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수십억 독점권 몰아주기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6.01.08 09:51:07
  • 호수 1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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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받고 10년 밀어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1억원 상당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용역업체 비오워크가 경찰 수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오워크와 농협유통이 10년 넘게 수십억원대 독점 계약을 유지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착 의혹으로 번졌다.

위탁계약서와 계약체결 총괄표, 국정감사 자료 등에 따르면, 단순 용역임에도 경쟁입찰이 장기간 배제됐고, 이 과정에서 ‘쪼개기 계약’과 ‘입찰 무력화’ 의심 정황이 드러났다. 농협중앙회가 2025년 집행한 수의계약 209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대다수는 2000만원 미만의 소액이거나 IT 보안·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등 대체가 어려운 전문 분야였다.

유착 의심

반면, 농협유통과 비오워크의 거래구조는 이와 달랐다. 비오워크는 2015년 최초 계약 당시 단 한 차례 제한경쟁입찰을 거친 뒤, 2016년부터 2025년 현재까지 주차 관리, 카트 운영, 미화 등 단순 인력 중심 용역을 사실상 단독 수행해 왔다. 경쟁입찰은 사라졌고, 계약은 매년 자동 연장에 가까운 형태로 이어졌다.

2025년 한 해 계약액은 약 39억6000만원으로 지난 10년간 연평균 계약 규모는 약 24억원에 달한다. 이는 농협중앙회의 수의계약 건당 평균 금액(약 3억원)의 8배를 넘는 수준이다. 단순 용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고액·장기 수의계약이다.

문제는 계약 방식이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용역 위탁 계약서’ 제4조는 계약 기간을 원칙적으로 1년으로 정하면서, 신규 계약체결 전까지 최대 3개월 범위 내에서만 연장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이는 입찰 공백을 막기 위한 예외 조항이다.

그러나 실제 계약체결표를 보면 이 조항은 예외가 아니라 상시 수단처럼 활용됐다. 2022년에는 8월부터 12월까지 한 차례, 2023년에는 16월, 7~12월 등 세 차례에 걸쳐 계약이 쪼개졌다. 이른바 ‘쪼개기 계약’은 2023년 12월을 끝으로 중단된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은 현 농협중앙회장이 선거를 앞두고 비오워크로부터 1억원 상당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제보자가 특정한 뇌물을 제공했다는 시점과 정확히 맞물린다. 전문가들은 연간 수십억원 규모의 계약을 짧은 기간으로 분절하면 이사회 의결, 외부 감사, 내부 통제 대상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계약서상 해지 요건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계약이 유지됐다는 점도 논란이다. 계약서 제18조는 허위 서류 제출, 계약 조건 위반, 또는 계속 업무 위탁이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사전 통지 절차를 거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농협유통은 비오워크와의 계약을 유지했다. 이는 국정감사 과정에서 비오워크 관계자가 강호동 회장에게 1억원을 건넸다는 의혹과 함께, “회장님은 지킬 게 많죠?”라는 협박성 문자가 공개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강 회장과 비오워크 수상한 거래
연간 40억 ‘계약 쪼개기’ 정황

해당 문자 이후 농협유통이 나라장터를 통해 추진하던 경쟁입찰이 돌연 취소된 정황도 확인됐다. 경쟁을 통한 가격 절감 가능성이 의도적으로 차단됐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정황은 단순한 도덕성 논란을 넘어 복수의 법적 쟁점으로 확장된다. 우선 금품수수 의혹이 사실로 인정될 경우, 농협중앙회장이 법률상 공무원은 아니더라도 공공성을 가진 특수법인 임원으로서 직무 관련 금품을 수수했다는 점에서 뇌물수수 또는 제3자 뇌물 제공죄 성립 가능성이 거론된다.

장기간 독점 계약 유지라는 ‘직무상 편의 제공’이 대가관계로 인정될 경우 형사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또 경쟁입찰을 배제한 채 고액 계약을 반복 유지해 농협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면, 계약을 승인·유지한 농협유통 및 상급 기관 관계자들은 업무상 배임 책임을 질 수 있다. 특히 경쟁입찰이 이뤄졌다면 절감 가능했던 비용 규모가 수십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손해액 역시 쟁점이 된다.

협박성 문자 이후 입찰이 취소된 정황은 입찰 방해 또는 업무방해 혐의로도 연결될 수 있다. 계약을 잘게 쪼개 내부 통제와 감사의 문턱을 피해간 구조 역시 위법 또는 부당 행정 여부가 감사 대상이 된다. 더 나아가 계약서상 해지 요건이 충족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계약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과정은 직무유기 또는 중대한 관리·감독 소홀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

정보 비공개와 자료 폐기 문제도 남는다. 비오워크 계약 총괄표 하단에는 “이전 기업 자료는 폐기되어 제출 불가”라는 문구가 명시돼있다. 이는 비오워크 진입 당시 단가의 적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자료가 사라졌음을 의미하며, 과거와 현재 계약 조건을 비교·검증할 수 있는 통로를 원천 차단한다.

고의성이 인정될 경우 감사 방해 또는 증거인멸 논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농협유통은 ‘입찰 준비 시간 부족’을 이유로 내년에도 비오워크와 한시적 수의계약 연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0년간 경쟁을 배제해 온 구조를 감안하면, 이제 와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유착 구조가 고착화됐음을 자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농협중앙회는 최근 수의계약 전면 금지를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연장 조항이 상시 계약 수단으로 활용되고, 해지 요건이 충족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계약이 유지되는 현실은 이 혁신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경쟁이 배제된 채 지급된 수백억원의 용역비는 농협 예산의 누수로 이어지고, 그 부담은 농민 조합원에게 돌아간다. 1억원 뇌물 의혹이라는 불씨 뒤에는, 경쟁입찰이 이뤄졌다면 절감할 수 있었을 수십억원의 ‘보이지 않는 자금 유출’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따라 감사원 감사 청구 필요성도 제기된다. 감사 대상은 농협중앙회 및 농협유통이며, 감사 쟁점은 2015년 이후 비오워크와 체결한 모든 용역 계약의 계약 방식과 내부 결재 과정, 쪼개기 계약의 적법성, 입찰 취소 경위, 뇌물 의혹 제기 이후 계약 유지 결정 과정, 과거 단가 비교 자료 폐기 경위, 수의계약으로 인한 재정 손실 규모 산정 등이다.

단순 용역인데 경쟁입찰 배제
경찰 수사 진행 중…결과 주목

이번 사안은 단순 계약 관행을 넘어 부패 가능성과 구조적 유착, 내부 통제 붕괴 여부를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평가다.

특히 개인 비리 의혹을 넘어, 농협이라는 거대 협동조합 조직의 계약 시스템과 책임 구조 전반을 다시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그 비용은 이미 농민 조합원들이 치르고 있다는 점에서, 진상규명과 제도 개선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강 회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자신을 둘러싼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1억원의 불법 선거자금 수수, 20억원대 핸드크림 리베이트 의혹까지 잇따라 터져 나왔다. NH농협생명은 지역 농·축협의 보험 판매 실적을 높이기 위해 판촉용으로 핸드크림 3종 세트를 세트당 2만원(생산 단가 1만1000원)의 가격으로 모두 10만개(20억원 상당)를 수의계약으로 지난해 12월 발주했다.

하지만 납품기한 내 실제 보급량은 절반인 5만개에 불과했고, 실질 납품업체는 현재 대기 발령된 농협생명 3급 고위 직원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전남 완도 소재 피부숍으로 밝혀졌다. 단가는 세트당 2만원으로 총액은 20억원에 달했다. 계약 규모가 큰 만큼 당시 농협생명 부사장이었던 박병희 현 대표까지 결재 라인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 농협생명에 납품된 핸드크림은 10억원어치(5만개)에 불과해 나머지 10억원을 횡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농협금융지주가 특별감사에 나선 후에야 뒤늦게 나머지 5만개가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생명 측은 계절적 요인 등을 고려해 분할해 납품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협금융 내부에선 이 석연치 않은 계약이 리베이트를 위한 시도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농협 관계자는 “단순 직원 개인의 일탈로 보이지 않는다”며 “중간에 빼돌리려 했던 돈이 농협 내부에 만연해 있는 리베이트 자금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업계약 재조명

농협생명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금융감독원이 농협중앙회를 감사한 이후 농협생명도 현재 감사 중인 상황이라서 세부적인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핸드크림이 기한 내 납품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타 매체와 인터뷰에서 “당시 구매한 핸드크림은 해당 기업 제품이 맞다”며 “시기의 문제”라고 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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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