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쌍용건설 PF 공사비 700억 증액 미스터리

15년 전 호텔에 묻힌 의문의 돈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15년 전 끝난 호텔 리모델링 사업이 좀처럼 물음표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두 배 가까이 커졌던 공사비를 선뜻 납득하기 힘든 까닭이다. 시공사는 구멍 뚫린 사업을 진행하느라 손해를 잔뜩 본 채 3년을 날렸다지만, 찜찜함 구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Project Financing)’은 프로젝트를 담보로 잡고, 미래에 발생할 이익을 상환 재원으로 삼아 추진하는 자금 조달 방식을 뜻한다. 주로 아파트, 주상복합건물 등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활용되며, 시공사의 신용이 추가돼 자금 조달 규모가 책정된다.

물론 모든 부동산 PF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는 건 아니다. 사업성을 갖추지 못한 채 진행된 부동산 PF가 부실화 과정을 겪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으며, 이는 금융 및 건설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히곤 한다.

엄청난 기대
저조한 성과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타워호텔 리모델링 사업’ 역시 부실 부동산 PF의 단면을 드러낸 사례였다. 부동산 개발 업체인 ‘어반오아시스’가 시행을 맡은 해당 프로젝트는 기존 남산 타워호텔을 6성급 호텔로 변경하는 것이 기본 취지였다. ‘쌍용건설’은 시공사로 참여해 PF 대출에 지급보증을 섰다.

어반오아시스는 2007년 4월 자산유동화회사 ‘인베이스개발제일차’로부터 2년 약정으로 PF대출 700억원, 채권유동화회사 ‘매화케이스타스’로부터 1년 약정으로 800억원을 차입했다. 이후 메화케이스타스로부터 대출받은 금액의 상환기일이 다가오자, 또 다른 자산유동화회사 ‘어반오아시스제일차’에서 PF 대출로 800억원을 차입했다.


토지 매입 과정에서는 990억원이 투입됐다. 어반오아시스 2008년 감사보고서에 “상기 토지와 건설 중인 자산에 PF대출 약정과 관련한 근저당이 설정돼있다”는 설명과 함께 기재된 ‘토지 취득가 990억원’이 이를 뒷받침한다.

PF대출이 성사된 건 2007년 4월이지만, 본격적인 공사는 2008년 6월 이후였다. 토지 및 건축물과 사업장 내 영업권을 확보한 것과 별개로, 인·허가에 다소 시간이 소요된 여파였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이 직접 기공식에 참석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시공사인 쌍용건설은 큰 기대를 드러냈다. 당시 김 회장은 “국내 최초로 ‘Cost Plus Fee(코스트 플러스 피)’ 방식이 적용되는 공사로, 시공사와 발주처가 상생할 수 있도록 진행 단계에서부터 상호 간 철저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타워호텔 리모델링 사업은 철저한 실패로 일단락됐다. 특히 쌍용건설은 완벽한 피해자로 전락한 듯 보였다. 어반오아시스가 2010년 6월 호텔을 개장할 때까지 공사비 체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이었다.

급기야 쌍용건설은 담보 권리를 근거로 처분 권한을 행사해 매각에 돌입했고, 어반오아시스의 손을 떠난 호텔은 현대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이했다. 2012년 1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그룹은 5개월여에 걸친 실사를 마무리 짓고, 2012년 6월 1635억원에 호텔을 품에 안았다.

이 과정에서 쌍용건설은 골칫덩이 호텔을 매각해 공사비 회수와 PF 우발채무 감축이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쌍용건설이 호텔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된 건 아니었다. 공사비 증액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은 15년이 지났음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시간 지나도
여전한 잡음


해당 논란을 이해하려면 일단 도급액 변동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반오아시스는 2007년 4월 쌍용건설과 700억원에 도급계약을 체결했고, 계약은 2009년 9월말까지 변동 없이 이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타워호텔 리모델링 사업은 전형적인 총액계약방식(시행사와 시공사가 총액계약으로 공사도급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으로 비춰진다. 기준 도급액이 700억원으로 고정된 상태에서 완성 공사액이 나날이 증가하는 형상을 나타낸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은 석 달 만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쌍용건설은 2009년 12월 사업보고서에 기본 도급액을 1400억원으로 변경해 기재했다. 공사를 85%(완성 공사액 596억원)가량 끝낸 상태에서 공사비가 두 배 증액된 모양새였고, 이 여파로 공정률은 64%로 낮아졌다. 쌍용건설은 2010년 11월 타워호텔 리모델링 사업 관련 최종 공사비를 1378억원으로 확정 기재했다.

준공 목표인 2010년 2월을 두 달 남짓 남긴 시점에 기본 도급액이 두 배 커진 모습은 다소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기존 쌍용건설 사업장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광경도 아니었다.

쌍용건설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공시한 연도별 민간 건축공사 도급 내역은 ▲2007년 32건 ▲2008년 28건 ▲2009년 25건 ▲2010년 27건 등이다. 이 가운데 타워호텔 리모델링 사업과 유사한 흐름으로 기본 도급액이 변경된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쌍용건설 측은 지금껏 공사비 증액에 대해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뜻을 피력해 왔다.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된 건 쌍용건설이 언급한 ‘코스트 플러스 피’ ‘FAST TRACK(패스트트랙)’ 등이 통상적인 부동산 PF사업에서의 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6성급 꿈꾸다…구멍 뚫린 프로젝트
석 달 만에 두 배 커진 도급액, 왜?

부동산 PF 사업은 현재가 아닌 미래가치를 평가해 진행되는 관계로, 일종의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다. 부동산 PF 사업을 추진하려면 ▲인·허가를 취득한 확정된 실시설계도면 ▲확정된 실시설계도면에서 산출한 공사원가계산서 ▲확정된 공사금액으로 시행사와 시공사 간 체결한 공사도급계약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제출된 서류를 토대로 대출 심사를 거쳐 도급액의 적정성과 사업의 안정성을 확인하는 수순이 뒤따른다. 공사가 진행되면 착공부터 준공까지 PF사가 기성실사를 거치면서 시공된 공종별 물량을 확인하고, 시공된 물량에 맞춰 공사비가 현금으로 조달된다. 부동산 PF 사업에서 일반적으로 총액계약방식이 활용되는 이유다.

반면 쌍용건설은 실시설계도면이 없는 코스트 플러스 피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해당 사업은 실시설계도면 없이 700억원(평당 계략공사비로 전체 연면적을 곱해 추정한 금액)을 공사비를 설정한 ‘코스트 플러스 피(공사비+시공이익)’로 계약한 공사”라며 “준공이 가까워지면서 전체 공사 내용이 확정돼가며 공사비 한도를 1400억원으로 설정할 수 있었고, 최종 1378억원으로 확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패스트트랙 공법으로 진행됐다는 쌍용건설 측 주장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패스트트랙은 기본설계에 의해 부분적인 공사를 진행시키면서, 순차적으로 작성되는 설계도에 의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시간을 절약해 공사기간을 단축하는 데 유용하지만 공사금액을 확정한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일반화된 부동산 PF 사업에서는 공사도급금액의 적정성 확인과 사업수지 분석에 어려움이 따른다.


곳곳에서
상충된 흔적

시행사와 시공사 간 회계 기록 곳곳에서 발견된 엇박자는 해당 사업을 예의주시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다. ‘보험 가입’ 내역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PF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공사보험 가입은 필수 요건이며, 프로젝트 건물은 가장 핵심이 되는 담보물이다. 시행사는 공사 시작에 앞서 공사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공사보험에 대한 PF사와 시공사의 질권 설정이 이뤄진 상태에서 공사가 진행된다.

어반오아시스는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된 2008년에 ‘부보금액(보험 계약자가 보험 회사와 보험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정한 보험 가입 금액)’ 700억원짜리 공사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부보금액은 2009년 말까지 700억원으로 기재됐다가 사업이 종료된 2010년이 돼서야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작 쌍용건설은 700억원이었던 타워호텔 리모델링 사업 관련 기본 도급액을 2009년 말 기준 1400억원(완성 공사액 892억원)으로 변경한 바 있다. 2009년 12월 쌍용건설 사업보고서에 1400억원으로 기재된 기본 도급액이, 같은 시기 어반오아시스 공사보험 가입 내역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볼 법한 사안이다.

‘공사 미지급금’ 항목에서도 엇비슷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말 기준 41억원이었던 어반오아시스의 미지급금은 2010년 말 1025억원(공사 미지급금 942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공교롭게도 한국기업평가에서 2009년 9월 말 자료를 토대로 낸 ‘쌍용건설 기업어음 신용등급 평가서’에 따르면 이 시기에 타워호텔 리모델링 사업의 공사 미수금은 240억원이었다. 어반오아시스가 3개월 사이 공사 미수금 240억원 중 200억원가량을 정리한 게 아니라면, 시행사와 시공사 간 회계에서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쌍용건설이 제출했던 자료가 사실에 부합한다면, 쌍용건설은 공사비를 정산받지 못할 위험을 알면서 추가 공사에 나섰다고 볼 여지가 생긴다. 2009년 9월 말 기준 700억원짜리 공사에서 240억원을 정산받지 못했다고 신용평가사에 자료를 제출한 쌍용건설이, 이후 어반오아시스의 요청에 응해 공사를 두 배 수준으로 벌렸고 결과적으로 추가 투입된 공사비는 전혀 지급받지 못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쌍용건설 측은 공사비 1378억원 중 942억원을 받지 못한 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발주처의 회원권 판매 부진으로 공사 대금 수금이 어려워졌으나, 책임준공 의무와 조건부 채무인수 의무 때문에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며 “공사비 수금이 없어도 협력업체에 B2B로 공사 대금을 지급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쌍용건설 측은 어반오아시스의 요청에 따라 추가 공사가 진행된 점을 공사비 급증과 공사 미지급금이 발생한 직접적인 이유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반오아시스의 요청에 따라 2009년 4분기(10월~12월)부터 당초 계획에 없는 추가 공사를 진행했다는 뜻도 내비친 상태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마감재 철거공사 중 발주처에서 VVIP를 위한 최고급 호텔에 따른 공사 내용과 사양이 최고급으로 업그레이드 변경(각 객실에 플런지 풀 신설 등)됐다”며 “이에 따라 공사 범위에 없던 별관 및 별관 앞 야외 수영장 공사, 발주처분인 홍보관 공사 등이 추가됐다”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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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