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극우발 부정선거론 뜯어보니…

최근 비상계엄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음모는 지난 22대 총선 이전부터 각본이 짜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윤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야당이 다수파를 점하고 있는 국회’ 때문에 마음껏 권력을 휘두를 수 없는 것에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해 총선서 승리해 국민의힘을 국회 다수 세력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굳이 무리해서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원래는 ‘선거 부정 음모론’에 포획된 자가 아니었지만 지난 총선서 참패해 남은 임기 동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확정된 후부터 반드시 친위 쿠데타를 통해 지금의 국회를 사실상 해체하고 절대 권력을 차지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고 본다.

여소야대
해체 전략

그는 지난 총선 참패 후 선거 부정 음모론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적극 받아들인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유 중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런 음모론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2024년 총선 참패를 인정하게 되면, 스스로 “임기 전반기 자신의 국정운영이 실패작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의 성향상 그런 자기 성찰보다는 마음 편한 현실 왜곡이란 내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친위 쿠데타의 수단인 비상계엄을 위한 명분으로 극우 세력들이 주장하는 선거 부정론을 끌어오고, 그 세력을 군대, 경찰, 검찰 세력 외에 아스팔트 태극기 극우 집단을 정치적 호위 세력으로 끌어들여 비상계엄을 합리화시키려 한다.

윤 대통령은 총선서 참패한 후 선거 부정 음모론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적극 받아들인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유 중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런 선거 부정 음모론에 빠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란 수괴의 핵심인 부정선거론은 지난 총선이 끝난 후부터 본격화됐다. 지난 총선서 국민의힘은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성적을 거뒀고,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거대 야당의 위치를 유지하게 됐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일부 보수 인사들과 유튜버들은 개표 과정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극우 세력들은 일부 지역서 투표용지 바코드 및 QR코드의 정당성 논란, 개표 조작 가능성 제기(특정 정당 표가 몰리는 현상), 전산 시스템 해킹 및 조작 가능성, 사전투표 조작설을 제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북한 해커들이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를 해킹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참패 후 선거 부정 음모론 적극 받아
북한 개입? 구체적 증거는 제시 못해

그는 당시 “북한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끝까지 조사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런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2020년 4·15 총선서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일부 인사들과 유튜버들이 선거 조작설을 주장했던 바 있다. 당시에도 사전투표 결과와 본투표 결과의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사전투표 조작설이 나왔으며, 이에 따라 여러 시민단체가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부분의 법원에선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부정선거는 없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윤 대통령은 위헌적 비상계엄 후 줄곧 ‘부정선거 증거가 넘쳐난다’고 했고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선관위에 군을 투입한 이유도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했다. 선거 소송의 검표 과정서 엄청난 가짜 투표지가 발견됐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껏 단 하나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탄핵 심판 내내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는 2023년 국정원서 선관위 보안 점검 업무를 담당한 백종욱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선관위 내부 시스템을 점검했지만, 침입당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으로 백 전 차장을 골라 증인으로 세웠지만, ‘부정선거는 없었다’는 사실만 다시 증명되고 말았다.

부정선거 맹신론자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대리인으로 영입해 신성한 법정서 유튜브·태극기 집회서 떠도는 얘길 퍼뜨렸다. 이미 대법원서 사실이 아니라고 입증된 해묵은 음모론도 소환됐다.

2020년부터
조작설 주장

황 전 총리가 변론 종결 직전 제기한 ‘형상 기억 종이’ 의혹이 대표적이다. 형상 기억 종이는 선관위가 ‘21대 총선 개표 당시 접힌 자국이 없는 빳빳한 종이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극우 세력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반박하는 과정서 나왔다.

선관위는 당시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을 통해 “투표용지는 종이 걸림 방지를 위해 원상 복원 기능이 있는 특수 재질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이를 극우 세력이 ‘형상 기억 종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유래다.

황 전 총리는 이날도 “빳빳한 투표지가 가능하다고 보느냐”며 공세를 이어갔지만, 증인으로 나온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인 김용빈 선관위 사무총장은 “21대 총선 (관련)소송서 다뤄졌던 주제고, 대법원이 검증한 결과 그것은 정상적인 투표지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사전투표함 보관 장소를 CCTV로 24시간 공개하거나, 개표 과정을 감시하는 수검표를 도입해 왔는데도 계속 부정선거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렇게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황 전 총리 등 선거 부정론자들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선 윤 대통령 대리인단이 탄핵 심판을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윤 대통령 대리인단의 상당수는 극우·보수단체서 활동하며 부정선거론을 맹신해 온 ‘확신범’들로 구성돼있다.

패배 부정
자기 합리화

국회 탄핵소추인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1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서 “황교안 전 총리까지 나서는 것은 부정선거를 맹신하는 극우 아스팔트 지지층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측이 정치 공세, 정치 선동을 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부정선거 음모론의 선봉에 선 황 전 총리는 문재인정부 당시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 당 대표로 공천 책임자였고 따라서 선거 패배의 책임자다.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선거 부정론을 퍼뜨리고 있다.

차치하고 윤 대통령이 내란 수괴로 구속돼 탄핵 위기에 처하자, 국민의힘은 급기야 극우 유튜브 채널, 태극기 집회서 떠드는 망상적 부정선거론에 매달린다. 내란의 늪에 빠져 자신들이 치른 선거와 그 결과마저 부정하고 있고 국회 청문회서 부정선거 의혹을 대거 제기하고 급기야 ‘선거제도 건강검진법’이라는 특별법까지 준비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이 선거를 불신하는 것보다 더한 자기부정이 어디 있겠나? 선거제도 검진보다 본인들부터 검진해보는 건 어떨까? 부정선거를 맹신한다면 본인들 국회의원 배지부터 반납하는 게 맞다. 과정이 부정인데 결과를 움켜쥐고 권리를 주장하는 모순부터 해결하라.

되지도 않을 내란 정당화 도구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절차와 과정을 모두 해체하면 안 된다.

국민의힘이 선거 부정론을 띄울수록 분명해지는 건 조작된 부정선거론의 허약성이다. “다 잡아서 족치면 부정선거했던 게 나올 것”이라는 ‘버거 보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궤변과 다를 게 없다. 오죽하면 국민의힘 내부서 암처럼 번지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쓴소리가 나올 정도다.

선거제도 건강검진법?
탄핵 위기에 망상 심화


내란을 준비하던 윤 대통령에게 그랬던 것처럼, 국민의힘을 여전히 지지하는 대중 사이에서도 그렇다. “국민의힘이 승리하지 못하는 선거는 모두 부정선거”라는 편리한 논리가 만능 무기가 되어준다.

내란 수괴를 지키려 부정선거론이라는 썩은 동아줄에 매달린 국민의힘의 추락은 정치 후진국을 만들고 있다. 개연성도 부족한 싸구려 선거 부정에 매달릴 정도라면 국민의힘은 그만 역사에서 사라지는 게 답이다.

또,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선거 부정론이 탄핵 심판 판결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게 관건이라고 판단하겠지만 헌재가 부정선거 의혹을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부정선거론은 이번 탄핵 심판의 쟁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극우 지지층을 선동하고, 헌재 결정에 불복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들여다보지만, 어느 하나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증거를 내세우지 못한다. 결국 선관위의 반론이나 대법원 판결의 이유를 뛰어넘어 살아남을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관여자의 감시와 수·개표 시스템서 부정선거가 이뤄지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내부의 은밀한 정보조차 쉽게 유출되는 요즘 세상에, 선거 부정에 관여했다는 누군가의 자그마한 제보조차 드러난 적도 없다.

그러나 부정선거론을 주장하거나 지지하는 대부분 사람에게, 부정선거의 문제는 사실의 영역을 넘어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어떤 객관적, 합리적인 설명도 믿음을 뒤엎을 수는 없기에, 부정선거라는 믿음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시간 갈수록 
확대 재생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될 선거와 대의제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부정선거론은 현존의 위협이자 미래에 대한 위협이다.

이렇게 국론을 분열하고 주변 국가와 갈등을 유발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제2의 내란·외환 시도나 다름없다. 윤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부정선거론을 거두라. 그것이 주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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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