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구속 후…물 만난 잠룡들

푸른 뱀의 해, 승천 노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조기 대선 시계가 빨라졌다. 정치권에서는 6월 장미 대선을 확신하고 있다. 장거리서 단거리로 바뀐 레이스에 시시각각 변하는 정국까지, 여야 잠룡들이 설 연휴에도 느긋이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정치인에게 있어 명절 연휴는 여야를 막론하고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전국 팔도로 이어지는 귀성길에 눈도장을 찍거나 전통시장서 웃음꽃을 피우는 등 훈훈한 모습이 연출돼 심란한 시국에도 빼놓을 수 없는 ‘빅 이벤트’다. 이 시기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조기 대선 분위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여야 잠룡은 너나 할 것 없이 저마다 전략을 세우고 있다.

조기 대선
현실화?

현재 법조계에서는 오는 4월18일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이 퇴임하기 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마무리할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헌법 제68조 2항에 따라 대통령 궐위 시점으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 만큼 탄핵 심판 일정이 가장 큰 변수다. 만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2월 말에서 3월 초에 결정 나면 조기 대선은 이르면 4월, 늦어도 6월 사이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진보 진영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보수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을 비롯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등이 각종 여론조사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어 나머지 후보의 움직임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반대로 보수 진영서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준석 의원이 스피커를 키우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게다가 보수로 분류되는 차기 대권주자는 진보 쪽보다 두 배나 많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앞다퉈 “조기 대선은 없다”고 목 놓아 말하는 것과 상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먼저 홍 시장은 미국 워싱턴DC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 참석을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장이 섰는데 장돌뱅이가 안 가냐”며 조기 대선 출마를 적극 시사했던 홍 시장은 공백 상태인 정부를 대신해서 행정부의 한미 관계와 안보 문제 등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홍 시장은 지난 7일에도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대통령 대선캠프 선거대책본부장과 비공개 회동을 한 바 있다.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동시에 꾸준히 ‘좌파 저격’을 하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홍 시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가 핵을 갖고자 하는 것은 방어용 핵이지 공격용 핵은 아닐 것”이라며 “북핵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못하면서 우리의 핵무장 문제는 비핵화 운운하면서 반대하는 종북 좌파들의 행태가 참 기이하다”고 질책했다.

이틀 뒤인 지난 12일에는 “국민이 정권교체를 원한다고 하지만 윤석열서 이재명으로 교체를 원한다는 건 아니다”라고도 밝혔다.

상대는 이, 해볼 만하다? 볕 드나 싶더니…
보수의 악몽, 다시 열리는 ‘명태균 게이트’

홍 시장은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국민은 65%나 되는데 이재명 의원의 지지율은 35% 근처에 불과하다”며 “정권교체 지수가 아무리 높아도 이재명으로 정권교체가 30% 이상 낮게 나오고, 이재명 혐오도가 60%에 가깝다. 우리 국민이 범죄자·난동범 대통령은 원치 않는다는 증좌”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꾸준히 대권주자에 오르는 오 시장이지만 그는 아직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지 않았다.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중도 사퇴한 트라우마가 남은 탓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신중론을 펼치는 모습이다.

오 시장이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이번 조기 대선은 사실상 여당이 불리한 싸움으로 후보들은 질 각오로 덤벼야 한다. 두 번째는 본인이 장기간 공들이던 각종 서울시 프로젝트를 ‘누가’ 맡을 것인지 근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민주당 후보가 차기 서울시장으로 당선될 경우 ‘오세훈 지우기’라는 뼈아픈 과정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그런 오 시장도 홍 시장과 마찬가지로 야당을 향해서는 날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서에 포함된 내란죄를 형법이 아닌 헌법으로 다루기 위해 제외한 것을 두고 “범죄 피고인 이재명 대표의 대선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아닌 ‘가짜 뉴스’ ‘카카오톡 검열’ 논란에 대해서는 “지독한 ‘이중 기준’”이라며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라며 폐지하자는 사람들이 국민의 사적 대화까지 검열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당명서 ‘민주’를 빼든지, ‘민주공안당’으로 개명하라” 등의 비판도 제기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행보를 넓히고 있다. 이 의원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일정에 대해 “빠르면 2월 중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전망하며 4월 조기 대선을 암시했다.

이 의원은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탄핵이 인용될 거라는 것에 대해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절박함은 지금 탄핵 반대하시는 분들의 몫이고, 그러다 보니까 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거지 사실은 탄핵은 안정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확실한
장단점

그러면서 “대한민국서 이념적으로 좌우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극단화돼있는지를 국민들이 봤을 것”이라며 “이제 대안이 돼야 하는 것이 개혁신당과 저 이준석”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정치에 대해서는 “법조인들의 정치서 벗어나야 한다”며 “새로운 판이 짜여서 그 안에서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 거지, 누구 감옥 보내자 이런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1월 복귀설’의 주인공이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근황도 눈여겨볼 만하다. 12·3 내란사태 이후 갈지자 행보를 보이던 한 전 대표는 친윤(친 윤석열)계와 크게 충돌한 뒤 직을 내려놓고 여의도를 떠났다.

간혹 온라인을 통해 목격담 등 근황이 전해졌지만 정치적 메시지를 내지 않고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다. 한 전 대표는 홍 시장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 행사에 초청받았지만 탄핵 정국 등 국내 상황을 고려해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친한(친 한동훈)계로 꼽히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한 전 대표는 당 대표서 쫓겨난 것”이라며 “그는 쫓겨나면서도 ‘정치인이 국민을 지켜줘야 하지, 국민이 정치인을 지켜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 본격 복귀설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어 “지금도 잠시 뒤로 물러나 있을 뿐 정치를 그만둔 게 아니다”라며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복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가 정계에 컴백하더라도 중도-보수를 아우르는 정치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윤 대통령 체포 이후 국민의힘이 이른바 ‘극우’ 세력으로 똘똘 뭉친 지금, 한번 배신자로 낙인 찍힌 한 전 대표의 정치 활동 반경이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차기 대권주자 중 가장 부담감이 덜한 이유는 여권 전체를 휘감은 ‘명태균 게이트’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홍 시장과 오 시장, 그리고 이 의원은 정치 브로커인 명태균씨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2·3 내란 사태에 가려졌지만 명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끊임없이 여의도를 뒤흔들었고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체포 이후 비상계엄 후폭풍이 일단락되면서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명태균 게이트가 다시 정치권을 휩쓸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물밑서
조용히


야권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언론인 단체 소통방을 개설하는 등 각자의 자리서 몸풀기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김 지사는 경제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를 방문해 경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지난 13일에는 신년 언론 간담회를 열고 ‘대한민국 비상 경영 3대 조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수원시의 한 설렁탕집서 진행된 언론 간담회서 김 지사는 ‘윤석열·트럼프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슈퍼 민생 추경 ▲트럼프 2기 대응 비상체제 ▲기업 기 살리기 등을 ‘비상 경영 3대 조치’로 꼽았다.

김 지사는 “지금은 예산 조기 집행이 아니라 추경이 절실하다”며 “지난달 30조원 이상으로 주장했던 추경은 한 달이 지나 이젠 50조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지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민생 경제에 최소 15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민생회복지원금에는 최소 10조원 이상이, 미래 먹거리 투자에는 최소 15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지난 15일엔 “앞으로는 ‘법치의 시간’이며 이제 시급한 것은 ‘경제의 시간’”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경제의 시간표’는 내란의 완전한 종식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대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경제 퍼펙트스톰이 현실이 될 것”이라며 신속한 특단의 경제 대책을 주문했다.

현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이제 정치가 할 일을 해야 한다. 더는 내전과도 같은 진흙탕 싸움은 안 된다”며 “내란 종식, 경제 재건에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하며 저 역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김 전 지사는 야권 내에서도 유독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귀국 이후 곧바로 정치적 메시지를 내기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흐름을 읽는 듯한 모양새다. 김 전 지사 측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김 전 지사가)아직 크게 나설 때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김 전 지사도 윤 대통령 체포 당일에는 SNS를 통해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는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해결될 수 있는 위기는 아니다. 계엄과 내란 수사, 탄핵은 이제 법적 절차에 맡기고 대한민국은 미래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폭넓은 ‘민주주의 연대와 민생경제 연대’가 필요하다. 근본적인 정치·경제·사회 대개조, 대한민국 재설계를 위한 새판짜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압도적 1위 ‘어대명’ 이대로 굳혀지나?
“민생 집중” 조용한 행보 이어가는 도지사

한때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 역시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됐지만 지난달 16일 자녀 입시비리 등 혐의로 징역 2년 형이 확정돼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만기 출소 예정일은 2026년 12월15일로 조기 대선 출마는 어려운 상황이다.

혁신당 내에서는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고심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현실적인 문제 등 여러 고민이 있다. 당내서 (출마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람은)아직 없고, 다만 저울질하는 분들은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지사 등을 영입하거나 연합하는 방안 등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현 상황에 비춰 봤을 때 민주당에서는 당내 경선 승리가 곧 대선 승리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1위를 지키는 한 이들이 야당 유력 대권주자로 굳히기는 쉽지 않다. 만일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다면 2, 3위를 앞다투던 후보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가지만, 보수 내에서도 “이재명만 없으면 해볼 만하다”는 기대 심리가 깔려 있어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지지율이 오르는 이 기세를 몰아 재집권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고정 지지층 결집에만 사활을 걸고 조기 대선을 위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중도 확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야당은 ‘민생 안정’ ‘경기 회복’ ‘지방 정책’ 등 다방면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비해 보수 후보들은 하나같이 ‘이재명 때리기’에만 혈안이 돼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한 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국민의힘은 그 행위를 옹호하고 있는데도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누구 하나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더 놀라운 것은 이 상황서 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은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급할수록
천천히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의 가장 큰 과제는 이 대표에 대한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꾸는 일이다. 설 연휴 이후 조용하던 대권주자들이 본격 행보에 나선다면 이 대표 측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탄핵 정국이 더디게 흘러가고 있어 연휴 전 (윤 대통령)구속이든 수사든 깔끔하게 매듭 짓고 싶은 민주당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지지율이 현재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며 “몰아붙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어떤 행동을 하든 여당에서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 방탄’ 프레임으로 걸고 넘어질 테니 강약 조절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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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 ‘북풍 공작’ 못 건드리는 내막

정보사 ‘북풍 공작’ 못 건드리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헌정사상 처음 개입된 정보사 전·현직 간부들까지 구속 기소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만 남은 상황이다. 검찰은 불법 계엄의 명분으로 꼽히는 ‘북풍 공작’ 의혹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계엄에 처음 개입됐다. ‘북풍 공작’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베일에 싸여야만 하는 업무와 안가 위치까지 언급되고 있다. 검찰은 노상원·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구속 기소했으나 북풍 공작 의혹에 대해선 규명하지 못했다. 수사할 단서가 부족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내용 전무 수사 못해 비상계엄에 관여한 군·경 수뇌부는 모두 재판에 넘겨졌다. 남은 건 윤석열 대통령뿐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12·3 계엄 사태 관련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NLL)서 북의 공격 유도’ 등 북풍 공작 의혹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지난달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기소를 시작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문 전 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노 전 사령관 등 군·경 지휘부 9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통해 폭동을 일으켰다고 규정하고, 내란중요임무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군·경 수뇌부 공소장서 윤 대통령을 내란 공범이자 우두머리로 규정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에도 조사에 응하지 않았던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적힌 ‘북방한계선서 북의 공격을 유도’ ‘오물 풍선’ 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 내용은 윤석열정부가 북한과의 군사 충돌을 의도적으로 유도해 비상계엄의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다. 이 내용이 김 전 장관을 필두로 한 지휘부서 구체적으로 논의됐다면 외환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근거로 그가 사실상 김 전 장관에 이은 ‘계엄 2인자’라고 봤다. 그러나 검찰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며 들여다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수사기관서 파악한 근거와 증거만으로는 수첩에 적힌 내용이 군 수뇌부 논의 내용을 적은 것인지 노 전 사령관 혼자만의 생각이나 상상을 적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조사 과정서 관련 내용을 노 전 사령관에게 여러 번 물었으나 진술거부권 행사로 인해 진척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련 물적 증거 부족…노, 진술거부권까지 행사 계엄 당시 상황만 수두룩 “추가 수사 필요하다” 그러나 검찰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이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입증을 위한 ‘스모킹건(결정적 직접 증거)’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노 전 사령관은 당시 김 전 장관에게 인사를 건의하고, 계엄 준비 과정서도 문 전 사령관 등에게 적극적으로 지시하는 등의 정황이 조사 과정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을 재판에 넘기긴 했으나 수첩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수사가 가능한 부분”이라며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게 아니라 아직 규명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규명하지 못한다면 야권서 재발의한 ‘내란 특별검사법’도 또 하나의 규명 카드가 될 수 있다. 북풍 공작이 있었다는 의혹의 전모를 밝혀내자는 게 특검법 취지지만, 외환죄 적용이 가능할지는 불분명하다. 외환죄 역시 내란죄처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이 발의한 ‘윤석열정부의 내란·외환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보면 ▲해외 분쟁지역 파병 ▲대북 확성기 가동 ▲대북전단 살포 대폭 확대 ▲무인기 평양 침투 ▲북한의 오물 풍선 원점 타격 ▲북방한계선서의 북한의 공격 유도 등을 통해 ‘전쟁 또는 무력 충돌을 유도하거나 야기하려고 한 혐의’가 수사 범위로 명시됐다. 야권에선 외환죄 중 이번 사안에 적용 가능한 혐의로 형법 제92조(외환유치죄) 또는 제99조(일반이적죄)를 꼽고 있다. 외국과 통모해 전투 행위를 개시하거나 항적한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게 외환유치죄다. 일반이적죄는 우리나라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한다. 이를 준비하거나 음모하는 단계에 그쳐도 처벌 대상이다. 왜 빠졌나 문제는 외환죄 적용 여부를 둘러싼 쟁점이 다양한 데다 실제로 처벌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북한 공격을 유도하려 했다면 ‘군사상 이익을 해하는 행위’를 모의한 것으로 보고 일반이적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북한을 외국 또는 적국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의 검찰 공소장을 보면 지난달 3일 오후 11시59분 윤승영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은 조 청장에게 “국군방첩사령부서 한동훈 체포조 5명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는 내용 등을 보고했다. 윤 기획관은 이현일 수사기획계장에게 “경찰청장에게 보고가 됐으니 방첩사에 (체포조)명단을 보내주라”고 지시했고,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에게도 전화해 조치 내용을 보고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앞서 오후 11시32분 이 계장은 구인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으로부터 2차례 “방첩사 5명, 경찰 5명, 군사경찰 5명이 한 팀으로 체포조를 편성해야 한다. 경찰관을 국회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계장이 “도대체 누구를 체포하는 겁니까”라고 묻자 구 과장은 “이재명, 한동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전창훈 수사기획담당관은 이 계장의 보고를 받고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에게 전화해 “군과 합동수사본부를 차려야 하는데 국수본 자체적으로 인원이 안 되니 서울청 차원서 수사관 100명, 차량 20대를 지원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다. 민주당은 이를 두고 체포 대상이 된 인원들을 납치한 후 사살하려 한 이른바 ‘백령도 작전’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 수첩에는 비상계엄과 관련해 ‘국회 봉쇄’라는 표현과 민주당 이성윤 의원 등 일부 대상자의 실명을 나열하고 정치인 등을 ‘수거 대상’이라고 적었다. 민주당 한 국방위원은 “계엄 계획 단계서 백령도를 지키는 해병대 6여단이나 서해 NLL을 맡은 평택 해군 2함대와의 협조 요청 문건 등이 발견되면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수사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령도 작전 의혹 보니… 군은 NLL 일대서 재개된 포사격 훈련이 대남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최근 정례 브리핑서 “서해상의 대규모 훈련은 9·19 합의 효력정지 이후 계획된 정례적 훈련을 실시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상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올해는 서해 NLL이 가장 안정적으로 관리됐던 해”라고 강조했다. 김명수 합참의장도 지난 14일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북풍이나 외환유치라는 말을 하는데 군은 그렇게 준비하거나 계획한 게 절대 없다는 것을 제 직을 걸고 말한다”면서 “외환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군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양 무인기 의혹과 관련해 김 의장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비밀을 유지한 상태서 상대방에게 심리적 압박으로 선택을 제한해 혼란을 주고, 그래서 이익을 얻는 전략”이라며 “누군가가 제가 카드를 뭘 들고 있는지 상대에게 알려주거나 수사해서 정확하게 보겠다고 하면 이 게임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수처도 북풍 공작과 관련한 수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부승찬 의원에 따르면 공수처는 최근 드론작전사령부(이하 드론사) 사정을 잘 아는 군 관계자로부터 ‘드론사 예하 101드론대대와 드론교육연구센터가 지난달 중순부터 활용 가능한 문서세단기를 모두 동원해 자료를 삭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에는 드론교육연구센터가 최근 모든 컴퓨터를 포맷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드론사는 국군의 드론(무인기) 작전을 전담하는 국방부 직할부대다. 101드론대대는 김포와 백령도 지역의 드론 작전을 총괄한다. 드론교육연구센터는 드론 전문 인력 양성과 드론 전술 개발 등을 위해 드론사 산하에 설치한 교육기관이다. 검, 관련자 기소 후 보완 수사 중…특검 필요성도 군, 평양 무인기·드론사 은폐 의혹 확인 안 해줘 공수처는 드론사의 대규모 자료 파기 의혹 제보가 최근 불거진 평양 무인기 의혹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1일 북한 외무성은 남한서 보낸 무인기가 같은 달 3일과 9일, 10일 밤 평양에 침투해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은 무인기가 백령도서 출발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백령도 지역을 관할하는 드론 부대는 101드론대대다. 공수처가 파악한 내용과 101드론대대의 대규모 문서 파기가 사실이라면 평양 무인기 사건과 연관됐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합동참모본부와 드론사는 관련 사실 일체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김 전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북한에 무인기를 침투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최근에는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에 윤 대통령이 직접 관여했다는 군 내부 증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드론사 등의 문서 폐기 정황은 공수처가 수사 중인 윤 대통령의 외환 혐의 관련 증거 은폐 의혹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공수처가 가장 우선적으로 조사하는 건 비상계엄 실행 과정서 윤 대통령의 역할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경고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계엄에 가담한 군·경 수뇌부 다수는 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체포 등을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공수처도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곽 전 사령관은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국회 내에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국회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엔 이 전 사령관에게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전 장관이 여 전 방첩사령관에게 민주당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 10여명에 대한 체포·구금을 지시했고 실제로 체포조가 운영된 사실도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