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3일,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중지하는 이른바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의 추진을 전격 철회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종료 이후 정국의 초점이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로 급격히 쏠린 상황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청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간담회를 통해 이른바 ‘국정안정법’(재판중지법)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지난 6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뒤 본회의에 계류된 상태였다. 당 지도부의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본회의 상정이 가능했지만, 이날 결정으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박 수석대변인은 추진 중단 배경에 대해 “관세 협상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 홍보 등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안 처리를 미루는 게 아니라 아예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렇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의 관련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엔 “당 지도부를 통해 (대통령실과) 논의했고, 대통령실과 조율을 거친 상황”이라며 이번 결정에 대통령실의 의중도 반영됐음을 시사했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철회 결정이 APEC 정상회의 종료 직후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정국의 핵심 이슈로 부상한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정 성과를 홍보해야 할 시점에 대통령의 재판 문제가 다시 여론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것을 여당 지도부가 부담스럽게 여겼다는 해석이다.
더욱이 법안의 명칭을 ‘국정안정법’ 등으로 바꿔 프레임 전환을 시도한 것 자체가 오히려 ‘위인설법(특정 개인을 위한 입법)’ 논란을 부추기며 여론의 싸늘한 반응을 초래했고, 이 역시 철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를 부각시키려던 시점에, 사법 이슈를 다시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건 명백한 악수였다”며 “여당 지도부가 여론 흐름을 뒤늦게라도 감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은 불과 하루 전인 2일,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연루 민간업자들의 1심 유죄 선고에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며 공세를 강화하자, 곧바로 ‘재판중지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시 박 수석대변인은 기자간담회에서 “재판중지법을 ‘국정안정법’ ‘국정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으로 호칭하겠다”며 “국정안정법 논의가 지도부 차원으로 끌어올려질 가능성과, 이달 말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모두 열려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같은 민주당의 입장은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 대장동 개발 비리 민간업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결과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공사 설립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2014년 재선에 기여하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술값을 대신 내주는 등 유착 관계를 형성해 사실상 사업시행자로 내정되는 특혜를 받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로 인해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향하게 된 것이다.
과거 이 대통령은 대장동 개발사업을 자신의 업적이라고 밝히며 “이 설계는 제가 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법원이 대장동 비리가 성남시 수뇌부 승인하에 이뤄졌다고 인정했다면, 수뇌부는 성남시장이던 이재명”이라며 재판 재개를 강력히 요구해 왔다.
재판중지법은 헌법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기반으로 형사소송법에 대통령 재임 시 재판이 중지된다는 조항을 명문화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헌법 84조는 기소만 금지할 뿐 진행 중인 재판까지 멈추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석하며 ‘위헌적 발상’이라고 강력히 반발해 왔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재판중지법 추진에 대한 자조 섞인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굳이 대장동 1심 결과 직후 이 카드를 꺼내 APEC 성과를 희석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결정이 대통령실과의 조율 결과인 만큼, 향후 재판 진행 상황이나 검찰 대응 기조에 따라 지도부가 다시 방향을 틀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통령실 역시 국정 안정 기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법안 논의의 불씨를 남겨둘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해당 법안이 불필요하다는 게 대통령실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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