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최근 여야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반도체법 주52시간 예외 적용’에 대해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일, 정 전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완전무결, 영원불변한 법은 없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예외’가 생기면 그게 점점 늘어나고 일상화될 수 있다는 걱정을 이해하지만, 실제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다시 법을 고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공지능(AI) 최강국 미국은 근로시간 제한이 없고, 대만은 기준 초과 근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 중인 중국의 근로시간은 무모해보일 정도로 유연하다”며 해외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돼선 안 되겠지만 우리가 상대할 NVIDIA(엔비디아), TSMC의 핵심 R&D 인력들이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들과 경쟁할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환경서 일하지 않도록 ‘꼭 필요한 사람’에 대해 ‘필요할 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다수당이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주당 일각의 ‘현행 근로기준법 내 유연근로제를 활용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선 “예측이 가능할 경우, 유연한 제도로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외에 대해 너무 경직되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결국 근로시간 예외 적용 문제가 합의되지 않을 경우, 빼고라도 반도체 특별법 처리를 해야 한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릴 순 없지 않나? 국익을 위해 우선 큰 산은 함께 넘고 놓친 부분은 다시 개정안을 발의해 야당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게 정치”라고 훈수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2000년 5월, 엄청난 반대와 저항에 부닥쳤지만(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인 과거사법을) 처리했다”며 “‘우리가 지금 반도체법을 합의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반도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위기감을 갖고 여야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AI 기술 진보 시대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본질이냐?”며 “시대를 잘못 읽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앞서 전날 당정회의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주52시간제 특례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아닌 반도체 특별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따른 반박이었다.
김 지사는 “지금 대한민국 반도체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은 첫째 재정을 포함한 과감한 지원, 둘째 전력과 용수 문제 해결, 셋째 반도체 인프라 확충”이라며 “당정의 근로시간 확대가 시대를 읽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일,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주도로 개최한 반도체 특별법 토론회에 참석해 “특정 중요 산업의 연구개발 분야 중에서도 고소득 전문가 등이 동의할 경우, 예외로 몰아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자. 이걸 왜 안 해주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특별법은 지난해 11월, 국민의힘이 국내 기업들이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서 주 52시간 근로제에 묶여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재계의 우려 목소리를 받아들이면서 당론으로 추진했다.
이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수영 의원이 발의한 반도체 연구개발 업무 종사자 중 소득 상위 5%에는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당 이철규 의원도 같은 달 11일,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엔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 종사자들 중 근로소득 수준, 업무 수행 방법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당사자 간 서면 합의 시 ‘근로기준법’과 관계없이 근로·휴게·휴일,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예외 조항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당시 민주당은 근로시간 부족으로 반도체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색했다. 현행 주52시간 근로제는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18년 2월28일에 첫 도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해 7월까지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5~49인의 영세 사업장은 3년의 유예 기간이 부여됐다.
같은 해 지난 7월3일, 국내 반도체 산업에 100조원의 정책자금을 지원하도록 하는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했던 김태년 의원도 “노동시간 문제는 노동법에 예외 조항을 둬야 하는 사안으로, 반도체 문제와 근로시간 문제를 섞어서 법을 개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김 의원은 6월25일, 국회 기자회견서 “반도체 산업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핵심 국가전략산업으로 국가적 차원의 반도체 비전 설계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반도체 산업이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재편되고, 미국에 이어 EU도 반도체법(Chips-Act)을 제정했다”며 “일본과 대만은 물론 미국과 대만의 전략적 연대도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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