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임종석의 ‘1민족 2국가론’의 주장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개헌·북한 붕괴 시 대응·역사 인식·탈북자 대우 등 여러 논점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권도 다양한 찬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서 “통일, 하지 맙시다”라며, ‘1민족 2국가론’을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여 2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비현실적인 통일 논의는 이제 그만 접어두고,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말했다. 이어 제3조 영토조항의 삭제 등 개헌을 주장하면서 “모든 법과 제도, 정책서 통일을 들어내자”고 강조했다.
통일 반대론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3조와 제4조는 상호모순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지만, 남·북한이 특수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한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의 주장이 헌법에 반영되려면, 스스로 인정하듯이 개헌을 해야 한다. 북한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것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도 거셀 수밖에 없다.
통일 반대론은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 ▲옅어지는 민족주의 ▲통일 비용 우려 ▲남·북한의 상호 이질감 ▲중국·러시아와 국경이 맞닿는다는 우려 등을 이유로 제기됐다.
통일연구원이 2020년 6월 발표한 ‘KINU 통일 의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4.9%는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없다”고 응답했다. 남북통일의 이익에 대한 물음서도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응답한 경우(64.8%)가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응답한 경우(31.0%)의 2배를 넘었다.
북한 자체에 대한 관심도도 “무관심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61.1%였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나 남한의 흡수통일 상황서 중국의 반응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됐던 시나리오는 “북한 급변 발생 시 중국 인민해방군이 청천강 일대를 점령한 후 재차 남진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고조선·고구려·발해는 세계사?
2국가 체제 북한 붕괴 시 어떻게?
참여정부 외교안보비서관을 지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2010년 11월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면 중국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신의주나 나선 등 북한 영토 일부를 중국에 떼줘야 한다’는 스티븐슨 주한미국대사의 발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던 각종 기밀 문건에도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 정부가 중국에 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갑작스러운 붕괴와 남한의 흡수통일 상황 모두 중국의 무력 개입이나 선제적인 영토 할양 등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거론된 상황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2국가 체제가 정착된 상황서 북한이 붕괴해 중국이 무력 개입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짚어봐야 한다.
해킹조직 원전반대그룹이 2015년 7~8월 2회에 걸쳐 공개했던 문건에는 중국이 원하는 ‘북한 4개국 분할안’이 담겨있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남한은 평안남도·황해도를 담당하고, 중국은 평안북도·함경남도·양강도·자강도를 담당하며, 미국은 강원도를, 러시아는 함경북도를, 평양은 4개국이 공동으로 담당한다.
역사 교육과 관련해서도 모호한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한국사에 포함되는 고대 국가 중 영토가 남한의 영역에 소재하지 않았던 국가는 고조선·부여·옥저·발해가 있다.
고구려는 한강 유역 점령을 위해 남진했던 일부 시기에만 남한 영역에 진출했다. 2국가 체제가 확정되면, 위에 언급한 고대 국가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큰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시각과 상황에 따라서는 저 고대 국가들은 세계사에 포함될 수도 있다.
현재 영토가 타이완섬에 국한된 중화민국 정부는 명목상으로는 중국 대륙 전토와 몽골을 주권강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도 타이완섬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모두 ‘2개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세현·이종석 ‘찬’
문재인·박지원 ‘반’
임 전 실장에게 제기되는 일각의 비판 근거 중 하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서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2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했다”는 발언을 했던 것과 맞물린다.
이어 “북남은 동족·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고,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덧붙였다.
이에 임 전 실장은 “적대적 2개의 국가관계는 있을 수 없고, 평화적인 두 국가, 민족적인 두 국가여야 한다”며 “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임 전 실장의 발언은 김정은의 주장과 같고, 이것이 주체사상파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등 국민의힘 인사들은 김 위원장의 1월 발언과 연결지어 비판했다. 아울러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더라도 ‘외국인’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한은 1991년 동시에 유엔 가입을 했으니, 사실은 그때부터 두 개 국가”라며, “결국 남북관계는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임 전 실장의 주장에 찬성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월에 “2개의 국가를 향한 원심화 경향을 막기 어렵다. 현재 상황은 2개의 정상적인 국가로 있을 때만 못하다”며 “정상적인 2개의 국가가 됐다가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통일은 후대로 넘기자”고 강조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주장에 대해 “평화와 통일이라는 겨레의 염원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비판하는 등 임 전 실장의 주장과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학자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지만, 현역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성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해식 당 대표 비서실장도 지난 25일 부산 금정구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 직후 “임 전 실장의 메시지는 당의 강령과도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선을 긋는 등 당 차원서도 거리를 두는 기색이다.
적대적 국가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임 전 실장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통일을 얘기해도 좋을 만큼 평화가 정착되고, 교류와 협력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후에 그때 미래 세대가 판단하자는 게 이상하냐”며 “상황을 바꾸려는 전략적인 노력 없이는 지금의 상태는 악화될 것이고, 윤석열정부 임기 말쯤에는 적대적인 두 국가가 상당히 완성돼있을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개헌과 가치관의 변화를 포괄하는 주제인 만큼 당분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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