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⑧매질로 시작하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6.24 04:00:00
  • 호수 1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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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건 아주 엄숙한 의식이니,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야 될 것이야.”

반장이 팔을 괴고 방바닥에 편하게 누우며 말했다. 이어 스라소니가 명령했다.

“두 놈 일어서! 지금부터 엄살 까거나 방정떠는 새끼는 죽는 줄 알아라. 이쪽으로!”

신입 빠따

둘은 시키는 대로 관물대에 손을 짚고 엎드렸다. 이른바 신입 빠따였는데, 한 사람이 한 대씩 갈기고 삽자루를 인계하는 것이었다.


혹독한 매질을 다섯 대까지 견디던 용운은 그만 나뒹굴고 말았다. 피에로는 입술을 앙다문 채 견디고 있었으나 곧 푹 쓰러져 버렸다. 

“이 새끼들, 안 일어나?”

좀 어리다고 특별히 봐주지 않았다. 울어도 빌어도 그들은 마구 차고 밟았다.

맞고 뒹굴고 애걸하면서 기어이 매를 다 맞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절차가 다 끝난 건 아니었다. 

반장이 말했다.

“어때? 한바탕 먼지를 털고 나니 몸과 맴이 한결 홀가분하지 않은감?”

“흐흐…….”


“어허! 아직도 찜찜한 데가 남았는가, 어째?”

“아, 아니, 기분 짱입니다!”

“흠, 흐흐…….”

반장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 말했다.

“다행이구먼. 그럼 좋은 기분으로 노래나 한 곡조 들어 볼까. 흠, 너가 각설이 타령이나 한번 해봐.”

 그는 턱짓으로 용운을 가리켰다. 

용운은 주춤거리다간 또 매질이 닥칠까 봐 곧장 목청을 뽑았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아하 품바가 잘도 한다 어허 품바가 잘도 헌다  
일자나 한 자나 들고나 보니 
일백 년도 못살 인생 사람답게 살고파라 
이자나 한 자 들고나 보니 
이놈의 세상 유전무죄 무전유죄 도는 세상 
삼자나 한 자나 들고나 보니 
삼천리에 붉은 단풍 들고 우리네 가슴에는 피멍 든다 
사자나 한 자나 들고나 보니 
사시사철 변함없이 행복하게 한번 살아보세…….
갑자기 백곰이 소리쳤다.

“스톱! 개새끼, 뭐가 사시사철 행복이야? 유치해서 더 못 듣겠군. 이번엔 너가 한번 재주를 부려 봐. 노래는 재수없으니까 더 이상 하지 마.”

그는 피에로에게 지시했다. 피에로는 한 손을 올려 마치 버스 손잡이를 잡은 듯이 하고 짐짓 상체를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에~ 지금 하려는 것은 ‘앵벌이’라는 것으로서 차 안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죠. 우선 신문이나 볼펜, 껌, 칫솔 따위를 사서 가방에 담아들고 버스에 오른답니다. 그러고는 앞에 서서 한바탕 청승을 떠는 것이죠, 헤헤…….”

한 대씩 갈기고 삽자루 인계
성스러운 구도에 동참할 자세


“잔소리 말고 본방송부터 해.”

“예, 예…… 에~ 복잡한 차중에 잠시 소란을 떨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본인은 병든 할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책임지고 있는 한 가족의 가장입니다. 일찍이 열 살의 나이로 조실부모하고 험한 세파 속에 가랑잎처럼 떨어져야 했던 저는, 삶이 너무나도 힘겨워 그동안 수차례 죽어 볼까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골방에서 반신불수로 쿨럭이는 할머니와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고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는 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이리도 힘든 것일까요?

하지만 손님 여러분, 저는 믿습니다. 아직도 이 사회가 그리 냉정하지만은 않다는 것과 올바른 양심으로 꿋꿋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행복의 웃음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수많은 죄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가난하게는 살아도 추악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볼펜 몇 자루에 여러분의 동정을 구하고자 이렇게 버스에 뛰어오른 것입니다.

물론 시중에 나가시면 몇십 원에 구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만, 부득이 이 자리에서는 일금 백원에 모실까 합니다. 부디 외면하지 마시고 지나는 길에 한 자루씩 구입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용기있게 살라는 채찍질로 알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청을 좀더 구성지게 뽑아 봐. 아니, 이제 그만둬. 미친 놈…….”

백곰은 콧방귀를 한번 뀌곤 중얼거렸다.


“그럼 아리랑 고개나 한번 넘어볼까나.”

두 명의 원생이 기다렸다는 듯 긴 고무줄을 준비해 양쪽에서 팽팽히 잡아당겼다. 고무줄은 용운의 허벅지 높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스라소니 눈이 말했다.

“니네덜 아리랑은 다 부를 줄 알겠지?”

“예!”

“속세의 먼지를 털었으니 이제부터 성스러운 구도에 동참할 자세가 갖춰졌는지 시험하겠다. 눈 감고 아리랑을 흥얼대면서 이 고무줄을 정중히 넘어댕긴다. 만약 쪼끔이라도 고무줄을 건드릴 시엔 큰 곡소리가 나게 된다는 걸 명심해라. 실눈을 떠도 마찬가지다.”

아리랑 고개

피에로가 바지를 한껏 추켜올리며 가랑이 사이에 공간을 재고 있었다.

용운은 눈을 부릅뜨고 고무줄의 높이와 위치 등을 살펴보았다.

저것에 닿지 않고 넘으려면 다리를 최대한 높이 들어올려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고무줄과 가까운 거리에 발을 내려놔야 다시 이쪽으로 넘어올 때 유리하리라.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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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심판 사건을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은 또다시 정치적 격변기를 맞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서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 111일 만이자, 탄핵 심판 변론 종결 38일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번 탄핵 심판은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것이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명시했다. 이날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을 낭독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국회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 판단했어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이 취임한지 2년 후 이뤄진 총선서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며 “결과가 피청구인 의도에 부합하지 않아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했으면 안 됐다”고 판단했다. 문 권한대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계엄을 선포해 국가긴급권을 남용하는 역사를 재현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정치·경제 전반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초월해 사회 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상실하고 일반인 신분이 됐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도 퇴거해야 한다. 다만, 사저 경호 문제 등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즉시 관저를 비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헌재 파면 결정 이틀 뒤에 청와대 관저를 나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긴 바 있다. 이번 파면 결정으로 윤 전 대통령은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대부분 박탈당했다.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통상 최대 15년(10년+5년 연장)까지 경호를 받을 수 있으나, 임기만료 전 퇴임한 경우에는 최대 10년(5년+5년 연장)으로 줄어든다. 전직 대통령 예우 모두 박탈 정치권 ‘장미 대선’ 현실화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다면 받았을 대통령 연금 수령 자격도 상실됐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 보수연액(월급여의 8.85배)의 95%를 12개월로 나눠 받는다. 올해 윤 전 대통령 연봉은 약 2억6258만원(세전)이고, 이 기준에 따른 매월 연금액은 약 1533만원(연 기준 1억8397만원)이다. 이 밖에 기념사업 지원과 개인 사무실 및 보좌진 지원도 중단됐으며, 사후 국립묘지 안장 대상서도 제외된다. 공직 취임의 기회도 제한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4조 2항은 ‘탄핵 결정에 의해 파면된 사람은 결정 선고가 있은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하면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 결정이 선고된 날로부터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에게 남은 건 형사재판 절차 뿐이다. 형사재판은 탄핵 심판 결과와 별개로 그대로 진행되는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대통령은 오는 14일 첫 정식 공판을 받는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상실함에 따라 대한민국은 ‘장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헌법 제68조는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일을 기준으로 하면 60일째 되는 날은 오는 6월3일이므로 이날까지 대선을 치러야 한다. 이에 따라 ‘오말육초’(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탄핵 결정으로 파면됐고, 정확히 60일째인 5월9일에 조기 대선이 실시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선례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도 60일째 되는 날인 6월3일에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대선 시점이 6월3일보다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60일째 되는 날에서 가장 가까운 수요일인 5월28일이 조기 대선일로 유력하다는 예상도 나왔다. 어느 날짜에 선거가 치러지든,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탄핵 정국이 조기 대선 정국으로 급변했고, 이제 차기 권력을 향한 대권 경쟁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야 잠룡들은 탄핵 정국 속에서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물밑 경쟁을 벌여왔다. 여권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정권 재장출의 목표를 두고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덜어내며 독주 체제를 굳힌 바 있다. 이 외에도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도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힌다. 조기 대선으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없이 당선 즉시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이날 “국가 안보와 외교에 공백이 없도록 굳건한 안보 태세를 유지하겠다”며 “주권자인 국민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다음 정부가 차질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