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논쟁이 국회로’ 상법 개정안 모순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28 10:50:57
  • 호수 1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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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헤지펀드 ‘누구 손잡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민주당은 장하성·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이론과 활동을 토대로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이론을 20년 넘게 반박하는 사람은 장 전 실장의 사촌 동생 장하준 교수였다. 사촌의 20년 논쟁은 국회로 갔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6월부터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내용이 담긴 법안은 정준호 의원이 처음 대표 발의했다. 

회사서 주주로
충실의무 확대 

정 의원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 상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해 주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부과하려고 한다”는 취지로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훈식 의원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의 이익’으로, 박주민 의원은 ‘회사와 총주주’로 확대하길 원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월3일 한국 거래소를 방문해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6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주요 선진국에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7월 발표된 정부의 ‘역동경제 로드맵’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내용은 빠졌다.

재계는 “이사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줘서 일상적인 경영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고, 회사와 주주의 이익 구분은 불가능하다”고 반발한다.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항구적으로 존속하길 원하는 법인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미래의 이익을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 등 경영행위도 한다.

하지만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주주로서는 배당금이 줄어든다고 판단할 뿐이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5일 발의한 법안은 “재계의 반발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현행 상법 규정을 제1항으로 존속시키고,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제2항을 신설하려고 한다.

그는 제3항을 신설해 “주주총회서 최대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소수주주만으로 결의한 안건에 대해서는 이사가 제2항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본다. 다만 이 경우 소수주주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김 의원은 제3항 신설에 대해 “주주총회서 소수주주만으로 결의한 안건에 대해서는 면책을 줌으로써 소수주주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 같은 상법 개정은 제21대 국회서도 추진됐다. 그 배경에는 LG화학이 추진했던 배터리 사업 부문 물적분할이 있었다. LG화학은 2020년 9월 “배터리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하겠다”고 발표했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은 미래가치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LG화학 주주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LG화학은 물적분할을 마무리해 LG에너지솔루션으로 독립시켰고, LG화학의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대기업 사업구조 개편 발단
민주당 개정 재추진 계기로

지난 21대 국회서 이용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제22대 국회서 같은 법안이 연이어 발의된 데 이어 다시 쟁점이 됐던 계기는 두산의 사업 재편이다. 두산은 지난 7월21일 계열사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은 1대 0.031 비율로 합병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 중인 두산밥캣 지분 46%와 일반주주의 두산밥캣 지분 54%는 모두 두산로보틱스에 넘겨 100% 자회사가 되고, 두산밥캣 기존 주주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준다는 취지였다. 

이는 곧 큰 반발을 불러왔다. 두산밥캣은 2023년 기준 매출 9조7000억원에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을 기록했지만, 두산로보틱스는 매출 530억원에 영업적자 158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룹의 두산밥캣에 대한 지분은 종전 13.8%서 42%로 올라간다.

반발이 이어지자,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합병 비율을 0.043으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상법 제382조의3서 규정한 ‘주주의 의무 대상’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서 크게 불거졌던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서도 주요 쟁점이었다. 1996년에는 비상장된 에버랜드 주식은 장외시장서 1주당 약 8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었고,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평가한 가치는 1주당 10만원이었다. 

이사회는 이건희 당시 회장과 주요 임직원 및 주주들을 상대로 전환사채를 1주당 7700원에 발행했다. 임직원과 주주들은 모두 전환사채를 인수할 권리를 포기했고, 이 전환사채들은 이건희 회장의 자녀 4남매에게 배정됐다. 이로써 이재용 회장은 지분 25.1%를 가진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됐다. 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에 포함되는 계열사였다.

전환사채를 저가로 발행한 행위는 검찰이 에버랜드의 전·현직 대표이사들에게 배임죄를 적용했던 근거의 핵심이었다.

대법원은 “주식회사와 별개인 주주들에 대한 관계서 직접 그들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회사 지분비율의 변화가 기존 주주 자신의 선택에 기인한 것이라면 지배권 이전과 관련해 이사에게 임무 위배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이 해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1세기 이후 대기업의 이런 경영행위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눈에 띄어 대대적인 공격을 당하는 이유가 됐다.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례는 ‘SK 대 소버린’과 ‘삼성 대 엘리엇’이다.

모나코 국적의 헤지펀드 소버린은 한국에 자회사 크레스트시큐리티를 설립해 2003년 4월 SK의 지분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4월16일에는 14.99%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 SK네트웍스에 대한 지원을 반대했고, 손길승·최태원 회장 등 SK㈜ 경영진들의 사임을 요구했다.

불지핀
사례들


SK네트웍스는 SK글로벌에 대한 분식회계 사태 이후 파산 직전까지 몰린 부실 기업이었지만, SK그룹의 모태였다. 그래서 그룹 차원서 살리려고 했던 것이었다. 

소버린은 2004년 3월 주총서 이사 후보 5명을 추천했고, 정관 개정안을 제안했다. 주총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버린은 2005년 최 회장을 이사직서 해임하기 위한 임시주총을 진행하려고 했다. 이사의 배제 요건에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자를 포함해 최 회장을 퇴출하려고 한 것이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소버린은 2005년 7월 주식을 전부 매각했다. 소버린이 거둔 주식매매 차익은 약 8000억원이었다. 배당금과 환차익까지 합치면 1조원이 넘는다.

삼성은 2015년 5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합병비율은 1대 0.35였다. “제일모직의 주식이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반발이 이어졌다. 당시 제일모직의 자산은 약 9조5000억원으로 평가받았고, 삼성물산의 자산은 29조5000억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의 지분을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은 보유하지 않았다. 또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와 관련해, 이 회장이 가진 지분은 0.6%였지만, 삼성물산은 4.1%를 보유했다. 이 회장은 합병 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고,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전자도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엘리엇은 합병 이전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갖고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상당히 과소평가됐고, 합병 조건도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고 반발했다. 이어 ▲합병금지 가처분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등을 연이어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합병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서 각각 진행된 임시주총서 승인됐다. 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기관은 국민연금공단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서도 크게 문제가 됐던 사안이 “박근혜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합병 찬성 쪽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었다. 엘리엇은 이를 근거로 2018년 7월 ISDS(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를 신청했고, PCA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손해배상금 5358만달러와 지연이자, 엘리엇이 지출한 법률비용 289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는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가 각하했고, 지난 9월 항소를 제기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이 고평가됐던 이유 중 하나는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 46%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순이익 4조5000억원을 실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순이익에 대해서는 “분식회계를 거쳐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졌고, 형사재판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 등은 제1심서 무죄를 선고받아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꼼꼼히 
살펴보니…

민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공정의무 외에도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인 이사의 분리 선출 단계적 확대 ▲전자투표제 및 위임장 도입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민주당이 지난 7월 발표했던 코리아 부스트업 5대 프로젝트에 포함돼있던 내용이다. 이 내용은 대부분 장하성·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참여연대서 활동했던 1990년대부터 강하게 주장해 왔다.

장 전 실장은 기업지배구조펀드 ‘장하성 펀드’를 직접 만들어 활동했다. 

기업지배구조펀드는 잘못된 지배구조 때문에 주가가 낮은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후 기업을 압박해 지배구조 개선 등 가치를 높여 이익을 거두는 펀드를 말한다. 기업을 압박하는 방법으로는 사외이사 및 감사 파견과 배당요구가 있다.

장 전 실장은 장하성 펀드를 통해 소액주주들을 모아 태광그룹 계열사 대한화섬 지분 5.15%를 매입한 후 태광그룹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활동을 했다. 김 전 실장은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미국에는 주주가치 이론을 정립해 활동하는 시카고학파가 있다. 두 사람의 주장과 활동에 대해서는 “시카고학파와 닮은 측면이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있다.

장 전 실장은 2000년 12월1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서 ‘재벌기업 구조개선’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기업과 전횡을 일삼는 총수는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며 “기업은 살려야 하지만, 기업이 엉망이 되게 한 장본인은 모두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집중투표제로써 기업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고, 내부거래 등 부당한 일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서 대중적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당시 최순실 특검은 이재용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그러자 김 전 실장은 청구 사유의 핵심을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으로 잡을 것을 권유했고, 이 회장은 제2차 청구서 구속됐다.

또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의 형사재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대통령의 용인 없이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소액주주운동” “사회적 대타협”
 장하성 vs 장하준 20년 시빗거리

이 2명과 20년 넘게 논쟁하는 전문가로는 장하준 런던대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있다. 이들은 “재벌은 정부의 특혜로 성장했기 때문에, 재벌 기업은 사유재산이면서도 국민의 자산”이라며 “재벌이 안정적인 경영을 하면서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2명의 전 정책실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전 실장의 ‘장하성 펀드’ 활동 당시 펀드 운용사로 선정했던 곳은 미국 헤지펀드였던 라자드였다. 그래서 장하성 펀드의 공식 명칭은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였다. 장 전 실장은 대언론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는 등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활동했다.

하지만 이것이 역효과를 불렀다는 평가도 있다. 이름값이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면서, 장하성 펀드의 이름값만 스치고 지나가면 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대한화섬 주가 매입을 통해 40%의 수익률을 거뒀을 때도 있었지만, 이후 사외이사와 감사를 보냈던 남양유업과 일성신약 등은 장하성 펀드의 배당 확대 요구 등을 무시했다.

이런 흐름을 거치면서 수익률이 낮아지다가 활동도 흐지부지됐다.

반면 장 교수는 “외자 지배율이 높아지면서 단기 시세차익만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성장이 둔화됐다”고 주장한다. 장 전 실장은 펀드 운용을 위해 헤지펀드와 손을 잡기까지 했지만, 장 교수의 주된 비판 대상은 헤지펀드 등 단기성 투기자본이었다.

장 교수는 일관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를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력이 강해져 경제주권이 제약됐다”며 “금융이 종속되고, 산업기반마저 붕괴할 수 있는 현실을 간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사다리 걷어차기> 등 저서를 통해 “선진국은 스스로 보호무역을 통해 성장한 후 후발주자들에게는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등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를 한다”며 “제조업으로 성장한 후 금융업을 영위하는 영미 모델은 우리가 모방하기는 이르다”고 강조한다.

장 교수가 대안으로 강조하는 것은 정부·기업·주주·노동자 등 모두가 타협하는 북유럽식 사회적 대타협이다. 

장 전 실장과 장 교수가 사촌지간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당은 사촌형인 장 전 실장과 청와대 정책실장과 여당이라는 관계로 손발을 맞춘 적이 있다. 현재에 이르러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도 장 전 실장의 오랜 지론이 담겨있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 추진에 대해 정 정책위원은 지난 8월 <시사IN>과의 인터뷰서 “회사가 ‘법인격’을 부여받은 것은 공기의 역할을 기대받기 때문”이라며 “회사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지배주주는 물론 단기 수익을 위해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침해하는 주주에게도 대항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등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미식?
북유럽식?

민주당은 장 전 실장과 김 전 실장의 지론을 토대로 상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정부의 입장은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으로 정리하는 기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기업 발전에 훼방 놓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동석했던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기관·외국인·사모펀드·소액주주 등 이해관계가 다른 주주들에게 어떻게 다 충실할 수 있겠느냐. (개정안의)논리적 모순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가 충실히 의무를 다 해야 하는 대상은 회사인지, 아니면 회사와 주주인지, 사촌의 20년 넘은 논쟁은 국회로 넘어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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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