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보수 새길 가는 이준석을 만나다

“한동훈? 꽝 확률 높은 복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내부 총질러, 배신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대변하는 수식어다. 그는 대선, 지선 2번의 선거서 이기고도 당에서 쫓겨났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여전히 국민의힘을 향해 맹렬한 비판을 쏟아낸다. 지금은 전국을 다니며 민심을 살핀다. 늘 가지고 다니는 낡은 가방과 함께다. ‘신당 창당’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전격 탈당을 결정했다.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꿈을 펼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설계에 한창이다. <일요시사>가 이 전 대표를 만나 국민의힘 현 상황, 신당 창당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이 전 대표와 일문일답. 

-2023년은 이준석에게 어떤 한 해였나?

▲2022년만 해도 강성했던 국민의힘이 2023년을 거치면서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며 역할을 고민하던 시기다. 국민의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던 게 2023년 전반기였고, 여름을 지나면서부터 거의 회생 불능의 상태에 갔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때부터 내가 했던 말이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 경고음을 울리려고 했는데 당내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고문을 올렸더니 저주한다, 내부 총질을 한다는 말이 터져나왔다. 

-당이 무너져 내리는 걸 이미 경험했다. 


▲2012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를 정치에 영입한 다음 ‘박근혜 키즈’ 소리를 들으면서 정치하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지점은 탄핵을 겪으며 당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본 것이다. 강성해보이던 박 전 대통령과 친박(친 박근혜)의 위세가 한 방에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 다시는 저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면 진영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사람의 노력과 어느 정도 운이 따라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고생한 기억이 있다. 윤석열정부를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보수 정권의 하나로서 위기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돼 너무 답답하다. 소위 말하는 검찰 권력이라고 하는 사람이 보수를 장악하면서 보수가 예전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선거에 접근하고, 행정에 접근해 안타깝다. 

-가장 후회되는 부분은?

▲몰락한 보수를 보면서 결국 더 세게 싸웠어야 한다는 후회밖에 없다.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많은 사람이 비겁했고, 비겁함 속에서 탄핵을 당했다. 진박(진짜 박근혜)을 외치고 다닐 때 아무도 제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때 외롭게 싸웠던 유승민 전 의원은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다.

결국에는 싸우지 않고, 아무도 제어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열심히 더 잘 되돌리려고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총선 승리에 기여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쇄신을 한다고 혁신위원회를 띄웠고,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를 가동했다. 한 비대위원장 등판이 국민의힘 총선에 도움이 될까? 한 비대위원장 개인에게는 큰 도전이다. 그걸 굳이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어떤 관계인지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서 불안한 도전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패배의 원흉이 된다. 

항상 ‘긁어보지 않은 복권’이라고 얘기하는데 결과는 모른다. 복권의 기댓값은 계산해보면 내가 낸 돈 5000원이 있으면 기댓값은 보통 4000원서 3000원 정도로 잡아 놓는다. 아주 나쁜 확률은 아니다. 문제는 그걸 노릴 수 있는지의 여부다. 지금 상황서 더 안정적인 방법이 있을 텐데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안정적인 방법은?

▲우리가 윤 대통령에게 2021년경 갖고 있던 이미지는 투박하더라도 남자답고, 시원하다는 면이다. 이런 반응이 있었던 만큼 그때의 이미지를 되살려야 한다. 100% 회복하기는 어렵지만 전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 선거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물러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이런 윤핵관에게 제발 물러나 달라고 할지, 아니면 그들이 지금까지 한 잘못을 가지고 강하게 취조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윤핵관님들, 물러나주세요. 여러분께서 물러나 주시면 구국의 결단’이라고 포장하면서 아무 효과도 받지 못했다. 보통 사람이 영화를 보면 악을 무찌르는 이야기를 본다.

악을 설득하는 시나리오의 영화는 보지 않는다. 윤핵관을 절대 악이라고 표현해 좀 미안하지만, 윤핵관이 한 악행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한 비대위원장 임명을 위해 윤재옥 원내대표 및 당 대표 권한대한이 명분을 쌓은 이유는?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한두 문장을 올렸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는 국민적 기대치가 적고, 이미 6·29니 이런 것 때문에 기운이 다 빠졌는데, 이미 한 비대위원장은 기자와의 질답 과정서 약점이 노정됐다. 답 못하는 질문이 뭔지 간파당한 셈이다. 

-국민의힘이 한 비대위원장을 내세운 것을 보면 여전히 인물론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내가 당 대표가 됐을 때는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본이 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정치 신인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신인 같은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고된 세자 책봉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파격적이지 않은 셈이다.

보수당 대표할만한 얼굴 현재는 없어
“윤 대통령 굴욕 견디고 변화해야 해”

그러니까 당 대표는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위가 있기 때문에 힘이 실린다. 한 비대위원장에게 부여되는 권위는 대통령이 내려주는 권위다. 한계성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확장성 측면서도 한계가 분명하다.


한 비대위원장이 전향적인 행보를 보이기 위해서는 일반적이어야 한다. 특검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한 비대위원장이 혹시라도 이에 대해 전향적인 행보를 보이면 다음에는 명품백에 관해 물어볼 텐데, 거기서 입장이 바뀌면 바로 끝이다. 

-입장이 바뀌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는지?

▲상당한 각오를 갖고 해야 한다. 전향적인 행보를 위해 한 번 앞이 뚫리면 끝까지 가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 의지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윤 대통령 처가에 관한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면 몇 가지를 잘했더라도 말짱 도루묵이 되는 시나리오다. 본인이 할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 

-총선 이후 협상하자는 식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법은 미리 통과시키되 활동기한을 총선 뒤로 하자는 식으로 제안할 텐데, 민주당이 받을 이유가 없다. 협상이라는 건 상대가 얻는 게 있고, 내가 얻는 게 있어야 협상이 성립한다. 당의 전술 또는 용산의 전술이 매일 그런 식이다. 자기들 입장서 이랬으면 좋겠다. 안 받아도 죽고, 받아도 죽을 것 같으니 받는 척을 하면서 실제로 다른 대안을 찾고 싶은데, 그런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이)너무 안일하다.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타개책이 있다면?


▲실제 상황을 더 면밀하게 파악해야 대안을 낼 수 있다. 내가 당 대표로 있을 때는 매일 실시간으로 갖고 있는 정보의 한계선 속에서 어떤 전략을 구상해왔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수도권에 출마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수도권은 어려운 외곽 지역으로 갈수록 출퇴근 인구가 많다.

새벽에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유권자의 표심은 전국 평균으로 간다. 수도권 서구에 거주하는 주민은 통근 거리가 길다. 매일 광역버스 타고 새벽 5시에 나가는 분들 표심을 잡으려면 고공전을 이겨야 한다. 

-윤 대통령은 보수 대통령이 맞다고 보나?

▲윤 대통령은 당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가치나 지향점을 다 무시했다. 전당대회서 선출된 당 대표가 그리던 방향성을 무시하고, 본인의 방향성으로 덮어씌우려고 나는 쫓아냈다. 당에 소속된 인사인지 당을 지배하는 인사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대통령을 1호 당원, 또는 으뜸당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통령이 당연히 당원이고, 당의 가치를 따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정강 정책이라는 걸 보면 윤 대통령의 정책과 거리가 너무 멀다. 이런 걸 아예 수정하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 정강 정책 1호는 기본소득에 대한 고민이다. 기본소득이라는 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야기하는 식의 기본소득도 있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야기하는 안심 소득 같은 것도 있다. 이런 논의에 있어 윤 대통령은 끼지 않는다.

관심사가 무엇인지 당의 정책을 어떻게 실현시킬지에 관한 행동이 안 보여 당과 관계없는 권력을 득하기 위해 당에 들어온 사람처럼 된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이다. 헌법은 읽어봤겠지만, 당에도 당헌·당규와 기본 정책이 있다. 이런 부분을 숙지하고 정치를 해 나갔으면 좋겠다. 

-탈당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탈당선언문에 포함된 내용은?

▲2년 동안 빌런 만들기 정치 때문에 민주당 이 대표, 윤 대통령, 여기에 김건희 여사에 관한 국민적 평가는 끝났다. 그래서 두 세력이 서로 머리채 잡으려고 하는 상황은 다시 있어선 안 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놓고, 경쟁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탈당선언문 미래에 관한 이야기 담아
“새로운 도전 어려워, 그래서 하는 것”

탈당선언문에는 윤정부가 놓쳤던 것을 나열했다. 결국 윤정부 속에서 복지 그물망,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관해 약속한 게 다 실종됐다. 이런 게 안타깝다. 신당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밝힐 예정이다. 

-신당으로 성공이 가능하다고 자신하는지?

▲내가 당 대표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는데, 기존에 있던 덩어리에 큰 저항이 있었다. 공천 시험제 운영 때가 그랬다. 이런 것들을 가볍게 빌드업 하는 형태로 당을 운영해보고 싶다. 

-내부 총질러, 배신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이런 상황서 전국적인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TK(대구·경북)와 PK(부·울·경)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충분히 소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K 경우에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그만큼 부끄러움도 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지만 보수는 이렇게 가다가는 완전히 망한다. 대선주자도 없고, 당 체계도 없고, 간신배만 남아 당이 이뤄지겠냐는 생각에 노아의 방주론의 필요성을 다수가 인식 중이다. 

-TK와 PK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결국 보수의 큰 인물 또는 큰 주자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신다. 보수가 시대에 따라 지도자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많이 소멸해가는 중이다. TK를 대표하는 주자가 없는데, TK가 좋아할 수 있는 큰 인물이 되겠다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두 번째로는 TK 정치가 활력을 잃은 이유는 젊은 사람에게 공간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는데, 이들에게 공간을 열어줄 생각이다.

-호남과 제주도도 많이 다녀왔는데

▲최근 호남은 자주 가지 못했는데, 호남에서는 5·18이나 과거 이야기를 하는 걸 지쳐하는 모습이다. 이런 부분을 넘어서야 한다. 제주도는 김포공항 이전 이슈로 활발하던 당원들이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다. 윤 대통령의 4·3 추념사는 핵심을 피해갔다. 이런 점에서 보수 세력이 좀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한다. 나는 역사와의 대화 속에서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생각 중이다. 

-신당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인물은 얼마나 되나?

▲많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신인 위주의 시도일지, 수권 세력이 되기 위한 덩어리를 키우기는 방향으로 갈지를 구성원과 계속 고민 중이다. 

-신당이 생기면 국민의힘은 민주당, 신당과 싸워야 할 처지인데?

▲한 비대위원장에 달려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누군가 만들어준 기회 속에서 활동해왔다. 지역을 넓혀 나가는 건 본인 몫이다. 영웅이라면 돌파해낼 것으로 본다. 

-한 비대위원장이 만남을 제안하면 응할 것인가?

▲결심한 시점서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 비대위원장이 이야기를 하자면 할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결론을 정해놓고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출마 지역은 정해졌나?

▲아직 확실하지 않다. 총선을 두 번 치르고, 보궐선거도 한 번 치러봤지만 예비후보 등록 기간인데도 등록을 하지 않은 게 처음이다. 2월까지 고민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분이 얘기해주시는 게 있다. 비판을 많이 해온 이준석에게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굳이 나가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느냐고 묻곤 한다. 나는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 소속된 당이 잘못됐을 때 생기는 기회를 기다리는 건 너무 모욕적이다.

정말 어렵다고 해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는 게 요즘 내 생각이다. 국민의힘서 당 대표를 하면서 두 개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으면 그건 박 전 대통령 이후 최대 성과다. 더 이상 기다리는 건 의미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조금 더 전격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이 한 말이 있다. 도전하는 이유는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워서라고. 그 말에 동의한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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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