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초대석> 국민의힘을 말하다 유준상 상임고문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들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 상황은 시간 단위로 변화 중이다. 수장이 바뀐 국민의힘,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제3지대까지 정계 시계는 ‘제로(0)’ 상태다. 길잡이가 필요한 시기다. <일요시사>가 국민의힘 유준상 상임고문을 만나 한국 정치가 가야할 길을 물었다. 

“정치는 생물이다.” 국민의힘 유준상 상임고문의 말을 증명하듯 불과 열흘 새 정치권 상황이 급변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고 이준석 전 대표는 당을 떠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더해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비리 의혹 제보와 관련해 내전이 일어났다. 

양당 실망
정치 불신

집권여당과 거대 야당을 떠난 일부 의원이 제3지대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잘나가는 듯 보이는 국가 경제에 반해 국민의 체감 경기는 얼어붙은 상태다. 출산율은 사상 최저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청년층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다. 4월10일,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100일 앞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유 상임고문은 “정당의 리더뿐만 아니라 국가에 원로가 없는 게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GDP(국내총생산) 10~12위를 오가는 선진국이다. K-컬처가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이 상황서 오로지 여의도 정치판만 엉망”이라고 한탄했다. 

당초 유 상임고문은 <일요시사>의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고사했다. 그는 “정치권에 있을 무렵 나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치인이 아니었다”며 “그래서 현재 정치 상황과 관련한 인터뷰에 응할 자격이 있는지 깊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입을 열어야 할 상황이라면 부족하지만 꼭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선 22대 왕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에 나오는 ‘미가이언이언자 기죄소(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 가이언이불언자 기죄대(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 즉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12월15일, 같은 달 26일 한국정보기술연구원서 유 상임고문을 만났다. 다음은 유 상임고문과의 일문일답.

-정국이 혼란스럽습니다.

▲정치, 경제, 안보 등 모든 분야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입니다. 야당은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당 전체가 나섰고 개딸(개혁의 딸, 이재명 대표의 지지자)은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하고 있습니다. 여당은 또 어떻습니까? 당원의 뜻에 따라 뽑은 대표를 몰아내지 않았습니까? 서로 단합해도 모자랄 상황에 내부 갈등이 불거지면서 국민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습니다.

-정국 혼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사명감, 애국심 같은 국회의원이 가져야 할 덕목이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고 당을 사당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복합적으로 위기를 불러 왔습니다. 내부 갈등도 문제지만 여당과 야당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국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 대통령선거 당시 각 당을 지지했던 지지자들이 주춤거리면서 발을 빼고 있는 형국입니다.

총선 앞두고
내부 총질


-4·10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에 윤석열정부의 향후 3년이 달려 있습니다. 승리하면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을 것이고 패배하면 조기 레임덕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와 동시에 이번 선거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띠면서 여야 정치인에 대한 국민 심판도 함께 이뤄질 것이라 보여집니다. 

혼란의 국민의힘·리스크 민주당
이준석 안고 제3지대 헤쳐 모여?

-국민심판이라고 하시면?

▲정치는 버려야 얻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 누구도 손 안에 쥔 권력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 여론에 등 떠밀려 자리를 내려놓고 불출마 선언을 하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국민에게 진정성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결단의 시기 또한 때를 놓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시기를 놓쳤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와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나가기 전에 나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치는 타이밍입니다. 강서구청장 선거가 끝난 직후에 사퇴, 불출마 선언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고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요구했을 때 받아들였다면 국민에게 집권당으로서 진정성 있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지율이 상승했을 겁니다. 그래도 지금이나마 당 지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당 상황에 대해 여러 차례 국민의힘 지도부에 말씀하셨다고.

▲제가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간담회서 정진석, 주호영 두 비대위원장과 김기현 전 대표 등 당 대표에게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영남권의 다선 중진이 경험과 경륜, 지명도를 바탕으로 수도권 험지에 출마해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또 좋은 후보를 영입하기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두 번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마이동풍입니다. 듣질 않습니다. 

-이번 선거의 화두가 될 이슈로 뭘 꼽을 수 있을까요?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공천과 정책이 중요합니다. 먼저 사람입니다. 인사가 만사인데 ‘망사’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당이 공천 과정서 잡음 없이 공정하게 참신한 인물을 데려오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입니다. 여기에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지금으로선 저출산이 가장 큰 화두로 작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저출산이라는 화두에 청년층의 취업·주거·양육 문제가 모두 포함돼있습니다. 15년 동안 출산 장려를 위해 사용한 돈이 283조원에 이릅니다. 17년으로 넓히면 300조원이 넘습니다. 2022년만 따져도 50조원을 썼는데 신생아 수는 25만명에 그쳤습니다.

한 사람 당 2억원에 달하는 돈을 쓰고도 출산율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정치인이 국민의 세금을 제대로 못 쓰니 벌어진 일입니다. 결국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들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2월15일 인터뷰 이후 열흘 동안 정치권의 상황이 요동쳤다. 추가 인터뷰를 위해 12월26일 유 상임고문을 한 차례 더 만났다. 유 상임고문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임명안’과 ‘비대위원회 설치 안건’을 의결하는 전국위원회 ARS 투표를 진행 중이었다.

결과는 재적 824명 가운데 650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627표로 안건이 가결됐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날 공식 취임했다.

-‘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했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공공선을 추구하고 어떤 개인에게도 맹종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언론을 통해 지켜봤을 때 비대위원장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조기 등판으로 인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웠지만 비대위원장으로 결정된 이상 흔들림 없이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 등판
성공할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 경험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꼽힙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인재를 영입하고 이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전국 선거를 진두지휘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미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된 만큼 이제부터는 사람을 잘 둬야 합니다. 부족한 정치 경험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경륜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동훈 비대위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동훈 비대위가 성공하기위해서는 선결조건이 있습니다. 일단 문제 있는 인물은  선수에 관계없이  공천과정에서 과감하게 배제해야 합니다. 이길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천을 진행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잡음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신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국민과 시민들의 바람을 실천하고 국민들이 바라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선진국형 인사가 필요합니다. 이번달 말까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국민의 힘을 어떻게 이끌고 가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결정될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서 비대위원장 변신
“부족한 정치 경험 사람 중요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멀리 바라보는 통찰력과 더 큰 그림을 그려 새로운 길로 가려는 참신함이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불출마 선언은 국민의힘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집권당이 되는 데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행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또 민주당이 혁신할 수밖에 없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을 탈당했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의 탈당이 한동훈 비대위 출범 전에 이뤄졌으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타격이 상당했을 듯합니다. 하지만 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하면서 그 파급력을 상쇄했다고 보입니다. 강이 흘러서 바다서 만나듯 이준석 전 대표와는 총선 이후에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제3지대론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신당을 만들겠다고 나선 금태섭·양향자·류호정 의원, 그리고 이준석 전 대표 등이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합을 구성한다면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제3지대의 크기는 양당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양당이 개혁에 성공하면 제3지대는 힘을 쓰지 못할 것이고 실패하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의석을 얻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4월10일 새로운 인물들이 국회에 입성하게 될 텐데요.

▲과거 초선 의원은 ‘정풍 운동’을 주도하면서 당내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번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정인을 몰아내기 위해 연판장을 돌리고 줄을 서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헌법기관입니다. 그 격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합니다.

-정치인의 덕목은 뭐라고 보십니까?

▲정직하고 겸손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책임감을 가지면서도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국민이 생각하는 바를 읽고 이를 위해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정치에는 완승이라는 게 없습니다. 타협하고 조율하면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지금은 서로를 죽이기 위한 정치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치 지도자를 위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과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의 모습서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제가 생기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결단을 내렸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 인권·민주·평화·번영을 위해 힘쓰고 IT 정보화에 눈을 돌리는 등 탁월한 안목을 지닌 지도자였습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문민정부를 탄생시키고 민주정부를 완성 시키는 데 낭만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치인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젊은 지도자
3김 배워야

-대한민국 정치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일까요?

▲1987년 정치 체제는 이제 낡았습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 비상할 수 없습니다.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선진국에 걸맞은 정치제도로 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저출산 문제와 함께 윤석열정부서 가장 화두가 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처럼 40~50대가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최근 70~80대의 노회한 정치인이 또 총선에 나서려 한다는 말이 들립니다. 다시 정치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국가 발전을 위해 참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도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노회한 정치인은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젊은 리더를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