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①연재를 시작하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11.17 04:02:41
  • 호수 1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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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몽키하우스’를 찾아가는 날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래도 소요산 등반객은 꽤 많은 편이었다. 허나 그들 중에 옛 양공주 성병환자 수용소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겨우, 어느 모시옷을 정갈히 갖춰 입은 할머니가 가리켜 주는 곳으로 올라갔다.

언덕 하얀 집

거긴 격주로 각설이 패들이 공연하는 데라는데, 공일인지 몇몇 남녀가 탁자 앞에 앉아 토론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몽키하우스가 어디죠?”

“우린 원숭이 안 키워요.”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르기도 했고…이 부근이라던데….”

“글쎄요.”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백색이나 회색 건물은 없었다. 나뭇잎 사이로 높다랗고 거무칙칙한 벽의 뒷면만 보일 뿐이었다.

잡초를 헤치며 슬슬 돌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옆면과 정면이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2층짜리 건물이 나타났다. 1970년대엔 흰색이었다는데 언젠가 연노란 색으로 덧칠한 듯싶었다.

페인트가 벗겨져 희끄무레한 본디 색이 드러나고 군데군데 세월의 곰팡이가 거무스레 낀 모양이었는데, 뒷벽이 왜 그렇게 검은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페인트나 곰팡이라기보다 검은 비닐막을 쳐 놓은 것 같기도 했으나, 대체 왜 그랬을지 의문이 일었다.

건물 앞의 공터엔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전체적으로 하나의 폐허였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벽면에 출입금지 경고문이 동두천 경찰서장 명의로 붙어 있었다. 일단 들어섰다. 폐허의 공간에서나마 과거의 진실을 캐내야 했기에 현재의 경고를 잠시 무시했다.

하지만 70년대 경찰관의 엄포와 달리 현시대 경관의 경고는 분명 일리가 있었다. 어둑스레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내 스스로 위험 지역임을 느꼈던 것이다.

건물 일부가 언제 어디서 무너질지 모를 만큼 낡았고 실제로 천정의 합판이 찢겨진 채 간혹 무언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발밑에선 계속 유리조각 밟히는 소리가 났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풀썩풀썩 먼지가 일었다.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건물 내부는,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수십 년 전에 숨진 거대한 괴물체의 내장 속 같았다.

네티즌이 올려놓은 동영상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팀이 찍어 방송한 화면을 이미 본 상태였으나 실제로 현장을 둘러보니 머리끝이 쭈뼛 설 지경이었다.

우선 밖에서 보기와 달리 방(room)이 엄청 많았다.

큰방, 작은방, 구석방…통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줄느런히 늘어섰다. 그 속엔 폐물로 변해 버린 군용 담요, 핸드백, 화장품통, 찢어진 원피스, 깨어진 거울 따위가 먼지를 덮어쓴 채 나뒹굴어 있었다.

폐쇄되기 전까지 수용돼있었을 여자들의 모습과 삶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활명수 병과 잡지책이 보이길래 집어내 오물을 털고 살펴보았더니, 상표가 거의 지워졌거나 책장들이 완전히 들러붙은 상태라 펼쳐서 어떤 의미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시대를 착각하면 안 돼. 이 속엔 아마 70년대, 80년대, 90년대가 뒤섞어 있을 테니까….’ 생각하며 폭 좁은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갔다.

귀신이라도 나올 듯이 음산한 느낌이었다. 죄 아닌 죄로 갇힌 몸일지언정 여자들의 숙소라 그런지 황폐해진 수많은 방들엔 화장품과 거울의 누추한 잔해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거울을 닦아서 혼령의 모습이나마 한번 새겨 볼까 하다가 옥상으로 올랐다.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잔뜩 흐리긴 했지만, 그곳은 쇠창살로 인해 갈기갈기 찢기지 않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유를 향해 날아가려던 무수한 여인들이 떨어져 죽거나 불구 신세가 된 곳이기도 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볼 땐 좀 긴가민가 했는데, 실제로 가녘으로 가서 내려다보니 일반 건물과 달리 까마득이 높아 만약 뛰어내린다면 즉사 또는 중상을 입고 말 듯싶었다.

모시옷 정갈히 입은 할머니
가리켜 주는 곳으로 가보니…

‘나라 힘이 약해…… 어쩔 도리 없는 상황에서, 벼랑을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몸을 버린 경우도 있을 텐데…그녀들을 일률적으로 양갈보니 똥치니 화냥년으로 낙인 찍는 건 비겁한 짓이 아닐까? 여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채 왕을 닮은 친일파 친중파 친미파 놈들은 희희낙락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렸으면서….’

바람이 불자 저쪽 멀리 허연 감시초소를 둘러선 나무의 푸른 잎새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데 그중에서 좀 외떨어진 한 나무의 잎새는 유난히 파르르 떨어댔다. 무엇엔가 잔뜩 겁먹은 듯……

몸통과 이파리에 납빛이 감도는 게 은사시나무가 아닐지 짐작해 보았다.

을씨년스런 분위기 때문인지, 문득 그건 오래 전 이곳에 갇혀 고통당하거나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겁먹은 혼령이 스며든 게 아닌가 싶어 애처로웠다.

그리고 공터 여기저기 피어나 부슬비에 젖어 떠는 꽃들은 귀신의 원망이나 소망인 양 느껴져 한참 바라보았다.

‘아, 왜 이렇게 방치해 두는 걸까? 건물을 헐어내 버리기보다 잘 활용해 기념관을 만들고 작은 위령비라도 세운다면 어떨까.

하기야 신성한 한미혈맹을 위하여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해 있는 동안엔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렇지만 과거의 치부라 할지라도 모른 척하기보다 진실되게 기억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지 않을까?

의존과 종속 관계를 끝내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존중할 때 참다운 한미동맹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지 않을까 싶은걸. 우리 스스로 자존감을 버리고 비굴하게 굴어서 그렇지, 성숙한 인간답게 당당해진다면 미국 사람들도 오히려 멋진 친구라며 존중해 줄 텐데……

다른 분야에서는 그런 저력을 많이 갖췄는데, 유독 국방 부문에선 왜 그리 미숙한 꺼병이처럼 의타심을 못 버리고 자꾸 어리광이나 부리려는 사람이 많은지 몰라….’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본 후 건물 밖으로 나와, 혼령인 듯 떨고 있는 이름 모를 하얀 꽃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보지가 내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할머니의 구슬픈 절규가 떠오른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상흔 그리고 수치심은 그녀들만의 것이 아니라 온 민족의 것이다.

동두천, 평택 등을 비롯한 미군 주둔지만 기지촌이 아니라 한국 땅 전체가 그런 상황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한 이후로 이른바 양공주, 양색시, 양갈보 등으로 불린 ‘미군 위안부’ 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품은 무척 많았다. 대부분 미군 부대 주변의 클럽을 무대로 술과 춤과 몸을 파는 여자들의 얘기였다.

물론 성병치료소를 단편적으로 언급한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동두천 몽키하우스를 본격적으로 탐사해 다룬 장편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나라가 약해…

이 작품은 그 모든 이전 문제작들의 도움을 입어 씌어졌다.

그리고 고통스런 옛 기억을 떠올려 어렵사리 증언해 주신 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더불어, 그분들의 애달픈 삶을 살펴 정리하고 여생을 조금이나마 따뜻이 보살피려 애쓰는 의정부의 두레방, 동두천의 새움터, 평택의 햇살사회복지회의 도움에도 감사드린다.


[김영권 작가는?]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비평> 원고 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대통령의 뒷모습> <선감도: 사라진 선감학원의 비극> <죄의 빙점 형제복지원> <자물쇠 속의 아이들: 어린 북파공작원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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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