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박근혜 탄핵, 그후…‘끝나지 않은’ 재판 풀스토리

요란했던 빈 수레 결말은 용두사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2017년은 헌정사의 유례없는 일로 가득 찬 해였다. 민간인이 국정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그 결과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끌어내려졌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를 단죄하는 수사팀이 꾸려졌고 재판이 진행됐다. 그로부터 7년,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3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대심판정서 울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헌법재판관 8명은 만장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된 순간이었다.

대통령 낙마
초유의 사건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소추 사유 관련 일련의 언행을 보면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탄핵 인용 배경을 밝혔다. 

이어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면서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결정적 사유로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이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을 공유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나 최씨 개인 소유·운영 법인을 통한 이권 추구를 도운 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했다는 게 골자다.

실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을 때 국민이 가장 분노한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알려진 사건의 정식 명칭은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이하 국정 농단 사건)이다. 당시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윤석열 수사팀장이 합류했다. 현재의 윤석열 대통령은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국정 농단 사건의 또 다른 시작으로 작용했다. 일반인 신분으로 격하된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정 농단 사건은 비선 실세 의혹이 발단이 되면서 검찰 특별수사본부, 박영수 특검팀, 서울중앙지검이 세 단계로 수사를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최씨,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주요 인사 58명이 기소됐고 재판서 48명이 유죄를 확정받았다. 

국정 농단 사건 재판 마무리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 확정

박 전 대통령 재판은 국정 농단 사건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등 혐의로 나뉘어 진행됐다. 국정 농단 사건 1심 재판부는 최씨와 공모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삼성의 정유라 승마 지원비 중 일부를 뇌물로 인정,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삼성 영재센터 후원금이 뇌물로 추가돼 징역 25년, 벌금 200억원으로 형량이 늘었다. 

국정원장들로부터 35억원을 받았다는 특활비 상납사건은 1심서 징역 2년, 항소심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 원심 판결을 깨고 파기환송했고 이후 사건이 합쳐져 심리됐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강요죄 등 일부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다. 두 사건에 대한 최종 형량은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으로 확정됐다.

여기에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공천 개입 혐의로 2년의 확정 판결을 더해 총 22년형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21년 12월3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신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2017년 3월31일 구속된 이후 4년9개월 만이었다. 또 다른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인 최씨는 아직 수감 중이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최씨는 2020년 대법원에서 징역 18년에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여원의 원심이 확정됐다.

딸 정유라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도 징역 3년형을 받아 도합 21년의 실형이 결정됐다.  

최근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끌어온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파기환송심까지 간 끝에 결론이 난 것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시절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를 차별․배제했다는 내용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출범 직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을 구속했다. 

정권교체
시발점

지난달 24일 서울고등법원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을, 조 전 수석에게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이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파기환송심 판결이 확정됐다. 박영수 특검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연루돼 사임하면서 재판 기간이 7년여까지 늘어졌다.

실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기타 양형상 참작 사유’로 재판 지연을 들기도 했다.

국정 농단 사건서 파생된 재판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정 농단 사건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법 농단 사건에 관심이 집중됐다. 사법 농단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국정 운영 관련 재판을 거래하고 재판에 개입했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서 법원행정에 비판적인 법관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행사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나란히 기소됐다. 두 사람은 사법 농단 사건의 최종 결정권자와 실무자로 지목됐다.

지난달 26일과 지난 5일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무죄, 임 전 차장은 징역형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법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4년11개월이나 걸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징역 7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50개에 가까운 혐의 모두를 무죄로 봤다. 

1심 선고에
4~5년 걸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 이후 6년 임기 동안 임 전 차장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고 승인하거나 직접 지시한 혐의로 2019년 2월11일 구속 기소됐다. 사법 농단 사건의 정점으로 여겨진 것이다. 재판개입,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재 견제, 비자금 조성 등 47개 범죄 혐의가 따라붙었다. 

특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사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에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에 관심이 집중됐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고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 가담 등 공범 관계가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임 전 차장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는 등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2018년 11월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 이익 도모 ▲대·내외 비판 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비자금 조성 등 4가지 범주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사법 농단 사건의 ‘실무자’로 여겨졌다.

1심 재판부는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소송서 고용노동부의 소송서류를 사실상 대필해준 혐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홍일표 전 의원의 형사재판 전략을 대신 세워준 혐의,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 의원에 대한 제소 방안 검토를 지시한 혐의 등을 유죄로 봤다.

그러면서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관련해 일본 기업 측 입장서 재판 방향을 검토하고 외교부 의견서를 미리 건네받아 감수해준 혐의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파생 사건 1심 선고 속속
양승태·이재용 무죄 받아

국정 농단 사건서 비롯된 이른바 ‘이재용 재판’도 1심 판결이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된 뒤 사면되는 등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 역시 국정 농단 사건서 촉발된 것이다. 

당시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이 이 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뇌물로 건넨 것으로 봤다. 또 엘리엇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반대하자 삼성물산 지분 11.9%를 가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와대가 힘써주기를 청탁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에 이어 수사를 시작한 서울중앙지검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을 파고들었다.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회장 등이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회장 등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 공시·분식회계 혐의도 무죄로 봤다. 

불법승계 사건에 대한 법원의 1심판결은 검찰에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실제 법원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검찰 입장에서는 증거능력에 대한 지적이 뼈아팠다.

당시 수사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바닥을 뜯어내 숨겨진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들의 노트북을 대거 확보했다고 한 바 있다. 법원은 이 과정서 압수수색 절차를 지키지 않은 위법 증거는 재판에 사용할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완벽한 패배
검찰로 불똥?

심지어 이 사건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대통령 등이 지휘했다. 기소 후 3년5개월 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검찰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완패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