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론스타 승소 의미와 2022년 논쟁이 남긴 교훈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 ISDS(국제투자분쟁) 판정 취소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18일 최종 승소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날 “오늘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가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선고했다”며 2022년 중재 판정에서 인정됐던 2억1650만달러와 이자 지급 의무가 모두 소멸했다고 발표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 사건은 특정 정부의 공로나 책임으로 환원될 수 없다”며 대통령 부재 국면에서도 국제법무국 등 실무진이 이어온 분투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건의 출발점부터 돌아보면 론스타 사태는 어느 한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정부의 판단과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되며 만들어진 복합적 결과였다.

이 사건은 김대중정부가 IMF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순간 시작됐다.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산업자본 규제 미정비 속에서 이 매각은 논란의 씨앗이 됐다.

뒤이어 노무현정부에서는 BIS 비율 조작 의혹, 헐값 매각 논란, 산업자본 적격성 논란이 폭발했고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 문제까지 발생해 향후 ISDS의 쟁점이 되는 ‘정치·행정 개입 논란’이 만들어졌다.


이명박정부는 2012년 외환은행의 하나금융 매각을 승인했고, 그 직후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세금 부과 등을 근거로 46억달러 손해를 봤다며 ISDS를 제기했다.

이후 박근혜정부는 광범위한 국제 법리 공방을 수행하면서 장기전에 본격적으로 대응했고, 문재인정부는 2022년 일부 패소 판정이 나오자 이를 “여전히 부당하다”고 판단해 즉시 취소 절차를 신청했다.

이어 윤석열정부는 취소 신청의 법리적 완성도를 보완하며 대응팀을 재정비했고, 마지막으로 이재명정부에서 2025년 ICSID 취소위원회가 배상금 전액 취소 결정을 내리며 분쟁이 최종 마무리됐다.

이렇게 보면 론스타 사태는 한 정부가 잘못해서 생긴 사건이 아니라, 여러 정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판단한 결과가 국제분쟁으로 누적된 매우 복합적인 국가 시스템의 문제였다.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2012년 매각하며 약 4조7000억원을 챙겨나간 과정은 처음부터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해도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남겼다.

감사원이 2006년 “자격 없는 투자자가 은행을 차지했다”고 발표하면서 금융감독의 공백과 비일관성이 드러났고, 규제의 모호성은 시장 신뢰를 흔드는 ‘헐값 매각’ 프레임으로 확산됐다.

정부와 감독 당국의 승인 절차가 정치 상황·여론·시장 변수에 따라 흔들렸다는 의혹도 이어졌다. 결국 이 같은 불명확성이 결국 ISDS의 단초가 됐다.


10년 넘게 이어진 ISDS 과정에서 한국은 ‘행정 결정이 해외 투자자의 이익을 훼손했는지’를 두고 방어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국제분쟁 대응체계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2022년 중재판정부가 론스타 요구액 중 4.6%만 인정했을 때조차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론스타는 “배상액이 너무 적다”고 불복했고, 한국 정부는 피해 산정 방식과 세금 판단이 여전히 부당하다고 보며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이때부터 국제중재는 국내 정치의 격전지로 번졌고, 한동훈 장관의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는 판단을 두고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국익을 판단하는 문제조차 정치 논리로 재단되며 소송 전략이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ICSID 취소위원회는 2023년 11월부터 심리에 착수해 절차를 2025년 9월에 마무리했고, 최종적으로 한국 정부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였다. 배상금은 전액 취소됐고, 대한민국은 법적 책임을 면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공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고, 여권은 국익을 지킨 승리라 평가한 반면 야권은 “정치적 자화자찬”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번 판정의 본질은 정치적 공방보다 훨씬 더 깊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한국이 왜 22년 동안 이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구조적 문제의식이다.

승소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행정 결정이 국제무대에서 법적 책임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는 사실, 즉 ‘최악의 결과는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론스타 사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국 금융감독 체계의 일관성 부족, 외자 규제의 모호성,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그리고 국제중재 대응의 전문성 미비를 반복해서 드러냈다.

특히 정치권이 ISDS 전략을 두고 극단적으로 갈라섰던 장면은 국가 소송이 정쟁의 도구가 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승소의 정치적 해석이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재정비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드러났던 감독 공백과 자격 판단의 불명확성을 바로잡고, 외자 투자·매각 과정에 정치 개입 논란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투명성을 강화하며, ISDS 대응 체계를 제도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승소가 끝이 아니라, 한국 시스템을 다시 설계할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22년 만에 끝난 론스타 분쟁은 한국이 국제분쟁에서 승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고, 동시에 우리 금융·행정 시스템의 그늘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법적 승리는 우리를 안심시키지만, 제도적 교훈은 우리를 다시 긴장하게 만든다.

한국은 이번에 이겼다. 그러나 다음에도 이기려면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 론스타 사태는 끝났지만, 제도를 고쳐야 할 숙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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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