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서초구 페리지갤러리서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반짝반짝’을 준비했다. 권도연은 ‘북한산’ ‘야간행’ 연작을 통해 북한산을 떠도는 들개와 어두운 저녁에 배회하는 야생동물을 꾸준히 쫓으며 이들의 모습이 담긴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권도연 작가는 들개와 야생동물을 꾸준히 포착해왔다. 이 동물은 모두 인간에 의해 변화된 생태계에 적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번 전시 ‘반짝반짝’ 역시 다루는 대상에 있어서는 이전 작업의 연장선서 진행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번 연작은 이전 작업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익숙하지만
흑백의 채도로만 이뤄진 ‘반짝반짝’의 풍경에는 카메라의 플래시 빛이나 기존에 존재하는 가로등, 건물의 인공적인 불빛만 존재한다. 흡사 연극의 무대, 사건 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반짝이는 빛을 통해 드러나는 풍경 너머로 길과 다리, 도시의 모습과 강, 풀숲이 나타난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토끼, 고양이, 삵, 수달, 너구리, 올빼미, 고라니, 민물가마우지, 갈매기 등 다양한 동물이 보인다. 이들은 어떤 풍경에서는 카메라를 의식한 듯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하려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이 포착돼있다.
권도연이 만나는 동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시간은 해가 지기 시작하는 때다. 그는 인간의 시각이 불능 상태에 다다르는 어두운 밤을 지나 다시 밝음이 찾아오는 새벽 시간 동안 길을 나서면서 야생동물을 만나거나 혹은 만나지 못했다. 이 시간의 궤적을 기록한 사진에는 다양한 대상이 동시에 담겨있다.
작가는 단순히 풍경 속에 있는 동물을 찍기 위한 게 아니라 그들을 따라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 과정서 나무, 풀숲, 강, 배, 어구 장비, 아파트, 다리, 난간, 자전거 도로, 가로등, 쓰레기통, 간판 등이 함께 포착됐다. 익숙하면서 낯선 분위기를 선사하는 모습이다.
어둠의 시간 배회하는 이들
바라보던 시선 이어진 찰나
인간의 길은 눈에 잘 띄고 동물이 다니는 길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권도연이 보여주는 풍경은 인공과 자연의 경계,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로 연결되는 명확하면서도 모호한 공간이다. 관람객은 작가와 같은 풍경을 보는 동안 작품을 보는 ‘나’의 길을 연결하게 되며 하나의 시공간 속에 잠시나마 함께 머무르게 된다.
전시 제목인 ‘반짝반짝’은 카메라 플래시로 인해 동물의 눈이 빛나는 것에서 착안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시선에서 멀어져 있던 어떤 것이 눈에 맺히는 현상을 비유했다.
페리지갤러리 관계자는 “그것은 일방적인 우리의 관찰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를 바라보게 되는, 다시 말해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던 서로의 시선이 이어지는 찰나의 순간서 느끼게 되는 생생한 감각이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가에게 있어 야생동물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위 이전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저 멀리 감춰지고 사라진 것을 다시 인식하고 그들과 눈을 맞추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낯선 분위기
이 관계자는 “우리가 권도연의 작품을 정확히 보기 위해 눈을 적응시키는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이 어색함과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 익숙함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일”이라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마주하는 그 일순간의 연결과 경계심, 놀라움을 벗어나 긴장감을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권도연의 사진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또 다른 문을 열어 보려는 행위의 결과다. 이 같은 작가의 태도는 우리와 그것을 서로 마주 보게 하는 ‘반짝반짝’한 풍경의 본질이다.
<jsjang@ilyosisa.co.kr>
[권도연은?]
권도연은 기억의 단편을 현실로 소환시켜 사진으로 재구성하고 현존했던 대상을 지금 마주하는 세계로 교차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 ‘반짝반짝’ ‘야간행’ ‘SF’ ‘북한산’ ‘섬광기억’ ‘고고학’ ‘개념어사전’ 등이 있으며, 미국 포토페스트비엔날레, 인천아트플랫폼,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제7회 KT&G 상상마당 SKOPF 올해의 최종 작가, 제10회 일우 사진상 출판 부문을 수상했으며 고양레지던시, 인천아트플랫폼, 금천예술공장, 난지창작스튜디오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저서로 <북한산> <Flashbulb Memory> 등이 있다. 고은사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