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중국 광둥성에서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치쿤구니야열(Chikungunya fever)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제2의 코로나 사태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이미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방역 대응 강화에 나서는 등 전파 확산에 들어간 모양새다.
치쿤구니야열은 지난 1952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처음 발견된 질병으로, 명칭은 관절통으로 몸이 뒤틀리는 증상을 보인 환자의 모습을 표현한 현지 토착어에서 유래했다.
30일(현지시각) 중국 관영 매체 <CCTV> 등에 따르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화상회의를 열고 “치쿤구니야 방역은 지금이 분수령”이라며 “상승세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복잡하고 엄중하다”고 진단했다.
앞서 이달 초 광둥성 포산시에서 첫 확진자가 보고된 이후, 이날까지 누적 확진자는 5000명을 넘어섰다. 중국의 확진자 증가 폭은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의 초기 확산 속도보다 빠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포산시는 공중보건 비상사태 대응 수준을 3급으로 격상했으며, 중국 정부는 포산시 소재 53개 병원을 지정 치료시설로 정해 3600개 이상의 격리 병상을 마련했다. 또 국가질병통제국 실무팀을 파견해 매개체인 모기 방역 등 현장 지도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허젠펑(何剑峰) 광둥성 질병예방통제센터 부주임은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자, 임산부 등 취약층은 더욱 주의해야 하며, 광둥성 포산시와 광저우 등 유행 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치쿤구니야 바이러스는 뎅기열 바이러스보다 모기 체내 증식 속도가 2~3배 빨라, 감염자-모기-건강인 간 전파 주기가 짧아 확산세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치쿤구니야열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 그 중에서도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감염자를 문 모기의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해당 모기가 다시 건강한 사람을 물어 퍼뜨리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일상 접촉이나 비말(기침, 재채기)을 통한 감염 사례는 없으며, 수혈이나 임신·출산 중에는 드물게 옮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잠복 기간은 평균 4~8일 내외며, 주요 증상은 급성 발열, 발진, 두통, 심각한 관절통 등이다.
치사율은 1% 미만의 극히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나 만성 관절 통증 등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령 환자는 관절통이나 관절의 부종이 수년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문제는 특화된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다. 감염자에게 취할 수 있는 치료는 진통제나 해열제 처방이 전부다. 코로나19도 당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확산을 막지 못했던 바 있다.
현재 두 종류의 백신이 일부 국가에서 사용 승인을 받은 상태로 전해졌으나, 충분한 효능 데이터가 없어 WHO에선 전 세계적 접종 권고를 내리지 않고 있다.
이날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중국 내 치쿤구니야열 확산에 따라 여행 경보를 발령할 예정이다.
CDC는 “중국 광둥성에서 보고된 치쿤구니야 발병 사례를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 그 규모와 확산 범위를 평가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치쿤구니야열 유행에 대비해 유행 상황 및 대응 체계 점검에 나섰다.
지난 29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날 질병관리청장 주재로 국내 유입 가능성 대해 위험 평가를 실시했고, 종합 위험도는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주요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는 국내에 서식하지 않고, 전 지역에 서식하는 흰줄숲모기의 경우 지난달 채집된 개체 636마리에선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
다만 감염환자 해외 유입 시 잠재적인 노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위험 지역을 검역 관리 지역으로 추가 지정해 입국자 대상으로 집중 감시를 실시하기로 했다.
앞서 치쿤구니야열은 지난 2010년부터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됐다. 지난 2013년 국내 첫 환자가 확인된 이후 12년간 총 71명이 신고됐으나, 모두 해외 방문 후 감염돼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는 이달 1건의 확진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이날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지구온난화 등) 전 세계 기후변화로 치쿤구니야열 매개 모기 서식지가 확대되고 있어 해외 여행객의 경우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의료인은 발열자 문진 시 해외 여행 이력을 확인하고, 치쿤구니야열,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방역 당국도 치쿤구니야열 국내 전파 예방을 위해 환자 감시 및 매개체 방제, 예방 수칙 안내 등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WHO도 치쿤구니야열의 세계적 유행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날 WHO 곤충 매개 바이러스 전문가인 다이애나 로하스 알바레스(Diana Rojas Alvarez)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치사율은 1% 미만이라도 감염자가 수백만명 발생하면 사망자도 수천 명이 될 것”이라며 “각국이 대규모 발병을 막기 위한 역량을 강화하도록 조기 경보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1년 동안 프랑스령 레위니옹섬 인구의 약 3분의 1이 치쿤구니야열에 감염됐으며, 마요트섬과 모리셔스도 대규모 유행을 겪었다”며 “20년 전의 대유행도 인도양 섬에서 시작돼 세계로 확산됐고, 현재 그 경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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