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정부가 들어선 이후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첫 번째 전당대회에서 충청권 출신이 모두 당권을 차지했다. 충남 금산 출신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충남 보령 출신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4선의 정 대표는 운동권 출신으로 87 민주화 항쟁 당시 대학교 학생회장 출신도, 전대협 의장 출신도 아닌데, 미국 대사관저 점거 투옥 경력을 발판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 마포구을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재선의 장동혁 대표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합격한 판사 출신으로 2022년 5월 김태흠 전 의원의 충남도지사 출마로 공석이 된 보령시·서천군 선거구 보궐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전략 공천받아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정 대표는 금배지를 단 후 21년 만에, 장 대표는 3년 만에 당권을 거머쥔 셈이다. 필자는 충청권은 영·호남과 수도권에 비해 세가 약해 충청 출신 정치인이 당 대표가 되는 게 여간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뤘다는 게 우리나라 정치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이 정치권에 세대교체를 넘어 시대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경상도(경남 김해) 출신으로 재선 의원이었지만, 2002년 전라도가 텃밭인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시대 교체를 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세대교체는 신세대가 구세대를 대체하며 주역으로 부상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시대 교체는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치권에서 시대 교체는 기존의 정치 지형이 바뀌고 새로운 가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이 전라도 위주로, 국민의힘이 경상도 위주로 조직을 갖추고 지도부를 구성한다면, 세대교체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절대 시대 교체는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충청 출신이 여당과 제1야당의 당 대표 체제인 우리나라 정치가 시대 교체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정 대표는 여당 대표로서 대선 공약을 지켜야 하기에 시대 교체를 추구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그는 이정부 국정 운영 동반자로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만약 정 대표가 시대 교체를 위해 독자적으로 정치 지형을 바꾸고, 새로운 가치 추구가 국정 운영에 방해되거나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 경우 자기 정치를 한다는 덫에 걸려 시대 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장 대표는 상황이 다르다. 일단 야당 대표로서 국정 운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특히 대선에서 패한 잘못된 기존 요인들을 없애거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새로운 정치 지형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 대표의 시대 교체는 자연스럽고 거슬릴 게 없다.
게다가 재선이어서 기존 정치인과 관계에서 부담이 적은 점도 장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온순하고 다소 여유 있는 충청도 기질과 달리 정 대표와 장 대표는 자타가 다 인정하는 강성 정치인이다. 그래서 정 대표가 전라도 위주의 민주당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고, 장 대표도 경상도 위주의 국민의힘을 위한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 대표와 장 대표는 현재 아주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다. 정 대표가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해산돼야 할 정당”이라고 공격하고 있고, 장 대표도 “이정부를 끌어내리겠다”고 강하게 응수하고 있다.
지난 28일 장 대표는 정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세력이 지도부에 뽑혔다. 신임 대표가 답해야 한다”며 “윤석열에 대한 탄핵도 잘못이고, 헌법재판소의 파면도 잘못이고, 비상계엄 내란은 잘된 것이라고 주장하느냐”는 질문에 “정 대표의 질문이 왜곡과 망상으로 점철된 정치 공세”라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장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 회동을 즉시 추진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공식적으로 제안 받은 바, 보고 받은 바 없다. 정식 제안이 오면 그때 검토하겠다”며 선을 그었다.
필자는 충청권 출신의 두 대표가 지금은 당대당 차원에서 강하게 대치하고 있지만, 특검이 끝나고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해야하는 시기가 되면 충청권 영역 다툼에서 강대강 대치를 본격화할 것으로 본다. 이들이 ‘충청권 대망론’을 염두에 두고 내년 지선에서 충청권 세를 얼마나 많이 차지하느냐에 따라 이들의 정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선에서 전국적인 승리를 이끄는 게 더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정치 비전은 충청권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다.
안희정 전 민주당 의원이 충청권을 확실히 잡은 후 대선후보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을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내년 지선에서 마포에 적을 둔 정 대표보단 충청에 적을 둔 장 대표가 더 유리하다. 그래서 충청권은 벌써부터 장 대표의 충청권 대망론을 반기는 분위기다.
충청인들이 장 대표를 좋아하는 이유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대쪽 같은 강직함 때문이다. 그는 추경호 원내대표 체제에서 원내수석대변인을 지냈지만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이조 심판론’이 총선 패인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원내수석대변인직을 사퇴했다.
이후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대표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최다 득표자가 돼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돼 한 대표 측근으로 활동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된 직후 최고위원 4인 중 가장 먼저 사퇴하면서 한 대표와도 결별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도 김문수 캠프에서 총괄선대본부장직을 맡아 김 후보의 경선 승리에 기여했지만, 역시 전당대회에서 김 후보의 어정쩡한 스탠스에 반발해 당 대표에 출마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현재는 대선 후 갈라진 여야 대치 상황에서 어차피 대표들끼리도 강대강 대치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올 연말쯤 되면 이들이 한판 붙는 무대는 충청권이 될 것이다. 내년 지선에서 누가 시대 교체를 통해 충청권에서 지선을 승리로 이끄느냐에 따라 이들의 향후 정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민주당을 장악했지만, 장 대표는 아직 국민의힘을 장악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기회를 잡은 충청 전성시대를 정 대표와 장 대표가 제대로 살려 충청 대망론까지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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