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HL홀딩스가 자사주 무상 출연 계획을 철회했다. 주변의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참에 후계자들이 소유한 투자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향후 승계 과정에서 현금 창구로 활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분위기다.
HL홀딩스는 지난달 26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자기주식 무상 출연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부터 계속된 극심한 반대를 수용한 것이다. HL홀딩스는 지난달 11일 자사주 47만193주를 신설 비영리재단에 무상 출연하고, 나머지 자사주 9만527주를 소각하는 방침을 공시한 바 있다. 무상 출연이 계획됐던 자사주는 발행주식 중 4.76%, 보유 자사주(56만720주)의 84%에 달하는 규모였다.
계획 백지화
HL홀딩스 측은 ‘사회적 책무 실행’ 차원에서 비영리재단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해석했다. HL만도·HL위코 등 그룹 내 핵심 계열사가 HL홀딩스 지배하에 놓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너 일가는 경영권을 제약받는 일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했다.
기업이 공익재단에 자사주를 넘기면,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는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활용이 가능해진다.
다만 자사주를 지배력 확보 수단으로 쓰고자 한 계획은 2대 주주인 VIP자산운용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자사주를 무상 출연하면 31.58%였던 특수관계인(정몽원 회장 외 6인) 지분율은 36%대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HL홀딩스 2대 주주인 VIP자산운용(지분율 10.41%)과의 지분율 격차가 자사주에 비례해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자사주가 이전되면 주주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반발을 불러왔다. 통상 자사주를 무상 출연하면 재무제표에 손실로 잡힌다. HL홀딩스가 무상 출연을 결정한 자사주는 지난달 22일 종가 기준 약 161억원대 가치를 지녔는데, 회사 전체 이익이 줄면 주식 1주당 가치는 희석된다. 소액주주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이유다.
무상 출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향후 지분 승계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가늠하는 건 더욱 힘들어졌다. 정 회장의 후계자인 장녀 정지연씨와 차녀 정지수씨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두 사람은 올해 3분기 기준 HL홀딩스 지분을 1.14%씩 쥐고 있을 뿐이다.
승계 작업 시 믿을 만한 구석
현금 여력 키우도록 간접 지원
이마저도 10년 만에 급격히 상향된 수치다. 2014년을 끝으로 HL홀딩스 주식 취득에 나서지 않았던 두 사람은 올해 1분기가 돼서야 지분율을 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지분 취득에 나설 경우 ‘로터스프라이빗에쿼티(이하 로터스PE)’가 활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로터스PE는 2020년 11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사모펀드 운용사로, 지연씨와 지수씨가 50%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로터스PE는 지난해 매출 26억원과 함께 순이익 42억원을 달성하는 등 설립 이후 꾸준히 성장했다. 2020년 20억원이었던 총자본을 지난해 64억원으로 끌어올리는 등 꾸준히 배당 여력을 키우고 있다.
로터스PE는 다른 사모펀드 운용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펀드를 운용하는 방식을 취했고, HL그룹은 유력 투자자로 나서곤 했다. ‘한국자산평가’ 인수 및 매각 과정에서 이 같은 흐름이 잘 드러난다.
로터스PE는 ‘캑터스PE’와 손잡고 2021년 초 700억원에 한국자산평가 지분 84%를 확보했다. 인수를 위해 ‘씨엘바이아웃제1호사모투자’가 설립됐고, HL그룹 산하 ‘HL디앤아이한라’는 340억원을 투자했다.
한국자산평가는 로터스PE-캑터스PE 측에 인수된 지 2년여 만에 쏠쏠한 수익을 남겼다. 씨엘바이아웃제1호사모투자는 지난해 말 한국자산평가 매각과 함께 청산 수순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HL디앤아이한라는 600억원대 차익을, 로터스PE는 설립 3년 만에 이정표가 될 만한 투자 이력을 확보했다.
쏠쏠한 활약
이후 HL홀딩스의 100% 자회사인 ‘HL위코’가 로터스PE의 주요 투자자로 부각됐다. HL위코는 로터스PE가 2021년 9월 ‘노앤파트너스’와 손잡고 ‘넥스트레벨제1호사모펀드’를 결성할 당시 1000억원을 투입했으며, 같은 해 11월 캑터스PE와 로터스PE가 공동 조성한 ‘클로버사모투자합자회사’에 330억원을 투입했다.
HL위코는 2022년 7월 로터스PE가 키움캐피탈,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윌비에스엔티’를 1700억원대에 인수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전략적투자자로 참여한 HL위코는 500억원을 투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