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조선 왕조와 현대 정치 그림자

수렴청정 정치와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의 권력

조선은 왕의 나라였고, 현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혈통과 신분의 권력은 선거와 헌법으로 대체됐지만,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까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에는 수렴청정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제도 밖에서 흐름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

수렴청정은 왕이 어리거나 통치가 어려울 때 왕비나 대비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정사를 대신 듣고 판단하던 정치 방식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세조의 부인이자 예종의 어머니, 성종의 할머니였던 정희왕후다. 그는 왕이 아니었지만, 왕조의 방향을 결정한 인물이었다.

막후 권력
정희왕후

현대 정치에서도 선출되지 않은 영향력은 권력의 경계를 미리 그린다. 왕은 사라졌지만, 왕을 설계하는 기술은 남아 있다. 필자는 지난 토요일 남양주 광릉에 있는 정희왕후의 능을 찾았다. 이 칼럼은 조선과 현대를 나란히 놓고, 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지를 살펴보려는 시도다.

조선의 권력은 ‘얼굴 없는 손’에서 움직였다= 조선 정치에서 왕은 절대적 존재처럼 기록되지만, 실제 권력은 왕을 둘러싼 여러 세력의 균형 속에서 작동했다. 대비와 외척, 대신과 공신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왕권의 방향을 조정했다. 이 구조의 가장 깊숙한 지점에 정희왕후가 있었다.

정희왕후는 단종을 제거하고 남편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든 후 세조 체제를 관리한 핵심 조정자였다. 단종의 폐위와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었지만,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왕조 안정을 위한 선택으로 정당화됐다. 그녀는 직접 칼을 들지 않았지만, 칼이 어디로 향할지를 알고 있었다.

이 같은 권력의 작동 방식은 예외적 경우가 아니었다. 조선은 정통성의 균열을 무력만으로 봉합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조율자를 통해 체제의 연속성을 관리했다. 그 결과 조선의 권력은 왕의 발언보다 설계자의 판단에서 더 깊게 움직였다.

현대 민주주의도 설계자를 필요로 한다= 흔히 현대의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은 언제나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누가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정책이 논의될 수 있는지는 선거 이전에 이미 정리된다. 투표는 선택의 순간이지만, 선택지 자체는 사전에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혈통과 신분의 권력
선거·헌법으로 대체

이 과정에서 현대판 ‘정희왕후형 권력’이 등장한다. 이들은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거나 공식 직책을 갖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공천 구조, 정치권 내부 네트워크, 여론 형성 과정과 집권 이후의 판단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개입은 드러나지 않지만, 정치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이들이 결정을 직접 내리지는 않는다. 대신 무엇이 가능한 선택이고, 무엇이 배제될 선택인지를 미리 정한다. 왕이 바뀌어도 설계자가 남아 있었던 조선처럼, 민주주의에서도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설계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얼굴은 교체되지만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조선의 단종, 현대의 정치적 퇴장= 조선에서 단종은 정치적 희생의 상징이다. 그는 무능하거나 중대한 실책을 저질러서 제거된 인물이 아니었다. 체제 안정에 불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됐다. 조선 사회는 한 개인의 생명과 도덕성보다 왕조의 지속과 권력의 안정을 우선시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최고 권력을 죽이지 않는다. 정치적 제거는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사법 리스크, 언론 보도, 핵심 배제, 내부 고립 등을 통해 권력은 서서히 무대에서 밀려난다. 생명은 보호되지만, 정치적 생존은 조용히 끊어진다.

얼굴만 바뀌고
구조는 그대로

방식만 달라졌을 뿐 구조는 유사하다. 차기 권력 구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지도자는 결국 배제된다. 정희왕후형 권력은 직접 나서지 않고, 그 과정이 불가피하고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책임은 제도와 당사자가 떠안고, 설계자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조·예종, 강한 권력과 공백의 정치= 세조는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군사력과 행정력을 장악하며 왕권을 비약적으로 강화했다. 그러나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했다는 태생적 한계는 그의 권력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했던 존재가 정희왕후였다. 그녀는 세조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권력이 다음 세대로 무리 없이 이어지도록 조율했다. 강한 권력일수록 이를 완충하고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필요했고, 정희왕후는 그 역할을 정확히 수행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이 공식은 반복된다. 대통령 권력이 강해질수록, 그 권력을 안정시키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진다. 강한 얼굴은 체제의 중심이 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조정자를 불러낸다.

세조 사후 즉위한 예종은 재위 14개월 만에 요절했다. 이 짧은 통치는 강한 권력이 설계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공백의 시간은 정희왕후로 하여금 수렴청정을 통해 권력의 단절을 관리하고, 성종 체제로 넘어가기 위한 완충 장치를 준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폭력성과
비정통성

성종과 정상화의 정치= 성종은 조선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평가받는다. 그는 제도를 정비하고 유교 정치의 틀을 완성했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정교하게 구성된 구조 위에서 진행됐고, 그 틀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않았다.

정희왕후는 손자인 성종을 통해 세조정권의 폭력성과 비정통성을 점진적으로 희석시켰다. 왕조는 성종의 통치를 거치며 다시 정상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성종의 정치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 위에서 이뤄진 관리된 전환이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서도 급진적 변화보다 안정적 개혁을 선택할 때, 설계자의 영향력은 가장 강해진다. 성종의 시대는 정희왕후의 정치가 제도 속으로 스며들며, 보이지 않는 권력과 조용히 분리된 시기였다.

국민과 유권자는 왜 설계자를 묵인하나= 정희왕후형 권력이 유지되는 이유는 권력자 개인의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 사회의 다수 역시 혼란보다 안정을 원했다. 급격한 변화는 불안과 공포를 동반했고, 그 대가를 먼저 치르는 것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국민은 불확실성보다 예측 가능성을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가 혼란스러울수록 보이지 않는 조정자에 대한 기대는 커진다. 안정은 늘 가장 설득력 있는 명분이 되어 민주주의의 이상보다 앞서기도 한다.

왕비 및 대비 수렴청정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 권력

이 권력은 위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묵인되고, 때로는 기대 속에서 유지된다. 정희왕후형 권력은 시민의 피로와 불안 위에서 조용히 자라나며 스스로를 필요악으로 정당화한다.

왜 제도는 이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가

민주주의 제도는 절차와 결과를 감시한다. 선거의 공정성이나 법 위반 여부는 따지지만, 의제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권력이 공식 무대에 오르기 전의 준비 단계는 제도의 시야 밖에 놓여 있다.

정희왕후형 권력은 바로 이 사각지대에서 작동한다. 이들은 결정 이전의 환경을 설계하며,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위치에 머문다. 영향력은 크지만 책임의 주체로 지목되지는 않는다.

조선이 정희왕후의 판단을 공식 기록에서 최소화했듯, 현대 민주주의 역시 이 권력을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는 권력은 감시되지 않고, 감시되지 않는 권력은 통제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반복해서 마주치는 구조적 한계다.

정희왕후는 인물 아닌 구조

정희왕후는 역사 속 인물이지만, 정희왕후형 권력은 구조로 살아남았다. 이는 특정 개인의 야심 문제가 아니라, 체제가 흔들릴 때마다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정치적 메커니즘이다.

민주주의는 왕을 제거했고 수렴청정이라는 제도도 폐기했다. 그러나 권력을 설계하는 기술까지 제거하지는 못했다. 제도가 정교해질수록 권력은 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동했고, 통치는 투명해진 듯 보이지만 실제 권력의 흐름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이재명
곁에는?

그래서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 통치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짜놓은 판 위에서 제한된 선택을 반복하고 있을 뿐인가. 민주주의는 왕을 없앴지만, 왕을 설계하는 자리는 끝내 비워두지 못했다.

정희왕후는 지금도 구조로 살아 있다. 아직 이재명 대통령 곁에는 그와 같은 권력이 뚜렷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나 어떤 정권이든 실패의 징후가 나타나는 순간, 설계자는 다시 호출된다. 그들은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대신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위치에서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조정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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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