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탄 남발하는 국감 고지전

너무 급했나? 이미 시선은 지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의 꽃인 국정감사가 시작됐지만 사방이 어수선하다. 여야의 마음이 이미 지방선거라는 콩밭으로 향한 탓이다. 당은 당대로, 후보는 후보대로 강성 유권자 표심 얻기에 나서면서 국정감사는 누가 더 날 선 말을 내뱉는지 대결하는 장으로 변했다.

지방선거(이하 지선)까지 약 8개월이 남았지만 여야의 시선은 이미 내년 6월을 향하고 있다. “조기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여의도는 이미 지선 모드”라는 정치권 관계자의 말대로 당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당선자를 배출하기 위해 치밀한 계산에 나섰다. 이번 국정감사(이하 국감)는 사실상 지방선거로 향하는 지름길이자 후보의 인상을 남기기 위한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조·오
앞으로

서울은 내년 지선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곳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선거인 데다가 서울의 승리가 곧 지선 전체 승리라는 분위기에 힘이 실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서영교 의원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벌써부터 경쟁에 돌입했다.

서 의원은 국감이 열리기 전부터 조희대 대법원장을 강하게 몰아세웠다. 앞서 대법원은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단이 법리를 오해했다”며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주요 후보에 대한 판결을 이례적인 속도로 선고해 대선에 개입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 의원은 ‘조희대-한덕수 회동’ 의혹이 담긴 제보자의 녹음 파일을 근거로 들며 대선 개입을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점을 토대로 조 대법원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조 대법원장은 불출석 의견서를 제출했다.

결국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 관례에 따라 인사말 후 이석 형태로 참석하겠다는 방침을 따랐다.

그는 지난 1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국감 인사말을 통해 “법치국가에서는 재판 사항에 대해 법관을 감사나 청문의 대상으로 삼아 증언대에 세운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법부를 둘러싼 작금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깊은 책임감과 함께 무겁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사말을 마친 조 대법원장은 이석을 요청했으나 법사위에서 이를 불허해 오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때 민주당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윤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느냐’ ‘선거법 재판이 옳았다고 생각하느냐’ 등의 질문을 강행했으나 조 대법원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후 마무리 발언을 통해 조 대법원장은 자신이 한 전 총리 등과 회동했다는 의혹에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 사건 파기환송심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이와 관련된 불신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면서도 “재판의 심리와 판결의 성립, 판결 선고 경위 등에 관한 사항은, 사법권의 독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 및 합의의 비공개를 규정한 법원조직법 제65조 등에 따라 밝힐 수 없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국감장에 묶어뒀지만 결과적으로 이렇다 할 답변은 얻지 못한 채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만 들었다. 국감을 내란 세력 청산의 불쏘시개로 쓰려던 민주당이 너무 섣부르게 움직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이유기도 하다.


조희대·김현지가 집어삼킨 일주일
상임위 곳곳 파열음…제자리 맴맴

가장 먼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박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견제에 나섰다. 서울시가 야심 차게 준비한 한강버스가 실패로 돌아가자 오 시장의 자질 부족을 지적하며 대항마 이미지를 부각한 것이다. 민주당 전현희 수석최고위원도 한강버스를 겨냥해 맹폭을 가하면서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민주당 내 ‘네임드 의원’이 출마 채비를 마쳤지만 서울에서 4선을 지낸 오 시장을 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은 부동산 이슈에 민감하고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된 만큼 민주당 내 강경 의원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가는 오히려 서울 시민의 반발심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오 시장의 실정을 파고들어 틈을 벌리겠다는 방침이다. 국회 행정안정위원회(이하 행안위)는 오는 23일 열리는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한강버스 관련 질의를 하기 위해 손정일 가덕중공업 대표를 비롯한 김선직 한강버스 대표 등 4명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모든 것을 김현지 대통령제1부속실장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을 이번 국감의 타깃으로 세웠다면, 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성남 라인’으로 알려진 김 실장을 ‘정부 실세’로 규정하고 의혹 한 점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국회 상임위 곳곳에서 김 실장을 찾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김 실장 대북송금 사건 변호사 교체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국감에 출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는 지난 14일, 법사위에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사건을 수사했던 박상용 검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이 전 부지사의 변호사 교체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위헌정당 심판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계열인 ‘경기동부연합’과 김 실장이 연결돼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 김미희 전 의원과 단일화해 승리한 바 있다. 이후 이 대통령이 경기동부연합과 어떤 관계인지 지속해 의문이 제기돼왔다”고 말했다.

검증보다
마음 앞서

그는 “김 전 의원은 식사 모임을 방문해 선거운동을 하고 그 식사 대금을 지불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 위반 행위에 김현지가 깊이 관여돼있었다. 재판부는 김 전 의원이 김 실장의 연락을 받아 식사 모임을 방문한 사실을 인정하며 둘의 관계를 판결문에 적시했다”며 판결문을 근거로 들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는 김 실장이 이재명정부에서 임명된 김인호 산림청장과 인연이 있다고 주장했다. 타 상임위와 마찬가지로 임명 과정 문제를 짚기 위해 김 실장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에서 김 실장과 김 청장이 과거 시민단체에서 함께 일한 점을 언급하며 “김 실장과의 어떤 사적인 관계가 (김 청장) 임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원택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당 차원의 증인 신청을 했다고 해서 보좌관한테 확인해 보니 (양당) 보좌관은 ‘산림청장 임명 과정에 대한 검증은 운영위원회 사안이라서 이곳에서 검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고 반박했다.

김 실장의 이름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에서도 들려왔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소환된 국감에서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김 실장과 통화한 적 있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한 장관은 “네이버에 있을 때도, 지금도 (통화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유튜버 김어준씨 손위 처남이자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인태연 전 대통령자영업비서관이 중기부 2차관으로 내정됐다는 설이 나오자, 이번 인사에 김 실장이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각종 상임위가 ‘김현지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본인이 국감 증인으로 출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부속실장으로서 (국감에) 부르는 게 아니라 김현지-이재명을 연결지어 정부 전체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며 “초반에는 김 실장도 ‘국회가 부르면 나가겠다’는 입장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했다가 오히려 잡음만 키울 것이란 부담감이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김 실장의 출석을 요구하면서도 의혹 제기가 공포탄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모양새다. 실제 김 실장이 출석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 채 몰아세우기만 한다면 야당으로서 모습만 우스워진다는 점에서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전력으로 김현지 세 글자를 띄우는 데에는 이정부의 비선 실세 프레임을 내년 지선 돌파구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총선에 이어 조기 대선까지 패배했다. 이번 지선에서 자력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지르고 보는
사자후 일색

지선에 내보낼 거물급 후보가 없다는 것 역시 국민의힘의 고민이다. 특히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서울시장의 경우 오 시장의 임기가 남아있어 섣불리 출사표를 던지지 못하는 눈치다.

한 야당 관계자는 “전국 당협위원장을 뽑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총괄기획단도 출범했다”면서도 “(후보로 나서기에 앞서) 당에서는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추미애 의원은 경기도지사에, 박찬대 의원은 인천시장에 도전한다는 등 여당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의원 위주로 하마평이 돌자 국민의힘에서는 혹시 모를 차기 선거를 위해 몸값을 키우려는 시도만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건 야당 몫 법사위 간사로 내정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다. 법사위원장인 추 위원장과 사사건건 맞붙으면서 ‘추나 대전’ 프레임만 견고해지고 있다.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추 위원장이 조 대법원장에 대한 질의응답을 강행하자 나 의원이 “조 대법원장 출석 주장 논리라면 이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우원식 국회의장도 모두 나와야 한다”고 소리쳤고 여야 간의 고성이 오가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두 사람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현장 국정감사에 앞서 진행된 전체회의에서 또다시 충돌했다. 민주당 주도로 지난 5월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재판관 및 재판 연구관의 자료 열람 기록 등에 대한 서류 제출 요구의 건을 의결하자 “사법부의 심장인 대법원을 사실상 압수수색한다”고 소리친 것이다.

나 의원은 경기도지사 출마설에 “정중히 사양한다”며 이를 일축했지만, 추 위원장과 매일같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차기 경기도지사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 여전히 이름을 올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원외에서도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는데 법원의 체포적부심 인용 결정으로 석방되면서 보수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내년 지선 대구 시장 후보로 급부상한 것이다.

오히려 키웠다? 갑자기 뜬 이진숙
지선까지 8개월 일단 뱉고 보는 말

이정부와 민주당에 맞서는 ‘여전사’ 이미지가 보수의 심장인 TK에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영남일보> 의뢰로 지난 12~13일 만 18세 이상 대구시민 82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구시장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이 전 위원장이 21.2%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전 총리(15.6%)로 두 사람 간 격차는 오차범위 내인 5.6%p다.

해당 여론조사는 이용한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4%p, 응답률은 6.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국감이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이 전 위원장의 보폭이 넓어졌다. 지난 14일 국회 방송통신미디어위원회 국감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참석해 이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스피커를 키웠다.

증인석에 선 이 전 위원장은 체포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하며 “이정부는 비상식적인 것이 뉴 노멀인 상황이 됐다” “대통령 한 사람한테 밉보이면 이렇게 되나 생각했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이 전 위원장의 국감 출석에 대해 보수 출신 관계자는 “보수 진영 지지층에게 공개적 메시지를 내기 위한 장소로 국감을 선택한 것 같다”며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출마를 염두에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소환 조사를 앞두고 정치적 메시지를 낼 장소로 (국감을) 이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국감은 내년 지선을 앞두고 행하는 마지막 정치 이벤트다. 예년보다 짧은 국감 기간에 강경 이미지를 각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는 일이 파다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는 강경 지지층과 중도층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싸움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확실한 승리를 위해 국감 기간 도중 과격한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해 국감 시작 일주일 만에 자중론으로 의견이 모인 것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사위 현장 국감은 소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 국민은 국회의원의 발언이 아니라 조희대의 답변과 태도를 지켜보고 있다”며 “‘몸싸움이나 거친 말이 있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박수현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같은 날 대법원 현장 국감서 여야 간의 충돌이 일자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작부터
자중론

국회 최고령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 역시 이날 자신의 SNS에 법사위 운영과 관련해 “과유불급. 저부터 자제하겠다”며 “현재 대법원 현장 국감 중인데 누가 끼어들고 소란 피우는가를 국민께서 판단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앞서 법사위에서 국민의힘 측 법사위원과 언쟁이 벌어지자 상대방을 향해 “조용히 해!”라고 소리친 사건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어 박 의원은 “국회 상임위에서 여야 간 공방에 무의식 중 ‘조용히 해’ ‘끼어들지 마’ 같은 언어를 자주 사용한다”며 “동생·자식 같은 후배 의원님들이지만 선수 상관없이 모두 동료 의원님들”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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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