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국세청이 터무니없는 가격과 불투명한 계약으로 20·30세대의 결혼·출산 의지를 꺾는 ‘스드메(웨딩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 이 밖에 산후조리원, 영어유치원 등도 조사 대상이다.

국세청은 웨딩 서비스 업체 24곳, 산후조리원 12곳, 영어유치원(영유아 영어학원)과 저학년 영어학원 10곳 등 46개 업체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이들 업체 상당수는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됐다. 소득 탈루 혐의 금액은 총 2000억원가량에 달한다.
열리는 금고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결혼·출산·유아교육 시장의 비정상적 현금 결제 유도나 비용 부풀리기 관행을 점검하고 조사 대상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관련인의 재산 형성 과정까지 세세히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결혼과 출산, 육아 비용이 급등하면서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일상생활과 미래에 직결된 비용의 증가는 2030세대의 결혼·출산 기피 현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에 불합리한 업계 계약 관행과 만연한 추가 비용 부과 등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산후조리원은 직장인 평균 월급을 훌쩍 넘는 이용료에도 예약이 어려운 상황이다. 영어유치원은 연간 대학 등록금의 3배가 넘는 원비를 부과하고 있다. 국세청은 고비용 시장 구조서 세금 회피 업체가 있다고 봤다.
이들 업체는 매출 누락과 사업장 쪼개기, 비용 부풀리기 등의 수법으로 세금을 회피해 왔다. 스드메 업체들은 불투명한 계약과 추가금 폭탄으로 소비자도 기만했다. 예비부부들은 계약 후 추가금 견적서가 날아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우가 적잖았다.
스드메 시장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가격 횡포가 만연해 있다. 이렇게 소비자의 과도한 지출을 유발해 높은 수익을 올린 업체들은 차명계좌나 사업장 쪼개기 등의 수법을 사용해 납세를 회피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처음 계약 시 안내한 기본 계약 내용 외 추가금을 여러 차명계좌에 이체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스튜디오 웨딩 촬영으로 유명한 A 업체는 촬영 후 수정본 구입비, 액자비, 추가 사진비 등을 현장서 추가하면서 대표의 친인척 등 차명계좌로 현금을 이체하도록 유도했다.
또, A 업체의 제2촬영장을 당시 유학 중이던 자녀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소비자들이 촬영 대금으로 지급한 매출을 이곳으로 분산했다. 이후 자녀가 정상적인 사업소득이 있는 것처럼 위장, 자녀의 소득으로 아파트를 취득하도록 부당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A의 수익 누락 규모 정밀 검증 및 사주와 자녀 명의의 자산 취득 거래와 관련한 자금출처의 적정성 여부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현금 매출이 사주 일가 쌈짓돈으로
100억 상당 부동산·주식·유학비로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고급 웨딩드레스 B 대여점은 드레스 선택을 위한 샘플 착용 비용인 ‘피팅비’를 현금으로만 받았다. 대여 드레스 브랜드에 따라 차등 발생하는 추가금도 10% 할인을 제시하며 현금 결제를 유도해 매출을 누락했다.
이런 수법으로 매출을 누락한 대표는 이를 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주식 취득자금으로 유용했다. 또, 사주가 직접 부담해야 할 거주지 인테리어 공사비 및 고급 회원제 PT, 골프장 이용료 등 업무와 관련이 없는 비용을 경비로 처리하기도 했다.
사주 일가는 영업시간 중 캠핑장이나 원거리 피부미용실, 골프연습장, 영화관을 이용하는 등 실제 근무하지 않고 있음에도 고액의 가공 급여를 지속적으로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B 대여점의 실제 수익 규모를 철저히 검증하고, 매출 분산 거래 및 경비 계상 적정성 여부에 중점을 두고 엄정히 조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산후조리원은 이용료가 매년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산업이다. 일부 산후조리원은 1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이용료를 책정해 젊은 부부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기도 한다. 산모 85% 이상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임신과 동시에 ‘예약 전쟁’에 뛰어들 정도로 공급난이 극심한 상황이다.
유명 C 산후조리원은 현금 할인 가격을 내세워 대다수 산모가 현금 결제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다.
일부 산후조리원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소비자들에게 기본요금은 물론, 마사지 등 부가서비스 요금도 현금으로만 받아 매출서 누락했다. 사주 일가는 과다 수취한 임대료 등을 미국·유럽 등 고가의 해외여행 비용으로 유용하고, 법인카드를 백화점 명품관이나 사우나 등 개인적인 용도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은 고가 임대차를 비롯한 C 산후조리원과 사주 일가 간의 거래 적정성을 중점적으로 검증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금결제 요구 기본
이중장부도 수두룩
영어유치원은 사교육 진입 연령을 낮추고 부모와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시장이다. 영유아 부모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대학 등록금을 훌쩍 넘는 고액 유치원비 지출을 부추기고 있다. 국세청은 가공거래 및 허위 경비 계상 혐의 등을 받는 영어유치원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
교재비 등을 탈루해 자녀를 해외 유학 보내고, 허위 거래로 비용을 빼돌린 D 영어유치원은 고가의 원비를 요구해 왔다.
또 수강료 외에 별도로 결제해야 하는 레벨 테스트 비용, 교재비, 재료비, 방과 후 학습비 등을 현금으로만 받아 챙기면서 이를 세금신고에 누락해 소득을 은닉했다. 아울러 D 영어유치원은 사업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주 배우자의 업체로부터 마치 실제 용역을 제공받은 것처럼 꾸며 거짓 세금계산서를 수수했다.
그 외에 사주 일가는 여러 대의 고급 외제차를 회사 명의로 구입한 후 사적으로 사용하며 관련 비용은 업무용 경비로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에서 비정상적 현금 결제 유도나 비용 부풀리기 등 결혼·출산·유아교육 시장의 부조리한 관행을 면밀히 점검할 예정이다. 조사 대상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등 관련인의 재산 형성 과정까지 세세히 검증하는 등 강도 높게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2019~2023년 5년 치 기록을 탈탈 털 예정이다.
탈루 혐의 관련 거래 금융 추적, 이중장부 확인, 거짓 증빙에 대한 문서 감정 등을 통해 불투명한 수익 구조와 자금 유출 과정을 세밀하게 확인하고, 현금영수증 미발급 사례가 확인될 경우 가산세(미발급 금액의 20%)를 철저히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탈탈
턴다
국세청 관계자는 “2030세대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곧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와 직결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하에, 젊은 세대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며 세금을 회피하는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생 안정을 위해 일반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생활 밀접 분야서의 불공정 관행이나 악의적인 탈루 행위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의 이번 조사는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고비용 시장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