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보수 새길 가는 이준석을 만나다

“한동훈? 꽝 확률 높은 복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내부 총질러, 배신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대변하는 수식어다. 그는 대선, 지선 2번의 선거서 이기고도 당에서 쫓겨났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여전히 국민의힘을 향해 맹렬한 비판을 쏟아낸다. 지금은 전국을 다니며 민심을 살핀다. 늘 가지고 다니는 낡은 가방과 함께다. ‘신당 창당’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전격 탈당을 결정했다.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꿈을 펼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설계에 한창이다. <일요시사>가 이 전 대표를 만나 국민의힘 현 상황, 신당 창당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이 전 대표와 일문일답. 

-2023년은 이준석에게 어떤 한 해였나?

▲2022년만 해도 강성했던 국민의힘이 2023년을 거치면서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며 역할을 고민하던 시기다. 국민의힘을 살릴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던 게 2023년 전반기였고, 여름을 지나면서부터 거의 회생 불능의 상태에 갔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때부터 내가 했던 말이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 경고음을 울리려고 했는데 당내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고문을 올렸더니 저주한다, 내부 총질을 한다는 말이 터져나왔다. 

-당이 무너져 내리는 걸 이미 경험했다. 


▲2012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를 정치에 영입한 다음 ‘박근혜 키즈’ 소리를 들으면서 정치하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지점은 탄핵을 겪으며 당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본 것이다. 강성해보이던 박 전 대통령과 친박(친 박근혜)의 위세가 한 방에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 다시는 저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면 진영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사람의 노력과 어느 정도 운이 따라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여전히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고생한 기억이 있다. 윤석열정부를 그 자체로 보기보다는 보수 정권의 하나로서 위기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왔다.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돼 너무 답답하다. 소위 말하는 검찰 권력이라고 하는 사람이 보수를 장악하면서 보수가 예전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선거에 접근하고, 행정에 접근해 안타깝다. 

-가장 후회되는 부분은?

▲몰락한 보수를 보면서 결국 더 세게 싸웠어야 한다는 후회밖에 없다.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많은 사람이 비겁했고, 비겁함 속에서 탄핵을 당했다. 진박(진짜 박근혜)을 외치고 다닐 때 아무도 제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때 외롭게 싸웠던 유승민 전 의원은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다.

결국에는 싸우지 않고, 아무도 제어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열심히 더 잘 되돌리려고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총선 승리에 기여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쇄신을 한다고 혁신위원회를 띄웠고,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를 가동했다. 한 비대위원장 등판이 국민의힘 총선에 도움이 될까? 한 비대위원장 개인에게는 큰 도전이다. 그걸 굳이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어떤 관계인지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서 불안한 도전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패배의 원흉이 된다. 

항상 ‘긁어보지 않은 복권’이라고 얘기하는데 결과는 모른다. 복권의 기댓값은 계산해보면 내가 낸 돈 5000원이 있으면 기댓값은 보통 4000원서 3000원 정도로 잡아 놓는다. 아주 나쁜 확률은 아니다. 문제는 그걸 노릴 수 있는지의 여부다. 지금 상황서 더 안정적인 방법이 있을 텐데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안정적인 방법은?

▲우리가 윤 대통령에게 2021년경 갖고 있던 이미지는 투박하더라도 남자답고, 시원하다는 면이다. 이런 반응이 있었던 만큼 그때의 이미지를 되살려야 한다. 100% 회복하기는 어렵지만 전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 선거서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물러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이런 윤핵관에게 제발 물러나 달라고 할지, 아니면 그들이 지금까지 한 잘못을 가지고 강하게 취조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윤핵관님들, 물러나주세요. 여러분께서 물러나 주시면 구국의 결단’이라고 포장하면서 아무 효과도 받지 못했다. 보통 사람이 영화를 보면 악을 무찌르는 이야기를 본다.

악을 설득하는 시나리오의 영화는 보지 않는다. 윤핵관을 절대 악이라고 표현해 좀 미안하지만, 윤핵관이 한 악행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한 비대위원장 임명을 위해 윤재옥 원내대표 및 당 대표 권한대한이 명분을 쌓은 이유는?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한두 문장을 올렸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길 거라는 국민적 기대치가 적고, 이미 6·29니 이런 것 때문에 기운이 다 빠졌는데, 이미 한 비대위원장은 기자와의 질답 과정서 약점이 노정됐다. 답 못하는 질문이 뭔지 간파당한 셈이다. 

-국민의힘이 한 비대위원장을 내세운 것을 보면 여전히 인물론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내가 당 대표가 됐을 때는 비주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본이 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정치 신인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신인 같은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고된 세자 책봉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파격적이지 않은 셈이다.

보수당 대표할만한 얼굴 현재는 없어
“윤 대통령 굴욕 견디고 변화해야 해”

그러니까 당 대표는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위가 있기 때문에 힘이 실린다. 한 비대위원장에게 부여되는 권위는 대통령이 내려주는 권위다. 한계성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확장성 측면서도 한계가 분명하다.


한 비대위원장이 전향적인 행보를 보이기 위해서는 일반적이어야 한다. 특검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한 비대위원장이 혹시라도 이에 대해 전향적인 행보를 보이면 다음에는 명품백에 관해 물어볼 텐데, 거기서 입장이 바뀌면 바로 끝이다. 

-입장이 바뀌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는지?

▲상당한 각오를 갖고 해야 한다. 전향적인 행보를 위해 한 번 앞이 뚫리면 끝까지 가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 의지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윤 대통령 처가에 관한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서 물고 늘어지면 몇 가지를 잘했더라도 말짱 도루묵이 되는 시나리오다. 본인이 할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 

-총선 이후 협상하자는 식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법은 미리 통과시키되 활동기한을 총선 뒤로 하자는 식으로 제안할 텐데, 민주당이 받을 이유가 없다. 협상이라는 건 상대가 얻는 게 있고, 내가 얻는 게 있어야 협상이 성립한다. 당의 전술 또는 용산의 전술이 매일 그런 식이다. 자기들 입장서 이랬으면 좋겠다. 안 받아도 죽고, 받아도 죽을 것 같으니 받는 척을 하면서 실제로 다른 대안을 찾고 싶은데, 그런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이)너무 안일하다.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타개책이 있다면?


▲실제 상황을 더 면밀하게 파악해야 대안을 낼 수 있다. 내가 당 대표로 있을 때는 매일 실시간으로 갖고 있는 정보의 한계선 속에서 어떤 전략을 구상해왔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수도권에 출마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수도권은 어려운 외곽 지역으로 갈수록 출퇴근 인구가 많다.

새벽에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유권자의 표심은 전국 평균으로 간다. 수도권 서구에 거주하는 주민은 통근 거리가 길다. 매일 광역버스 타고 새벽 5시에 나가는 분들 표심을 잡으려면 고공전을 이겨야 한다. 

-윤 대통령은 보수 대통령이 맞다고 보나?

▲윤 대통령은 당이 지금까지 구축해온 가치나 지향점을 다 무시했다. 전당대회서 선출된 당 대표가 그리던 방향성을 무시하고, 본인의 방향성으로 덮어씌우려고 나는 쫓아냈다. 당에 소속된 인사인지 당을 지배하는 인사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대통령을 1호 당원, 또는 으뜸당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통령이 당연히 당원이고, 당의 가치를 따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정강 정책이라는 걸 보면 윤 대통령의 정책과 거리가 너무 멀다. 이런 걸 아예 수정하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 정강 정책 1호는 기본소득에 대한 고민이다. 기본소득이라는 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야기하는 식의 기본소득도 있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야기하는 안심 소득 같은 것도 있다. 이런 논의에 있어 윤 대통령은 끼지 않는다.

관심사가 무엇인지 당의 정책을 어떻게 실현시킬지에 관한 행동이 안 보여 당과 관계없는 권력을 득하기 위해 당에 들어온 사람처럼 된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법률가 출신이다. 헌법은 읽어봤겠지만, 당에도 당헌·당규와 기본 정책이 있다. 이런 부분을 숙지하고 정치를 해 나갔으면 좋겠다. 

-탈당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탈당선언문에 포함된 내용은?

▲2년 동안 빌런 만들기 정치 때문에 민주당 이 대표, 윤 대통령, 여기에 김건희 여사에 관한 국민적 평가는 끝났다. 그래서 두 세력이 서로 머리채 잡으려고 하는 상황은 다시 있어선 안 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놓고, 경쟁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탈당선언문 미래에 관한 이야기 담아
“새로운 도전 어려워, 그래서 하는 것”

탈당선언문에는 윤정부가 놓쳤던 것을 나열했다. 결국 윤정부 속에서 복지 그물망,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관해 약속한 게 다 실종됐다. 이런 게 안타깝다. 신당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밝힐 예정이다. 

-신당으로 성공이 가능하다고 자신하는지?

▲내가 당 대표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는데, 기존에 있던 덩어리에 큰 저항이 있었다. 공천 시험제 운영 때가 그랬다. 이런 것들을 가볍게 빌드업 하는 형태로 당을 운영해보고 싶다. 

-내부 총질러, 배신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이런 상황서 전국적인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TK(대구·경북)와 PK(부·울·경)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충분히 소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TK 경우에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그만큼 부끄러움도 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지만 보수는 이렇게 가다가는 완전히 망한다. 대선주자도 없고, 당 체계도 없고, 간신배만 남아 당이 이뤄지겠냐는 생각에 노아의 방주론의 필요성을 다수가 인식 중이다. 

-TK와 PK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결국 보수의 큰 인물 또는 큰 주자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신다. 보수가 시대에 따라 지도자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많이 소멸해가는 중이다. TK를 대표하는 주자가 없는데, TK가 좋아할 수 있는 큰 인물이 되겠다는 게 우선적인 목표다. 두 번째로는 TK 정치가 활력을 잃은 이유는 젊은 사람에게 공간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는데, 이들에게 공간을 열어줄 생각이다.

-호남과 제주도도 많이 다녀왔는데

▲최근 호남은 자주 가지 못했는데, 호남에서는 5·18이나 과거 이야기를 하는 걸 지쳐하는 모습이다. 이런 부분을 넘어서야 한다. 제주도는 김포공항 이전 이슈로 활발하던 당원들이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다. 윤 대통령의 4·3 추념사는 핵심을 피해갔다. 이런 점에서 보수 세력이 좀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한다. 나는 역사와의 대화 속에서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생각 중이다. 

-신당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인물은 얼마나 되나?

▲많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신인 위주의 시도일지, 수권 세력이 되기 위한 덩어리를 키우기는 방향으로 갈지를 구성원과 계속 고민 중이다. 

-신당이 생기면 국민의힘은 민주당, 신당과 싸워야 할 처지인데?

▲한 비대위원장에 달려 있다. 한 비대위원장은 누군가 만들어준 기회 속에서 활동해왔다. 지역을 넓혀 나가는 건 본인 몫이다. 영웅이라면 돌파해낼 것으로 본다. 

-한 비대위원장이 만남을 제안하면 응할 것인가?

▲결심한 시점서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 비대위원장이 이야기를 하자면 할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결론을 정해놓고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출마 지역은 정해졌나?

▲아직 확실하지 않다. 총선을 두 번 치르고, 보궐선거도 한 번 치러봤지만 예비후보 등록 기간인데도 등록을 하지 않은 게 처음이다. 2월까지 고민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분이 얘기해주시는 게 있다. 비판을 많이 해온 이준석에게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굳이 나가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느냐고 묻곤 한다. 나는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 소속된 당이 잘못됐을 때 생기는 기회를 기다리는 건 너무 모욕적이다.

정말 어렵다고 해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는 게 요즘 내 생각이다. 국민의힘서 당 대표를 하면서 두 개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으면 그건 박 전 대통령 이후 최대 성과다. 더 이상 기다리는 건 의미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조금 더 전격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이 한 말이 있다. 도전하는 이유는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워서라고. 그 말에 동의한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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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