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한국 증시는 하나의 선을 넘었다. 코스피 5000 돌파는 금융시장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정치의 시간표를 바꾸는 신호이기도 했다. 자산시장의 움직임이 이제 국정 평가와 선거 지형을 동시에 흔드는 단계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정치는 오랫동안 이념과 진영, 프레임의 경쟁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대중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주식시장은 이 문법을 바꾸고 있다. 계좌 수익률은 뉴스보다 빠르고, 체감은 여론조사보다 정확하다. 선거의 바람이 정치가 아니라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인공지능(AI) 사이클이 있다. 반도체와 제조업, 그리고 한국 증시를 끌어올린 이 거대한 기술·산업 파동이 이어진다면 이재명정부는 정치적 호기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5000피는 성과가 아니라 책임으로 바뀐다.
6·3 지방선거에서 2028 총선, 2030 대선까지 한국 정치의 향방은 이제 AI가 만드는 경제 파동 위에서 결정될 것이다.
5000피, 정치의 ‘체감 계좌’
코스피는 22일 장중 5000선을 넘어섰다. 종가는 5000 아래로 내려왔지만, 시장이 남긴 흔적은 숫자보다 컸다. ‘꿈의 지수’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경제 기사보다 먼저 자기 계좌를 열었다. 그리고 그 체감은 곧 정치의 온도로 번졌다.
정치는 본래 구호로 승부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는 체감으로 끝난다. 민심은 논쟁보다 생활을, 명분보다 손익을, 설명보다 결과를 더 빠르게 받아들인다. 5000피는 바로 그 체감의 속도를 바꿔 놨다. ‘나라가 돌아가는가’가 아니라 ‘내 돈이 돌아오는가’가 매일 갱신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 선거의 가장 잔혹한 경제 변수는 부동산이었다. 그러나 부동산은 이제 많은 사람에게 정책으로도 쉽게 만지지 못하는 영역이 됐고, 환금성과 진입 장벽 때문에 체감이 느리다. 반면 주식은 다르다. 클릭 한번으로 손익이 뜨고, 하루 만에 감정이 바뀐다. 이 속도는 선거의 리듬을 바꾼다.
여기에 하나의 사실이 더해진다. 주식은 더 이상 ‘일부의 취미’가 아니다. 급여계좌처럼 생활 속에 들어와 있고, 중복을 포함해 수많은 계좌가 시장의 등락을 매일 확인한다. 정치가 여론조사로 읽는 민심보다 시장이 계좌로 만들어내는 체감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다.
그래서 5000피는 단순한 자산시장의 이벤트가 아니다. 경제지표가 정치 지표를 덮어버리는 순간이자, 선거의 언어가 ‘프레임’에서 ‘수익률’로 이동하는 신호다. 정치가 계좌를 이길 수 없는 시기가 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AI 사이클이 있다.
구도와 인물 사이에 낀 코스피
선거의 3대 요소는 구도, 인물, 바람이다. 대개는 정치가 이 세 가지를 설계한다. 여야가 대립 구도를 만들고, 인물을 세우고, 바람을 촉발해 투표장으로 끌어낸다. 그런데 코스피가 무한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오르면서 이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치가 만들던 바람 위에 자산시장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바람이 덧씌워지고 있다.
정치가 만든 바람은 쉽게 쪼개진다. “내란 청산”과 “독재 저지” 같은 구호는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지만, 중도층의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두긴 어렵다. 특히 지방선거는 생활 감각이 강해, 중앙 정치의 거대한 프레임이 현장에서 마찰을 일으키기 쉽다.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경제이고, 지금 그 중심에 코스피가 있다.
경제는 구도도, 인물도, 바람도 한번에 바꾼다. 코스피가 오르면 현상 유지가 유리해지고, 꺾이면 심판 정서가 급격히 확장된다. 과거에는 그 역할을 부동산이 맡았지만, 지금은 주식이 그 자리를 상당 부분 대체했다. 부동산은 ‘소유자’만 체감하지만, 코스피는 ‘참여자’ 모두가 동시에 느낀다.
코로나 이후 ‘동학개미’라는 거대한 유권자층이 형성됐다. 지역·이념·세대가 섞여 있어 정치적 분류가 어렵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코스피의 등락에 민감하고, 손익에 즉각 반응하며, 정책 신호를 시장을 통해 해석한다는 점이다. 이제 선거판의 바람은 정치 구호보다 지수와 시세가 더 빠르게 만들어낸다.
부동산서 주식으로 이동한 표심
고환율·고물가 시대에 사람들은 안전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탈출구를 찾는다. 월급이 물가를 못 따라가면 자산시장이 곧 생활의 보조 호흡이 된다. 그때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부동산은 높고 멀고 무겁다. 진입 비용이 크고, 거래가 느리고, 실패하면 회복이 오래 걸린다.
반면 주식은 문턱이 낮다. 소액으로도 참여할 수 있고, 환금성이 높은 데다 정보도 많으며, 무엇보다 “내가 선택했다”는 감각이 강하다. 사람들은 실패해도 ‘정책 탓’만 하진 않는다. 하지만 폭락처럼 충격이 크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승은 내 선택, 하락은 정부 책임이라는 정치적 감정이 작동한다.
동학개미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다. 이제는 생활형 유권자이자 여론의 속도계다. 시장이 오르면 ‘정권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실제로 상승장이 이어질 때는 악재가 터져도 불만이 곧바로 폭발하기보다 한박자 늦게 번지는 장면이 반복된다. 경제가 정치를 덮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조에는 함정이 있다. 주식은 계좌를 통해 매일 체감되기 때문에 민심의 변곡점도 매우 짧아진다. 정부가 다른 분야에서 성과를 쌓아도 시장이 꺾이면 그 성과는 한동안 가려진다. 특히 지방선거처럼 일상적 체감이 중요한 선거에서는 더욱 그렇다.
AI 사이클, 정권의 상승 엔진
코스피 5000의 배경에는 여러 설명이 붙는다. 외국인 수급, 이익 모멘텀, 밸류에이션 재평가, 지배구조 개선 기대,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같은 주주환원 정책. 그러나 이런 설명의 중심에는 결국 하나가 있다. AI 수요가 반도체와 제조업의 실적을 밀어 올리는 사이클이다.
이 사이클은 ‘정권에게 유리한 바람’을 만든다. AI 사이클이 지속되면 수출과 실적이 견인되고,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리고, 그 지수가 체감을 자극하며, 체감이 정치의 안정감을 만든다. 즉 주가 상승은 단순한 자산 효과가 아니라 정권의 시간표를 유리하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고리가 하나 더 있다. 한국 증시는 구조적으로 반도체와 수출 대기업의 실적에 크게 좌우되고, 코스피의 방향도 결국 이 산업들의 경기 사이클을 따라 움직인다. AI라는 하나의 파동이 산업 실적과 주가, 그리고 국민의 체감을 한 줄로 묶어 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AI 사이클은 양날의 검이다.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상승의 내러티브는 즉시 책임의 내러티브로 전환된다. “정권이 올렸다”는 말은 “정권이 떨어뜨렸다”로 바뀐다. 주식은 하락할 때 더 큰 목소리를 낸다. 손실은 이익보다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명정부가 AI 덕을 볼지, 해를 볼지는 정책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이클의 지속성과 사이클 하강 시 충격 흡수 능력이 함께 작동한다. 한마디로 AI가 뜨는 것은 축복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AI가 식을 때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6·3 지방선거, 코스피 지수가 변수
오는 6월3일 지방선거는 원래 생활 정치의 무대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생활의 정의가 달라졌다. 도로와 보육, 치안과 복지 같은 전통 의제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위에 “내 계좌가 살아 있는가”라는 새로운 생활 감각이 올라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는 특히 정당보다는 동네의 기분이 먼저 움직인다. 중앙 프레임이 아무리 거칠어도, 지역의 자영업·고용·가계 체감이 괜찮으면 분노는 둔화되고, 반대로 체감이 꺾이면 프레임보다 먼저 표가 식는다. 주식은 그 ‘동네의 기분’을 하루 단위로 증폭시키는 장치가 됐다.
여야는 거대한 정치 프레임으로 싸울 것이다. 내란 청산, 독재 저지, 입법 폭주, 사법정치 같은 단어들이 난무할 것이다. 그러나 중도층은 대개 그런 단어에 오래 머무르거나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것은 결국 체감이다. 이번에는 그 체감이 주식에서 빠르게 나올 것이다.
시나리오는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6월까지 코스피 지수가 안정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성과의 분위기’ 덕을 보게 된다. 특히 마음을 아직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서서히 여당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커진다. ‘기분이 괜찮은 표’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다.
반대로 선거 직전 AI 관련 조정이나 글로벌 충격으로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면, 지방선거는 단숨에 심판 선거가 된다. 이때 야당은 정책 대안을 내지 않아도 거품과 민생 괴리라는 프레임으로 손쉽게 확장할 수 있다. 주식 하락은 곧바로 불신의 언어가 된다.
2028 총선, 상승 지수의 민생 시험대
총선은 중간평가다. 2028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려면 상승장의 기세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상승장의 기세가 오래 갈수록 위험도 커진다. 이유는 하나다. 지수 상승이 민생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상승을 ‘나와 무관한 호황’으로 규정하기 시작한다.
AI 사이클이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는 수출과 제조업 측면에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탄력이 내수, 고용, 자영업, 지역경제로 내려오지 못하면 사회는 K자형 간극을 더 크게 체감한다. “코스피는 5000인데 나는 왜 그대로인가?”라는 문장이 정치적 분노로 변한다.
2028년 총선의 관건은 그래서 ‘지수의 추가 상승’이 아닌, 상승의 과실을 넓히는 정책이다. 주주환원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AI 투자와 생산성의 상승이 임금과 일자리, 지역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총선은 ‘자산 정치’에 대한 반발로 움직일 수 있다.
결국 총선은 “상승 지수를 만들었느냐”보다 “상승 지수가 국민의 삶을 바꿨느냐”를 물을 것이다. 이 질문에 답을 못하면 상승장은 정권의 업적이 아니라 정권의 부담이 된다. 상승장이 길수록 반작용도 커진다. 정권 연장은 지수가 아니라 분배와 체감에서 결정된다.
2030 대선, AI 사이클 끝에서의 대결
대선은 미래 계약이다. 2030 대선에서 유권자는 “다음 5년을 맡길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때 AI 사이클이 여전히 강하면, 여당은 ‘미래산업을 선점한 정부’라는 내러티브를 구축할 수 있다. 반도체와 AI 생태계, 피지컬 AI, 제조업 재평가 같은 언어가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대선은 대개 사이클의 끝자락에서 열린다. 중요한 것은 상승이 아니라 하강이다. 사이클이 꺾일 때 정부가 보여주는 것은 정책의 말이 아니라 체력이다. 충격을 흡수하는 재정과 사회안전망, 산업 재편의 속도, 노동·교육 전환 능력, 그리고 갈등을 관리하는 정치력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다.
만약 AI 사이클이 꺾인 이후에도 정부가 연착륙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강력한 성과가 된다. “상승은 시장이 만들고, 위기는 정부가 관리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강 국면에서 실기하면 상승 지수는 ‘거품의 증거’로 바뀌고, 대선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 심판의 종결판’이 된다.
2030은 결국 ‘AI가 세상을 바꾸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AI가 바꾸는 세상 속에서 누가 더 안전하게 국민을 옮겨 태우느냐’의 싸움이다. 기술이 아니라 전환의 정치가 승부를 가른다.
바람이 된 코스피 정치
정치는 늘 구도·인물·바람으로 움직였다. 다만 지금 바람의 엔진이 바뀌고 있다. 부동산이 흔들어온 선거의 문법 위에 주식이 더 빠르고 더 대중적인 체감으로 올라섰다. 5000피는 그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정부가 AI 덕을 볼지, 해를 볼지의 답은 간단하다. 사이클이 지속되면 덕을 본다.
그러나 그 덕이 지속 가능한 성과가 되려면 상승을 민생으로 내려오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AI·반도체의 투자 성과가 임금과 고용, 지역 산업 생태계로 확산되는 ‘연결고리’를 정부가 설계하고, 하강 국면에는 가계와 지역을 받쳐 줄 안전망과 전환교육이라는 완충 장치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6·3 지방선거는 그 첫 시험대다. 지수의 방향은 표의 방향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 ‘내 삶의 방향’과 연결되느냐다. 지수만 오르고 삶이 멈추면 바람은 곧 역풍이 된다.
정권의 운명은 점점 정책의 정교함보다 체감의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5000피는 축배가 될 수도, 독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갈림길의 이름은 다름 아닌 AI 사이클이다. 그 사이클이 어디로 꺾이느냐가 6·3을 지나 2028 총선, 2030 대선까지 한국 정치의 바람을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