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군정보사령부는 12·3 내란 6개월 전 한 문건을 작성했다. 고문, 자백유도제 등의 문구가 등장한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내용과 흡사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 문건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게 보고됐다. 정보사 내부에서는 실제 그가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후 은밀하게 의무사령부와 접촉했다고 입을 모은다.
현 야권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내용이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다. 반대로 여권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보사 내부 분위기도 대동소이하다. 실제 비슷한 내용의 문건이 작성된 게 근거다. ‘협상과 설득을 통한 주요 정보 입수 방법’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에 의해 작성됐다.
끔찍한 문구들
정보사가 ‘협상과 설득을 통한 주요 정보 입수 방법’이라는 문건을 작성한 시기는 2024년 6월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 문건을 작성한 인물은 정보사 휴민트(HUMINT·인간정보 820) 부대 소속이던 이모 중령이다. 그는 올해 대령으로 진급해 강원도에 위치한 육군 휴민트 부대장을 맡고 있다. 앞서 이 대령은 문 전 사령관의 지시로 2024년 10월부터 휴민트 간부들의 출신과 고향·학교 등 이른바 ‘성분’을 조사했다. 이 대령이 정리한 ‘휴민트 보고서’를 전달받은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에게 이 자료를 넘겼다.
이 대령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 출신이다. 그간 정보사가 ‘육사 중심’으로 운영됐던 걸 보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12·3 내란 직전까지만 해도 ‘정보사 별 따기’에 성공한 인물 대부분은 육사 출신이다. 이 대령은 문 전 사령관의 문건 작성 지시를 성실히 이행해 야전보다 빠른 고속 승진에 성공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대령이 작성한 문건에는 비상식적 문구들이 수차례 등장한다. 1항의 협상(포섭)에는 ‘상대의 욕구를 자극하고, 객관적 기준 제시와 합리적인 논리로 설득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이라고 적혀 있다. 2항의 고문에는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 국가에서 실제로 고문당했던 유형과 CIA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 보고서를 참고하라고 적시됐다.
문건에 적힌 신체적 고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복면으로 눈을 가리고 나체상태로 장시간 방치하기(체혼 저하) ▲물고문(찬물 뿌리기, 이마에 한 방울씩 장시간 떨어뜨리기) ▲벌레, 개 등을 이용해 공포심 유발 ▲수면 박탈 및 장시간 공복 유지 ▲러시안룰렛 / 눈을 가리고 신체 근처에서 전동드릴 작동 ▲좁은 공간에 가두기(대리석 바닥, 시멘트 독방 등) ▲감각 이탈(낮은 온도, 밝은 조명) 등이 언급됐다.
정신적 고문으로는 ▲고독감을 느끼도록 사회활동으로부터 격리해 독방 감금(외부소식 차단) ▲가족에 대한 협박 ▲평생 불구자로 만들거나 종신형을 선고할 것이라며 위협 ▲아파트, 자동차, 장학금 등 물질적 수단으로 회유 ▲사기를 꺾기 위한 인격적 모욕, 가혹행위와 같은 방법이 나열됐다.
2024년 6월 고문 방법 적힌 보고서 작성
정보사, 의무사에 약물 보유 여부 확인
3항에는 자백유도제로 쓰이는 약물과 사용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대표적으로 ▲벤조디아제핀 ▲펜토탈나트륨(티오펜탈나트륨) ▲프로포폴 ▲케타민 등을 예시로 들었다. 정보사는 의무사령부를 통해 펜포탈나트륨을 제외한 모든 약물이 군 병원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문 전 사령관도 이를 보고 받았다.
이 문건 작성에는 정보사 특수처도 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특수처는 대북공작 부대인 100여단의 참모 부서다. 100여단이 ‘공작 실행’ 조직이라면 특수처는 전략과 기획을 담당한다. 해당 조직에 근무하는 이들 또한 대부분 휴민트다. 당시 특수처장(대령)이던 A씨도 이 대령과 같은 학사 출신으로 최근 장군 진급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보사는 이와 같은 문건을 작성하지 않은 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한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1980년대 말인가 1990년대 초까지만 자백유도제 사용 계획을 논의하긴 했다. 문건을 실제 작성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였다”고 말했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제3국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쓰지 않는 방법이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30년 만에 만든 문건···1990년대 이후 실행 안 해
"'노상원 수첩’과 흡사 의무사 개입 정도 수사 필요”
정보사 내부에서는 문 전 사령관이 특수처와 이 대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후 의무사 및 국군수도병원 측과 긴밀히 소통했던 걸 넘어 실제 접촉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무사 측은 “사실이 아니고 진료를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복수의 정보사 관계자들은 노 전 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외부에서 자주 만났듯 문 전 사령관도 의무사 및 수도병원 고위 관계자와 은밀히 접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한 정보사 관계자는 “의무사와 문 전 사령관이 어떤 소통과 접촉이 있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수십년 간 시도하지 않았던 걸 작성하라고 지시했는데 접촉이 없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해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야 재조사
국방부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는 12·3 내란 관련자 10여명을 내란 특별수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이경호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난 6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방부 TF 내 편성된 조사분석실에서 국방부 자체감사 결과를 검토 중인 가운데 국방부 TF가 오늘 10여 명의 수사를 특별수사본부에 의뢰할 예정”이라고 했다.
TF가 수사 의뢰할 10여명은 내란 당시 합동참모본부 계엄상황실 구성과 정보사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출동 등과 관련된 역할을 했다고 이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지난 2024년 12월3일 김 전 장관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계엄상황실 설치를 명령했다.
정보사는 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무장한 대원들을 선관위로 출동시켰다. 정보사 대원들은 일시적으로 서버실을 점거했고,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빼앗기도 했다.
국방부는 관계자는 “특수본이 내란 특검에서 자료를 넘겨받아 수사하고 있다”며, 내부 헌법존중 TF를 통해 비상계엄 당시 정보사의 개입에 대해서도 “지난달부터 재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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