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박근혜 탄핵, 그후…‘끝나지 않은’ 재판 풀스토리

요란했던 빈 수레 결말은 용두사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2017년은 헌정사의 유례없는 일로 가득 찬 해였다. 민간인이 국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그 결과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끌어내려졌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를 단죄하는 수사팀이 꾸려졌고 재판이 진행됐다. 그로부터 7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3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대심판정서 울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헌법재판관 8명은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순간이었다.

대통령 낙마
초유의 사건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소추 사유 관련 일련의 언행을 보면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탄핵 인용 배경을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면서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결정적 사유로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이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을 공유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나 최씨 개인 소유·운영 법인을 통한 이권 추구를 도운 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다는 게 골자다.


실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국민이 가장 분노한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알려진 사건의 정식 명칭은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이하 국정 농단 사건)이다. 당시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윤석열 수사팀장이 합류했다.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은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국정 농단 사건의 또 다른 시작으로 작용했다. 일반인 신분으로 격하된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정 농단 사건은 비선 실세 의혹이 발단이 되면서 검찰 특별수사본부, 박영수 특검팀, 서울중앙지검이 세 단계로 수사를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최씨,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주요 인사 58명이 기소됐고 재판서 48명이 유죄를 확정받았다. 

국정 농단 사건 재판 마무리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 확정

박 전 대통령 재판은 국정 농단 사건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등 혐의로 나뉘어 진행됐다. 국정 농단 사건 1심 재판부는 최씨와 공모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비 중 일부를 뇌물로 인정,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삼성 영재센터 후원금이 뇌물로 추가돼 징역 25년, 벌금 200억원으로 형량이 늘었다. 


국정원장들로부터 35억원을 받았다는 특활비 상납사건은 1심서 징역 2년, 항소심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 원심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했고 이후 사건이 합쳐져 심리됐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강요죄 등 일부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다. 두 사건에 대한 최종 형량은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으로 확정됐다.

여기에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개입 혐의로 2년의 확정 판결을 더해 총 22년형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21년 12월3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2017년 3월31일 구속된 이후 4년9개월 만이었다. 또 다른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인 최씨는 아직 수감 중이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최씨는 2020년 대법원에서 징역 18년에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여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딸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도 징역 3년형을 받아 도합 21년의 실형이 결정됐다.  

최근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끌어온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파기환송심까지 간 끝에 결론이 난 것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시절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를 차별․배제했다는 내용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출범 직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을 구속했다. 

정권교체
시발점

지난달 24일 서울고등법원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을, 조 전 수석에게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파기환송심 판결이 확정됐다. 박영수 특검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연루돼 사임하면서 재판 기간이 7년여까지 늘어졌다.

실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기타 양형상 참작 사유’로 재판 지연을 들기도 했다.

국정 농단 사건서 파생된 재판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정 농단 사건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법 농단 사건에 관심이 집중됐다. 사법 농단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국정 운영 관련 재판을 거래하고 재판에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서 법원행정에 비판적인 법관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행사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나란히 기소됐다. 두 사람은 사법 농단 사건의 최종 결정권자와 실무자로 지목됐다.

지난달 26일과 지난 5일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무죄, 임 전 차장은 징역형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4년11개월이나 걸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50개에 가까운 혐의 모두를 무죄로 봤다. 

1심 선고에
4~5년 걸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이후 6년 임기 동안 임 전 차장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년 2월11일 구속 기소됐다. 사법 농단 사건의 정점으로 여겨진 것이다.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재 견제, 비자금 조성 등 47개 범죄 혐의가 따라붙었다. 

특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에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에 관심이 집중됐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 가담 등 공범 관계가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임 전 차장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는 등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2018년 11월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 이익 도모 ▲대·내외 비판 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비자금 조성 등 4가지 범주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사법 농단 사건의 ‘실무자’로 여겨졌다.

1심 재판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소송서 고용노동부의 소송서류를 사실상 대필해준 혐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홍일표 전 의원의 형사재판 전략을 대신 세워준 혐의,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 의원에 대한 제소 방안 검토를 지시한 혐의 등을 유죄로 봤다.


그러면서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관련해 일본 기업 측 입장서 재판 방향을 검토하고 외교부 의견서를 미리 건네받아 감수해준 혐의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파생 사건 1심 선고 속속
양승태·이재용 무죄 받아

국정 농단 사건서 비롯된 이른바 ‘이재용 재판’도 1심 판결이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된 뒤 사면되는 등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 역시 국정 농단 사건서 촉발된 것이다. 

당시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이 이 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뇌물로 건넨 것으로 봤다. 또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반대하자 삼성물산 지분 11.9%를 가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와대가 힘써주기를 청탁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에 이어 수사를 시작한 서울중앙지검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을 파고들었다.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회장 등이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회장 등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 공시·분식회계 혐의도 무죄로 봤다. 

불법승계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판결은 검찰에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실제 법원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검찰 입장에서는 증거능력에 대한 지적이 뼈아팠다.

당시 수사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을 뜯어내 숨겨진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을 대거 확보했다고 한 바 있다. 법원은 이 과정서 압수수색 절차를 지키지 않은 위법 증거는 재판에 사용할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완벽한 패배
검찰로 불똥?

심지어 이 사건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대통령 등이 지휘했다. 기소 후 3년5개월 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검찰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완패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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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