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64)두더지 굴 속 박쥐새끼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8.11 04:02:27
  • 호수 15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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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런데 입술만은 좀 예외였다. 운은 그 입술에 교묘하게 연지를 칠한 줄 알았다. 그것은 소녀 입처럼 작은 것이 분홍빛이었다. 유독 그 부분만은 화장품을 쓴 흔적이 없었다. 그 불그스레한 입술로 여인은 자주 담배를 피워댔다. 방금 껐는가 하면 금세 또 그 꽁초를 물고 있는 것이었다.

셋방살이

영감님은 별 말도 없이 조용히 면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성질이 무던한 듯하기도 한데 드물게 와병중인 사람답지 않게 칼칼한 음성으로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 뱀 같은 계집아! 사람이 이렇게 죽어가는데 편하게는 못 해줄망정 그렇게 뽀꼼뽀꼼 담배 연기를 피워대서 즐거울 게 뭐가 있니, 응?”

그러면 여인은 슬픔이 사라지지 않은 목소리로 타령하듯 대꾸하는 것이었다.


“애구~ 우리 영감…… 죽기는 왜 죽노. 머리털이 파뿌리 되도록 같이 살자던 그 가약을 잊지 않으면 일어나겠지. 암, 일어나고 말고. 내일이나 모레면 일어날 테니 걱정마시우…….”
그러면 영감은 끙 하고 신음을 흘리고는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여인이 사는 아랫방의 정돈 상태는 운을 감탄케 하기에 족했다. 하지만 그 감탄도 어쩌면 일종의 선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작고 약냄새가 진동하는 그 방에 실제로 오래도록 살아 본다면 그런 느낌도 변할 수 있을 터였다. 운은 여인이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걸레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운이 식사 때 들여다보면 그랬다. 그러므로 실제로 걸레질은 그 이상이 될 수 있음은 충분히 예상되었다. 덕분에 영감의 병석이 차지한 반을 제외한 방바닥은 마치 정갈한 소녀가 가지고 논 가을 감의 표면처럼 빛을 냈다. 벽의 한 면에 자그마한 구식 화장대와 고물 라디오가 놓여 있고 구석 쪽에 천으로 된 간이옷장이 단정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비해 그 옆방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는 어떤 아줌마가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사는데, 물론 바쁘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마치 마구간처럼 어질러놓고 살았다. 그래도 제법 흑백 텔레비에 선풍기까지 있었다. 마호가니 옷장이 있는데도 이것저것 울긋불긋한 옷가지를 사방 벽에다 잔뜩 걸어놓고 방바닥에까지 어질러놓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은 성격 나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좁은 데서 부엌까지 공동 사용해야 하고 보면 성격이 딴판인 늙고 젊은 두 여자 사이에 알력이 안 생길 수도 없었다. 그러나 상대방 면전에서는 노부인이 항상 고분고분했다. 옷장수 여자의 뚝배기를 깨는 듯한 소리 아래서 노부인의 가느다란 목소리는 처연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뚝배기 아줌마가 나가 버리고 나면, 돌변해서 고로롱거리는 영감이나 운을 상대로 혹은 독백으로 울화를 터뜨리곤 하는 것이었다.

“흥, 제년은 뭐 셋방살이 신세가 아닌감. 걸레 같은 년!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할머니 부엌 좀 깨끗이 사용하자구요? 흥, 제년은 뭐 빛깔나는 이팔청춘인가, 꼭 부엉이 상판을 해 가지고. 그러니 고따위로 사내가 객지를 떠돌지.”

집안에서 뚝배기 아줌마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동네에서도 애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강아지고 쥐새끼고 간에 그곳에 사는 것 중에서 자기 기분에 거슬리는 것에 대해서는 마치 꾀꼬리가 두더지를 볼 때처럼 눈살을 잔뜩 찌푸리곤 들으란 듯이 말했다. 때로 어디서 술이라도 한잔 얻어먹은 날엔 더했다.


“이 여편네야, 나물을 그렇게 슬렁슬렁 씻어먹는 법이 어딨노. 하나씩 정성스레 다듬어야지. 원 저것, 벌레새끼가 굼실굼실 기어다니는구먼!”

뚝배기 아줌마와 다투면…
불쌍 가련 여성 신세한탄

그것은 동네 입구에 있는 공동 우물가에 쪼그려앉아 한 소리였다. 밤늦게 술먹고 싸움하는 자들에게도 한소리쳤다.

“저런 소갈머리를 못 버리고 있으니 이런 두더지 굴속 같은 데서 박쥐새끼처럼 찍찍거리기나 하고 살아가지. 남 탓할 것도 없다구. 정작 정승을 시켜줘도 못할 녀석들이…….”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런 핀잔이나 비판을 받은 사람들이 맞대거리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듣고 넘겨 버린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스피츠 한 마리가 그녀를 좀 우습게 알았는지 왈왈 짖다 꼬리가 홀랑 타 버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몇 가지 일을 제외하곤 그 여인은 어디까지나 그곳의 어려움을 잘 참고 살아가는 한 주민일 따름이었다.

그런 어느 날, 운이 그 골방에 산 지 보름쯤 되는 날 해그름녘이었다. 가까운 만화방에 들렀다가 골목을 걸어가는데 실비식당 좌판에 여인이 소주병과 고추졸임을 앞에 놓고 혼자 우두머니 앉아 있었다.
“웬일이세요?”

대답 대신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처량한 미소를 짓곤 술잔을 들어 쭉 들이켠 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라, 운아, 니 우리 양아들 할끼제? 그라믄 여기 앉아 이 불쌍 가련한 년의 신세 타령 좀 들어보거라. 씁쓸한 술 한잔은 따라줘야 해. 자, 여기 한잔 가득 채우거라잉.”

운이 엉겁결에 의자에 걸터앉아 술병을 들고 보니 이미 거의 비어 있었다. 그래서 여인의 기분을 절제케 하려는 듯 좀 덤덤한 어조로 권했다.

“이것 한잔만 드시고 집으로 가시죠.”

그러자 그녀는 크고 처량스런 눈을 가늘게 만들더니 순간적으로 본래보다 더욱 크게 떴다.

“그럴까?…… 흠…… 그러나 우리 늙은 애…… 그, 그놈의 골골거리는 영감탱이가 보기 싫어 못 가겠구나. 내가 자기를 얼마나 뒷갈망했는데 그런 몹쓸 소리를…… 아, 나두 내 몸으로 이쁜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아이구, 서럽고 원통해라…….”


여인은 소주를 쭉 들이키더니 탁자 가장자리에 이마를 괴고 어린애처럼 훌쩍훌쩍 울어댔다. 그러더니 한순간 울음 사이사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습이 처량쿠나…….’

감상의 파도

운은 코를 훌쩍거리며 짐짓 감탄해보였다. 그러자 여인은 자기가 예전엔 인기있는 가수였노라고 정색하며 말했다. 운이 궁금해하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허공을 쳐다보며 그 물기 어린 눈을 반짝거리게 하고, 꽃잎 같은 분홍색 입술로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심한 감상(感傷)의 파도가 가슴을 치는 양 얼굴을 찡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져 꽁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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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