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80세’ 최고령 감독 정지영

멈추지 않는 ‘40년’ 영화 인생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현역 최고령 노장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정지영 감독이 또 하나의 역작을 써냈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내 이름은>이 개봉과 동시에 입소문을 타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78주년이 된 이번 4월, 영화는 오래 묻혀 있던 그날의 역사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정지영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대표적인 사회파 감독이다. 현재 80세로 한국 영화계에서 사실상 최고령 현역이다. 1946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김수용 감독 밑에서 조연출로 활동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고, 1982년 영화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했다.

사회파 감독
노장의 파워

데뷔 이후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90년 영화 <남부군>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과를 거두며 정 감독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을 연출하며 199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 정 감독의 작품들은 전쟁, 이데올로기, 개인의 삶을 다루며 현실과 밀접한 소재를 선택하는 특징을 보였다.

다만 1990년대 후반 <블랙잭> 등 일부 작품의 흥행 부진 이후 한동안 연출 활동이 뜸해졌다. 약 10년에 가까운 공백기 동안 한국 영화산업은 대기업 중심의 투자·배급 구조로 빠르게 재편됐고, 상업영화 중심의 제작 환경이 자리 잡았다. 이 시기 정 감독은 영화 연출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이후 2012년 영화 <부러진 화살>로 복귀하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정 감독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는데 사법 사건, 금융 문제, 국가 폭력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영화로 다뤘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부러진 화살>은 정지영 감독의 복귀작이자, 그가 대중적으로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약 10년간 연출 공백을 가졌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이 영화는 2007년 발생한 이른바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대학 재임용 문제를 둘러싼 소송에서 패소한 교수가 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쏜 사건을 바탕으로, 재판 과정과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배우 안성기가 주연을 맡아 사건의 당사자를 연기했다.

<부러진 화살>은 제작비 약 5억원 규모의 저예산 영화로 제작이 시작됐지만, 개봉 이후 빠르게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개봉 직후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최종 관객 수는 300만명을 돌파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대형 배급사의 지원 없이 입소문을 통해 흥행하며 주목받았다.

흥행과 함께 영화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작품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모순과 사법부의 권위적인 태도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반면 비판도 적지 않았다. 영화가 특정 시각에 치우쳐 사건을 재구성했다는 지적과 함께, 법적 해석을 왜곡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사법·금융·국가 폭력까지
실제 사건 통해 사회 재조명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정 감독이 2012년 <남영동 1985> 이후 약 7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 발생한 ‘론스타 외환은행 매각 사건’을 모티브로, 금융 권력과 사법 시스템을 둘러싼 문제를 다룬 범죄물이다.

작품은 외환위기 이후 외환은행이 해외 사모펀드 론스타에 매각되는 과정과, 이후 벌어진 배당 및 재매각 과정을 배경으로 했다. 해당 사건을 중심으로 검찰 내부의 갈등과 수사를 따라가며, 금융 시스템과 권력구조의 문제 서사로 풀어냈다.

금융 비리를 추적하는 검사로, 배우 조진웅이 주연을 맡았다. 극은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관련 인물 간의 이해관계와 충돌을 통해 긴장감을 형성했다.

영화는 실화 기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봉 당시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 이후 정 감독은 다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이어가며, 공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다룬 영화 <소년들>을 선보이게 된다. <소년들>은 정 감독이 2023년에 선보인 작품으로, 1999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에서 발생한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해당 사건은 당시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청소년 3명이 수사 과정에서 범인으로 특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사건 발생 이후 수사 과정과 이후 재수사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극의 주요 흐름은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사건 초기 수사에서 피의자들이 어떻게 특정됐는지, 이후 사건이 어떤 경로를 거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는지 등이 순차적으로 그려진다.

작품은 여러 인물의 시점을 통해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 사건에서는 특정 인물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는 구조가 명확하지 않았던 만큼, 영화에서는 사건을 따라가는 중심 인물을 설정해 서사를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형사 캐릭터가 주요 축으로 등장하며, 배우 설경구가 역할을 맡았다. 형사 캐릭터는 사건 당시 수사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인물로 설정돼있으며, 이후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극은 해당 인물이 사건을 재검토하는 과정과, 관련 인물들을 만나며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가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이를 통해 사건의 초기 수사 과정과 이후 재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연결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와 함께 영화는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의 상황을 중심에 두고 전개된다.

실제 사건
모티브 전문

사건 당시 청소년이었던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범인으로 특정됐으며, 이후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됐다. 영화는 이들의 시점과 상황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사건의 흐름을 구성했다.

시간이 흐른 뒤 사건이 다시 검토되는 과정과,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는 과정까지를 포함한다. 작품에는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인물, 법률 관계자 등 여러 인물이 서사에 포함되며, 사건의 전개 과정을 다각도로 보여줬다.

영화에는 배우 조진웅도 출연해 주요 인물 중 하나를 맡았다. 그는 사건과 관련된 역할로 등장하며, 극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장면에 관여한다. <소년들> 역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또 최근 정 감독이 내놓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내 이름은>도 입소문을 빠르게 타고 있다. 영화는 촌스러운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하는 18세 소년 ‘영옥’과, 오래전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가는 어머니 ‘정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모자 이야기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점점 과거의 한 사건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영옥은 학교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지만, 자신의 이름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늘 불만을 품고 있다.

별것 아닌 고민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을 둘러싼 감정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이 등장하면서 교실 분위기가 달라지고,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힘으로 질서를 잡으려는 전학생이 등장하면서 교실은 점점 긴장 상태로 변해간다.

반면 어머니 정순은 겉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만, 특정한 계절이나 상황이 되면 이유 없이 쓰러지거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증상을 보인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 대부분을 잃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으며,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영화는 이런 정순의 상태를 단서로 삼아 점차 과거로 시선을 이동시킨다. 이 작품은 1998년과 1949년, 두 개의 시간을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현재의 교실과 과거의 제주가 교차되면서, 서로 다른 시대의 사건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정 감독은 이 같은 구성에 대해 “처음부터 4·3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은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관객이 따라가면서 ‘찾아가게 만드는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화는 사건의 전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인물의 기억과 감정을 통해 과거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정순이 떠올리는 기억 속에는 보리밭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 함께, 설명되지 않는 폭력의 장면들이 단편적으로 등장한다.

아픈 역사
제주 4·3

군인들의 움직임,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들,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충돌 등은 사건의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분위기와 감정으로 전달된다.

정 감독은 “끔찍한 국가 폭력을 갑자기 보여주면 관객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그래서 현재의 학교 이야기를 하나의 완충지대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과거 제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나란히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폭력’이다. 다만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폭력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확대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정 감독은 “폭력은 외부에서 새로운 질서를 강요할 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든, 사회든, 학교든 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영옥이 겪는 교실 내 갈등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가 힘으로 질서를 만들고, 다른 학생들은 그 흐름에 휩쓸린다. 처음에는 사소한 갈등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집단적인 형태로 변해간다. 영화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상황을 연결한다. 이야기의 또 다른 중심에는 ‘이름’이 있다.

영옥은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하지만, 정순은 그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이름이 불쑥 떠올랐다”는 정도의 설명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이름은 과거와 연결된 중요한 단서로 드러난다.

정 감독은 “이 영화는 4·3의 이름을 함께 찾아가는 이야기”라며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난 뒤 ‘4·3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보게 되길 바랐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는 특정한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 가깝다.

제작 과정 역시 일반적인 상업영화와는 달랐다. 이 작품은 대형 투자사의 지원 없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작됐다. 약 1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참여해 4억원이 모였고, 이를 기반으로 제작이 진행됐다. 정 감독은 “이 영화에는 특정 투자자가 없다”며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만든 영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요즘 시세로 보면 60억에서 70억은 들어가야 하는 작품인데, 배우와 스태프, 심지어 나까지 모두 희생하면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작 여건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참여자들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작품이다.

베를린영화제 초청…독립·예술 1위
화제작 <내 이름은>…개봉 흥행 기류

주연은 염혜란 배우가 맡았다. 정 감독은 캐스팅 과정에 대해 “이전 작품에서 짧게 함께 작업했는데, 연기를 보고 반했다”며 “다음 작품은 무조건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는 아예 주인공으로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가 굉장히 리얼하고 맛깔난다”며 “이 인물은 배우가 완성했다고 봐도 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정순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모두 끌고 가는 중심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개봉 전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며 해외에서 먼저 공개됐다. 정 감독은 “영화를 만들고 나서 스스로 잘 만들었다는 확신이 없었다”며 “제작비도 충분하지 않았고 마음대로 찍은 것도 아니어서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베를린에서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어 안도했다”고 말했다. 국내 개봉 이후에는 독립·예술영화 부문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는 등 긍정적인 관객 반응도 이어졌다. 특히 상영관 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관객을 끌어모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개봉 당일인 지난 15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일반 관객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이날 관람은 ‘문화의 날’을 맞아 마련된 자리로, 대통령 부부가 시민들과 함께 상영관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전에 신청을 받아 선정된 관객 약 160여명이 함께 자리했으며, 상영 전후로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한 무대 인사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상영 이후에 무대에 올라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는 학살과 다름없다”며 “이 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어 “영화가 인간성을 회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관람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자리한 김혜경 여사 역시 “영화를 보는 동안 제주 4·3 희생자 유가족이 떠올랐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만 정 감독은 이 같은 정치권의 관심과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제작을 시작한 작품”이라며 “개봉 시기와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단순히 타이밍이 맞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4월은 제주 4·3을 다시 생각해 볼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관객들과 만나는 시점은 적절하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해외서도
호평 일색

정 감독은 이번 작품을 ‘대중 영화’라고 규정했다. 그는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며 “무겁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작품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영화를 통해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으로,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마무리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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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 없는’ 민주-혁신 복잡한 셈법

‘양보 없는’ 민주-혁신 복잡한 셈법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고심 끝에 평택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또다시 경쟁 상대가 됐다. 그동안 두 당은 꾸준히 아군에서 적군으로, 적군에서 또다시 아군으로 돌아서길 반복했다. 이번에는 양보 없는 진검승부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간의 신경전이 예상된다. 지난 2월 합당 논의로 훈풍이 부나 싶더니 불과 두 달 만에 등을 돌렸다. 혁신당 조국 대표가 평택을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지방선거 판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평이 나온다. 그럼에도 살아남다 민주당과의 합당이 무산된 이후 혁신당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상처만 남은 합당 추진”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양쪽 진영의 파열음만 계속됐다. 합당 무산 이후 지난 3월, 양 당은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지금까지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지금 전면적인 선거 연대를 위한 위원회로 규정하지는 않는다”며 지방선거 지역구 배분과 같은 구체적인 선거 협상 가능성에는 사실상 선을 그었다. 다시 독자 노선을 걷게 된 혁신당은 자강론에 힘을 실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자릿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합당 논의가 오가던 중 혁신당의 실무는 ‘올스톱’이었다. 논의 시기는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던 만큼 혁신당은 남들보다 반 발 늦게 선거 대열에 합류했다. 고심 끝에 조 대표 ‘국민의힘 제로(0)’와 ‘부패 제로(0)’ 실현을 앞세워 평택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평택을은 지난 1월 민주당 이병진 전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및 부동산 실명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인 벌금 700만을 받아 재보궐이 확정된 곳이다. 조 대표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히며 “혁신당의 13번째 국회의원이 돼 집권 민주당 소속 의원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내란 완전 종식, 진짜 개혁 완수’라는 시대적 과제를 책임지고 실천하겠다”며 “개혁의 강도가 약해지는 것을 막고 내란 이후 대한민국을 위한 입법과 정책으로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을 더 강력히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조 대표의 출마지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추측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과 경기 평택을·안산갑, 부산 북구갑·해운대갑 등이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그때마다 조 대표는 출마지를 묻는 질문에 “제가 가야 국민의힘이 당선될 수 없는 곳” “험지인 곳” 등 조건만 나열할 뿐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벼랑 끝 조국’ 스스로 올라간 시험대 사실상 마지막 기회...평택을 출사표 기자회견에서 조 대표는 평택을을 출마지로 택한 배경에 대해 “일찍부터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의 최상위 목표는 극우 내란 정치세력을 심판하고 국민의힘을 제로로 만드는 것임을 반복해 밝혀왔다”고 밝혔다. 이어 “동시에 국회의원 재선거가 이뤄지는 곳에는 귀책 사유가 있는 정당이 무공천을 해야 한다는 원칙 역시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며 “평택을 출마는 정치인이 된 후 줄기차게 역설해 온 이 같은 저의 비전과 가치, 그리고 원칙과 소신에 따라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자신이 평택에 연고가 없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그럼에도 평택을 도약시킬 비전과 정책, 실행할 능력만큼은 누구보다 앞선다고 감히 자부한다”며 “중앙정치에서 평택의 목소리를 키우겠다. 평택의 현안이 곧 국가적 과제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평택 시민들께서 조국을 선택해주시면 반드시 큰 정치로 보답하겠다. 반드시 평택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할 큰 정치인이 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조 대표의 출마 선언 이후 평택을은 단숨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이곳은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와 자유와혁신 황교안 대표가 출사표를 던진 곳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유의동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아직 후보를 내지 않았지만 민주당이 대열에 합류하면 최대 5파전으로 치러지게 된다. 일찌감치 이곳에서 터를 닦았던 김재연 상임대표는 곧바로 반발에 나섰다. 김 상임대표는 “오랜 고심 끝에 내놓은 답이 고작 제가 당의 명운을 걸고 뛰고 있는 이곳 평택인가”라며 “대의도 명분도 없는 평택 출마를 철회하라”고 목소리 높였다. “며칠 전부터 언론인들이 사실 여부를 물어올 때마다, 저는 ‘절대로 그럴 일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는 그는 “조국이라는 정치인의 상식과 양당이 맺어온 신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제까지도 저는 조국 대표의 ‘동지애’를 의심하지 않으려 했다”며 “정치는 원래 이토록 비정하게 신의를 밟고 올라서는 아수라장이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찢어지는 여당 표? 평택이 ‘험지 출마’라는 조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도 “지금 평택을이 험지가 맞느냐”라며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민주·진보 단일후보가 범보수 후보를 52.5% 대 29.4%로 압도하는 곳”이라고 꼬집었다. 진보당을 비롯해 여권 내에서도 평택이 과연 험지가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를 의식한 듯 조 대표는 “평택을은 19·20·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내리 승리한 곳으로 민주개혁 진영에게 험지 중 험지”라며 출마 명분 굳히기에 나섰다. 조 대표는 기자회견 당시 “평택에는 친윤(친 윤석열) 부정선거 음모론자이자 내란 피의자인 황교안씨가 깃발을 들었다. 그는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전한길씨가 주도한 극우 집회까지 참여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민주당 같은 경우 후보난을 겪고 있다면 국민의힘은 후보가 각축하고 있다”며 “(평택을이) 국민의힘에는 평지고, 민주당 또는 다른 범민주 진보 진영엔 험지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한 혁신당 관계자 역시 “(조 대표는) 평택, 안산, 군산 세 지역을 놓고 상당히 오랫동안 고심을 거듭했다”며 “귀책 사유로 보궐선거를 치르는 지역인 동시에 국민의힘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고, 또 혁신당에게 험지가 아닌 지역을 추리다 보니 평택을이 최종 선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가 선거 대열에 합류하면서 여당인 민주당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조 대표는 또 평택을 재보선의 귀책 사유가 민주당에 있으므로 ‘무공천 원칙’이 지켜져야 할 곳이라고 강조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 대표의 출마가 합당 무산에 대한 일종의 ‘위약금’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합당 무산으로 혁신당 의원들은 물론 당직자, 지지자들 까지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며 “그 이후에 선거 연대 이야기가 나왔지만 물밑 접촉도 미지근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민주당 반대에 부딪혀 합당이 무산된 그림이지 않았나. 조 대표 입장에서는 평택을 출마를 굽힐 이유가 없다”며 “따라서 혁신당은 민주당에게 당당히 무공천 원칙을 요구할 명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커지는 마음의 빚 민주당도 ‘전 지역 공천’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조 대표가 평택을 출마를 선언한 다음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말했다시피 재보선은 전략공천이 원칙이고 전 지역에서 공천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은 역시 “조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하며 민주당에 무공천을 요구했다”며 “돌아보면 조 대표가 22대 비례의원으로 (당선)됐다가 사임하고 그래서 비례를 다른 분이 승계했고 이번에 평택에서 출마하게 됐으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 귀책 사유 아니겠나”라고 직접 겨냥했다. 이 같은 발언은 2024년 12월 조 대표가 대법원에서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로 실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가 지난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광복절에 특별사면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평택을을 둘러싼 신경전이 길어질수록 민주 진영의 분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이 조 대표의 대항마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내보낼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평택을이 ‘사법 리스크 공방’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문제는 ‘김용 평택을 카드’는 민주당에게도 갈등의 뇌관이다. 김 전 부원장에게 공천을 주지 않으면 민주당 내 친명(친 이재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다.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전 부원장은 안산 출마를 희망했지만 결국 당 지도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출마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조 대표의 출마는 울산시장 선거까지 영향을 미쳤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진보당 선거 연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울산시장 후보는 민주당, 평택을 후보는 진보당으로 단일화한다는 관측이 우세했는데 조 대표가 선거 대열에 합류하면서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혁신당 황명필 의원이 울산시장에 출마를 선언한 만큼 이곳에서도 교통정리가 시급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진보당 김종훈 울산시장 후보는 민주당을 향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촉구했다. 김 후보는 “저와 진보당이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가장 큰 목표는 내란 청산”이라며 “전국의 모든 민주, 진보, 개혁 후보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말한다. 내란 청산을 위해, 국민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울산까지 부는 출마 후폭풍 골머리 앓는 범여권 지도부 회견에 배석한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역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실질적으로 민주·진보 개혁 세력이 하나로 모여 총선 189석의 성과를 만들고 대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며 “이번 지방선거도 똑같은 방식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울산 선거 연대가 헝클어질 조짐이 보이자 민주당 김상욱 의원도 ‘후보자 주도 단일화’를 공개 요청했다. 김 의원은 김종훈 후보의 단일화 제안에 “두 팔 벌려 환영한다”며 혁신당 황명필 울산시장 후보를 향해 단일화 동참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전국 최대 제조업 도시 울산에서, 노동자의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지키며 미래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일은 어느 한 당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민주당과 진보당, 혁신당이 함께할 때, 울산은 그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후보는 “3인이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출마 선언 당시 “제가 (민주·진보)진영의 후보 중 가장 큰 교집합을 담고 있고, 따라서 가장 강력한 합집합을 만들 수 있다”며 “더 나은 정책을 공유하고, 울산의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 단일화를 통해 본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조 대표의 평택을 출마가 민주당-진보당 선거 연대 계획을 꼬이게 했다‘는 지적에 대해 “유권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미 짜놓은 판에 후보들끼리 연대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 야합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유권자들은 힘 있는 후보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어디서든 진보당과 아름다운 경쟁을 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평택을 선거의 핵심은 단일화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조 대표와 체급이 맞는 후보를 내보내야 (단일화) 논의를 테이블에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을 봐서는 조 대표의 완주 의지가 뚜렷해 보인다. 당 대표가 낙선하면 체면도 구겨지고 더 나아가 당이 존폐 위기까지 놓인다. 단일화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사활을 거는 조 대표를 설득할 만한 주자를 내세워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붙느냐 마느냐 이어 “민주당과 혁신당 간의 합당 논의가 없었으면 두 당이 조금 더 편하게 단일화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 대표가 조금만 양보를 해주는 제스처를 보여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서니, 양쪽 모두 입장이 곤란하긴 마찬가지”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일각에서는) ‘합당 논의를 성급하게 띄운 것도, 지지자를 설득하지 못해 (논의를) 깬 것도 정 대표’라는 불만이 있었다”며 “결국 조 대표만 독박을 썼다. 민주당이 평택을에 조 대표보다 체급이 약한 후보를 내보내 자연스럽게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산 피해 간 조국, 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자신의 고향이 부산 북갑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국 대 한동훈’ 구도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또는 제게 직접 연락해 ‘부산은 선택 안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시장에서 박형준을 척결하고 쫓아내려면 (부산 북갑 선거에) 안 나가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며 “(민주당에서) 부산은 박형준 시장으로부터 뺏어와야 하는 지역구다. ‘박형준 대 전재수’ 구도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제가 나가면 ‘조국 대 한동훈’으로 구도가 바뀌면서 부산시장 선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조 대표는 민주당의 주장에 공감했다. 그는 “박형준을 정말 그만 보고 싶은 부산 출신 사람으로서 그 말이 이해되더라”며 하정우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을 거론하며 “나가면 충분히 이기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