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VS 한동훈 ‘시한부 휴전’ 막전막후

총선까지만…불안한 동거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김건희 여사를 사이에 두고 당과 대통령실에 분란이 발생했지만, 일단 빠르게 봉합했다. 문제는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살아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기 때문이다. 손을 내밀었지만, 물밑에서는 서로를 견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조만간 다음 라운드가 펼쳐질 양상이다. 당과 대통령실이 하나가 돼 4·10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의 갈등이 표출됐다. 그 주인공은 20년 지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이다. 취임한 지 이제 막 한 달 된 비대위원장에게 물러나라고 선제타격한 곳은 다름 아닌 대통령실이었다. 

등 돌린
20년 지기

지난 22일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과 한 위원장,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한 자리서 만났다. 이날 국민의힘에 따르면, 이 비서실장은 한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고 이에 한 위원장은 사실상 거절했다. 한 비대위원장 사퇴의 이면에는 ‘사천(私薦)’ 논란이 개입돼있다. 서울 마포구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 참여한 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한 위원장은 “마포구을은 개딸 전체주의와 운동권 특권 정치 등으로 변질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있는 곳”이라며 “김경율 비대위원이 정 의원과 붙겠다고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김 비대위원은 단상으로 올라가 한 위원장과 손을 번쩍 들며 자신감을 보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비대위원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아예 한발 더 나아가 비대위 회의 중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며 명품 파우치 가방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논란은 김 여사가 최재형 목사를 만났을 때 디올 파우치 가방을 받았다는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친윤(친 윤석열)계는 사건의 본질이 ‘몰카(몰래 카메라) 공작’이기 때문에 대통령 부부가 사과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 선언이 워낙 급작스러웠던 만큼, 당과 대통령실의 관계가 험악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총선 출마 문제라면 지도부와 김 비대위원 간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당과 대통령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일부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친윤 세력도 한 위원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전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실에 제대로 한 방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퇴 요구가 끊임없이 나오자 오히려 “할 일 하겠다”는 말로 되받아쳤다. 당무 일정도 그대로 수행했고, 기자와의 질의응답서도 거칠 게 없었다. 

믿었던 복심에 큰 충격 받아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어

한 위원장은 명품백 논란에 대해 “몰카 공작이라면서도 전후 과정서 분명 아쉬움이 있는 만큼 국민적 여론을 걱정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읽힌다. 당내서도 김 여사의 사과 여부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윤 원내대표는 정치공작으로 못 박았으나, 한 위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김 여사 이슈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한 위원장의 발언이 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파악된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갈등을 두고 ‘약속 대련’이라는 말도 나온다. 두 사람의 갈등을 지지층 결집을 위해 짜고 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개혁신당(가칭) 이준석 대표는 “애초에 기획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잘 아는 인사가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며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싫은 소리 할 일이 있으면 전화나 텔레그램을 하면 되는데, 굳이 이 실장을 보내 이유가 없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갈등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났다. 상황이 점점 극에 달했지만, 한 위원장은 단호한 메시지를 던지며 한 치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과정서 윤 대통령은 우회적으로 한 위원장을 향해 경고장을 날렸다. 

그 사이 후임 법무부 장관 후보 지명이 빠르게 이뤄졌다. 당초 예상과는 다른 시나리오였는데 이는 한 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함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윤 대통령과 깊은 인연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이 지명됐다.

검찰 라인 역시 빠르게 친윤 라인으로 채우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박 전 고검장과 대구지검 초임 검사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왔다. 이와 함께 법무부 차관의 교체도 함께 이뤄졌다. 법무부 차관이 교체된 것은 7년 만으로 상당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사실상 한 위원장을 향한 경고성 인선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서로가 공멸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한 모양새다. 일단 빠르게 갈등을 봉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머리 숙인 한
조건부 사과?

지난 23일, 한 위원장의 일정은 당 사무처 방문이 예정돼있어 취재진도 진을 치고 있었으나 대뜸 최근 화재가 발생했던 충청남도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는 윤 대통령도 현장 점검을 위해 방문해 충돌 이후의 첫 만남을 가졌다.

한 위원장이 먼저 와서 기다렸고, 90도로 고개 숙여 폴더 인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특유의 손짓으로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 치며 대두됐던 갈등설을 봉합했다. 20년 우정의 건재함을 보인 셈이다. 

문제는 화재 현장 방문 자리가 화해의 장이 됐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정치쇼’에 불과했다는 혹평이 제기됐다. 만약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사실이라면 그 원인에 관한 문제를 풀어내고 해결책이 지금 쯤 나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둘의 갈등 원인으로 지목됐던 부분에 대해선 일절 언급조차 없었는데 무턱대고 화해만 진행된 것과 다름없다. 

여전히 김 비대위원의 거취 문제와 사천 논란, 김 여사의 사과 문제 등이 갈등을 일으킬 태세다. 일단 화재 현장 방문 이후로 “한 위원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친윤 인사들은 입을 닫았다. 기자회견이 예정돼있던 국민의힘 이용 의원은 해당 일정을 취소했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김 비대위원의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 역시 ‘소통 과정의 오류’라는 이유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사실 비대위원 전원 사퇴 외에는 대통령실과 당 누구도 한 위원장을 물러나게 할 방법이 없다. 


겉만 봉합 
상처 그대로

문제는 이런 방식들이 국민의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혁신당 이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를 맡았다가 쫓겨난 이후 자체적으로 반복해온 체제 전환이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인요한 혁신위원회 등 띄웠던 기구들마다 내분과 당무 개입 논란 등으로 당의 분란과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제 선거까지 불과 70일 남은 가운데, 더 이상의 변화 시도는 무리일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한 위원장을 중심으로 국민의힘이 뭉치는 중인 만큼 칼자루는 한 위원장이 쥐고 있다. 친윤 입장에서는 앞으로 또 같은 일이 발생해 윤 대통령을 결사옹위하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좋을 게 없으며 다시 당 내분에 빠질 수 있다.

현재 상황도 나아진 게 없을 뿐더러, 해결된 문제도 하나 없다. 오히려 2차전의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우선 한 위원장은 “김 비대위원의 사퇴와 관련해서 들은 바가 없다”며 모르쇠 전략을 펴고 있다. 이는 당정 관계가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게다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뿐더러 당무 개입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증거일 수 있다. 김 비대위원 사퇴 시 당장 입을 틀어막을 순 있지만, 상당수에 달하는 중도층의 이탈을 감수해야만 한다. 반면 김 비대위원이 버틸 경우, 기존 지지층의 불만이 극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 김 비대위원은 전혀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대신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당을 향한 쓴소리로 들어갔으며, 곧바로 한 위원장에게 불똥이 튈 수 있다. 또 친윤계 인사들이 내색은 하지 않지만 불편해할 것으로 보인다.


“2인자 존재감만 더 커졌다”
당정 2차전 조만간 또 발생?

현재 한 위원장은 김 여사의 사과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집요한 질문에 침묵으로 대응을 바꿨다. 앞선 여론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과는 정반대의 행태다. 이 같은 언론 대응 기조가 지속될 경우, 총선구도는 정권 심판론에 김 여사 논란까지 합세하면서 불리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은 윤 대통령보다는 한 위원장 얼굴로 치르는 게 국민의힘에게는 유리하다. 민주당이 정권 심판론을 계속 내세우는 이유도 윤 대통령이 전면에 드러날수록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기 때문이다. 반면 한 위원장이 커질수록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는 압박이 된다.

민주당서 지속적으로 김 여사 리스크를 띄우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 여사가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더욱 야당에게 유리한 구도가 설정된다. 한 위원장 역시 지금과 같은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면, 당이 더욱 갈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김 여사가 ‘당이 결정하면 사과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당과 대통령실서 알아서 하라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로 인한 야당의 공세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금도 민주당을 비롯한 정의당 등 야당에선 사과 목소리가 다수 나온다. 

문제는 단순히 야당의 공세로만 몰고 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과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70%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국면을 뒤집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과나 ‘몰카 피해자’라는 프레임으론 부족하며 억울한 부분 역시 정면돌파로 풀어가야 한다. 물론, 명품 파우치를 받은 김 여사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청탁금지법으로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접수됐지만, 공직자의 배우자인 김 여사에 대해서는 조사를 강행하기는 쉽지 않는 게 사실이다. 또 윤 대통령의 ‘직무 관련성’과 ‘인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실은 디올 파우치를 대통령실기록물로 지정해버렸고, 가방이 언제 창고로 이관됐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기록물법에 따르면 대통령 선물은 한꺼번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한다. 

김 여사를 
어찌할꼬∼

현재대로라면 국민의힘이 이렇다 할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총선서 패배하는 것은 자명해진다. 비윤계는 쌍특검 재표결로 대통령실을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탈표가 20명만 나오면 쌍특검이 즉시 개시되며 윤 대통령에게 악재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역전될 수도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여의도 정가 관계자는 “한동훈 위원장이 한 발 물러나 준 것으로 봐야 한다. 한 위원장이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총선서 패배할 경우, 그 역시 정치적 타격이 클 것”이라며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의 2차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쌍특검’ 미는 국민의힘,  왜?

국민의힘이 쌍특검(대장동 클럽·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재의결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쌍특검 표결조차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이 속도를 내자고 제안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공천’ 때문으로 보인다. 

아직 국민의힘은 공천룰이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공천룰이 확정되고, 발표가 이뤄진 후 ‘친윤’ 후보 공천 논란이 발발하게 되면 당내 이탈표가 나올 수 있는데 이 지점을 민주당이 노리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최대한 압박해 공세 수위를 높여가며 비윤계의 이탈표를 최대한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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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