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꼬인 외교를 풀다’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

“공식적으로 접근하면 공식적인 답변밖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세계 정세가 혼탁하다. 전쟁은 세계를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고 경제 지표는 바닥을 향하는 중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외교력이 필요한 시기다. 출범 2년째를 맞고 있는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에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중국과 동아시아, 중동 국가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외교 전문가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에게 물었다.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은 “내년에도 세계적인 환경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굵직한 전쟁이 두 건이나 일어났고 그 여파로 전 세계가 휘청거리는 상황이 새해에도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암울한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간의 전쟁은 한국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 여파
직간접 영향

윤 회장은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이란과의 상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로 이란 원유 수출대금이 다시 동결됐기 때문이다. 60억달러에 이르는 대금은 과거 이란이 한국에 원유를 수출하고 받은 돈이었다.

그동안 대이란 제재 때문에 한국에 묶여 있다가 지난 9월 이란에 수감된 미국인과 미국에 억류된 이란인을 서로 맞교환한다는 조건으로 동결을 해제한 바 있다. 

대금은 미국과 합의해 한국서 스위스은행을 거쳐 카타르의 은행으로 이체됐고 미국은 이란이 미국의 승인을 거쳐 식량과 의약품 구매 등 인도주의 용도로만 쓰도록 했다. 문제는 이란이 오랫동안 지원해온 하마스가 지난 10월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자금을 다시 동결하게 된 것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하원은 ‘대이란 테러 자금 차단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바이든 행정부는 해당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카타르와 협의 하에 당분간 이란이 그 돈을 인출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사실상의 재동결 조치다. 한국은 2021년 동결자금 반환 문제로 한국국적상선 ‘한국케미호’가 나포되기도 했다.

윤 회장은 이란 대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시간 물밑서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8년여간 공들인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옛 친구
중국은 새 친구

윤 회장은 “세상의 모든 일은 갑과 을이 문제가 돼서 일어나는 일인데, 이번 일은 갑과 을은 합의가 됐는데 병과 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런 면에서 정말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는 한‧중‧일 세 나라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진행하는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의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을 지원하는 단체다. 윤 회장이 회장으로 활동한 아태경제문화연구소와 통합해 탄생했다. 윤 회장은 세 나라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민간 주도로 조율하는 이른바 ‘민간외교 전문가’로 3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 내 가장 정통한 ‘중국통’으로도 꼽힌다.

윤 회장은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인 한·미·일 동맹 강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중 관계에는 우려를 표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이 밀착하면서 중국이 배제되는 모양새가 취해졌고 그 결과 한중 관계가 경색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윤 회장은 “현재 한중 관계는 경직을 넘어서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윤 회장과의 일문일답.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정부서 강조하는 한미동맹은 외교의 기본이 돼야 하는 게 맞습니다.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 역시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배제’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윤정부 외교정책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지난 8월 한·미·일 3국 정상이 미국 캠프 데이비드서 만나 북한 관련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이 과정서 중국은 완전히 배제된 상태였습니다. 중국에 모든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대만 문제 등 중국과 관련돼있는 부분은 이해당사국인 중국에 상세하게 설명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입니다. 중국은 이런 점에서 소외감과 서운함, 섭섭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국 배제
소외·섭섭

-윤석열정부의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어떤가요?

▲지난 10월 주한중국대사관서 한중 우의를 위한 친선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미동맹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배려를 보여달라’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입니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로선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국은 북핵 문제, 탈북자 북송 문제 등 한국의 가장 큰 외교 현안과 밀접하게 연관돼있습니다. 북핵 문제에 있어서 중국은 당사자나 다름없습니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가 항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난 자리서 탈북자 북송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결국 중국의 협조 없이는 이런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미 동맹 기반으로 
한중 관계 개선해야

-북한 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말씀해주신다면?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무기로 전쟁 억제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핵우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이 개입하는 시기가 전쟁이 발발한 이후라는 점입니다. 서울에 핵이 떨어지면 국민 100만명 이상이 사망한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의 역할은 이미 피해가 발생한 후에 생깁니다. 


반면 중국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북한을 사전에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석유 공급을 위해 북한과 연결돼있는 파이프라인은 중국의 결정에 따라 개폐가 가능합니다. 중국이 파이프라인을 잠그게 되면 북한은 전쟁 자체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전쟁에 대한 현실적인 억제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 자체가 벌어지지 않게 하는 억제력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가요?

▲2016~2017년 한국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26~27%에 이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그 정도의 경제적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닙니다만, 역으로 한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그만큼 깊은 관계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19%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일본과 유사한 비율로 한중 양국에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정부 대중 외교의 아쉬운 점을 지적해 주신다면?

▲대중 외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외교정책은 사건이 일어날 때만 움직인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번 부산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 요소수 수입 문제 같이 ‘그때 그때’ 사안에만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면서 관계가 멀어지면 핫라인조차 유지하지 않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를 통해 핫라인을 회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경험했는데도 또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정치 특성을 모르고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북핵 문제
탈북자 북송


-중국의 정치 특성을 설명해주신다면?

▲중국은 특정 현안에 대해 지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서 결정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앞서 문재인정부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 중국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탈북자 북송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왕이 외교부 부장을 만나고, 한덕수 총리가 시진핑 주석을 만났지만 언급이 없었습니다.

관 주도 외교 방식 아쉬워
민간 채널 적극 활용 필요

-그렇다면 한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만나서 많이 대화하면 많은 협조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싱하이밍 대사는 20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문제에만 집중한 ‘한반도 전문가’입니다. 한중 수교 초기부터 저와도 가까운 30년 지기입니다. 북핵 문제, 탈북자 북송 문제 등 한국의 대중 외교 현안과 관련해서는 싱하이밍 대사에게 가서 자문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가 시진핑 주석이나 왕이 부장에게 말하면 그들 역시 대사이기 전에 한반도 전문가인 싱하이밍 대사에게 중국의 외교 프로세스를 따라서 의견을 묻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왜 싱하이밍 대사를 만나지 않을까요?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싱하이밍 대사에게 이 같은 자문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의 외교부 장관이나 국가주석이 있는데 굳이 주한중국대사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시스템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데 한국식 정치적 접근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윤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의 외교정책은 모두 ‘관’ 주도로 이뤄졌습니다. 민과 관이 협력하는 외교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관 주도의 외교정책이라 하시면?

▲모든 문제에 공식적으로 접근하면 공식적인 답변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공문으로 하는 외교는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의 배경도 관 주도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정부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했지만 효과를 극대화하지 못한 부분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국가간 경쟁일수록 민간 채널이 정말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그 부분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를 말씀해주신다면?

▲미국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은 우리의 옛 친구입니다. 중국은 우리와 1991년 수교를 맺은 새 친구입니다. 옛 친구에 대한 배려만큼 새 친구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합니다. 외교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배려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동시에 지속성을 놓치면 안 됩니다. 외교는 단숨에 이뤄지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신경 써야 정말 중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배려 기본
지속성 중요

-한국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국격에 맞는 외교정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특히 국가간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국가간에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지킬 수 없을 때는 상대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관계를 맺다보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상대 국가의 행보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상황에 따라 발 빠르게 외교적 대응을 할 수 있는 매뉴얼 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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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br>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