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연휴는 정부가 내수진작을 위해 10월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5일서 6일로 하루 늘어났다. 2014년 대체공휴일 제도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명절연휴는 고작 3~4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대체공휴일이나 임시공휴일이 적용되면서 명절연휴가 꽤 긴 황금연휴로 변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 13일 소비자 4000명을 대상으로 추석관 관련해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43.7%는 차례를 지내고 56.4%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46.0%는 고향이나 부모·친척 집 등을 방문하고, 나머지는 주로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쉴 계획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 국민의 약 45%만 추석연휴 기간 고향을 방문해 차례를 지내는 전통적인 추석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전 국민 95% 이상이 고향을 방문했다. 그래서 귀성행렬과 귀경행렬이 줄을 이루는 민족대이동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광경을 볼 수 없다.
1970년대 명절 민족대이동은 연휴가 시작되는 명절 전날, 귀성행렬과 명절 마지막 날 귀경행렬이 전부였다.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 혈연의 정을 쌓고, 고향 친구를 만나 옛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어 교통체증으로 도로가 막혀도 고향을 찾아가는 민족대이동 행렬에 전 국민이 대부분 참여했다.
당시엔 대중교통이 민족대이동의 주요 수단이었다. 전국 도로에 펼쳐진 대중교통의 귀성행렬과 귀경행렬이 장관을 이루면서 교통문제가 명절의 주요 이슈가 되기도 했다. 고향까지 가는 소요시간이 20시간을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후 2000년대부터 명절 민족대이동의 모습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 명절 전날 귀성행렬과 명절 마지막 날 귀경행렬과 달리, 명절 전날 친가에 가 명절날 오전에 차례를 지내고 명절날 오후엔 처가로 가 처가서 하룻밤 보낸 뒤 다음 날 귀경하는 패턴으로 명절날 처가행행렬이 추가됐다.
이는 핵가족이 늘어나고 자가용이 많이 보급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몇 년 전, 필자가 지인들에게 추석 안부 전화를 할 때도 대부분 추석 전날엔 부모를 만나기 위해 친가로 향하고 있었고, 추석 당일엔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처가로 향하고 있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행렬이다. 50년 전만 해도 한국의 가부장제 사회 속 명절은 가장 위주의 모임만이 허용됐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친가 위주로 모여 서로 교제했고 처가 쪽은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처가는 명절이 한참 지난 후에야 부모의 허락을 받고 잠깐 다녀올 정도였다.
그리고 대가족시대의 명절은 딸이 명절 때 친정에 아예 발도 붙이지 못했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2000년 이후 핵가족시대의 명절마저 분가한 아들과 출가한 딸이 함께 만날 수 없으니 명절의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아들은 친가서 명절날 오후 처가로 떠나는데, 그 때 딸은 시댁서 친정으로 오고 있어, 아들과 딸이 만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부모가 아들 가족과 딸 가족을 번갈아가며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명절날 아들 가족이 처가로 간다고 부모가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 딸과 사위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몇 년 동안 명절 민족대이동에 전 국민 50% 미만만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민족대이동이라는 표현도 맞지 않는다.
추석연휴 때 고향을 방문하고 차례를 지내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환경서 그나마 명절날 아침 친가행행렬과 명절날 오후 처가행행렬이 명절 민족대이동의 명맥을 간간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엔 명절연휴가 황금연휴로 자리 잡으면서 해외로 떠나는 공항행행렬, 관광지로 떠나는 관광행행렬, 병원을 찾는 병원행행렬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제는 명절날 친가행, 처가행행렬과 함께 이 모든 행렬이 신명절행렬임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시대별로 명절행렬을 요약해보면 2000년 이전 명절행렬은 2박3일 민족대이동의 ‘친가행→본가행’ 패턴이고, 2000년 이후 명절행렬은 2박3일 민족대이동의 ‘친가행→처가행→본가행’ 패턴이다.
최근 신명절행렬은 무박1일 명절 이동의 ‘친가행→처가행→본가행’ 패턴 또는 자유로운 일정의 ‘(공항행, 관광행, 병원행)→본가행’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신명절행렬도 무박1일 명절이동의 ‘친가행→처가행→본가행’ 패턴이 빠진 자유로운 일정의 ‘(공항행, 관광행, 병원행)→본가행’ 패턴만 존재할지 모른다. 아마도 그땐 명절 무용론도 대두될 것이다.
올해 추석연휴 기간도 29일 추석날 친가행행렬, 처가행행렬과 함께 추석연휴 기간 중 공항행행렬, 관광행행렬, 병원행행렬,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 귀경행렬이 대한민국의 신명절행렬로 연출될 것이다.
필자도 두 남매가 결혼해 차로 1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데, 추석날 오전은 아들 가족과 추석날 오후는 딸 가족과 함께 보낸다.
명절 민족대이동은 아니지만, 추석을 상징하는 행렬로 차례를 지낸 후 조상 묘를 찾는 성묘행렬이 있다. 그런데 최근 신명절행렬이 급부상하면서 성묘행렬이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추석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