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62)염전과 영농장 경계에서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7.28 04:00:00
  • 호수 1542호
  • 댓글 0개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마지막으로 몇 떨기 남아 봄 얘기를 속삭이던 복사꽃이 흙바람에 떨어져 휘날리던 날 오후, 방파제에서 좀 떨어진 바다에서 흰 옷에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히히 웃으며 헤엄쳐 가다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머리 위에서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언의 협박

그때부터 똥파리는 용운에게 지급된 빵뿐 아니라 밥도 기회를 보아 야금야금 훌쳐 갔다.

찢어 버린다던 쪽지도 어디 감춰두었던지 용운이 좀 불만을 드러내면 슬그머니 꺼내 빚 문서처럼 보여 주며 빙글 웃으면서 무언의 협박을 하곤 했다.


무슨 빚쟁이한테 물린 것도 아니고, 전생에 악연이라도 있는 거머리같이 애를 먹이는 바람에 용운은 반쯤 미쳐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징글징글했다.

용운의 키는 자연의 섭리에 의해 조금씩 크고 있었지만 몸은 비쩍 말라 볼품없었다. 그 대신 남의 음식을 뺏아서 양껏 처먹은 똥파리는 점점 살이 올라 통통한 모습이었다. 그뿐이라면 참을 만했다.

똥파리는 어깨를 주물러 달라거나 손톱 발톱을 깎아 달라는 둥 시도 때도 없이 요구했다. 용운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무슨 수라도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작업 담당 구역에 도착한 원생들은 곧 임무를 할당받았다. 용운은 보릿단 운반조였다. 낫질 조가 보리를 베어 놓고 가면 그것을 다발로 묶어 건너편의 빈 논으로 옮겨다 세우는 일이었다.

한동안 보릿단과 씨름을 하다 보니 옷 속으로 꺼끄러기가 들어가 몸이 말할 수 없이 따갑고 근질거렸다. 새참 때가 되자 언제나처럼 밀빵을 한 개씩 나눠 주었다. 그걸 받아들고 풀 위를 골라 앉았다.

먼발치로 드넓은 염전의 구획선이 모형판처럼 선명하게 바라보였다. 수용소에서 고용한 부락민들과 차출된 열댓 명의 원생들이 뒤섞여 한창 고무래로 소금을 긁어 모으는 중이었다.

저수지를 통해 유입시킨 바닷물이 ‘난치’라 불리는 몇 단계의 증발지를 거치면서 농축되고, 그것이 마지막 결정지에 모여 태양열과 건조한 바람을 받고 순백색의 소금으로 탄생하는 것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국가는 소금의 공급을 독점하고 소금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겼다. 소금은 아주 귀한 물건이었으므로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나라의 소금은 바닷물을 불로 끓여 만드는 자염이었다.

이에 비해 천일염은 염전에서 바닷물을 햇볕에 말려 생산하므로 쉬운 편이었다.

일본은 천일염을 대규모로 생산할 만한 지리적 조건이 없었으므로 조선을 점령하자 서해안 지역을 점찍었다.

천일염은 음식의 간을 맞출 뿐만 아니라 펄프 제조, 석유 정제 등 군수산업에도 필요했다.

일본은 1907년 인천 주안에 최초의 천일염전을 만든 이후 경기도와 전라도, 평안도 등지에 대규모 염전을 조성했다. 천일염이 대량으로 생산 판매되면서 전통적인 조선의 자염은 점차 사라지고 말았다.

염전과 영농장 경계쯤에서 쉬고 있는데 똥파리가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용운은 입맛을 다시며 빵을 내밀었다.

살쪄가는 똥파리
밥 대신 다른 부탁

그런데 웬일인지 똥파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네가 먹어. 난 이미 굶진 않으니까 걱정을 말고 말여. 그 대신 다른 부탁을 좀 들어 주면 좋겠어.”

“뭔데?”

똥파리는 은밀한 미소를 지었다.


“있잖아, 넌 몸이 야들야들해서 여자 같은 느낌이 들어. 그래서 얘긴데…….”

“뭐?”

“놀라긴 뭘 놀라. 절름발이 여자를 백곰이랑 둘이서 같이 하나는 짝사랑하고 하나는 풋사랑했던 모양인데, 이젠 죽어 버렸으니 아무 소용없잖아. 그러니 그 정을 그냥 나에게로 돌리지 그래, 응?”

똥파리는 유들유들 웃으며 지껄였다.

“뭐라구?”

용운은 부르르 떨더니 저도 모르는 새 벌떡 일어나 똥파리에게 주먹을 날렸다. 똥파리의 코에서 불그죽죽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 개새끼가!”

피를 본 똥파리는 상을 일그러뜨리더니 괴성을 지르며 용운에게 달려들었다. 용운은 슬쩍 피하면서 그의 팔을 잡아 엎어치기로 메어꽂았다.

그러곤 쓰러진 똥파리 놈 위에 걸터앉아 양 뺨을 이리저리 갈겼다.

“이 개새끼 차라리 죽어!”

원생들이 하나 둘 와 둘러서서 구경을 했다. 편 가르기 좋아하는 치들은 벌써 응원을 시작했다.

“영농반 이겨라!”

“염전반 이겨라! 어서 힘내!”

똥파리는 볼때기가 시뻘게진 채 발버둥을 치다가 일순 용운의 손을 나꿔채 아귀처럼 깨물었다. 용운은 아픈 줄도 모른 채 씩씩거리며 한쪽 손으로 놈의 목을 꽉 눌렀다.

그때 왕거미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용운의 뒤통수부터 냅다 후려쳤다.

“이 쌍놈들이 비싼 밥 처먹고 무슨 개쌈질이야! 즉시 떨어져서 꿇어앉아!”

사장은 둘의 귀싸대기를 한 차례씩 오달지게 올려붙이고 나서 재우쳐 물었다.

“무슨 일이야?”

똥파리가 코피를 훔치며 능청맞게 주워섬겼다.

“이 자식이 탈출 음모를 꾸미고 있기에 그러지 말라고 좋게 충고를 했더니 냅다 폭행을 했습니다.”

“뭐라구? 너 이 개새끼, 정말이야?”

탈출 음모

“저, 그게 아닙니다. 저는 이제 탈출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립니다.”

“거짓말이에요! 제게 증거가 있는걸요.”

“뭐야? 두 놈 다 당장 따라와. 야, 스라소니, 끌고 와!”

사장은 씹어뱉듯 명령한 뒤 본부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용운은 음흉스레 빙긋 웃음을 날리는 똥파리를 암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