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1등’ 로또 당첨금 논란에 기재부, 드디어 상향?

설문조사 댓글엔 “비과세해야” 도배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정부가 무더기 당첨으로 인한 로또 당첨금 액수 조정 및 당첨 방식을 손볼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3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고 있는 국민생각함에서 ‘로또복권 1등 당첨금 규모 변경’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1등 당첨금액의 규모가 너무 적은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 여론을 듣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설문 항목에는 ▲최근 1년 이내 로또복권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지 ▲현재 판매 중인 814만분의 1 확률로 1등에 당첨되는 구조에 만족하는지 ▲로또복권 1등의 적정 당첨금액 및 당첨자 수는 얼마 및 몇 명인지 등이 포함됐다.

이번 로또 설문조사는 이날부터 내달 25일까지 한 달 동안 진행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와 전문가 의견 등을 취합해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5월27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간담회서 로또 당첨금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던 바 있다.

최 부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현안 간담회서 ‘로또 당첨금을 증액하고 판매 수익금의 소외계층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의견을 수렴할 이슈다. 공청회 등 어떤 방식이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지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답했다.

현재 판매 중인 로또 6/45는 814만분의 1 확률의 상품으로 회당 약 1억1000건이 판매되고 있으며, 평균 1등 당첨자 수는 12명, 1인당 당첨금액은 21억원대로 형성돼있다.

지난 7월13일, 제1128회 로또 추첨 결과 무려 63명의 1등 당첨자가 나오면서 당첨금액이 평균의 4분의 1 수준인 4억1993만원으로 줄어자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22년 6월12일 제1019회엔 50명의 1등 당첨자가 배출돼 역대 세 번째인 4억3800만원으로 당첨금액이 곤두박질쳤다.

논란이 일자 복권위원회는 “로또복권 시스템의 당첨번호 조작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무작위 추첨의 특성상 당첨자가 다수 나오는 일도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로또복권은 ‘1등에 당첨되면 인생 역전’으로 불릴 만큼 서민들에게 있어 희망 그 자체로 불렸다. 하지만, 당첨자 수가 매회 평균 10명 이상을 유지하면서 로또 1등에 당첨되더라도 “서울 시내권 아파트 한 채도 사지 못한다” “1등 당첨되도 인생 여전‘이라는 등 자조섞인 넋두리마저 들린다.

무더기 당첨에 따른 당첨금액 논란이 일면서 숫자를 한 자리 추가해 당첨 확률을 낮추거나 1게임당 구매 금액을 올리는 방안이 대두되고 있다. 현행 1게임당 구매 금액은 1000원이다. 당초 로또 1게임당 최소 구매 금액은 2000원이었으나 2004년 8월부터 1000원으로 인하한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국내 로또 사상 최대 당첨금은 19회차(2003년 4월12일)서 나왔으며, 당첨자 수는 1명으로 무려 407억원을 거머쥐었다. 뒤를 이어 25회차(2003년 5월24일) 23억2200만원, 20회차(2003년 4월19일) 12억3500만원, 43회차(2003년 9월27일) 17억7400만원, 15회차(2003년 3월15일) 17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이 중 25회차(당첨자 수 2명)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차에선 당첨자 수가 단 한 명 뿐이었다. 구조상 전체 당첨금액을 나눠갖는 만큼 당첨자 수가 적을수록 당첨금액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등 당첨금 증액 문제는 사행성 조장의 우려가 있는 데다 근본적으로 서민들의 호주머니서 나오는 돈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여론이 호의적이진 않다. ‘추가 세금’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총 판매 금액의 50%가 복지기금으로 사회의 소외계층 지원에 쓰인다고는 하지만, 이 기금이 투명하고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로또 복권 발행액은 7조3302억원(발행 매수 69억4000매)으로 판매금액은 6조7507억원, 당첨금은 3조4873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판매, 유통, 위탁 및 기타 수수료를 제외한 총 수익금은 총 2조7735억원이었다.

일각에선 단순히 게임당 금액을 올리거나 당첨 확률을 낮추는 것보다는 “이중과세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세금 내릴 생각을 해라” 등의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동행복권은 총 로또 판매 금액의 50%를 복지기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50%의 금액으로 1등부터 5등 당첨자에게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 3억원 초과 당첨자들에겐 각각 33%, 200만원 초과 및 3억원 이하의 당첨자들에겐 22%의 세금을 제외한 후 지급한다. 즉 1등 당첨금액이 10억원일 경우, 3.3억원이 세금으로 나간다는 얘기다.

생각 참여 설문조사 글에 달린 댓글에는 ‘세금’ 관련 내용이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로또 살 때 이미 50%의 세금 당첨자에게 33%의 세금을 떼는데, 당첨 확률과 구매 금액 인상이 먼저가 아니라 세금 건드려볼 생각은 1도 없네”(박OO) “복권 당첨금 세금 5%로 낮춰 달라”(이OO) “설문 참여하고 한마디 한다. 현행 유지하되, 기재부서 로또 참여 금액 중 50%를 세금으로 가져가는데, 이를 30%로 줄이고 나머지 20%는 당첨금으로 환원시키는 게 맞다. 딱히 하는 것도 없이 50%나 가져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유OO) 등 댓글 대부분이 세금 부과 관련 글들이다.

이 외에도 “한 명이 100억 이상 가져가는 것보다 여러 명이 20억씩 가져가는 게 취지에도 맞고 더 나은 구조 아닌가? 1등 당첨금액이 적다면 떼어가는 세금을 줄이면 된다” “쓸데없이 갑자기 번호 늘려서 국민들 원성만 듣지 말고 비과세로 운영하기만 해도 호평받을 것” “로또에 매기는 세금은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 “설문에 참여하긴 했는데 세금에 대한 질문은 없는데, 의도가 불순해 보인다. 여기 세금 줄여달라는 의견이 대부분인데 만약 세금 줄이는 식으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여기에 설문조사한 건 쇼네요. 과연??” “이미 답은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질문에 세금에 관한 건 없다. 세금을 줄이자는 의견이 국민들 생각” “국민 생각해서 하는 것처럼 말한다. 세금 줄이면 당첨금은 자연히 늘게 돼있다” 등 과세에 대한 댓글이 쇄도했다.

누리꾼들도 “금액 올릴 꼼수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떼어가는 세금이나 없애는 게 낫지 않겠나? 로또는 행운이라면서 행운에 세금을 매기진 않는다” “일본도 로또에 세금 안 떼가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이, 2중으로 떼어나느냐”고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유럽 선진국 및 일본, 싱가포르에선 로또 당첨금액이 비과세인 반면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대만 등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세를 하고 있다. 미국은 5000달러 초과 시 24% 세율로 원천징수하며 주 정부 세금은 별도로 하고 있고, 스페인은 4만유로 초과 시 20% 세율로 원천징수하고 있다.

하지만, 기금을 손보는 것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기존에 운영해오고 있는 복권 관련 법안을 뜯어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따르면 복권사업으로 조성된 재원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 및 사용하기 위해 복권기금을 운영하기 위해 복권위원회서 복권기금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해당 기금은 제23조(복권기금의 배분 및 용도)에 따라 매년 복권 수익금 중 35%는 과학기술기본법, 국민체육진흥법, 근로복지기본법, 중소기업진흥에 관한 법률, 국가유산보호기금법, 지방자치단체 등 11개항으로 규정된 용도에 사용돼야 한다.

배분 방법이나 시기 및 절차 등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단, 복권위원회가 배분비율을 가감 조정할 때엔 ▲기금의 자체수입, 여유 자금, 부채 등의 자금 여건 ▲성과 평가 결과 ▲복권 수익금 사용계획서의 심의·조정 결과를 반영한 후 의결을 거쳐야 한다.

또 제24조(복권 수익금 사용계획서의 제출 등)관리주체나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다음 연도의 복권수익금 사용에 관한 계획서(사용계획서)를 작성해 매년 3월31일까지 복권위원회에 이를 제출해야 하며, 복권위원회는 이를 심의·조정한 후 그해 4월30일까지 통보하고 제27조(복권기금운용계획안의 작성·제출)에 따라 매년 5월31일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일요시사> 취재 결과 로또 구매 1장(1000원)당 약 410원이 복권기금으로 적립되고 있으며,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의 기관과 저소득층 장학사업, 주거안정사업, 소외계층 복지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

복권위원회가 공개한 지난해 기금결산 지출명세에 따르면, 기금운영비 및 복권사업비에 3조9717억원, 과학기술진흥기금, 근로복지진흥기금 등 법정 배분사업에 1조382억원, 서민 주거안정 및 취약계층 지원 등 공익지원 사업에 2조109억원 등 총 7조8728억원이 쓰였다.

로또 조작 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돼오고 있다.

제1128회차(지난 7월13일) 로또 추첨 결과 1등 당첨자 수가 무려 63개로 무더기로 배출되는가 하면, 제1057회차(2023년 3월4일)에선 2등 당첨자가 무려 664개에 달하면서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또 제1003회차(2022년 2월19일) 추첨 결과 5게임 모두를 같은 번호의 수동 선택 구매자가 1등에 당첨되기도 했다.

당시 1등 당첨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당첨 복권 사진과 농협은행 계좌의 90억원 및 실수령 당첨금액 61여억원이 찍힌 거래 내역 확인증을 게재했다. 당시 1등 당첨 번호는 ‘1, 4, 29, 39, 43, 45’였다. 해당 복권의 구매처는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동의 한 판매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확률상 4억700만분의 1로 ‘비 내리는 날에 벼락을 16번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희박한 수치다. 

로또 중계방송 의혹도 여전하다.

이른바 실시간 방송(생방송)이 아닌 녹화 방송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왜 로또 추첨은 생방송으로 하지 않느냐?”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로또 판매는 매주 토요일 오후 8시에 마감되지만, 방송은 35분 이후에 송출되고 있다. 판매가 종료되는 즉시 추첨에 들어가야 하는데 35분의 시간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오후 8시 마감하고 즉시 추첨해야 한다. 도대체 30~40분의 시간을 왜 끄는지 알 수 없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로또 추첨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35분에 MBC를 통해 방송되고 있다. 

추첨기는 프랑스 AKANIS TECHNOLOGIES사의 Venus가 사용되며, 추첨용 1대와 예비추첨용 2대가 사용된다. 추첨볼은 총 8개 세트로 5개 세트는 1개 세트당 임의의 볼 5개를 선정해 각각의 볼 무게와 크기를 측정한 뒤 추첨 방송에 사용할 1개의 볼세트를 방청객이 직접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동행복권 측은 일주일 동안의 1억장 이상의 판매 데이터를 정리하고 마감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모든 구매기록은 전산화로 처리되기 때문에 이 같은 해명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7일, <일요시사>는 ▲당첨금 규모 설문조사 작성의 주체 및 설문 항목에 과세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이유 ▲복권 판매 종료 직후 추첨 방송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 등을 묻기 위해 복권위원회(발행관리과) 여러 부서에 십여 차례 취재를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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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