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⑪아랫도리를 열띠게 흔들흔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6.01.26 03:40:01
  • 호수 15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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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어둑한 구석자리에 놓인 테이블에서는 미군과 여자들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희희덕거렸다.

그들의 머리 위엔 희뿌연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히 피어올랐다.

어찌 보면 커다란 수족관 같은 그 공간, 청운은 문득 외로움을 느끼곤 안쪽으로 점점 걸어 들어갔다.

춤추는 플로어

사람들이 춤추는 플로어 앞쪽에 몇 계단 높게 무대가 가설돼있고 그 한옆에서 악단이 한창 연주를 하는 중이었다.

청운은 술과 안주가 얹힌 쟁반을 들고 테이블 사이로 매끄럽게 헤엄쳐 다니는 웨이트레스를 불러 물어볼까 하다가, 한순간 악마산에서 수련한 잠입술을 발휘해 재빨리 무대 뒤쪽의 대기실로 숨어들었다.

그곳엔 출연 차례를 기다리는 연예인과 무용수들로 시껄벅적했다. 개중엔 티브이에서 본 듯한 코메디언이나 가수도 눈에 띄었다.

한구석에서는 서너 명이 둘러앉아 군용 담요 위에 화투짝을 두드리기도 했다. 청운은 광을 팔고 나서 희희낙락 구경하고 있는 한 사내에게로 다가가서 슬쩍 물었다.

“혹시 앞니 빠진 피에로를 아십니까? 여기서 꽤 유명한 희극배우라던데…….”

사내는 청운을 흘끗 쳐다보곤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흥, 이 업계에는 앞니 빠진 개오지 외에도 코뼈 부러진 피에로, 꿈을 먹다 소화불량에 걸린 삐에로 등등 별명이 많아서 곤란한걸. 아마 전국적으로 따지면 수십 가지는 될 거야.”

“본명은 김순식입니다만.”

“흐흥, 찾으시는 순식이가 그 순식이라면 아마 별로 유명하진 않을 텐데…….”

바로 그때, 구석쪽에 쭈그려 앉아 한창 구두를 닦고 있던 허수룩한 사람이 슥 고개를 들었다. 그는 검은 빵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얼굴 여기저기 구두약이 묻어 있었다.

그건 분명 분장한 모습이 아니라 생존 현장의 실상이었다. 그 앞엔 고급 구두, 낡은 구두, 남자 두, 여자 구두 등 갖가지 스타일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그는 청운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구둣솔을 버리고 벌떡 일어섰다.

“구름아, 너 혹시 운이니?”

“정말 순식이 형이야?”

잠시 서로 바라보던 둘은 더 이상 다른 말 없이 다가들어 꽉 껴안았다.

“형, 정말 살아 있었구나! 그동안 어찌 지냈어?”

청운은 울먹였다.

“나야 세상천지가 다 내 아방궁인걸 뭐. 구름이 니가 어떻게 살고나 있는지 늘 걱정되었지. 아무튼 이렇게 살아서 만나니 좋구먼.”

피에로가 씩 웃자 앞니 빠진 자리가 드러나 희극적이면서도 구슬퍼 보였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구나. 아주 감동적이야.”

화투판의 누군가 말했다. 그러자 다른 소리가 장단을 맞췄다.

“이참에 둘이 무대에 같이 나가 갈라진 한민족의 애절한 소원을 보여 주면 어떨까 싶네.”

“그러다 국가보안법에 걸리면 어쩌려구?”

“흐흐, 여긴 리틀 아메리카라 한국의 헌법도 대통령까지도 어쩔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잖아.”

“쓸데없는 소릴…… 형제가 만나 울고 짜는 꼴을 미군 놈들이 좋아할 리 없지. 실실 웃다간 지겹다고 야유할 텐데 뭘.”

남자들과 달리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두 의형제의 재회를 축하해 주었다.

미군과 여자들 마주 앉아 희희덕
TV서 본 코미디언·가수도 공연

피에로는 청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눈짓한 뒤 다시 재빨리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청운은 다가앉아 헝겊으로 광을 냈다.

피에로가 말없이 히죽 웃었다. 청운보다 두어 살 더 먹었을 뿐일 텐데 이마의 주름살이 깊게 지자 언뜻 노인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린 소년같이 천진난만한 표정이 그 얼굴에 떠돌기도 했다.

“어이, 슈샤인 보이…… 내가 닦아 놓을 테니 어디 가서 회포나 풀거라잉. 대신 나중에 쏘주나 한잔 사야 해.”

서른 살 초반쯤 돼 보이는 사내가 일어나서 오리궁둥이 포즈로 흔들며 능글맞으면서도 익살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벌써 대머리가 까진데다 코허리가 푹 꺼지고, 작은 눈에 거무스레한 입술은 두툼하게 내밀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추남이었지만 어딘지 애잔한 페이소스를 지닌 얼굴이었다.

“형, 고마워. 내가 형 덕분에 살아간다니까…… 야, 구름아 가자.”

피에로는 청운의 팔을 끌고 대기실을 벗어나 홀의 외진 구석으로 갔다.

“편안히 앉아 있어.”

얼마 후 그는 맥주 세 병과 안주 접시를 직접 들고 왔다.

“자, 한잔 받어. 이게 꿈인지 생신지 헷갈린다.”

“응, 그래.”

청운은 하얀 꽃처럼 피어오르는 맥주 거품을 바라보았다.

“자, 생존을 위해 건배!”

둘은 잔을 쨍 마주치곤 술을 들이켰다.

“이게 얼마만이냐, 응?”

피에로는 신기스럽다는 눈빛으로 청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 2년이나 3년쯤 됐을까, 근데 형은 왜 이곳으로 왔어?”

“바람결에 떠도는 방랑 인생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냐. 어쩌다 보니 그냥 왔지. 하지만 무슨 환락을 찾아 술집에 온 건 아니란다. 진흙 속이라 해도 연꽃 씨 같은 꿈은 가슴에 품고 있지 않겠냐. 나도 너도…… 청량리 풍전 홀에 들어간 것도 어떡하든 무대에 서서 대배우로 성공하고픈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예술의 신께 기도하며 온갖 궂은 잡일을 맡아 했지만 내게 무대는 너무 높기만 하더라. 아무리 한물 간 연예인이나 추문에 휩싸인 배우라도 밤무대에서는 오히려 더 주가가 높고 기고만장하는 세상이더군. 여기로 온 건 일단 잠시나마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야. 혹시 잘되면 미8군 쑈 무대에도 설 기회가 있다니까. 그럼 성공의 문이 서서히 열리는 거지, 흐흣.”

“아, 그렇구나. 난 또 괜히 이상스런 걱정을 했네, 헤헤…… 그럼 오늘 밤에도 형이 무대에 나가 연기를 하는 거야?”

“응, 그래. 좀 있다가 야밤에.”

“아까 분장실에서 보니까 유명한 연예인도 몇 사람 있던걸.”

“아, 그 사람들은 오리지날이 아니고 짝퉁이야.”

“응?”

“흉내를 내는 거지. 배삼융, 서영촌, 고붕서, 너혼아, 남징, 일미자, 문주린 등등등 참 많다. 다들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거지.”

“아까 그 못생긴 추남 아저씬 누구야?”

“아, 그 형…… 이주일이란 예명으로 뛰는 코메디언 형인데…… 생김새는 그래도 마음씨는 착한 사람이야. 무대에서는 늘 단역 신세지만, 짝퉁 흉내를 내지 않고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창출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중이지. 하긴 흉내내려야 흉내낼 만한 대상도 없으니까 뭐. 흐흣…….”

둘은 다시 잔을 쨍 부딪치곤 술을 들이켰다.

“잠깐 갔다올게.”

피에로는 헤벌쭉 하회탈 같은 미소를 짓고 나서 어디론가 바삐 사라졌다. 그때 어떤 짝퉁 가수의 노래가 끝나고 음악이 한결 리드미컬하게 변조되었다.

추남 아저씨

홀 앞쪽의 무대엔 붉은 춤옷 차림의 여자가 올라서고 있었다. 촘촘하게 장식된 수백 개의 진주 구슬이 색색가지로 반짝거렸다.

그 댄서가 리듬에 맞춰 상체를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하자 색색가지 구슬들이 현란히 빛나며 쭉 빠진 몸매를 한층 더 도드라지게 했다.

그녀가 입술 새로 요염한 미소를 흘리며 아랫도리를 율동적으로 열띠게 흔들어대자 요란스런 고함과 휘파람 소리가 잇달아 흘러나왔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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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