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논쟁이 국회로’ 상법 개정안 모순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28 10:50:57
  • 호수 1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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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헤지펀드 ‘누구 손잡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민주당은 장하성·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이론과 활동을 토대로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두 사람의 이론을 20년 넘게 반박하는 사람은 장 전 실장의 사촌 동생 장하준 교수였다. 사촌의 20년 논쟁은 국회로 갔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 6월부터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내용이 담긴 법안은 정준호 의원이 처음 대표 발의했다. 

회사서 주주로
충실의무 확대 

정 의원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사이의 이해 상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해 주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부과하려고 한다”는 취지로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훈식 의원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의 이익’으로, 박주민 의원은 ‘회사와 총주주’로 확대하길 원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월3일 한국 거래소를 방문해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6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주요 선진국에선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7월 발표된 정부의 ‘역동경제 로드맵’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내용은 빠졌다.

재계는 “이사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줘서 일상적인 경영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고, 회사와 주주의 이익 구분은 불가능하다”고 반발한다.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항구적으로 존속하길 원하는 법인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미래의 이익을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나 연구개발(R&D) 등 경영행위도 한다.

하지만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주주로서는 배당금이 줄어든다고 판단할 뿐이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5일 발의한 법안은 “재계의 반발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현행 상법 규정을 제1항으로 존속시키고,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제2항을 신설하려고 한다.

그는 제3항을 신설해 “주주총회서 최대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소수주주만으로 결의한 안건에 대해서는 이사가 제2항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본다. 다만 이 경우 소수주주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으려고 한다.

김 의원은 제3항 신설에 대해 “주주총회서 소수주주만으로 결의한 안건에 대해서는 면책을 줌으로써 소수주주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취지를 설명했다.

이 같은 상법 개정은 제21대 국회서도 추진됐다. 그 배경에는 LG화학이 추진했던 배터리 사업 부문 물적분할이 있었다. LG화학은 2020년 9월 “배터리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하겠다”고 발표했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은 미래가치의 핵심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LG화학 주주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지만, LG화학은 물적분할을 마무리해 LG에너지솔루션으로 독립시켰고, LG화학의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대기업 사업구조 개편 발단
민주당 개정 재추진 계기로

지난 21대 국회서 이용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제22대 국회서 같은 법안이 연이어 발의된 데 이어 다시 쟁점이 됐던 계기는 두산의 사업 재편이다. 두산은 지난 7월21일 계열사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은 1대 0.031 비율로 합병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 중인 두산밥캣 지분 46%와 일반주주의 두산밥캣 지분 54%는 모두 두산로보틱스에 넘겨 100% 자회사가 되고, 두산밥캣 기존 주주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준다는 취지였다. 

이는 곧 큰 반발을 불러왔다. 두산밥캣은 2023년 기준 매출 9조7000억원에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을 기록했지만, 두산로보틱스는 매출 530억원에 영업적자 158억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룹의 두산밥캣에 대한 지분은 종전 13.8%서 42%로 올라간다.

반발이 이어지자,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합병 비율을 0.043으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상법 제382조의3서 규정한 ‘주주의 의무 대상’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서 크게 불거졌던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서도 주요 쟁점이었다. 1996년에는 비상장된 에버랜드 주식은 장외시장서 1주당 약 8만5000원에 거래되고 있었고,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평가한 가치는 1주당 10만원이었다. 

이사회는 이건희 당시 회장과 주요 임직원 및 주주들을 상대로 전환사채를 1주당 7700원에 발행했다. 임직원과 주주들은 모두 전환사채를 인수할 권리를 포기했고, 이 전환사채들은 이건희 회장의 자녀 4남매에게 배정됐다. 이로써 이재용 회장은 지분 25.1%를 가진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됐다. 에버랜드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에 포함되는 계열사였다.

전환사채를 저가로 발행한 행위는 검찰이 에버랜드의 전·현직 대표이사들에게 배임죄를 적용했던 근거의 핵심이었다.

대법원은 “주식회사와 별개인 주주들에 대한 관계서 직접 그들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회사 지분비율의 변화가 기존 주주 자신의 선택에 기인한 것이라면 지배권 이전과 관련해 이사에게 임무 위배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이 해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1세기 이후 대기업의 이런 경영행위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눈에 띄어 대대적인 공격을 당하는 이유가 됐다.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는 사례는 ‘SK 대 소버린’과 ‘삼성 대 엘리엇’이다.

모나코 국적의 헤지펀드 소버린은 한국에 자회사 크레스트시큐리티를 설립해 2003년 4월 SK의 지분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4월16일에는 14.99%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 SK네트웍스에 대한 지원을 반대했고, 손길승·최태원 회장 등 SK㈜ 경영진들의 사임을 요구했다.

불지핀
사례들


SK네트웍스는 SK글로벌에 대한 분식회계 사태 이후 파산 직전까지 몰린 부실 기업이었지만, SK그룹의 모태였다. 그래서 그룹 차원서 살리려고 했던 것이었다. 

소버린은 2004년 3월 주총서 이사 후보 5명을 추천했고, 정관 개정안을 제안했다. 주총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버린은 2005년 최 회장을 이사직서 해임하기 위한 임시주총을 진행하려고 했다. 이사의 배제 요건에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자를 포함해 최 회장을 퇴출하려고 한 것이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소버린은 2005년 7월 주식을 전부 매각했다. 소버린이 거둔 주식매매 차익은 약 8000억원이었다. 배당금과 환차익까지 합치면 1조원이 넘는다.

삼성은 2015년 5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합병비율은 1대 0.35였다. “제일모직의 주식이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반발이 이어졌다. 당시 제일모직의 자산은 약 9조5000억원으로 평가받았고, 삼성물산의 자산은 29조5000억원이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의 지분을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의 지분은 보유하지 않았다. 또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와 관련해, 이 회장이 가진 지분은 0.6%였지만, 삼성물산은 4.1%를 보유했다. 이 회장은 합병 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됐고,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전자도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엘리엇은 합병 이전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갖고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상당히 과소평가됐고, 합병 조건도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고 반발했다. 이어 ▲합병금지 가처분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 등을 연이어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합병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서 각각 진행된 임시주총서 승인됐다. 이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기관은 국민연금공단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서도 크게 문제가 됐던 사안이 “박근혜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합병 찬성 쪽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었다. 엘리엇은 이를 근거로 2018년 7월 ISDS(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를 신청했고, PCA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손해배상금 5358만달러와 지연이자, 엘리엇이 지출한 법률비용 289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는 취소소송을 제기했다가 각하했고, 지난 9월 항소를 제기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이 고평가됐던 이유 중 하나는 제일모직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 46%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순이익 4조5000억원을 실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순이익에 대해서는 “분식회계를 거쳐 조작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졌고, 형사재판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 등은 제1심서 무죄를 선고받아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꼼꼼히 
살펴보니…

민주당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공정의무 외에도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인 이사의 분리 선출 단계적 확대 ▲전자투표제 및 위임장 도입 의무화 등이 포함됐다. 민주당이 지난 7월 발표했던 코리아 부스트업 5대 프로젝트에 포함돼있던 내용이다. 이 내용은 대부분 장하성·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참여연대서 활동했던 1990년대부터 강하게 주장해 왔다.

장 전 실장은 기업지배구조펀드 ‘장하성 펀드’를 직접 만들어 활동했다. 

기업지배구조펀드는 잘못된 지배구조 때문에 주가가 낮은 기업의 주식을 사들인 후 기업을 압박해 지배구조 개선 등 가치를 높여 이익을 거두는 펀드를 말한다. 기업을 압박하는 방법으로는 사외이사 및 감사 파견과 배당요구가 있다.

장 전 실장은 장하성 펀드를 통해 소액주주들을 모아 태광그룹 계열사 대한화섬 지분 5.15%를 매입한 후 태광그룹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활동을 했다. 김 전 실장은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미국에는 주주가치 이론을 정립해 활동하는 시카고학파가 있다. 두 사람의 주장과 활동에 대해서는 “시카고학파와 닮은 측면이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있다.

장 전 실장은 2000년 12월1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서 ‘재벌기업 구조개선’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기업과 전횡을 일삼는 총수는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며 “기업은 살려야 하지만, 기업이 엉망이 되게 한 장본인은 모두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집중투표제로써 기업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고, 내부거래 등 부당한 일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서 대중적으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당시 최순실 특검은 이재용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그러자 김 전 실장은 청구 사유의 핵심을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으로 잡을 것을 권유했고, 이 회장은 제2차 청구서 구속됐다.

또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상당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의 형사재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전 대통령의 용인 없이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소액주주운동” “사회적 대타협”
 장하성 vs 장하준 20년 시빗거리

이 2명과 20년 넘게 논쟁하는 전문가로는 장하준 런던대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이 있다. 이들은 “재벌은 정부의 특혜로 성장했기 때문에, 재벌 기업은 사유재산이면서도 국민의 자산”이라며 “재벌이 안정적인 경영을 하면서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2명의 전 정책실장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전 실장의 ‘장하성 펀드’ 활동 당시 펀드 운용사로 선정했던 곳은 미국 헤지펀드였던 라자드였다. 그래서 장하성 펀드의 공식 명칭은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였다. 장 전 실장은 대언론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는 등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활동했다.

하지만 이것이 역효과를 불렀다는 평가도 있다. 이름값이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면서, 장하성 펀드의 이름값만 스치고 지나가면 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대한화섬 주가 매입을 통해 40%의 수익률을 거뒀을 때도 있었지만, 이후 사외이사와 감사를 보냈던 남양유업과 일성신약 등은 장하성 펀드의 배당 확대 요구 등을 무시했다.

이런 흐름을 거치면서 수익률이 낮아지다가 활동도 흐지부지됐다.

반면 장 교수는 “외자 지배율이 높아지면서 단기 시세차익만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성장이 둔화됐다”고 주장한다. 장 전 실장은 펀드 운용을 위해 헤지펀드와 손을 잡기까지 했지만, 장 교수의 주된 비판 대상은 헤지펀드 등 단기성 투기자본이었다.

장 교수는 일관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를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지배력이 강해져 경제주권이 제약됐다”며 “금융이 종속되고, 산업기반마저 붕괴할 수 있는 현실을 간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사다리 걷어차기> 등 저서를 통해 “선진국은 스스로 보호무역을 통해 성장한 후 후발주자들에게는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등 사다리를 걷어차는 행위를 한다”며 “제조업으로 성장한 후 금융업을 영위하는 영미 모델은 우리가 모방하기는 이르다”고 강조한다.

장 교수가 대안으로 강조하는 것은 정부·기업·주주·노동자 등 모두가 타협하는 북유럽식 사회적 대타협이다. 

장 전 실장과 장 교수가 사촌지간이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민주당은 사촌형인 장 전 실장과 청와대 정책실장과 여당이라는 관계로 손발을 맞춘 적이 있다. 현재에 이르러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도 장 전 실장의 오랜 지론이 담겨있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 추진에 대해 정 정책위원은 지난 8월 <시사IN>과의 인터뷰서 “회사가 ‘법인격’을 부여받은 것은 공기의 역할을 기대받기 때문”이라며 “회사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는 지배주주는 물론 단기 수익을 위해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침해하는 주주에게도 대항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등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미식?
북유럽식?

민주당은 장 전 실장과 김 전 실장의 지론을 토대로 상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정부의 입장은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으로 정리하는 기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개최한 간담회에 참석해 “기업 발전에 훼방 놓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동석했던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기관·외국인·사모펀드·소액주주 등 이해관계가 다른 주주들에게 어떻게 다 충실할 수 있겠느냐. (개정안의)논리적 모순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가 충실히 의무를 다 해야 하는 대상은 회사인지, 아니면 회사와 주주인지, 사촌의 20년 넘은 논쟁은 국회로 넘어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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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