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김병기·한동훈, 떠나는 정치와 남은 정치

강 위의 달, 적벽부가 묻는 정치 태도

정치는 같은 징계 앞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을 만들어낸다. 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제명이 예정된 국면에서 지난 19일 스스로 탈당을 선택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3일 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같은 ‘퇴장 압박’이지만, 선택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김병기는 남아 다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재심도, 표결도, 정치적 확전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유리했을지도 모를 절차의 시간을 스스로 접었다. 반면 한동훈은 제명 결정이 내려진 뒤 이를 ‘조작 감사’이자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하며 공개 반발에 나섰다.

당의 결정에 맞서 싸우겠다는 선택이었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즉각 가를 수는 없다. 절차적 정당성을 다툴 자유도, 억울함을 주장할 권리도 정치의 일부다. 문제는 다른 지점에 있다. 정치가 언제 설명을 확장해야 하는가, 그리고 언제 침묵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의 선택은 분명히 갈렸다. 한 명은 표현을 절제하는 선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대응을 확장하는 선택이었다.


정치에서 표현은 언제나 힘과 책임을 동시에 가진다. 설명이 과잉될수록 정보는 늘어나지만, 설득은 오히려 희석된다. 절차가 길어질수록 정의가 선명해지기보다 피로가 축적된다. 김병기는 이 구조를 본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명분을 끝까지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정치가 더 소모되지 않도록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질문 앞에서 1000년 전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적벽부>를 쓴 북송의 문인 소동파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뒤 강 위에 섰다. 투옥과 유배, 정치적 낙인은 이미 그의 이력서에 찍혀 있었다. 오늘의 기준으로 봐도 반전은 거의 불가능한 처지였다. 제도는 그를 다시 부를 생각이 없었고, 권력은 이미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동파는 끝까지 해명하지 않았다. 억울함을 정리한 탄원서를 쓰지도, 자신을 몰아낸 권력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그는 배를 띄웠고, 밤을 건너며 달을 불렀다. 정치가 설명하지 못하는 시간을 끌어왔다. <적벽부>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것은 패배 선언이 아니라, 떠나는 자의 태도였다.

<적벽부>에 나오는 손님은 인간의 삶을 하루살이에 비유한다. 거대한 강과 하늘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자각이다. 이는 패배자의 체념이 아니라, 권력의 크기를 상대화하는 사고다. 인간이 붙잡고 있다고 믿는 지위와 명예가 실은 잠시 머무는 자리일 뿐임을 드러내는 인식이다.

권력이 영원하다는 착각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이 지점에서 김병기의 선택은 다시 읽힌다. 그가 남아 있었다면 더 많은 항변과 해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더 많은 항변, 더 많은 지지 호소, 더 긴 절차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설명과 공방은 결국 정치의 소음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그 소음을 확장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것은 결백의 포기가 아니라, 정치의 총량을 더 키우지 않겠다는 판단이었다.


반대로 한동훈의 선택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왜 끝까지 남아 싸우는 방식을 택했는가. 그것은 억울함 때문일 수도 있고, 정치적 명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선택은 필연적으로 당내 갈등을 연장시키고, 정당의 시간을 소모시킨다. 대응이 확장되는 순간, 정치는 설명의 공간이 아니라 대치의 무대로 바뀐다.

정당은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전선의 일부가 된다.

우리 정치에는 다른 전례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차례 정치적 축출과 감금, 사형 선고와 망명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즉각 맞서 싸우기보다 시간을 건너는 방식을 택했다. 거리에서 외치는 대신 침묵했고, 법정에서 다투는 대신 해외로 나갔다. 떠남은 후퇴가 아니었고, 침묵은 포기가 아니었다.

그는 싸움을 유예했고, 그 유예 속에서 정치의 지형이 바뀌는 순간을 기다렸다.

김대중의 정치는 ‘버티는 정치’가 아니라 ‘견디는 정치’에 가까웠다. 그는 남아 소모되지 않았고, 떠나 잊히지도 않았다. 돌아왔을 때 그는 개인의 억울함을 앞세우지 않았다. 대신 구조의 전환, 시대의 비전을 들고 돌아왔다. 그때 그의 정치적 복귀는 복수가 아니라 대안이 됐다.

소동파는 물과 달을 예로 든다. 흐르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순환이라고 말한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이동이다. 문제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떠나느냐다. 적벽의 밤에서 소동파는 권력을 붙잡지 않았지만, 태도를 남겼다. 김대중은 권력을 유예했지만,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정치는 흔히 끝까지 버티는 것을 책임으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절차를 늘리고, 갈등을 키우고, 공동체를 피로하게 만드는 버팀은 책임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김병기의 퇴장은 이 점에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왜 내려놓음은 늘 패배로만 해석되는가. 왜 떠나는 선택은 언제나 변명처럼 취급되는가.

물론 한동훈에게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싸우는 정치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그리고 그 싸움이 공동체에 무엇을 남기는가. 끝까지 남는 정치가 언제부터 용기가 아니라 집착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적벽부>의 마지막은 이렇게 서술돼있다.

“술은 다하고, 사람들은 배 위에 잠든다. 모든 흥분은 그렇게 사그라지고, 남는 것은 소란이 아니라 조용히 가라앉은 시간의 여운이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결국 모든 국면은 종료되고, 모든 절차는 끝난다. 그때 남는 것은 누가 더 오래 버텼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적게 훼손했는가다. 김병기는 떠남으로 소음을 줄였고, 한동훈은 남음으로 싸움을 택했다. 어느 선택이 더 긴 시간을 통과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적벽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 위의 달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끌어내릴 수도, 소유할 수도 없다.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래를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떠나든, 남는 정치든. 오늘의 정치는 이제 그 메시지를 다시 새겨야 한다.

김병기 전 원내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가 한강 나루터에서 <적벽부>를 펼쳐 들고 달을 바라보며, 각각 지금까지 무엇을 붙잡고 있었는지,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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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