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팝 국가대표 박진영

한국 대중문화 전 세계로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K팝의 개척자였던 박진영이 이제 나랏일까지 맡게 됐다. 세계 곳곳에서 높아지는 K팝의 인기에 정부가 직접 노를 젓기 시작했고, 노를 저을 뱃사공으로는 박진영을 지목했다. 수많은 명곡과 아이돌을 만들어낸 경험으로 이제는 K팝 국가대표로서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 무대에 나서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되는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에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를 임명했다. 함께 위원장을 맡게 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나란히, 한국을 대표하는 인사로서 대중문화 정책을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 진출
선두주자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한국 대중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국가적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논의하는 정책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통령실은 이 조직이 국제 문화 교류 확대와 공동 프로젝트 발굴 등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한류 콘텐츠가 외교·경제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위원회를 신설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임명 배경을 직접 설명하며 “박진영은 가수이자 프로듀서로서 K팝 세계화를 이끌어온 주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K팝을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박진영의 경험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전 세계인이 한국 대중문화를 더 많이 즐기고, 한국 역시 외국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인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대중문화의 국제적 위상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들어 음악과 드라마뿐만 아니라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한국산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을 거론하며,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는 “한국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에 이번 기구 신설과 인선이 화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이에 발맞춰 지난 5일, ‘대중문화교류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령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해당 제정령안은 음악·드라마·영화·게임을 대중문화 범주에 포함시키고, 위원회가 관련 정책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다루도록 규정했다. 즉, 이번 인선은 입법 준비와 동시에 이뤄진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문체부는 민관 협업 체계를 강조하며, 위원회가 대중문화 확산뿐 아니라 게임과 같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분야에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책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원회 구성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위원장은 대통령 지명 인사와 문체부 장관이 공동으로 맡고, 부위원장은 문체부 차관과 민간 위원 중 1명이 선임될 예정이다. 위원 수는 최대 45명 이내로 꾸려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대통령실은 이런 구조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정책 설계와 집행의 현실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진영은 과거 이재명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 후보군으로 거론된 바 있다.

장관 후보로는 최종 낙점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대통령 직속 기구의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정책 현장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 대통령실은 박진영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실무 경험이 위원회 운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장 임명
현장 무대에서 국정으로…새로운 도전

박진영이 K팝을 널리 알릴 국가대표로 선정된 건 상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1971년 12월13일 서울 성동구 중곡동에서 태어난 박진영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에서 2년여간 생활했다. 당시 그는 현지 흑인들과 어울리며 춤 실력을 키웠고, 마이클 잭슨과 스티비 원더 같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매료됐다.

귀국 후에도 박진영은 음악에 몰두했으며, 부모와의 약속 끝에 학업과 춤을 병행했다. 학교 성적은 우수했고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했지만, 결국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가수로 진로를 결정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94년 솔로 데뷔였다. 정규 1집 <BLUE CITY>의 타이틀곡 ‘날 떠나지마’는 광고 삽입곡으로 먼저 알려지며 입소문을 탔다. 당시 무대에서 그는 비닐 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 파격적인 패션으로 시선을 끌었다.

남자 가수가 섹시 콘셉트를 내세운 것은 당시 가요계에서 신선한 시도였고, 화제성을 이끌어냈다. 뿐만 아니라 박진영의 무대 장악력은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어 발표한 곡 ‘너의 뒤에서’ ‘청혼가’ 등은 연이어 인기를 얻으며 박진영을 1990년대 대표 솔로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러다 1997년 발표한 ‘그녀는 예뻤다’가 히트를 치며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4집과 5집에서도 ‘허니’ ‘Kiss Me’ 같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97년, 박진영은 기획사 태영기획을 설립하며 프로듀서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01년 회사명을 바꿨는데 그게 바로 현재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JYP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이다. 박진영은 프로듀서로서 다수의 아티스트를 발굴 해 음악시장에 내놨다.

2000년대 초반, god는 국민 그룹으로 불릴 만큼 큰 성공을 거뒀고, 박지윤은 ‘성인식’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또 다른 대표적인 성과는 가수 ‘비(정지훈)’이다. 박진영이 직접 트레이닝한 비는 2000년대 초반 국내외에서 아시아 스타로 성장했다.

2007년 데뷔한 걸그룹 원더걸스는 박진영 프로듀싱의 성공작으로 꼽힌다. ‘Tell Me’는 후크송과 UCC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전국적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어 한국 최초로 ‘So Hot’이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하면서 ‘Nobody’까지 연속 히트를 기록했다.

식지 않은
음악 열정

원더걸스는 K팝 걸그룹 붐의 시작점이 됐으며, 박진영은 아이돌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기 2PM과 2AM이 차례로 데뷔했다. 특히 2PM은 남성적인 ‘짐승돌’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주목받으며 정상급 보이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들 그룹의 연이은 성공은 JYP를 SM, YG와 함께 ‘3대 기획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다만 미국 시장 진출 시도 과정에서 원더걸스가 국내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박진영은 프로듀서로서 활약하면서도 가수 활동을 놓지 않았다.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무대 활동을 멈추지 않는 점은 박진영의 독특한 특징이다. 가수가 세월이 흐른 뒤 프로듀서로 전환하는 경우는 많지만, 많은 나이에도 가수 활동을 지속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박진영은 춤추고 노래하는 기획사 수장으로, 가수와 프로듀서, 기업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2010년대에도 박진영은 ‘어머님이 누구니’ 같은 히트 싱글을 발표하며 아티스트로서 여전한 능력치를 보여줬다.

동시에 제작자로서는 걸그룹 TWICE와 ITZY를 성공적으로 데뷔시켰다. TWICE는 2015년 오디션 프로그램 <SIXTEEN>을 통해 결성됐고, 데뷔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박진영은 ‘SIGNAL’ ‘What is Love?’ 등 주요 곡에 직접 참여했으며, 일본 앨범까지 프로듀싱하며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후 TWICE는 JYP의 간판 걸그룹으로 성장했다. 다음으로 데뷔한 ITZY 역시 ‘달라달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르고 ‘ICY’ ‘마.피.아 In the morning’ 등 히트곡을 내며 4세대 걸그룹으로 주목받았다.

2020년대 들어서도 박진영은 꾸준히 본인 싱글을 발표했다. 선미와 협업한 ‘When We Disco’, 비와 함께한 ‘나로 바꾸자’, 개코가 피처링한 ‘Groove Back’, 2023년의 ‘Changed Man’ 등 지속적으로 앨범을 냈다. 지난해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콘서트와 방송 대기획에 참여했고, 2025년에는 ITZY 예지의 솔로 앨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JYP엔터테인먼트를 국내 3대 기획사 중 하나로 만들어놓은 만큼 박진영은 회사 지분 15.67%를 보유한 대주주다. 현재는 사내 등기이사로서 제작과 운영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공식 직함은 CCO(최고창의책임자)이자 대표 프로듀서로, 아티스트 론칭과 주요 프로젝트의 최종 판단을 맡는다. 또 JYP퍼블리싱 공동대표이사로서 퍼블리싱 사업에도 관여하며, 회사의 글로벌 음악 비즈니스 확장에 직접 참여한다.

박진영은 가수 활동과 프로듀싱 능력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항상 좋은 평가만 받아왔던 것은 아니다. 박진영은 성공만큼이나 무수한 비판도 받아왔다. 프로듀서로서 거론됐던 비판은 자신이 키운 모든 아이돌 그룹을 ‘박진영화’시킨다는 점이다. 소속 가수들에게 본인의 창법과 음악적 색을 강하게 입힌다는 것이다.

2AM 조권은 “원하는 창법이 나올 때까지 10시간 넘게 녹음을 반복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보컬 훈련 과정에서 본인의 방식을 강요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진영이 항상 강조하는 유명한 창법은 바로 ‘공기 반, 소리 반’이다.

인성은
‘JYP’

성악적 기준에서 보면 성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고수하는 발성법이다.

홍보 부분에 있어서도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JYP는 2010년대 초반까지 과도한 홍보로 비판받았다. 이후에는 오히려 소극적인 홍보로 선회했는데, 트와이스나 스트레이 키즈의 해외 성과조차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회사가 스스로 성과를 깎아내린다”는 불만이 팬덤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진영은 이 같은 논란과 비판에도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박진영은 평소 바른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데, 자기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기 관리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성으로, 특히 본인뿐만 아니라 연습생들에게 인성교육까지 시킬 정도로 진심이다.

연습생들에게 성실함과 긍정적 태도를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입이 닳도록 말했고, 기본 예절까지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여러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실력보다 인성이 우선’이라는 기준을 내세웠던 일화도 있다.

물론 이후 일부 멤버들의 과거 논란이 불거지며 ‘위선적’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타 소속사의 연예인들에 비하면 인성 문제로 논란을 일으키는 멤버가 현저히 적다.

박진영은 자신의 소속사 멤버들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점도 특별하다. 계약 종료 이후에도 멤버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냈다. 실제로 원더걸스 멤버들의 결혼과 이적을 축하했고, 비와는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할 만큼 오랜 우정을 이어왔다.

god 멤버들과의 교류도 지속하고 있다. 다른 기획사들이 계약 해지 이후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심지어는 연습생들에게 JYP 구내식당의 모든 음식을 유기농으로 바꾸고 건강식으로 제공하기도 했으며, 퇴사한 연습생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타사 이적을 도울 정도였다. 대규모 연습생을 보유한 기획사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대형 소속사들은 돈에 관련한 논란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은 편인데, 박진영은 투명한 세금 납부로 유명하다. 타 소속사가 탈세 문제로 수십억원대 추징금 처분을 받은 것과 달리, JYP는 선납을 통해 오히려 환급을 받으면서 좋은 기업 이미지를 굳혔다.

“좋은 기회 얻도록 노력”
실효적 제도 지원 약속

국세청이 오히려 절세 방법을 알려줬다는 일화는 “세무 처리만큼은 깔끔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박진영이 좋은 이미지를 갖추는 데는 꾸준한 기부 활동을 이어왔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2022년 삼성서울병원과 월드비전에 각각 5억원씩, 2023년에는 국내 주요 병원 다섯 곳에 각 2억원씩을 기부했다.

지난해에도 지역 거점 병원 다섯 곳에 총 1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누적 기부액은 수십억원에 이르며, 대부분 난치병 아동 치료비와 저소득층 지원에 사용됐다. 이렇게 사회를 위한 기여를 많이한 점도 대중문화교류위원장에 선정된 이유에 포함된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 역시 박진영의 합류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가진 여러 장점 중 하나가 문화 역량”이라며 “이를 산업으로 발전시켜 국민들이 먹고 살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진영은 그 측면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가”라며, “대중문화교류위원회는 문화의 산업화와 글로벌 진출에 주력할 것이고 박 위원장은 꽤 많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진영이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자마자 JYP엔터테인먼트의 주가도 상승했다.

지난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JYP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3% 이상 상승하며 7만7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전 장외시장에서는 주가가 7% 넘게 치솟아 8만900원에 오르기도 했다. 장중 한때 8만1400원까지 거래되기도 했다.

박진영은 이번 임명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 일을 맡는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로서는 여러 면에서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 K팝이 너무나도 특별한 기회를 맞이했고 이 기회를 꼭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에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도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잘 정리해 실효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후배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K팝이 한 단계 더 도약해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을 넘어 세계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3년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음반사에 홍보자료를 돌릴 때, 2009년 원더걸스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 진입했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내 꿈은 같다. K팝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글의 말미에는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많은 고민 끝에 시작하는 일이니 조언과 응원을 부탁드린다”며 “이 일을 함께 맡아주신 최휘영 장관님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막중한 임무
세계화 다짐

이제 남은 과제는 위원회가 실제로 어떤 제도적 지원을 마련하고, K팝과 한국 대중문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박진영의 임명 소식에 네티즌들은 “K팝 국가대표로서 이만한 사람이 없다”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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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