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구속 후…물 만난 잠룡들

푸른 뱀의 해, 승천 노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조기 대선 시계가 빨라졌다. 정치권에서는 6월 장미 대선을 확신하고 있다. 장거리서 단거리로 바뀐 레이스에 시시각각 변하는 정국까지, 여야 잠룡들이 설 연휴에도 느긋이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정치인에게 있어 명절 연휴는 여야를 막론하고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전국 팔도로 이어지는 귀성길에 눈도장을 찍거나 전통시장서 웃음꽃을 피우는 등 훈훈한 모습이 연출돼 심란한 시국에도 빼놓을 수 없는 ‘빅 이벤트’다. 이 시기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조기 대선 분위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여야 잠룡은 너나 할 것 없이 저마다 전략을 세우고 있다.

조기 대선
현실화?

현재 법조계에서는 오는 4월18일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이 퇴임하기 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마무리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헌법 제68조 2항에 따라 대통령 궐위 시점으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만큼 탄핵 심판 일정이 가장 큰 변수다. 만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2월 말에서 3월 초에 결정 나면 조기 대선은 이르면 4월, 늦어도 6월 사이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진보 진영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보수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을 비롯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등이 각종 여론조사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어 나머지 후보의 움직임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반대로 보수 진영서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준석 의원이 스피커를 키우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게다가 보수로 분류되는 차기 대권주자는 진보 쪽보다 두 배나 많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앞다퉈 “조기 대선은 없다”고 목 놓아 말하는 것과 상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먼저 홍 시장은 미국 워싱턴DC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장이 섰는데 장돌뱅이가 안 가냐”며 조기 대선 출마를 적극 시사했던 홍 시장은 공백 상태인 정부를 대신해서 행정부의 한미 관계와 안보 문제 등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홍 시장은 지난 7일에도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대통령 대선캠프 선거대책본부장과 비공개 회동을 한 바 있다.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동시에 꾸준히 ‘좌파 저격’을 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홍 시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가 핵을 갖고자 하는 것은 방어용 핵이지 공격용 핵은 아닐 것”이라며 “북핵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못하면서 우리의 핵무장 문제는 비핵화 운운하면서 반대하는 종북 좌파들의 행태가 참 기이하다”고 질책했다.

이틀 뒤인 지난 12일에는 “국민이 정권교체를 원한다고 하지만 윤석열서 이재명으로 교체를 원한다는 건 아니다”라고도 밝혔다.

상대는 이, 해볼 만하다? 볕 드나 싶더니…
보수의 악몽, 다시 열리는 ‘명태균 게이트’

홍 시장은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국민은 65%나 되는데 이재명 의원의 지지율은 35% 근처에 불과하다”며 “정권교체 지수가 아무리 높아도 이재명으로 정권교체가 30% 이상 낮게 나오고, 이재명 혐오도가 60%에 가깝다. 우리 국민이 범죄자·난동범 대통령은 원치 않는다는 증좌”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꾸준히 대권주자에 오르는 오 시장이지만 그는 아직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았다.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중도 사퇴한 트라우마가 남은 탓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신중론을 펼치는 모습이다.

오 시장이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이번 조기 대선은 사실상 여당이 불리한 싸움으로 후보들은 질 각오로 덤벼야 한다. 두 번째는 본인이 장기간 공들이던 각종 서울시 프로젝트를 ‘누가’ 맡을 것인지 근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민주당 후보가 차기 서울시장으로 당선될 경우 ‘오세훈 지우기’라는 뼈아픈 과정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오 시장도 홍 시장과 마찬가지로 야당을 향해서는 날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서에 포함된 내란죄를 형법이 아닌 헌법으로 다루기 위해 제외한 것을 두고 “범죄 피고인 이재명 대표의 대선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아닌 ‘가짜 뉴스’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 대해서는 “지독한 ‘이중 기준’”이라며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라며 폐지하자는 사람들이 국민의 사적 대화까지 검열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당명서 ‘민주’를 빼든지, ‘민주공안당’으로 개명하라” 등의 비판도 제기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행보를 넓히고 있다. 이 의원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일정에 대해 “빠르면 2월 중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전망하며 4월 조기 대선을 암시했다.

이 의원은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탄핵이 인용될 거라는 것에 대해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절박함은 지금 탄핵 반대하시는 분들의 몫이고, 그러다 보니까 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거지 사실은 탄핵은 안정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확실한
장단점

그러면서 “대한민국서 이념적으로 좌우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단화돼있는지를 국민들이 봤을 것”이라며 “이제 대안이 돼야 하는 것이 개혁신당과 저 이준석”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정치에 대해서는 “법조인들의 정치서 벗어나야 한다”며 “새로운 판이 짜여서 그 안에서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 거지, 누구 감옥 보내자 이런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1월 복귀설’의 주인공이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근황도 눈여겨볼 만하다. 12·3 내란사태 이후 갈지자 행보를 보이던 한 전 대표는 친윤(친 윤석열)계와 크게 충돌한 뒤 직을 내려놓고 여의도를 떠났다.

간혹 온라인을 통해 목격담 등 근황이 전해졌지만 정치적 메시지를 내지 않고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한 전 대표는 홍 시장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 행사에 초청받았지만 탄핵 정국 등 국내 상황을 고려해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친한(친 한동훈)계로 꼽히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한 전 대표는 당 대표서 쫓겨난 것”이라며 “그는 쫓겨나면서도 ‘정치인이 국민을 지켜줘야 하지, 국민이 정치인을 지켜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 본격 복귀설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어 “지금도 잠시 뒤로 물러나 있을 뿐 정치를 그만둔 게 아니다”라며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복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가 정계에 컴백하더라도 중도-보수를 아우르는 정치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 체포 이후 국민의힘이 이른바 ‘극우’ 세력으로 똘똘 뭉친 지금, 한번 배신자로 낙인 찍힌 한 전 대표의 정치 활동 반경이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차기 대권주자 중 가장 부담감이 덜한 이유는 여권 전체를 휘감은 ‘명태균 게이트’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홍 시장과 오 시장, 그리고 이 의원은 정치 브로커인 명태균씨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2·3 내란 사태에 가려졌지만 명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끊임없이 여의도를 뒤흔들었고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체포 이후 비상계엄 후폭풍이 일단락되면서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명태균 게이트가 다시 정치권을 휩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밑서
조용히


야권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언론인 단체 소통방을 개설하는 등 각자의 자리서 몸풀기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김 지사는 경제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를 방문해 경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지난 13일에는 신년 언론 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 비상 경영 3대 조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수원시의 한 설렁탕집서 진행된 언론 간담회서 김 지사는 ‘윤석열·트럼프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슈퍼 민생 추경 ▲트럼프 2기 대응 비상체제 ▲기업 기 살리기 등을 ‘비상 경영 3대 조치’로 꼽았다.

김 지사는 “지금은 예산 조기 집행이 아니라 추경이 절실하다”며 “지난달 30조원 이상으로 주장했던 추경은 한 달이 지나 이젠 50조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지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민생 경제에 최소 15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민생회복지원금에는 최소 10조원 이상이, 미래 먹거리 투자에는 최소 15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지난 15일엔 “앞으로는 ‘법치의 시간’이며 이제 시급한 것은 ‘경제의 시간’”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경제의 시간표’는 내란의 완전한 종식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대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경제 퍼펙트스톰이 현실이 될 것”이라며 신속한 특단의 경제 대책을 주문했다.

현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이제 정치가 할 일을 해야 한다. 더는 내전과도 같은 진흙탕 싸움은 안 된다”며 “내란 종식, 경제 재건에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하며 저 역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김 전 지사는 야권 내에서도 유독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귀국 이후 곧바로 정치적 메시지를 내기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흐름을 읽는 듯한 모양새다. 김 전 지사 측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김 전 지사가)아직 크게 나설 때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김 전 지사도 윤 대통령 체포 당일에는 SNS를 통해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는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해결될 수 있는 위기는 아니다. 계엄과 내란 수사, 탄핵은 이제 법적 절차에 맡기고 대한민국은 미래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폭넓은 ‘민주주의 연대와 민생경제 연대’가 필요하다. 근본적인 정치·경제·사회 대개조, 대한민국 재설계를 위한 새판짜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압도적 1위 ‘어대명’ 이대로 굳혀지나?
“민생 집중” 조용한 행보 이어가는 도지사

한때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 역시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됐지만 지난달 16일 자녀 입시비리 등 혐의로 징역 2년 형이 확정돼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만기 출소 예정일은 2026년 12월15일로 조기 대선 출마는 어려운 상황이다.

혁신당 내에서는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고심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현실적인 문제 등 여러 고민이 있다. 당내서 (출마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람은)아직 없고, 다만 저울질하는 분들은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지사 등을 영입하거나 연합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현 상황에 비춰 봤을 때 민주당에서는 당내 경선 승리가 곧 대선 승리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1위를 지키는 한 이들이 야당 유력 대권주자로 굳히기는 쉽지 않다. 만일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다면 2, 3위를 앞다투던 후보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지만, 보수 내에서도 “이재명만 없으면 해볼 만하다”는 기대 심리가 깔려 있어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지지율이 오르는 이 기세를 몰아 재집권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고정 지지층 결집에만 사활을 걸고 조기 대선을 위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중도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은 ‘민생 안정’ ‘경기 회복’ ‘지방 정책’ 등 다방면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비해 보수 후보들은 하나같이 ‘이재명 때리기’에만 혈안이 돼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 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국민의힘은 그 행위를 옹호하고 있는데도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누구 하나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더 놀라운 것은 이 상황서 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은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급할수록
천천히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의 가장 큰 과제는 이 대표에 대한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꾸는 일이다. 설 연휴 이후 조용하던 대권주자들이 본격 행보에 나선다면 이 대표 측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탄핵 정국이 더디게 흘러가고 있어 연휴 전 (윤 대통령)구속이든 수사든 깔끔하게 매듭 짓고 싶은 민주당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지지율이 현재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며 “몰아붙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하든 여당에서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 방탄’ 프레임으로 걸고 넘어질 테니 강약 조절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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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