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지배구조 변화를 꾀한 삼표그룹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표면상 오너 일가는 지주회사 역합병을 계기로 영향력이 축소된 모양새지만, 사실상 바뀐 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룹의 후계자는 보폭을 넓히기 수월해졌다. 쓰임새가 확실한 우군을 등에 업은 덕분이다.
삼표그룹은 2013년 11월 지주회사인 ㈜삼표가 다수의 사업회사를 통솔하는 형태의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지주사 체제는 ㈜삼표를 지주회사(㈜삼표)와 사업회사(삼표산업)로 물적분할하는 과정에서 완성됐고, 이후 오너 일가는 ㈜삼표에 대한 압도적인 지배력을 토대로 그룹 전반을 통솔해 왔다.
보폭 넓히기
지난해 말 기준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삼표 지분 65.99%를 보유한 최대주주, 정 회장의 장남인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은 지분율 11.34%로 3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삼표를 축으로 하는 지주사 체제는 지난 7월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 삼표산업은 지주회사인 ㈜삼표를 흡수하는 역합병 수순을 밟았고, 이로써 두 회사는 쪼개진 지 10년 만에 다시 한 몸이 됐다. 합병 비율은 1.8742887(㈜삼표):1(삼표산업)이었고, 그룹은 시너지를 꾀하기 위함이라고 합병 목적을 설명했다.
통합 삼표산업 출범과 함께 표면상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크게 하락했다. 정 회장이 쥐고 있던 ㈜삼표 지분 65.99%는 삼표산업 지분 30.33%로 탈바꿈했고, 정 사장이 보유했던 ㈜삼표 지분 11.34%는 삼표산업 지분 5.22%로 바뀌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지분율 하락이 오너 일가의 실질 지배력 약화를 의미한 건 아니었다. 통합 직전 ㈜삼표가 보유했던 삼표산업 주식 1025만351주(지분율 82.78%)가 합병 이후 의결권 없는 자기주식(지분율 44.73%)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즉, 기존 ㈜삼표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통합 삼표산업에 온전히 반영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삼표산업의 ㈜삼표 역합병 이후 ‘에스피네이처’의 행보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수년 전 ㈜삼표 주주로 등재된 것과 얼마 전 삼표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한 모습이 역합병의 사전작업쯤으로 비춰진 덕분이었다.
2004년 설립된 에스피네이처는 콘크리트·시멘트 재료인 골재와 슬래그 및 철스크랩 수집·가공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대원’에서 인적분할을 거쳐 2013년 11월 설립된 골재업체 ‘신대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2017년 삼표기초소재, 2019년 경한·네비엔 등 알짜 그룹사들을 연이어 흡수·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지주 역합병 이례적 선택
든든한 오너 회사 후방 지원
에스피네이처는 ‘오너 일가→㈜삼표→삼표산업 등’으로 이어진 그룹 지배구조의 큰 틀에서 한 발 비껴나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기준 ▲에스피에스엔에이 ▲에스피환경 ▲홍명산업 ▲베스트엔지니어링 ▲대원그린 ▲산들환경 ▲코스처 등 7개 법인을 종속기업으로 둔 채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
오히려 에스피네이처는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한 축을 담당해왔다. 이 같은 형태는 에스피네이처가 2020년 ㈜삼표 지분 19.43% 취득과 함께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표면화됐다. 당시 정 회장의 ㈜삼표 지분율은 기존 81.90%에서 15.91%p 하락했고, 정 사장은 2.74%p가량 지분이 감소하면서 3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지배구조상에서 에스피네이처의 중요성은 올해 들어 한층 더 부각된 양상이다. 지난 3월 삼표산업은 이사회를 열고 600억500만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발행 주식은 보통주 195만주, 발행가액은 주당 3만771원이었다.
해당 신주 전량은 에스피네이처에 귀속됐다. 에스피네이처는 삼표산업 지분을 기존 1.74%에서 17.21%로 확대했고, 역합병 이후에는 합병비율에 따라 삼표산업 지분 18.23%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자리매김했다.
에스피네이처의 영향력 확대는 궁극적으로 정 사장의 입지 강화로 연결된다. 1977년생인 정 사장은 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꼽힌다. 2013년 삼표기초소재 대표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선 바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말 기준 에스피네이처 지분 71.9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는 곧 정 사장 측이 보유한 통합 삼표산업 지분이 23.45%(직접 보유 5.22%+에스피네이처 18.23%)임을 의미한다. 자기주식(3.57%)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 24.48%는 정 회장과 그의 두 딸(지선·지윤씨)이 보유 중이다.
정 사장이 지배력을 더 끌어올리려면 삼표산업 지분을 추가로 취득하는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가능성 높은 방안은 삼표산업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이다. 자기주식은 삼표산업 발행주식 중 44.73%에 해당한다.
에스피네이처와 삼표산업 간 합병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에스피네이처의 기업가치를 높인 후 삼표산업과 합병하면, 정 사장이 보유한 에스피네이처 주식은 합병비율에 따라 삼표산업 지분으로 반영될 수 있다.
꽃놀이패
이 같은 시나리오는 에스피네이처가 ▲삼표기초소재 ▲네비엔 ▲경한 등 사업회사 세 곳을 합병하고 자산규모를 크게 늘리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삼표기초소재는 슬래그파우더, 골재, 플라이애쉬 등을 취급하고, 네비엔과 경한은 철스크랩 가공 사업을 영위하는 방향으로 세분화됐다.
세 기업이 합쳐지면서 에스피네이처의 몸집은 눈에 띄게 커졌다. 실제로 2018년 말 기준 1825억원이었던 에스피네이처의 총자본은 네비엔과 경한을 흡수한 직후 4000억원에 근접한 수준으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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