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은 꽉 막혀 있다고 봐야 한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22일, 회동을 가졌다.
회동 일정을 확정한 직후부터 ‘독대다, 아니다’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한 대표와 대통령실 사이에서는 의제 범위, 배석 여부와 범위 등을 놓고 막판까지 불편한 기류가 이어졌다고 한다. 회동 테이블은 원탁이어야 했는데 직사각형이었다.
또, 회동 직후 별도의 합의사항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깡통 회동’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회동을 두고 ‘빈손’ ‘맹탕’ 등의 표현을 쓰는데, 빈손이나 맹탕은 많이 봐준 표현이고 파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싶다. 여당 수장인 한 대표에 대한 의전에서부터 상당한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의도된 실패다. 처음부터 독대냐, 면담이냐 설왕설래했지만 결국은 면접이 돼버렸다. 대통령실이 내놓은 사진을 보면 학교에서 훈육실에 들어간 학생 둘을 앉혀 놓고 학생주임이 훈화하는 모습이거나 검사의 피의자 심문 분위기였다는 지적이다.
독대도 아니고 면담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회동인데 한 대표에게는 치욕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 대통령실은 전반적인 회동의 흐름을 보면 서열 정리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속된 말로 한 대표에게 ‘여당 대표로서 대통령에게 더 이상 머리를 들지 말아라. 서열은 나보다 아래에 있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왜 자꾸 불필요하게 본인 주장을 하느냐’는 것이다.
또 대통령이 아무리 여당 대표가 편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테이블보조차 없는 그런 대통령이 쩍벌도 아니라 쩍팔이라고 해야 할지, 팔을 쫙 벌린 채 위압적인 자세로 회동에 임했다.
결국 한 대표를 정진석 비서실장과 동등한 선상으로 볼 수 있는 옆자리에 두고 계속 회동을 진행한 걸 보면, 이는 ‘김 여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마라’는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어쨌든 여당 대표와 대통령이 만나는 중요한 자리이니, 어느 책상에서 어떤 자세로 앉아 있고, 어떤 사진이 찍히는지에 따라 최소 민심이 어떻게 좌지우지되는가를 예상해본 대통령실의 처신이 필요했다. 즉 집권여당 대표인 한 대표에 대한 철저한 예우의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차치하고, 두 사람이 이날 여권의 분열을 촉발시킨 김 여사 이슈 등 쟁점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당정 갈등의 불씨가 제거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별도 합의사항 없었다
사실상 ‘깡통 면담’ 평가
한 대표는 이날 회동서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 행보와 명태균 폭로, 빠지고 있는 민심(국정운영 지지도)과 여론의 상황에 대한 과감한 변화와 쇄신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통령실의 인적 쇄신, 대외 활동 중단, 의혹 사항들에 대한 설명 및 해소, 특별 감찰관 임명 등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브리핑 없이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이 하나가 되기로 했다는, 마치 판에 박힌 듯한 입장만 내놨다. 윤·한의 이번 회동은 김 여사 문제와 여야 의정 갈등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자리였던 게 아닌가? 아니면 대통령실이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판단한 나머지, 집권여당 대표 길들이기에만 중점을 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김 여사 논란에 대해 ▲인적 쇄신 ▲대외 활동 중단 ▲의혹 규명에 대한 협조 등 3가지를 대통령실에 요구했던 바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번 회동에서 한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스스로가 그동안의 실책을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편으론 야당의 김 여사에 대한 수사 촉구 공세와 특검법의 당위성에 힘을 싣는 결과만 낳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정가에선 이번 회동으로 국민의힘 내부에서 친한(친 한동훈)계와 친윤(친 윤석열)계의 갈등이 더 깊어지는 것은 물론, 김건희 특검법 통과 가능성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친한계에선 윤정부 임기 반환점을 전후로 한층 거세질 야당의 대통령 탄핵 공세에 맞서 내부 결속을 도모하기 위해선 한 대표의 의견을 대통령실이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권 창출’이 정당 존재의 목적인 만큼 야당 지상 최대의 목표는 대통령 탄핵이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나는 11월이 되면 국회를 벗어나 장외로 나간다고 한다. 내달 2일로 롱패딩 장외투쟁을 선언했고, 여기엔 이재명 대표가 직접 참석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제2의 촛불 선동을 일으키겠다는 심산이다. 갈수록 날은 추워지는데 국론 분열이 극심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명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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