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ELS 불판’ 논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2.22 08:25:15
  • 호수 1458호
  • 댓글 62개

“국민 상대로 앵벌이 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일반투자자에게 파생상품 판매를 금지한 국가도 있다. 마트서 총을 판 격.” 최근 5대 시중은행의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H지수) 연계 ELS(파생결합증권) 불완전판매 의혹에 관해 홍콩 증권사 출신 관계자가 한 말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노르웨이 금융당국은 파생상품 등 복잡한 구조의 상품을 일반투자자에게 팔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채택했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서 내년 상반기에만 3조원가량의 손실 가능성이 제기됐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까지 계약시점을 기준으로 일정 범위서 움직이면 약속한 수익을 주는 파생상품이다. ELS의 만기는 통상 3년으로, 2021년 저금리 당시 은행예금보다 연 2%가량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상품으로 통했다. 

알고도…

반대로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면 원금손실이 발생한다는 함정이 존재한다. 2021년 상반기 1만2000선을 넘었던 H지수는 지난 1일 기준 5761.73까지 떨어진 상태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된다. 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어섰으나 그해 말 8000대까지 떨어졌다. 현재 6000대서 횡보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는 5000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최근 중국 경기 둔화와 미·중 분쟁 등의 영향으로 2년 전과 비교해 절반 아래로 급락했다. 만기 도래를 코앞에 두고 손실이 가시화되자, 투자자들은 원금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투자자들은 “홍콩이 망하지 않는 한 수익이 보장되는 상품”이라는 긍정적인 설명만 들었다고 주장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언론을 통해 “예금만큼 안전하다고 해서 노후자금을 ELS에 넣었는데, 현재 상품 평가액이 원금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한 투자자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대변했다.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언급되자 금융당국은 전수조사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8일까지 최대 판매기관인 KB국민은행을 포함한 시중 5대은행(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을 조사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 전체 판매액 중 거의 절반이 60대 이상 고령층에게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엔 90대 이상 초고령자에게 판매된 91억원도 섞여 있다. “고령층에 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을 판매하면서 초고위험 투자상품임을 100% 설명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판매 잔액은 수십조에 달했다. 지난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H지수 연계 ELS 판매 잔액은 11월 말 기준 13조5790억원이다. 이 중 60대 이상 고객에게 판매된 것이 6조4541억원으로 47.5%를 차지했다.

금소법 만들면 뭐해? 
탓하기 바쁜 금융권

60대(60~69세) 고객은 전체 연령대 중 홍콩H지수 연계 ELS를 가장 많이 보유(32.1%)하고 있었다. 그 다음이 50대(30.8%), 40대(14.1%), 70대(13.8%), 30대(4.8%) 순이었다.

이 중 고령층인 80대(80~89세)는 2083억8000만원, 90대 이상은 90억8000만원, 도합 2174억60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80대 이상 고령층에게 H지수 연계 파생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곳은 하나은행(817억9000만원)이었다. 이어 ▲농협은행 645억4000만원 ▲국민은행 385억4000만원 ▲신한은행 316억원 ▲우리은행 16억2000만원 순으로 이어졌다.

90대 이상 초고령자에 대해서는 하나은행이 74억1000만원 규모로 가장 많이 팔았다. 이어 ▲NH농협은행(9억3000만원) ▲KB국민은행(6억6000만원) ▲신한은행(8000만원) 순이었다. 우리은행은 90대 이상 고객에게 해당 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은행들은 ELS를 사모·공모를 통해 펀드(ELF)와 신탁(ELT) 형태로 판매해왔다. ELT는 H지수를 포함 ‘닛케이 225’ ‘S&P500’ ‘유로스톡스50’ 등 각국 대표 지수 3개 정도를 연계한 상품이다. 

일각에서는 예견된 사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H지수 연계 ELS가 2021년 초에 판매됐다는 걸 감안할 때 금감원은 이번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금감원은 ‘ELS 등 파생결합증권 투자현황 및 보호방안’이라는 자료를 발표하면서 예방책을 논의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ELS를 포함한 파생결합증권에 47조원가량을 투자했다. 이 중 42%가 60대 이상 고령층인 것으로 분석됐다. 해당 자료는 결론을 통해 “은행 창구 직원의 적극적인 투자권유로 발생할 소지가 높은 불완전판매를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이 ELS 불완전판매 행태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있다. 금감원 조사원이 고객으로 가장해 금융회사의 상품 판매절차를 평가하는 ‘미스터리쇼핑’을 통해 분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시중 5대 은행을 포함한 7개 은행을 대상으로 판매 현장을 점검했다. 외부 전문업체의 조사원이 영업점을 방문·점검해 상품 판매 과정서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녹취의무 ▲숙려제도 ▲고령투자자 보호 등 준수 여부를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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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서 우수-양호-보통-미흡-저조 등 5단계로 등급을 부여한다. 이 과정서 우수-양호-보통-미흡-저조 등 5단계로 등급을 부여한다. 현장 점검한 결과, NH농협,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만이 80점대를 받으며 ‘양호’ 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는 고위험 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 등 관리·감독 문제가 제기되자 투자자보호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왔다. 그 결과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됐다. 금소법은 금융투자상품 판매 시 ▲설명의무 ▲적합·적정성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을 의무 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다.

금소법 시행에도 불완전판매 의혹은 꺼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금소법이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와 금융권의 판매 관행 개선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펀드·신탁, 보험 등의 불완전판매 금액만도 6조원에 달한다. 특히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은행권의 불완전판매 금액은 3조6270억원으로 피해자는 1만9692명에 이른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설명의무위반 등이 주된 제재 사례로 꼽혔다.

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금지 등의 규제도 언급됐다. 지난 2019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 당국은 시중은행의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대책을 마련했지만 “40조원 이상 규모의 신탁 시장을 잃게 된다”는 은행 측의 반발에 따라 제한적 판매를 허용했다.

H지수의 위험성을 예의주시해온 한 금융전문가는 이번 사태에 관해 다소 충격적이라는 입장이다.


홍콩의 종합금융사 캐시파이낸셜서비스그룹 파생상품 운용역을 맡았던 조용래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국제적인 시각서 은행이 파생상품을 일반투자자에게 무분별하게 판매한 것은 앵벌이나 다름없는 행위”라며 “유럽에선 이미 복잡한 구조화 상품의 위험성을 경험하고 일반투자자에게 판매를 금지한 경우도 있다. 방관한 정부의 책임이 은행보다 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견된 사태

실제로 노르웨이 금융당국은 전문투자자가 아닌 투자자에게 복잡한 구조화 상품을 팔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2008년 채택했다. 벨기에도 2011년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화상품을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중지시켰다. 이는 노르웨이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15만명가량의 일반투자자가 70억달러 이상의 구조화 상품에 투자해 손실을 입은 사건을 겪으면서 도입됐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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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