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조미료 '미원'과 '종가집' '청정원'브랜드로 유명한 대상그룹은 지난달 기준 총 46개(해외법인 제외)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대상베스트코'와 '아그로닉스'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식자재 유통·판매
2010년 설립된 대상베스트코(옛 다물에프에스)는 냉장식품, 냉동식품, 조미식품, 가공식품 등 식자재 유통·판매 업체다. 농수축산물 도매와 단체급식 등도 한다. 때문에 요즘 한창 말 많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장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상베스트코는 안양, 대전, 인천, 청주, 원주 등 전국 곳곳에 식자재 전문 마트를 잇달아 열면서 지역 영세 상인들로부터 거센 반발과 비난을 받고 있다. 대상베스트코는 지난 2월 식자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에이에스푸드서비스, 극동물류푸드, 한일마트, 푸드앤푸드시스템, 대한식자재유통, 예름에프에스, 송정유통 등 자회사들을 흡수합병한 바 있다. 최근 국감에선 상생법의 사업조정제도를 피하기 위해 지역의 유통업체로 이름을 바꿔 사업을 확장하는 대상베스트코의 편법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상베스트코의 매출 구조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부거래 비중이 심상치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40% 정도를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상베스트코는 지난해 매출 82억원 가운데 31억원(38%)을 종속회사들과의 거래로 올렸다. 종속회사는 중부식자재, 대한식자재유통, 신다물유통, 우덕식품, 청정식품, 싼타종합유통, 한미종합식품, 배추벌레, 만세종합유통, 한려종합식품 등이다.
아그로닉스(농업회사법인 아그로닉스)는 더하다. 2010년 설립된 아그로닉스는 과일·채소 등 농산물 도매업체로, 계열사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어려운 형편이다.
아그로닉스는 지난해 매출 853억원에서 내부거래로 채운 금액이 587억원(69%)이었다. 대상에프앤에프(407억원), 대상㈜(181억원) 등과 거래했다. 대상에프앤에프(246억원)와 대상㈜(57억원) 등 계열사들은 2010년에도 아그로닉스의 매출 425억원 중 303억원(71%)에 달하는 일감을 퍼줬다.
매출 70% 계열사서 올려 "590억 거래"
임창욱 회장과 세령·상민씨 지분 소유
대상베스트코와 아그로닉스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대상베스트코는 대상㈜이 70%(112만 주)의 지분을 소유한 최대주주다.
나머지 30%는 오너일가가 보유 중이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과 그의 두 딸 세령·상민씨가 각각 10%(16만 주)씩 갖고 있다. 세령·상민씨는 아그로닉스 지분도 있다. 세령씨는 12.5%(2만 주), 상민씨는 27.5%(4만4000주)를 쥐고 있다.
임 회장은 부인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과 사이에 딸만 둘을 뒀다. 아들이 없는 임 회장은 자매를 중심으로 후계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세령씨는 199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결혼해 1남1녀를 낳고 전업주부로 지내다 2009년 이혼했다. 현재 대상그룹 외식 계열인 대상HS 대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세령씨의 동생 상민씨는 지난 8일부터 대상㈜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부장급)을 맡아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화여대 사학과와 미국 파슨스 스쿨을 졸업하고 존슨앤존슨 마케팅 인턴십과 유티씨인베스트먼트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9년 대상㈜ PI(Process Innovation)본부에 입사한 뒤 전략기획팀에서 기획실무를 담당하다 2010년 영국 유학길에 올라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과정을 마치고 이번에 복귀했다.
상민씨는 그룹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최대주주(38.36%·1389만2630주)다. 이어 세령씨(20.41%·738만9242주), 임 회장(2.88%·104만2687주), 박 부회장(2.87%·103만8482주) 순이다.
경영권 전초기지?
대상홀딩스 역시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편이다. 2005년 설립된 대상홀딩스는 모회사인 대상㈜의 투자사업부문이 분할된 그룹 지주회사다. 계열사들을 상대로 자금 및 업무 지원, 경영 자문·컨설팅, 브랜드·상표권 관리 등이 주된 업무다.
그렇다보니 계열사들에 매출을 의존하고 있다. 대상홀딩스는 지난해 계열사 매출 비중이 88%에 달했다. 총매출 151억원에서 대상㈜(94억원)과 엠플러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1호(34억원), 대상에프엔에프(3억원), 대상정보기술(1억원), PT.SR(1억원) 등과의 거래액이 133억원이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