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을사년엔 더 어둡다

2025년 새해다. 지난해 부동산시장 결산과 올해 전망 및 달라지는 부동산 제도를 살펴보자.

지난해 부동산시장은 정책 영향 등으로 차별적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 외 지역의 집값과 청약 흥행 양극화가 극명했고, 서울 내에서도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마·용·성’ 등 핵심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서 집값 회복은 더딘 상황이다.

지역별 집값 양극화를 견인한 것은 수도권의 재건축 아파트였다.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선호 현상이 계속되자 건설사들은 미분양 우려가 적은 수도권 공급 위주로 늘려왔다.

지난해 수도권서 14만5560만가구, 지방은 11만3227가구가 공급됐다. 2023년 말 조사된 지난해 계획 물량 26만5439가구 중 97%가 실제 공급됐고, 87% (22만9904가구)는 분양으로 이어졌다. 최근 3년간 계획 물량 대비 실적이 평균 71% 수준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높은 실행률이다. 

강남 3구
마·용·성

2023년 전국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13.64대 1이었다. ▲서울 154.5대 1 ▲수도권 21.55대 1 ▲지방 6.62대 1 등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 회복 지역이 늘어나 시세차익을 노리는 ‘로또 청약’과 신축·아파트 선호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로 큰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강남권 ‘대어급 신축’ 아파트는 서울 평균 청약 경쟁률도 2배가량 웃돌며 강남, 서초구 2곳에만 올해 사용된 전체 청약 통장 수의 약 58%가 몰렸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공급이 이어지며 평균 분양가도 급등했다. 지난해 서울의 3.3㎡당 평균 아파트 분양가격은 5456만원으로, 2023년 말 3508만원보다 55.5%(1948만원) 증가했다. 부동산R114가 2000년부터 분양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 연간 기준으로 최대 오름폭이다. 

반면 전국 기준 3.3㎡당 평균 아파트 분양가는 2023년(1800만원)보다 239만원 증가한 2039만원으로 집계됐다. 제주의 평균 분양가격은 2614만원으로 서울 다음으로 높았다. 이어 ▲부산 2356만원 ▲울산 2125만원 ▲대전 2035만원 ▲대구 2019만원 ▲경기 2006만원 순이었다.

임기 중 270만호 공급 목표를 설정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공급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1·10 대책을 통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1기 신도시의 선도지구 사업을 발표했다. 또 비아파트 수요 진작을 위해 소형 신축주택에 대한 세 부담을 낮추고, 관련 건축과 입지 규제 등을 완화했다.

이 외에도 공공 주택 14만호 이상 공급 등을 통해 공급에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주택 공급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계속되자, 정부는 또다시 8·8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놨다. 여기에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규 택지 공급 확대, 재건축·재개발 촉진법(특례법)을 통한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의 동시 수립, 정비사업의 수익성 제고를 위한 용적률 상향,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한 공공 신축 매입 확대, 미분양 매입 확약, 35조원 규모 PF대출 보증 등이 포함됐다.

수도권 공급 재건축 분위기 고조
지역별·중저가 양극화 현상 심각


이 같은 정책의 후속 조치로 지난해 11월 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가 발표됐다. 해제와 함께 신규 택지가 조성됐고, 서울에서는 강남 생활권인 서초구 서리풀지구(2만호), 경기도에서는 고양 대곡 역세권(9000호), 의왕 오전왕곡(1만4000호), 의정부 용현(7000호) 등 5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민 동의, 사업자 수익성 확보나 분담금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은 상황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분당(1만948가구), 일산(8912가구), 평촌(5460가구), 중동(5957가구), 산본(46 20가구) 등 1기 신도시 내 13개 구역 3만6000가구가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선도지구’로 선정됐다.

선도지구로 선정되면 안전진단 완화·면제,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상향, 인허가 통합심의 등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혜택을 받는다. 정부는 선도지구의 2027년 착공해 오는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또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출을 주택담보대출(정책 대출, 전세 대출, 중도금 대출 등)을 포함한 모든 대출 상품에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대출 규제 강화의 일환으로 이른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 수도권 주담대에 대해선 1.2%포인트(p), 지방에서는 0.75%p의 스트레스 금리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담대 만기를 최장 50년서 30년으로 줄이면서 대출 한도가 크게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연초부터 꾸준히 올라 8월 넷째 주 70.5로 정점을 찍은 서울의 매수심리지수(KB부동산 발표 기준)는 스트레스 DSR 규제 적용이 시작된 9월 57.8까지 급락했다.

매수우위지수는 아파트 매매 문의량을 알 수 있는 수치로, 지수가 100을 초과할수록 ‘매수자가 많다’를, 100 미만일 경우 ‘매도자가 많다’를 의미한다.

잇단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 월별 매매 거래량도 2023년 12월 1790건서 지난해 7월 9518건으로 7개월 연속 증가하다가, 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8월부터 7609건으로 꺾이기 시작해 스트레스 DSR 적용이 시작된 지난해 9월에는 4951건으로 떨어졌다. 대출 길이 막힌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기 더 어려운 여건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십억원에 이르는 아파트가 대다수인 강남 등 상급지에선 대출 의존도가 크지 않았던 탓에, 서울 지역 내에서도 중저가 아파트와의 집값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1분위(하위 20% 평균) 평균은 4억9061만원, 5분위 평균(상위 20% 평균)은 26억8774만원으로 5분위 배율이 5.5배로 벌어졌다.

이는 2008년 통계 조사 이래 역대 최대 격차다. 전국의 아파트 5분위 배율은 10.93으로 역시 역대 최대 격차를 이어갔다.

집값 상승 피로감에 전세 수요는 이탈했다. 전셋값 상승과 대출 규제 등으로 일부 수요자들은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는 사례도 속출했다. ‘전세의 월세화’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는 10월 대비 1.4p 상승한 119.3을 기록해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가장 높다.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을 보면 지난해 11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서 월세 비중은 44.1%로 10월(41.2%)보다도 크게 상승했다. 전세 사기 여파에 전세 기피가 심화한 빌라 등 다세대 주택에선 이미 월세 거래가 전세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지난해 1~11월 전국 연립·다세대 주택 임대 거래 중 월세 거래는 6만6194건으로, 2023년보다 10.1% 늘었다. 반면 전세 거래량은 5만7604건으로 같은 기간 13.3% 줄었다.

2025년 부동산시장도 경기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반기는 대통령 탄핵 정국과 대출 규제가 지속되면서 관망세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다만 전반적으로 분양과 입주 물량 감소로 수도권에서는 전셋값과 매매값이 자극받을 요인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기대되는 만큼 부동산시장에 다시 자금이 몰린다면 수도권 주요 지역 중심의 수요 양극화가 심화될 거라는 분석이다.

올해도 ‘얼죽신’ 선호 지속
‘상저하중’ ‘전약후강’ 전망

국내 주요 25개 건설사는 올해 전국 158개 사업장서 총 14만6130가구(민간 아파트 기준·임대 포함)를 분양할 예정이다. 이는 2000년 이후 최저치로, 지난해(22만2173가구)보다 34% 줄어든 수준이다. 지난해 실제 분양도 계획 물량의 83.7%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실제 물량은 이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공급 물량(-35.7%)이 가장 크게 줄어든다. 서울은 18% 감소한다. 지난해 청약 광풍이 불었던 강남권 등의 분양도 올해에는 대거 줄어든다. 지난해 강남권에서는 8개 단지 2781가구가 일반분양으로 나왔는데, 올해에는 7개 단지 2113가구로 수백가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당장 올해 전국 입주 물량도 총 26만3330가구로, 지난해 36만4058가구 대비 10만가구 이상의 큰 물량 감소가 예상된다. 분양과 입주 물량은 각각 주택 공급의 선행·후행 지표 역할을 한다. 입주 물량이 당장 시장에 공급되는 주택이라면, 분양 물량은 공사를 거쳐 2~3년 뒤 시장에 공급될 주택이다.

두 물량이 동시에 줄어드는 것은 시장 상황 악화로 몇 년 전부터 아파트를 덜 지었고, 침체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더 지을 계획이 없다는 의미다.

경기침체 외에도 탄핵 정국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 공급 정책 동력도 떨어지면서 불안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비사업 기간을 대폭 줄인다는 내용의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 통과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고, 현 정부가 추진하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도 전망이 어둡다.

역대 최대치로 목표를 잡은 공공주택 착공 및 인허가 목표도 국정 리더십 공백으로 정책 추진 동력이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상황이 이렇자 주택 수요가 높은 서울 내에서는 전셋값과 집값이 자극받을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출 규제 지속과 탄핵 정국으로 매수 심리가 올 상반기 다소 눌릴 것으로 전망하나, 상황에 적응되면 결국 주요 지역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본격적인 공급 절벽으로 전세 가격이 불안해지면서다.

주택 수요자들이 주택을 보유하는 평균 기간을 고려했을 때 수개월 정도의 탄핵 이슈로 향후 수요를 짐작할 수 없겠다. 다만 주택 공급 상황만 보았을 땐 당장 올 상반기 중 지역을 불문하고 전셋값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출 부담에 중저가로 수요가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하반기로 갈수록 공급 축소가 부각돼 이는 결국 시차를 두고 집값 상승으로 나타나게 될 전망이다. 

치솟는
전세가

한 부동산 전문가는 “2025년 부동산시장은 ‘상저하중’이 예상되는데, 특히 탄핵 정국과 1%대 경제성장률 전망으로 전반적으로 주택시장의 활발한 움직임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다만 하반기에는 공급 부족에 따른 전셋값 상승이 매매시장에 영향을 주면 수도권 일부에서는 상승 전환 가능성이 있다며 지방 부동산은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올해에는 탄핵, 경기침체, 강력한 대출 규제 등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도 있지만 금리 하향 조정, 주택시장 진입 인구 증가, 공급 부족 누적 등 상승 요인이 더 커 수도권과 일부 광역시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전했다. 

주산연은 최근 발표한 ‘2025년 주택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집값이 3~4월까지 약세, 중반기 이후에 강세를 보이는 ‘전약후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간 상승률은 전국은 0.5% 하락, 수도권 0.8% 상승, 서울 1.7% 상승할 것으로 보았다.

2025년 부동산시장엔 큰 변화가 예고된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한편 서민과 청년층을 위한 금융 지원이 확대되고 주택 취득 관련 세제 혜택도 커진다. 다음은 새해 달라지는 부동산 제도들이다.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 절반 수준으로= 올해 1월부터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약 1.2~ 1.4% 수준이었던 5대 시중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가 올해엔 0.6~0.7% 수준으로 낮아진다. 해당 혜택은 올해 1월 중순 이후 신규 대출에 적용된다.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요건도 완화된다. 부부 합산 연소득 기준이 기존 1억3000만원서 2억5000만원으로 상향된다. 올해부터 3년간 출산한 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대출 기간 중 추가 출산 시 금리 우대 폭도 기존 0.2% 포인트서 0.4% 포인트로 확대된다. 

올 7월부터는 스트레스 DSR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도입된다. 스트레스 DSR은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가늠하는 제도로 시행 이후에는 대부분의 금융권 대출 한도가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권 대출을 고려 중이라면 7월 이전에 대출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지방 주택 사면 1주택자 혜택 유지= 지방 소멸 방지를 위해 인구 감소 지역과 비수도권 주택 취득에 대한 세제 혜택이 강화된다. 공시가격 4억원 이하 주택을 신규 취득할 경우 기존 1주택자로 간주해 세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는 서울에 집을 보유한 사람이 지방에 주택을 하나 더 구입하면 2주택자가 돼 세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부터 지방에 있는 집을 하나 더 사더라도 1주택자로 인정해준다. 비수도권서 전용면적 85㎡(약 25평) 이하 또는 6억원 이하 미분양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도 혜택이 적용된다.

주택을 매도하거나 보유할 때 내는 세 부담도 완화된다. 양도소득세는 취득 시 공시가격 기준으로 12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종합부동산세는 공제 한도가 12억원까지 확대된다. 장기 보유(15년 이상) 또는 70세 이상 고령자는 최대 80%의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청년층에 분양가 80% 저리 대출= 청년 주택드림대출도 출시된다.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청년층을 위해 분양가의 최대 80%까지 낮은 금리(최저 2.2%)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대상은 만 19~34세 무주택 청년으로 연소득 7000만원 이하(부부 합산 1억원 이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대상도 확대된다. 연소득 7000만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뿐 아니라 배우자까지 청약저축 납입액의 40% 한도서 연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청년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경우에도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이 배우자에게까지 확대된다. 비과세 한도는 500만원이다.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가능= 올해 6월부터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현재는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 또 기존 ‘재건축 안전진단’ 명칭이 ‘재건축 진단’으로 바뀌며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기 전까지 진단을 통과하면 된다.

규제 완화 조치로 재건축을 위한 진입 문턱이 낮아지는 동시에 재건축 기간이 최대 3년 가까이 단축될 전망이다. 아울러 재건축 등 정비사업 시 주민 의사결정 과정에 전자 방식을 일반적으로 적용하도록 해 의사결정도 크게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3~4월 약세
중반 후 강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주도하던 도심복합사업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안이 개정된다. 신탁사와 리츠(부동산 투자회사) 등이 사업자로 참여해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준주거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최대 700%까지 상향된다. 다만 개발 이익의 일부는 공공주택으로 환원해야 한다.

올해부터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주택 공급 확대와 금융 비용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될 예정이며, 특히 서민·청년층·고령자 등 다양한 계층을 위한 맞춤형 혜택이 강화된 점이 특징이다.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