공 대중교통을 없애고 자동차 구매를 강제했던 선택의 결과는 참혹했다. 현재 뉴욕 지하철이 겪고 있는 악취와 범죄, 노후화된 시설은 공공재 관리 실패가 가져오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 역시 ‘선택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공공성을 담보하던 지역 의료 네트워크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진료권 제도’를 전격적으로 재설계해 부활시켜야 한다. 무분별한 상급 종합병원 쏠림을 막고, 지역 내 의료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강제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방 병원들이 다시 응급의료에 투자할 재정적·사회적 동력을 얻고, 붕괴한 지역 의료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당연한 일상인 ‘안전하고 쾌적한 지하철’처럼, ‘가까운 곳에서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응급실’ 또한 국가가 반드시 보장해야 할 핵심 공공 인프라다. 자본의 논리와 잘못된 선택권 확대에 밀려 공공 의료의 골든타임을 완전히 놓치기 전에, 진료권 제도의 부활을 통한 의료 정상화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더 이상 ‘자유’라는 이름의 방임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게 둬서는 안 된다. 공공재가 무너진 사회에 진정한 선택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