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하이트진로그룹 후계자가 일감 몰아주기 사법 리스크를 떨쳐냈다. 사실상 경영권 승계 절차에 제동을 걸만한 요인은 사라진 상태다. 오너 가족회사를 앞세운 대관식 준비 작업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달 12일 대법원 1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 김창규 전 상무, 하이트진로 법인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모든 상고를 기각했다. 이로써 지난해 5월 2심에서 박 사장에게 내려진 징역 1년3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 형이 최종 확정됐다. 김 대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 하이트진로는 벌금 1억5000만원이 확정됐다.
뻔한 결과
해당 재판은 그룹 차원에서 서영이앤티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으로부터 촉발됐다. 서영이앤티는 생맥주 기기를 하이트진로에 납품해 온 곳으로, 2007년 12월 하이트진로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앞서 공정위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하이트진로가 맥주캔을 제조·유통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서영이앤티를 끼워 넣었다고 봤다. 이에 공정위는 하이트진로그룹에 79억4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 조치했고, 1심 재판부는 공정한 시장질서 훼손을 이유로 박 사장에게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김 대표와 김 전 상무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하이트진로에는 벌금 2억원을 선고한 바 있다.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면서, 박 사장은 한시름 덜 수 있게 됐다. 운신의 폭을 좁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기 때문이다.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 사장은 2012년 하이트진로 경영관리실장으로 입사했으며, 수년 전부터 그룹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현재 하이트진로홀딩스와 하이트진로에서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 만큼, 사법처리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경영권 승계 절차에 제동을 걸만한 위험 요인이 사실상 사라진 덕분에 박 사장 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은 한층 속도감 있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서영이앤티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트진로그룹은 2008년 7월 인적분할을 거치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가 하이트진로를 자회사로 두고, 하이트진로를 통해 손자회사를 간접 지배하는 현 지배구조의 큰 틀이 완성된 게 이 무렵이다.
최악 피하게 해준 법원 판결
오너 회사 전진기지 활용법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이후 박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하이트진로홀딩스를 휘하에 둔 채 그룹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말 기준 박 회장은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29.5%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특수관계인의 지분율 총합은 65.9%에 달한다.
다만 박 사장은 하이트진로홀딩스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향후 박 사장이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라서는 과정에서 박 회장이 보유한 하이트진로홀딩스 주식을 흡수하는 수순이 뒤따를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세금 부담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지난달 27일 기준 박 회장이 보유한 하이트진로홀딩스 주식의 가치는 약 620억원에 달한다.
서영이앤티는 박 사장의 고민을 덜어주는 가장 확실한 우군이 될 수 있다. 서영이앤티는 지분 100%를 박 회장 일가가 쥐고 있는 오너 가족회사로, 특히 박 사장은 2022년 말 기준 지분 58.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나머지 지분은 박 사장의 동생인 박재홍 부사장(21.6%), 박 회장(14.7%), 박 사장의 삼촌인 박문효씨(5.2%) 등이 나눠 갖고 있다.
업계에서는 서영이앤티가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늘리고, 박 사장이 서영이앤티의 지분을 추가 확보하는 수순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박 사장은 서영이앤티를 활용해 하이트진로홀딩스를 간접 지배하고, 궁극적으로 최대주주로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다음 수순은?
다만 이를 위해서는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잡음을 없애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 보유한 비상장 기업의 연간 내부거래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내부거래 비율이 12% 이상이면 사익편취 규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서영이앤티는 내부거래 비중을 기준치 밑으로 낮추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지만, 갈 길이 멀다. 2022년 말 기준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은 215억원이었고, 이는 당해 총매출(972억원) 중 22.07%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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