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줍’이라고 무시 마라!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내 집 마련과 수익형 부동산투자의 주요 변수로 고금리와 경기침체가 꼽힌다. 입지와 사업성을 최대한 고려하면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여야 한다. 특히 내 집 마련을 위해 청약을 노린다면 미분양 규모가 커질 수 있어 지역별, 입지별 선별 전략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국내 기준금리는 3.5%로 마감했다.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종료 가능성을 언급하며 새해엔 미국 국채금리 하락에 따라 국내 기준금리도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금리 인하를 예상보다 빨리 시작한다면 우리나라 주택경기 회복 시기도 6개월 정도 빨라질 수 있다. 

미국 금리
예의주시

그러나 높아진 부동산 관련 대출금리는 올해도 유지될 가능성이 큰데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연 7%에 달한다. 업계에선 올해 상반기까진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 대출금리가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상업용 부동산투자를 위한 사업자 대출금리도 최고 두 자릿수에 달한다.

수요자 입장에선 대출금리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 무리한 투자로 금융 부담을 높이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관망하는 게 당장은 유리해 보인다. 따라서 지난해 일시적 회복 후 다시 침체를 겪고 있는 분양시장도 올해 회복이 불투명해 선별 전략이 필요하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7월 9041가구서 10월 1만244가구로 증가했다. 서울서도 1순위 청약 마감에 실패해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선착순 청약 물량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당첨자는 재당첨 제한을 감수하고 계약을 포기하기도 한다.


오피스텔, 상가, 지식산업센터 등 이른바 월세 수입을 염두에 둔 수익형 부동산시장도 당분간 침체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분양, 공실이 누적된 데다 신규 공급량이 늘면서 거래 적체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저금리로 호황을 누렸던 수익형 부동산은 고금리 상황에서는 투자 매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익형 부동산의 미분양이 장기화되면서 할인 통매각이나 임대수익 보장 등 자구책을 내놓지만, 향후 미분양 적체 현상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확실한 수익이 예상되는 상가나 오피스텔 등이 아니라면 투자를 관망하고, 매수 시기를 늦추는 것이 좋겠다.

투자 주요 변수 ‘고금리·경기침체’
최대한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 줄여야

결국 수익형 부동산 투자 시 대출 부담을 줄인 보수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올 한 해 수익형 부동산시장은 대체로 부진한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고금리가 이어진다면 상가, 오피스텔 등 주요 상품 임대수익률이 하락한 만큼 투자심리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수익형 부동산시장에 투자하려면 대출 부담을 줄이고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별 공급 물량과 분양가, 금리 변화 등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경기침체가 예상될수록 핵심 부동산 가격 조정이 이뤄진 시점에 투자 여건이 좋은 선임대 후분양, 할인 분양, 급매물 등 실속 저가 매물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연초 나오는 청약 물량 중에선 지난해 공급을 연기했던 곳이 상당수다. 사업성이 낮거나 부담이 큰 곳이 적지 않아 중도금 무이자 등 금융 혜택이 없다면 무리하게 청약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2030 실수요자라면 신규 부동산 특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신생아특례대출과 신혼부부 우대 정책을 활용하면 구입 자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당장 신혼부부가 양가로부터 총 3억원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고 결혼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신생아를 출산하는 경우에는 저리로 장기간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아이를 더 낳는 경우 추가 금리 인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층간소음을 막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향후 공급되는 신규 아파트를 중심으로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층간소음이 일정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아파트에 대한 준공허가를 불허하기로 한 것으로, 특히 이로 인해 발생한 입주 지체 보상금과 각종 금융비용 등은 당연히 건설사 몫으로 돌아간다.

일시적 회복 
다시 침체?

이와 함께 올해부터는 30가구 이상 민간아파트에 제로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한다.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하는 모든 민간 아파트가 적용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5등급 충족 기준으로 공사비가 기존 대비 약 26~35%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더해 층간소음 기준도 강화되면서 가구당 최대 2500만원까지 분양가 상승 압력이 생길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업계 역시 바닥공사 비용이 2배 정도 인상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연구 개발비를 별도로 반영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집값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층간소음 기준이 강화되면 수요자 입장에선 당연히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제로에너지 건축까지 의무화되면서 집값이 오른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내 집 마련을 위해 기 분양된 새 아파트를 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청약과 투자 모두 금리가 가장 중요한 변수기 때문에 정책 대출을 활용하는 게 좋다”며 “생애 첫 주택 구입이나 신혼부부 특례 대출 등을 적극 활용해야 대출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공사비, 인건비 상승 등으로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계속 오르자, 내 집 마련 실수요자들이 입지나 계약조건이 좋은 미분양 아파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수도권 내 미분양 현장.

▲트리우스 광명= 대우건설,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은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에 공급하는 선시공 후분양 아파트 ‘트리우스 광명’의 미분양 잔여세대를 선착순 분양 중이다. 경기도 광명시 광명1동 일원 광명2R구역 정비사업을 통해 탄생하는 아파트로, 1순위 청약서 전용 36~102㎡ 517가구 모집에 2444명이 몰려 평균 4.7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지하 3층~지상 35층, 26개 동, 총 3344가구 전용면적 36~102㎡로 구성된다. 입주는 올해 12월 예정. 대지면적 약 38%의 쾌적한 조경면적으로 친환경 단지로 조성된다. 약 1.2㎞ 산책 동선을 품은 힐링라이프가 가능하다. 주변에 목감천 수변공원과 개봉공원, 개웅산공원 등이 있어 주거환경도 쾌적하다.


새 아파트
노려볼까?

선착순 동호수 지정이 가능하고, 계약금 1000만원 정액제, 발코니 확장 무료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단지는 남향 위주로 배치로 채광과 통풍이 우수하고, 안방 드레스룸을 비롯해 다양한 수납공간을 갖췄다.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시설로 실내골프클럽, 사우나, 피트니스클럽, 독서실, 북카페, 라운지, 작은도서관, 청소년문화의집 등이 들어선다.

▲의정부 푸르지오 클라시엘= 대우건설이 경기 의정부시 금오동에 ‘의정부 푸르지오 클라시엘’을 공급한다. 지하 5층~지상 42층, 4개 동, 전용면적 84~110㎡, 총 656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전용면적별로 84㎡A 246가구, 84㎡B 41가구, 84㎡C 123가구, 84㎡D 82가구, 108㎡A 82가구, 110㎡A 82가구다.

단지가 위치한 금오동은 의정부 주민들로부터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풍부한 생활 인프라를 갖췄다. 의정부 경전철 동오역이 도보권에 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전철 1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또 인근 의정부역에는 GTX-C 노선이 들어설 예정으로 수혜가 기대된다.

지역별·입지별 선별 필수
신규 특례 최대한 활용해야

쾌적한 주거환경도 장점이다. 단지 바로 앞으로 부용천을 따라 수변공원과 산책로인 의정부 소풍길(맑은 물길)이 조성돼있으며, 열린맘공원·추동공원·천보산 등에서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단지는 일대서 보기 드문 최고 42층 고층 설계와 개방감을 극대화한 단지 배치로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일부 가구에서는 부용천과 천보산을 조망할 수 있는 더블 조망권을 갖췄다. 입주는 2027년 12월 예정.

▲고촌 센트럴자이=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6지구 일원에 공급되는 ‘고촌 센트럴자이’가 선착순 동호수 지정 계약을 진행 중이다. 단지는 지하 2층~지상 최고 16층 17개 동 규모로, 아파트 전용 63~105㎡ 총 1297가구 및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남향 위주의 단지 배치를 통해 채광 효율을 높였고, 생활공간 내부는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 84㎡ 타입 위주로 구성했다. 4베이 맞통풍 구조 (일부 타입 제외)를 적용하며, 일부 타입의 경우 알파룸·현관 팬트리 등 특화설계도 다수 선보인다.

스마트폰 블루투스를 통해 공동현관 자동문 개폐 및 엘리베이터를 호출할 수 있는 ‘자이패스’를 비롯해 에너지 관리 시스템·스마트&안전 시스템·에너지 관리 시스템 등이 적용된다. 이 밖에 시니어클럽·어린이집·돌봄센터를 비롯해 작은도서관·골프연습장·주민운동시설·사우나 등 입주민 전용 특화 커뮤니티인 ‘클럽 자이안’도 들어선다. 입주는 올해 6월 예정.

입주예정자들의 이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통상 2개월씩 적용되던 입주지정기간을 5개월까지 연장했다. 일반적으로 후분양 단지는 선분양에 비해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입주예정일이 빨라 입주예정자들이 계약과 동시에 이사 계획을 서둘러 잡아야 하는 부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수요자
미분양으로

이 같은 부담을 고려해 단지는 올해 6월부터 시작되는 입주예정일의 지정 기간을 5개월로 연장했다. 당초 입주예정자들은 본격적인 여름 이사철에 접어드는 6월부터 휴가 기간까지 겹쳐 이삿짐센터를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입주지정기간이 늘어나면서 이사계획 수립에도 다소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1차 계약금 1000만원 정액제와 중도금 전액 무이자 혜택도 제공해 금융부담도 완화했다. 전용 84㎡ 기준 7억원 중반대의 분양가가 책정돼 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다. 또 재당첨 제한 및 실거주의무가 없고 전매제한 기간이 6개월 적용되는 등 입주 전 분양권 전매도 가능하다.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