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으면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하고, 운동을 시작하며, 관계를 정리하고 인생 2막을 열겠다고 다짐한다. 새해 첫날의 결심은 언제나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시작이 실제 삶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왜 매년 같은 출발선에서 같은 선언을 반복하는가.
오래된 격언 중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마음만 먹고 시작하면 절반은 이미 해낸 것이라는 의미다. 이 문장은 우리를 위로하고, 망설임을 밀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26년의 문턱에서 이 격언은 다시 질문받을 필요가 있다. 정말 시작은 반인가? 아니면 우리는 ‘시작’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주부 K씨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보자. K씨는 런닝머신 옆에 ‘시작이 반’이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30일 다이어트 계획에 들어갔다. 작심삼일은 넘겼고, 일주일도 버텼으며 열흘도 채웠다. 그러나 13일째 되는 날, 체중계 위의 숫자는 기대만큼 줄지 않았다. 실망이 밀려왔고, “이 정도면 충분히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 반이다’를 영어로 옮기면 “Well begun is half done”이다. 잘 시작한 것이 곧 절반을 해낸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다. 아무 시작이나 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잘 시작한 시작만이 반이 된다는 조건이다.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방향이 있고, 구조가 있으며,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 시작만이 ‘절반’이라는 자격을 얻는다.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자. 수학에는 명제와 대우라는 개념이 있다. “A이면 B다”라는 명제가 참이면, 그 대우인 “B가 아니면 A도 아니다” 역시 반드시 참이다. 이를 일상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다. 어떤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원인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논리를 ‘시작이 반’에 적용해 보자. “시작하면 반”이 참이라면, 그 대우는 “반에 이르지 못했다면, 애초 그것은 시작이 아니었다”가 된다. 이 대우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가 외면해 온 진실일지도 모른다.
이 관점에서 보면, K씨는 반을 해낸 것이 아니다. 15일을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아직 시작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음을 뜻한다. 시작은 선언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구간이다. 절반을 넘어서야 출발선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K씨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다짐이 아니라 문구의 교체다. 런닝머신 옆의 “시작이 반”을 떼어내고, “반을 지나야 비로소 시작”으로 바꿔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를 주지 않는다. 대신 긴장을 준다. 그러나 바로 그 긴장이 다시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목표는 그대로지만, 출발선의 위치가 달라진 것이다.
시작에 대한 착각은 개인의 다이어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2026년을 맞는 한국 사회 전체가 비슷한 착각 속에 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개혁을 시작했고, 세대 전환을 시작했으며, 구조 개편과 책임 강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절반을 통과한 개혁이 무엇이냐’고 묻는 순간, 대답은 흐려진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선언은 시작이 아니다. 법안을 발의했다고 시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가 체감하는 변화가 일정 구간을 넘어서지 못했다면, 그 정책은 아직 시작 전이다. 우리는 시작을 너무 쉽게 인정해 왔고, 그 관대함 속에서 수많은 과제가 출발선에서 멈춰 섰다.
세대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흔히 50대를 인생의 하강 국면처럼 말하지만, 100세 인생을 기준으로 보면 50대는 정확히 중간 지점이다. 수학적으로도 이 시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의 조건을 갖춘 시기다. 경험은 축적됐고, 실패의 패턴을 알며, 감정의 과잉도 한 차례 통과했다. 이 절반을 지나왔기에, 이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인생도 있다.
그래서 2026년의 시작은 다짐이 아니라 출발선의 재설정이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시작했다고 믿어온 것들 가운데, 과연 무엇이 절반을 넘었는가. 그리고 절반을 넘지 못했다면, 나는 그것을 정말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시작은 용기가 아니라 구조다. 구조 없는 결심은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변화를 만들지는 못한다. 절반을 통과할 설계가 없는 시작은 시작이 아니다.
2026년 출발선 앞에 선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안심의 말 대신, 이렇게 말해보자. “반을 넘어서야 비로소 시작이다.” 이 말은 불친절하지만 정직하다. 그리고 정직한 생각은 다시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